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눈 감고도 잡는다 (3)
거울 역할을 하던 청동 방패가 결국 박살나고 말았다.
“방패가 없으니……너도 레이드를 포기해야겠지……, 두고 보자……, 나도 그 청동 방패를 구해서…너보다 먼저…메두사를 잡을 거다.”
투신의 악의(惡意)는 명백했다. 내 메두사 레이드를 방해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세.
하지만.
“어쩌나, 나는 눈 감고도 잡을 수 있는데?”
나는 너무도 태연하게 대꾸했다.
투신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헛소리냐? A급 몬스터를 어떻게 눈을 감고….”
방금 전의 장엄한 모습은 간 곳이 없다. 이곳에 있는 것은 그냥 깜짝 놀란 어린아이일 뿐.
하지만 그는 이미 끝났다.
나는 죽어가는 투신에게 구태여 답변을 주지 않았다.
그저 픽 웃으며 한마디를 남겼을 뿐이다.
“나중에 유튜뷰 영상으로 봐.”
말이 뭐 필요할까?
메두사를 잡고 그 공략을 내 유튜뷰 채널에 올리면 모든 것은 명백해지겠지.
부들부들…….
투신은 분노와 의심, 혼란에 못 겨워 몸을 떨기 시작했다.
진짜일까? ……에이, 설마. 상대는 A급 몬스터인데?
하지만 절대 공략이 불가능할 것 같은 우는 천사도 손쉽게 해치우지 않았던가?
그럼 혹시……설마 진짜로?
복잡한 심경이 눈을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너…이……!”
그는 막 입을 열어 무언가를 외치려 했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투신의 HP가 0이 되었다.
쿵-
내가 살았던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
그는 초라하게 무릎을 꿇었다. 지난 번 생에서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으로.
츠츠츠츠…….
시체가 완전히 분해되어 사라지는 시간은 24시간. 나는 서서히 옅어지는 투신의 시체를 등지고 뒤돌아섰다.
그곳에 떡 버티고 있는 존재는 바로 메두사.
이 던전의 진(眞) 보스.
전신에서 시커먼 아우라를 피어올리고 있는 그녀는 나를 향해 시뻘건 눈알을 굴린다.
<메두사> -등급: A / 특성: 어둠, 독, 소환, 마나 번
-서식지: 은밀한 꼭두각시 회동
-크기: 2m.
-항간의 괴담으로만 전해져 왔던 이 괴물은 마탑(魔塔)에 의해 오랫동안 그 존재 자체가 부정되어 왔다.
그녀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수천 년 동안 전승되어 내려온 마법의 완전무결함이 부정되기 때문이다.
-중급악마 ‘하우레스’의 『수기(囚記)』에서 발췌-
눈 마주치는 모든 것을 돌로 만들어버리는 무시무시한 ‘마나 번’ 특성.
하지만 나에게는 해당사항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나는 아까부터 눈을 질끈 감고 있었으니까.
‘메두사의 패턴이 어떻게 되더라?’
나는 눈을 감은 상태로 메두사의 공격 패턴을 분석해 보았다.
일단 얼추 4개로 나눌 수 있겠군. 우는 천사 때보다는 비교적 패턴이 쉽다.
1. 지옥불 용암. (엑티브)
-메두사가 7대마왕의 차원문을 열어 지옥 심부의 뜨거운 불길을 빌려 옵니다. 불길은 물과 돌도 태웁니다.
2. 지옥 된서리. (엑티브)
-메두사가 7대마왕의 차원문을 열어 지옥 심부의 차가운 서릿발을 빌려 옵니다. 서릿발은 불과 번개도 얼려 버립니다.
3. 요르문간드 소환. (엑티브)
-메두사가 커다란 뱀 요르문간드를 소환합니다. 요르문간드는 모든 마법 데미지를 무시합니다.
4. 마나 번 (패시브)
-사람은 누구나 몸속에 조금일지라도 마나를 품고 있습니다. 메두사는 사람 몸속에 흐르는 마나를 돌로 만듭니다.
3개의 엑티브 스킬과 1개의 패시브 스킬.
이것들만 조심하면 메두사 까짓 거 별 거 없다.
물론 눈을 감은 채로 움직여야 한다는 전제가 붙지만 말이다.
메두사의 공략 난이도는 여전히 ★★★★★.
나는 초긴장상태로 메두사의 앞에 섰다.
눈을 감으니 주변의 소리가 더욱 더 잘 들려온다. 메두사의 첫 공격은 랜덤. 33%의 확률로 뭐가 나타날지 모른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내 심장소리가 이렇게 크고 거슬리는 것인 줄 처음 알았다.
나는 내 몸 속 시끄러운 잡음 사이로 들려오는 미세한 소리에 집중했다.
뭐냐. 4번 패시브를 제외한 1, 2, 3번 엑티브 중 무엇이 올 것이냐.
