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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32화 (32/1,000)
  • 32화 눈 감고도 잡는다 (4)

    -<고대 문명의 청동 검> 한손무기 / C+

    아주 옛날 방식으로 만들어진 고대의 한손 검. 너무 오래되어 공격력은 거의 없다. 반들반들하여 사용자의 얼굴이 비쳐 보인다.

    -공격력 +80

    -? (특수)

    이름 없는 여왕을 잡고 얻은 청동 칼.

    나는 그것을 꽉 쥔 채 메두사와 맞섰다.

    이 아이템의 숨겨진 특수 옵션.

    오직 나만이 그 옵션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청동> 광물 / D

    무르고 약해서 잘 쓰이지 않지만 파충류나 어둠 계열 몬스터들에게 굉장히 강한 저항력을 보여 간혹 무당, 제사장 등에 의해 장신구 재료로 쓰인다.

    채굴량이 적어 굉장히 희귀하다.

    이것이 청동 검의 주 재료인 청동.

    가상현실 게임 ‘뎀’의 세계관 속에서는 굉장히 희귀한 취급을 받는 광물이다.

    청동의 특성은 파충류, 어둠 계열 몬스터에게 두 배 증폭 효과를 준다는 것. 그것이 기본값이다.

    그리고 이 아이템의 숨겨진 옵션은 다음과 같다.

    -1회에 한해 용 혹은 어둠 속성 몬스터에게 ‘공격력*100’의 데미지를 주고 파괴됩니다 (수리불가)

    이 아이템을 떨어트린 ‘이름 없는 여왕’은 사실 악마족과 용족에 의해 멸망당한 왕조의 마지막 후예이다.

    그녀는 자기 나라를 하루아침에 멸망시켰던 악마와 용들에게 무시무시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그대로 아이템에 녹아들었다.

    설정 상, 그녀가 떨군 아이템은 용족에게 카운터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일회용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메두사와 용족의 카운터 특성이 무슨 상관이냐고?

    ……상관이 있다.

    이것은 뉴비들에게 있어서는 버그라고 생각될 여지가 있는 설정구멍.

    메두사는 의외로 용 계열 몬스터였다.

    상태창에 표시되지는 않지만, 메두사는 틀림없이 용 계열의 하위종 몬스터로 분류되어 있다.

    ‘뱀’과 ‘용’ 이 둘은 서로 연관이 있는 특성이면서도 분명히 다른 특성으로 분류된다.

    메두사의 ‘용’ 특성은 특성창에 표시되지 않고 있지만…….

    ‘그 이유는 잡고 나면 알게 되지.’

    나는 잠자코 메두사와의 일전을 준비했다.

    현재 청동 검의 공격력은 80.

    거기에 용족에게 100배가 들어가는 일회용 버프가 더해지면 한 방 데미지가 약 8,000까지 상승한다.

    ‘그러나!’

    나는 메두사의 모든 특성들을 떠올렸다.

    메두사는 어둠과 뱀 계열의 특성을 가졌다.

    청동의 역상성 특성을 두 개나 갖고 있는 것이다.

    고로 들어가는 데미지는 어둠 두 배, 뱀 두 배 해서 네 배!

    공격력 80짜리 청동검의 데미지는 약 32,000까지 치솟는다!

    메두사의 최대 HP는 약 39만 가량, 깎단의 도트 데미지로 인해 상당히 지쳐 있을 것이다.

    질질 끌 것도 없다. 한 방 승부. 바로 결과를 볼 시간이었다.

    “으랴!”

    나는 온 힘을 다해 청동 검을 휘둘렀다.

    메두사와 눈이 마주쳤지만 상관  없었다.

    쩌적- 쩌적- 쩌적-

    몸이 돌로 변하는 이 싸늘한 느낌, 실로 오랜만이다.

    하지만 괜찮다. 손은 눈보다 빠르니까.

    시선이 마주치는 것보다 빨리, 칼을 쥔 내 손은 정면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이변은 없었다. 나는 모험은 하지 않으니까.

    댕겅-

    시원하게 잘려 나간다.

    메두사의 목이.

    *       *       *

    툭- 데구르르르…….

    나는 잠시 저릿했던 팔다리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손끝에 감도는 따스한 온기를 다시 느끼며, 나는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잘려 나간 메두사의 머리가 굴러다닌다.

    신화에선 메두사의 잘린 머리 역시도 석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게임 속의 메두사는 죽는 즉시 그 능력을 잃는다.

    동시에.

    귓가에 요란한 알림음들이 뜨기 시작했다.

