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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29화 (29/1,000)

29화 눈 감고도 잡는다 (1)

<메두사> -등급: A / 특성: 어둠, 뱀, 소환, 마나 번

-서식지: 은밀한 꼭두각시 회동, 부유섬, 썩고 불타는 땅

-크기: 2m.

-항간의 괴담으로만 전해져 왔던 이 괴물은 마탑(魔塔)에 의해 오랫동안 그 존재 자체가 부정되어 왔다.

그녀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수천 년 동안 전승되어 내려온 마법의 완전무결함이 부정되기 때문이다.

-중급악마 ‘하우레스’의 『수기(囚記)』에서 발췌-

.

드디어 던전의 진짜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밀한 꼭두각시 회동’의 모든 광대들을 암막 뒤에서 지배하는 존재.

우는 갈라테이아의 몸속에 봉인되어 있던 뱀 여제 ‘메두사’

그녀가 눈을 뜬 것이다.

번쩍-

꿈틀거리는 뱀으로 이루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메두사가 시뻘건 눈을 빛냈다.

금방이라도 혈액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눈알.

그 눈알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온 방 전체를 붉게 물들인다.

그리고.

“아앗!?”

우는 갈라테이아로부터 살아남은 여섯 명의 생존자가 일제히 기함을 토했다.

쩌적-

신체 곳곳에서 들려오는 기묘한 소리.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피가 통하지 않았을 때, 몸이 마치 남의 것인 양 낯설어지는 감각.

그 섬뜩한 감각이 발가락과 손가락 끝에서부터 점점 타올라오고 있었다.

석화(石化).

그렇다.

그들은 지금 돌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이, 이게 뭐야!? 왜 이런 일이…….”

유다희는 기겁을 하며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이미 다리가 돌로 변해버렸기에 반 걸음도 채 움직일 수 없다.

“…….”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픽 웃었다.

메두사 하면 생각나는 존재는 뻔하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여왕’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존재로 머리카락 하나하나는 뱀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얼굴은 너무나도 흉측해서 보는 이가 돌이 될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메두사는 신화에 나오는 존재에서 모티프를 얻어 만들어진 몬스터.

그리고 메두사의 특성인 ‘마나 번(burn)’은 곧 석화를 뜻하는 것이다.

그녀의 시선을 마주 보게 되면 체내의 마나가 서서히 돌처럼 굳고 만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세계관 속에서 ‘마나 번’ 특성을 가진 몬스터는 극도로 적다. 기껏해야 셋이나 될까?

최소한 A등급 이상의 몇몇 고위종 몬스터만이 사용 가능한 이 특성은 몬스터마다 다양한 발현 양상을 보인다.

상대방 체내의 마나를 돌로 만드는 것 외에도 불태우거나 얼리는 것, 심지어 황금으로 만드는 것도 모두 ‘마나 번’ 특성에 해당된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메두사의 석화 능력은 마나 번 특성의 상징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꽤나 먼 미래에, 메두사는 마법사 플레이어들의 천적으로 여겨지게 된다.

어지간한 마법은 메두사에게 통하지도 않을뿐더러, 마나 번 특성에 역공을 찔리기가 너무나도 쉽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메두사의 별명이 지난 10년간 ‘마법사 킬러’였겠는가!

물론, 나는 메두사 첫 등장 당시에 눈을 감고 있었기에 돌이 되지 않았다.

“드디어 이 퀘스트를 깰 때가 왔군.”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부유섬의 히든 NPC ‘피그말리온’에게 받은 퀘스트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히든 퀘스트 ‘피그말리온의 증오’>

<‘우는 갈라테이아’ 파괴 1/1>

<보상-?>

-<히든 퀘스트 ‘피그말리온의 증오’ 연계 퀘스트>

<‘메두사’ 처치 0/1>

<보상-?>

우는 갈라테이아를 파괴하고 그 조각을 증표로 가져가는 것이 원래의 퀘스트.

하지만 지금 상황 때문에 히든 퀘스트는 하나가 더 늘어났다.

먼젓번 퀘스트와 연계되어 있는 연쇄 퀘스트.

그것은 바로 최종보스 메두사 사냥!

결국 우는 갈라테이아를 완전히 파괴하려면 메두사를 잡아야 하는 것이다.

평범했던 천사상에 깃들어 ‘우는 갈라테이아’라는 몬스터를 만들어 내고 피그말리온까지 돌로 만들어 버린 존재가 바로 메두사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는 갈라테이아의 공략 난이도가 ★★★★★인 것도 다 이 메두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메두사로 진화하기 전, 우는 갈라테이아의 공략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계속 틈틈이 쳐다봐 가며 잡는 것이다.

적어도 쳐다보고 있는 동안에는 위협적이지 않으니까.

하지만 일단 메두사로 변태하고 난 후에는 말이 180도 달라진다.

이제는 보면 안 되는 것이다.

시선을 마주쳤다간 바로 돌이 되어 버린다.

이 패턴 역전에 당해 목숨을 잃어야만 했던 고위급 랭커가 몇 명이나 될까? 아마 전 세계적으로 따지면 수천 단위는 가뿐히 넘어갈 것이다.

-<고대 문명의 청동 방패> 방어구 / C+

아주 옛날 방식으로 만들어진 고대의 방패. 너무 오래되어 방어력은 거의 없다. 반들반들하여 사용자의 얼굴이 비쳐 보인다.

-방어력 +10

-? (특수)

시선을 무효화시켜주는 청동 방패가 없다면 레이드는 시도조차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 특수 옵션의 존재를 몰랐던 랭커들은 전부 다 통한의 눈물을 떨구며 돌이 되어 버렸다.