내가 눈을 감은 채 귀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을 무렵.
뿌지직-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빠드득-
뽁뽁이들이 한 번에 터지는 듯한, 이빨을 세게 가는 듯한, 커피 잔 속의 얼음을 깨물어 씹는 듯한, 그런 소리.
…….
굳이 따지자면 셋 중 제일 후자에 가깝겠다.
나는 잽싸게 뒤로 물러났다. 가능한 높이 점프하면서.
쩌저저저저적!
내 예상이 맞았다.
뛰어오르기 전까지, 바닥은 그저 단단한 석회암에 불과했다.
하지만 뛰어오른 뒤, 발을 딛자 바닥은 어느새 차갑고 뾰족뾰족한 된서리로 뒤덮여 있었다!
2. 지옥 된서리. (엑티브)
-메두사가 7대마왕의 차원문을 열어 지옥 심부의 차가운 서릿발을 빌려옵니다. 서릿발은 불과 번개도 얼려 버립니다.
메두사가 2번 패턴으로 공격해왔다.
처음에 날아드는 게 불이었다면 바닥에 납작 엎드려야 하고 얼음이라면 위로 펄쩍 뛰어 올라야 한다.
둘 중 얼음 쪽이 그나마 피하기 쉬운 편. 운이 좋았다.
쾅!
나는 아카오니의 발가죽을 이용해서 바닥을 세차게 굴렀다.
쿠드드드-
지진이 일어나 바닥에 얼어붙은 된서리를 깨 버렸다.
C+급 아이템의 스킬이라서 메두사에게까지 데미지가 닿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내가 디딜 수 있는 공간은 충분히 만들어졌다.
쿠르륵-
눈을 감고 있는 내게, 하수도로 물 빨려 들어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얼굴이 확 뜨거워진다.
나는 잽싸게 바닥에 드러누웠다.
화르르르르륵-
메두사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온 화염폭풍이 정면을 온통 불바다로 만들고 있었다.
물론 나는 바닥에 뒹굴어 그 불의 세례를 모두 피했지만.
‘이때다!’
나는 지진으로 인해 부서진 된서리를 헤치고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갔다.
낮은 포복! 눈을 감았기에 방향은 메두사가 처음 젠 될 때 보았던 장면만으로 짐작해야 한다.
‘어디보자, 이 때 기어가야 하는 거리가 약 12미터 정도였지?’
과거 수없이 봤던 공략대로, 나는 천천히 거리를 계산하며 전진했다.
이윽고. 온 세상 천지가 불바다가 된 가운데 메두사가 서 있는 반경 2미터 정도가 무풍지대가 되어 있는 것이 드러났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누가 그랬던가? 지금 상황에 딱 맞는 말이다.
나는 깎단을 역수로 쥐고는 메두사의 다리가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방향을 향해 힘차게 내뻗었다.
뿍-
단단한 비늘을 뚫고 그 안의 부드러운 살점을 몽땅 헤집어 놓는 느낌.
눈을 감아서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느껴졌다.
메두사의 왼쪽 다리 복숭아뼈 부분에 깎단이 박혔다!
[크아악!]
메두사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이미 죽음의 카운트다운은 시작되었다.
앞으로 2시간 46분 40초 뒤에, 그녀는 죽는다.
자기 앞에 드리운 위기의 냄새를 맡은 것일까?
메두사는 지옥불과 된서리를 거두고는 허공에 복잡한 마법진을 그려 놓기 시작했다.
나는 보지 않아도 그 낌새를 눈치 챌 수 있었다.
‘공격이 안 오는 걸 보니 다음은 소환메타네.’
나는 잽싸게 뒤로 물러났다.
아니나 다를까. 메두사는 자신의 특성 중 하나인 ‘소환’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콰쾅!
던전 전체에 낯선 위압감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오-오오오오!]
거대한 괴수가 내지르는 포효가 이 공간 전체를 뒤흔들어놓기 시작했다.
<요르문간드> -등급: B / 특성: 백전노장, 독 면역, 마법면역
-서식지: 은밀한 꼭두각시 회동, 거인국, 똬리를 튼 사념
-크기: 15m.
-신화의 말석을 차지하고 있는 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촘촘히 덮인 비늘은 모든 독, 마법 데미지에 면역을 가진다.
엄청나게 큰 대형 몬스터.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던전이 꽉 찬 것 같다.
하지만 전혀 기죽을 것 없다. 놈은 기껏해야 소환수, 등급 역시 고작 B니까.
“공격 패턴 역시도 너무 쉽지.”
나는 픽 웃으며 몸을 날렸다.
만약 평범한 플레이어들이 보았다면 B급 몬스터를 잡몹 취급하는 내 행동에 크게 놀랐겠지만……지금 이곳에는 나 외에 아무도 없기에 놀랄 사람도 없다.