    -띠링!

    <세계 최초로 ‘메두사’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세계 최초의 ‘메두사’ 솔로 레이드입니다!>

    <‘은밀한 꼭두각시 회동’을 최초로 올 클리어하셨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나는 언제나 그랬듯 이름을 남겼다.

    ‘고인 물’

    레이드 영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녹화되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주변은 온통 불타고 얼어붙어 있다. 꼭두각시 몬스터 웨이브와 우는 천사를 거쳐 메두사까지. 들어올 때는 열한 명이 들어왔지만 결국 살아남은 것은 나 혼자다.

    -띠링!

    상태창을 켜 보았다.

    -이어진

    LV: 33

    호칭: 메두사 사냥꾼(특전: 마나 번)

    HP: 29/330

    <아이템>

    -깎아내는 단말마 / 한손무기/ S / (능지처참)

    -아카오니의 발가죽 / 신발 / C+ / (지진) (융합)

    수확이 있었다!

    일단 레벨이 1 올랐다. 그동안 수많은 몬스터를 잡은데다가 마지막으로 A급 몬스터인 메두사까지 잡았기 때문인 듯싶다.

    현재 공식 랭킹 1위의 레벨이 아직 20대 중후반임을 감안하면 경이로운 수치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그동안 없던 ‘호칭’이 생겼다.

    A급 몬스터 이상부터는 잡았을 시에 호칭을 준다.

    호칭은 잡았던 몬스터들이 표시되는 개념이며 특전으로는 해당 몬스터가 갖고 있던 특성 중 하나가 랜덤 부여된다.

    그 와중에 나는 운 좋게도 메두사의 ‘마나 번’ 특성을 패시브로 갖게 된 것이다.

    ‘튜토리얼 때는 왜 못 받았지?’

    용옥의 고문기술자를 잡았을 때 S급 호칭을 땄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잡으라고 만든 몹이 아니라서 특성도 안 줬던 걸까?

    뭐 아무튼.

    번쩍-

    나는 눈을 크게 떠 보았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효과는 알 수 없지만, 눈이 뭔가 변한 것 같은 기분이 느껴졌다.

    거울을 보면 안 돼서 모르겠지만, 아마 내 두 눈은 지금 시뻘겋게 물들어 있으리라.

    물론 메두사의 ‘마나 번’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이겠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추격자의 발목을 아주 잠시만 돌로 만들 수만 있어도 대만족이다.

    위기의 순간에 내 목숨을 구해 줄 구명줄이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근데 ON/OFF는 가능하겠지 이거?

    나는  상태창 점검을 끝냈다.

    이제는 아이템 보상을 챙길 차례다.

    고개를 돌리자.

    [내 이름은 메두사…….]

    저 멀리, 잘려나간 메두사의 머리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메두사는 원래 최후에 그냥 죽지 않는다.

    자신이 이렇게 된 이유와 배경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한 뒤 아이템을 뱉는 식이다.

    [나는 원래 상아석 안에 봉인되어 있었다. 그것을 멋대로 조각상으로 깎아 만든 게 그 미련한 조각가지. 놈은 자기가 만들어 낸 내 외면에 취해 제멋대로 지껄이더군. 정작 그 속에는 뭐가 들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메두사는 구구절절 말을 늘어놓는다.

    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SKIP] 버튼을 눌렀다.

    요즘 이런 거 누가 듣냐고.

    나는 빨리빨리 보상 아이템이나 챙기련다.

    이내.

    보상이 지급되었다.

    -땅그랑!

    메두사는 아이템을 뱉었다.

    -<똬리를 튼 사념(巳念)> 반지 / A

    마계에 서식하는 거대한 뱀 요르문간드는 어느 날 살기 좋은 인간계로 통하는 작은 틈을 발견했다.

    혼자서는 그 구멍을 비집고 나올 수 없기에, 이 교활한 뱀은 구멍 너머에 있는 인간의 욕심을 이용하기로 했다.

    -마력 +300

    -요르문간드 소환(최대 1마리) (특수)

    A등급이기는 하지만 별로 썩 좋지는 않은 아이템이다.

    차라리 메두사를 잡고 얻은 호칭이 더 낫겠다.

    “뭐, 그래도 이 뱀은 독이랑 마법 방패 역할은 톡톡히 하니까.”

    요르문간드는 거대한 덩치를 지닌데다가 스피드도 빠른 선공형 몬스터.

    등급도 B급이면 꽤 강한 편이다.

    사실 지금 플레이어들을 상대하라면 거의 적수가 없는 수준.