…….

지금 이곳.

우는 갈라테이아로부터 살아남았던 이 여섯 생존자들도 바로 그런 상태였다.

“뭐야!? 아까는 봐야 안전했는데! 이제는 안 봐야 안전한 거야!?”

“패턴이 이렇게 갑자기 뒤집히는 게 어딨어!”

곳곳에서 날카로운 항의가 빗발친다. 당장이라도 반란을 일으켜 나를 공격할 기세.

하지만 괜찮다. 저들은 이미 반쯤은 돌로 변했으니까.

“야, 이 변태 새끼야!”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하게 된 유다희가 버럭 소리쳤다.

“왜?”

내가 묻자, 유다희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향해 온갖 욕지꺼리를 내뱉었다.

“이 XX를 XX해 버릴 X놈아! 너 알고 있었지 XX! 알면서 안 알려 줬지, 이 XXXX야!”

옛날에 내가 알던 그녀는 참 착하고 순했는데, 그것은 전부 가면일 뿐이었다.

전부 나에게서 템을 뜯어내기 위한 수작이었구나 싶어 새삼 기분이 울적해진다.

“아직 주둥이는 돌이 덜 됐네.”

나는 손을 뻗어 유다희의 입술을 움켜잡고는 위아래로 한번 흔들어 주었다.

“느어 이 쓉……!”

입술이 잡힌 채 읍읍거리던 유다희, 그녀는 이내 욕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래턱까지 돌로 변해 버린 탓이다.

나는 곧이어 완전히 회색으로 물들어 버린 그녀의 몸에서 손을 뗐다.

어쩌면 이곳, 꼭두각시들의 던전은 그녀의 최후로는 참 알맞은 곳이다 싶었다. 가면을 쓴 연기자의 무덤으로는 꽤 어울린다.

한편.

금은동 자매 중 이은비. 그녀는 탄식하고 있었다.

“저 변태의 손에 완전히 놀아났군.”

그녀는 돌이 되어 버린 언니와 동생을 바라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 역시 석화가 꽤나 진행되었다.

메두사의 마나 번에 정면으로 노출된 이상 방법이 없다.

머지않은 시간 내에 분명 돌이 되겠지.

지금껏 찍은 녹화영상도 전부 날아갈 것이다.

괜히 공탁금으로 걸었던 1억 골드만 날리고 고기방패 역할만 하다가 죽게 생겼다.

“……너 얼굴 기억했어.”

이은비는 나를 향해 살기 어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그녀를 향해 어깨만 으쓱해 주었을 뿐이다.

원래 게임이라는 게 다 그렇다. 약하면 먹히는 곳.

그녀는 달콤한 과실을 쉽게 얻고자 했다가 내게 이용당했을 뿐.

단지 그뿐이다.

내가 메두사 눈 보지 말라고 일일이 우쭈쭈 챙겨줄 의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애초에 아크레에 얌전히 있던 나를 다구리로 죽일 생각을 했던 여자가 아닌가?

이렇게 된 상황에 별로 죄책감은 없다.

‘아무쪼록 뭔가를 배웠길 빌어요~’

나는 금은동 자매가 이 계기를 통해 조금 더 성장하길 바라며 고개를 돌렸다.

기만이라면 기만일 수 있지만, 애초에 A급 몬스터를 먼 발치에서라도 보는 게 어디야.

요즘 시대에 정보와 경험은 곧 돈이나 다름없다.

그녀들로서도 성과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히든 던전의 위치까지 알게 되었으니 남는 장사지 남는 장사야.

‘……뭐, 위치를 안다고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자, 그럼 이제 메두사 언니와 놀아 볼까?”

슬슬 메두사에게 딜을 넣을 준비를 한다.

메두사는 젠 된 지 약 30초 동안은 가만히 서서 방을 둘러보기만 할 뿐이다.

물론 그동안 마나 번 특성은 지속되기에 그녀와 눈을 마주치면 절대 안 되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메두사의 공격 패턴을 모조리 꿰고 있는 내게는 지금이 바로 절호의 찬스가 아닌가!

지금이 폭딜을 꽂아 넣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앞으로 메두사가 잠잠하게 있는 순간은 전혀 없을 테니까.

달그락-

나는 왼쪽 팔뚝에 부착한 청동 방패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고오오오…….

메두사가 전신에서 시커먼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것이 비스듬히 보인다.

물론 시선은 무효 처리되기에 내가 돌로 변하는 일은 없다.

우는 갈라테이아의 ‘관심종자’, 메두사의 ‘마나 번’ 특성에 카운터를 먹이기에 딱 좋은 아이템.

“이 청동 방패만 있으면…….”

내가 막 본격적으로 솔로 레이드를 시작하려 할 때.

쉬익-

내 귓가로 불어오는 바람이 한 줄기.

‘……!’

고인 물의 본능이 외친다.

이건 위험하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고 허리를 숙였다.

스팍-

정수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충격파.

콰쾅!

내 뒤에 있던 돌기둥 하나가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

나는 놀란 눈으로 측면을 돌아보았다.

이 시점에서 내게 공격을 할 수 있는 존재는 메두사를 제외하면 없을 텐데?

하지만.

세상 일이 늘 뜻대로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15년 앞의 미래를 훤히 꿰고 있는 나조차도 예상 못한 일이 벌어졌다.

투신(鬪神) 마태강.

15년 뒤, 한국 랭킹 1위에 빛나는, 아니 빛나게 될 영웅.

그는 메두사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시선을 나에게만 고정시키고 있었다.

이윽고.

투신은 입을 열어 짤막한 대사 한 토막을 던졌다.

“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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