‘뭐, 나중에 공략 영상을 유튜뷰에 올린다면 반응은 좋겠네.’
벌써부터 내 공략 영상을 본 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눈에 선하다.
아마 한국에 존재하는 모든 인터넷 커뮤니티란 커뮤니티는 죄다 발칵 뒤집어지겠지.
……하지만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일.
중요한 것은 언제나 현재다.
지금 이 순간에도 메두사의 시선이 공간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기에 방심할 틈은 전혀 없었다.
나는 혹시나 실눈이라도 뜨지 않을까 주의하며 스텝을 밟았다.
눈을 감고 귀에 온 신경을 집중하자, 정면에서 거대한 기운의 흐름이 느껴진다.
“우측 상단 꼬리 채찍.”
콰쾅!
“좌측 하단 부채꼴 범위 휩쓸기.”
쿠-구구구!
“플레이어 위치에 대가리 다이브.”
콰콰쾅!
나는 요르문간드가 휘두르는 꼬리들을 전부 간발의 차로 피해 냈다.
앞 머리카락 끝과 코끝을 스쳐 지나가는 거대한 괴수의 몸. 이것은 그야말로 한 끝 싸움이다.
내가 몸을 한번 흔들 때마다.
퍽- 퍼억- 우득-
요르문간드의 몸에는 송곳 구멍이 뚫린다.
놈은 마법 데미지에는 엄청난 저항력을 보이지만 물리 데미지에는 형편없이 취약하다.
처음에 보면 거대한 몸집 때문에 가까이 다가갈 생각보다는 멀리서 마법을 날리게 되지만, 그렇게 하다가는 물약만 낭비한 채 전멸하기 십상.
이놈은 오히려 이렇게 가까이 붙어서 후벼 줘야 빨리 잡는다.
탱커 두 명, 혹은 딜러 한 명만 있어도 비교적 쉽게 잡을 수 있다.
퍼퍼퍽!
내가 깎단으로 계속해서 후비고 찌르자.
쿵-
요르문간드는 이내 그 거대한 몸을 바닥에 뉘였다.
[꺄-아아아악!?]
메두사는 자기가 소환한 뱀이 죽었다는 사실에 격분하는 듯하다.
번쩍-
플레이어들을 돌로 만들어 버리는 그녀의 눈빛이 한층 더 강해졌지만.
“…….”
눈을 감고 있는 내게는 애초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
화내며 날뛰어 봤자 위치만 알려 주는 셈이니 고마운 일이다.
쿠르르륵!
빠지지직!
나는 그 이후로도 몇 번의 화염폭풍과 된서리 세례를 견뎌 냈다.
그때.
뿌직-
바닥에 깔린 된서리를 짓이기며, 메두사가 나에게로 곧장 달려들었다.
HP가 한계에 이르렀을 때 독 속성을 가진 몬스터들이 으레 하는 다이브,
전신에 지독한 맹독을 두른 채 달려들어 온 주변을 중독시키는 돌진기다.
뉴비들에게는 그야말로 기절초풍할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별로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
…….
하지만 반응은 빠르게, 그리고 신중하게 필요가 있었다.
원래라면 바닥을 뒹굴어 피한 뒤 지진으로 얍삽하게 딜을 넣어 데미지를 축적했겠지만.
“좋다! 붙어 보자!”
나는 눈을 감은 채 이를 꽉 깨물었다.
사실 메두사의 공격 패턴으로 독 다이브가 나왔을 때의 대비책은 따로 있었다.
마지막은 원래 청동 방패로 처리할 생각이었다.
메두사의 마나 번은 반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화 속에서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본 메두사는 돌이 되어버리지 않던가.
때문에 청동 방패를 거꾸로 들어 메두사 본인을 비춘다면 마나 번 특성은 메두사 자신에게도 석화 마법을 걸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일단 마나 번이 들어간다면 HP가 한계에 이른 메두사는 마나마저 묶이게 된다. 그때가 바로 2차 폭딜 포인트인 것이다.
하지만.
투신에 의해 내 청동 방패는 두 동강이 나 버린 상태.
나는 메두사에게 결정적 타격을 먹일 아이템이 깎단 말고는 없는 상황이다.
…….
아니.
하나 있었다.
나는 그 짧은 순간 인벤토리를 열어 그 속에 든 아이템을 손에 콱 쥐었다.
-<고대 문명의 청동 검> 한손무기 / C+
아주 옛날 방식으로 만들어진 고대의 한손 검. 너무 오래되어 공격력은 거의 없다. 반들반들하여 사용자의 얼굴이 비춰 보인다.
-공격력 +80
-? (특수)
이름 없는 여왕을 잡고 얻은 청동 칼.
그것은 부서져 버린 청동 방패를 대신해 메두사와 정면으로 맞선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이 아이템의 숨겨진 옵션이 그 진가를 발휘할 순간이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