    물리 방어력이 거의 순두부 수준으로 형편없긴 하지만, ‘마법사 킬러’ 메두사의 사역마답게 동급의 마법은 거의 100% 방어해 내는 녀석이니…….

    ‘나중에 마법사에게 쫓길 때 써먹으면 될지도.’

    나는 메두사 레이드 직전, 돌이 되어가던 금은동 자매 중 이은비의 서늘한 눈빛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정 안 되면 경매장에 팔아 버려도 되겠다.”

    이 ‘메두사 반지’는 A급 아이템이긴 했지만 다른 아이템과의 조화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 아이템이다.

    아이템은 조화와 연계가 중요한 법.

    단순히 등급만 높다고 다가 아니다.

    지금 C+급 아이템이 최고 대우를 받고 있는 마당에 이 A급 반지가 풀린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난리가 나겠지.

    내가 혼자 히죽히죽 옷고 있을 때.

    -땅그랑!

    아이템 하나가 더 떨어졌다.

    -<우는 천사의 조각> D

    상아석 파편이다.

    어딘가 불길한 느낌이 든다.

    “아, 이것도 나왔네. 굿굿.”

    깜빡 잊고 있었다. 나는 얼른 손을 뻗어 하얀 돌조각을 주웠다.

    이것은 나중에 부유섬에 있는 피그말리온에게 가져다주어야 한다. 그러면 끝내주는 버프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걸로 끝!

    그럼 이제 피그말리온의 히든 퀘스트도 완료했고 아이템도 얻었다.

    호칭도 생겼고 레벨도 올랐다.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던전을 뜨지 않고 있었다.

    “…….”

    나는 자리에 앉은 상태로 눈앞에 있는 메두사의 머리를 참을성 있게 노려보고 있다.

    1시간.

    2시간.

    3시간.

    귀중한 시간이 자꾸만 흘러간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경쟁자들은 계속해서 레벨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가차 없이 앞으로 치고 나가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나는 이곳에 앉아 하염없이 흘려보내고 있었다.

    3시간 20분……3시간 40분……3시간 50분…….

    그리고 막 4시간째가 되었을 때.

    [……이봐.]

    잘려나간 메두사의 머리가 입을 열었다. 이미 죽은 듯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었던 것이다.

    [……아직도 안 갔나?]

    그녀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내게 말을 건다.

    […….]

    내가 말없이 계속 기다리고 있자.

    메두사는 정해진 AI 패턴대로, 숨겨진 대사를 입 밖으로 꺼냈다.

    [나는 억울해서 이대로는 눈을 감을 수 없어. 나를 죽인 그대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것 같은데……혹시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겠어?]

    드디어 왔다! 또 하나의 숨겨진 연계 퀘스트!

    [나는 원래 인간이었는데 검은 용을 사랑하게 되어 그와 정을 통해 아이 하나를 낳았지. 이제 죽는다고 생각하니 그 아이가 계속 마음에 걸려……. 나는 그 녀석을 두고는 죽을 수 없으니……내 아이를 죽여 내가 있는 저세상으로 같이 보내줘…….]

    드디어 밝혀졌다. 메두사가 어째서 희미하게나마 용 속성을 가지고 있는지 말이다.

    한편, 퀘스트 내용을 이미 알고 있던 나는 혀를 끌끌 찼다.

    이 얼마나 삐뚤어진 모정이란 말인가? 남겨진 아들이 걱정되니 함께 죽여 달라니.

    이것은 마치 자기 자살할 때 애꿎은 애들까지 같이 데리고 가는 부모들의 심경과 비슷하지 않은가?

    -띠링!

    <히든 퀘스트 ‘메두사의 모정’을 발견하셨습니다>

    <‘아들 사냥’ 0/1>

    <보상-?>

    <수락 / 거절>

    떴다!

    4시간을 죽치고 않아 기다린 보람이 있다.

    이것이 진짜 마지막 메인 퀘스트!

    …….

    자꾸 마지막이라고 뻥 쳐서 미안한데, 이번엔 진짜다.

    청동 골렘 (C+) - 이름 없는 여왕 (B) - 우는 천사 (B+) - 메두사 (A) - ?

    보스 몬스터들끼리 이어지는 연계 퀘스트.

    나는 이제 그 여정에 종지부를 찍으려 한다.

    내가 히든 퀘스트의 수락 버튼을 누르자.

    땅그랑-

    아이템 하나가 추가적으로 드랍 되었다.

    *       *       *

    -<검은 열쇠> D (1)

    이 물건에 손대서 좋을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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