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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28화 (28/1,000)
  • 28화 생존비 (3)

    갸아아아악-

    목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듣기 싫은 괴성.

    우는 갈라테이아 특유의 피어(Fear)가 발동되었다.  이 울음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본능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물론 나에게는 그저 식욕 떨어지는 하울링에 불과하지만.

    <우는 갈라테이아> -등급: B+ / 특성: 암석, 관심종자

    ‘관심종자’라는 저 귀찮은 특성.

    보고 있을 때는 파괴불가 상태로 움직이지 않고 안 보고 있을 때면 엄청난 스피드와 공격력으로 접근해 온다.

    볼 수도, 안 볼 수도 없는 저 난감한 패시브 스킬 때문에 이 몬스터의 난이도는 별 다섯 개로 책정되어 있다.

    결국 놈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보지 않고 잡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패턴을 완벽하게 분석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반사신경이나 피지컬이 딸린다면 결국 한타를 허용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된다면 놈의 무시무시한 공격력에 의해 원 턴 킬을 당하겠지.

    정말 여러모로 공략하기 까다로운 몬스터가 아닐 수 없다.

    …….

    뭐, 어디까지나 뉴비들의 입장에서는 말이야.

    “하지만 지금은 제 점심이죠.”

    나는 접근해 오는 우는 갈라테이아의 모습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보여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는 갈라테이아는 그 흉측한 얼굴을 만천하에 드러낸 채 접근해 오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아이템 덕분이었다.

    -<고대 문명의 청동 방패> 방어구 / C+

    아주 옛날 방식으로 만들어진 고대의 방패. 너무 오래되어 방어력은 거의 없다.

    반들반들하여 사용자의 얼굴이 비쳐 보인다.

    -방어력 +10

    -? (특수)

    비록 감정 스크롤을 따로 쓰지는 않았지만, 나는 저 숨겨진 옵션이 어떤 내용인지 이미 알고 있다.

    <숨겨진 옵션(?)>

    -‘시선처리’(특수): 이 방패를 통해서는 시선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시야 범위 +10%

    ‘시선처리’ 실로 간단한 특성이다. 전투 시 이 방패를 통해 보면 10% 더 멀리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방패를 통해 간접적으로 비추어 보는 것은 시선으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이 방패를 거울처럼 써서 앞을 비춰 본다면 우는 갈라테이아는 나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다.

    고로 정체를 감추지 않고 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뭐, 방패 옵션은 구리니까 많이 쓸 일은 없겠지만…….’

    사실 방패의 방어력이 너무 쓰레기라서 관심종자 특성을 가진 몬스터를 상대할 때 외에는 별로 쓸모가 없다.

    한 마디로 ‘관심종자’ 특성만을 위한 카운터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겠다.

    깡!

    나는 우는 갈라테이아가 휘두르는 손톱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이고 방패를 쳐다보자, 우는 갈라테이아의 유일한 데미지 포인트인 눈이 보인다.

    눈알이 없이 움푹 들어간 눈두덩이 속에는 어둠만이 고여 있다. 그 부분을 통해서만 데미지를 줄 수 있기에, 우는 갈라테이아는 항상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린다.

    퍼억-

    나는 팔을 버드나무 가지처럼 휘둘렀다.

    깎아낸 단말마.

    나의 히든 피스가 우는 갈라테이아의 한쪽 눈에 푹 박혔다.

    갸아아아악!!

    우는 갈라테이아는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모습도 청동 방패를 통해 그대로 비추어 보이기에 피하는 것에는 아무 문제 없었다.

    ‘어디 보자, 10년 전에 이놈을 어떻게 잡았더라? 아마 공격 패턴이 arvblvcrvdlvervfl 였지?’

    공격 패턴 ‘arvblvcrvdlvervfl’

    뭐? 한영키 잘못 누른 것 아니냐고?

    아니다. 이것은 우는 갈라테이아의 공격 패턴을 그대로 쓴 것이다.

    언뜻 보면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까놓고 보면 그리 대단하진 않다.

    r과 l은 right와 left의 줄임말이다. 왼손 할퀴기와 오른손 할퀴기, 즉 평타를 뜻한다.

    v는 violence. 광폭 상태에 빠지는 것.

    a는 abdomen. 복부에서 튀어나오는 상아 가시 공격.

    b는 breath. 입에서 독기 어린 숨결을 내뱉는 것.

    c는 crumble. 전방의 적을 두 팔로 크게 껴안아 으깨버리는 것.

    d는 draw. 염동력을 이용해 상대방을 끌어당기는 것.

    e는 embalmment. 손에 닿은 상대방의 HP를 빨아들이는 것.

    f는 follow.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에게 순식간에 다가가는 것.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뭐 아무튼.

    arvblvcrvdlvervfl이란 우는 갈라테이아의 공격 패턴 순서를 뜻한다.

    푸확!

    놈은 예상대로 배에서 꺼낸 뾰족한 상아로 공격해왔다. 방향은…음, 아마 정면이었지?

    나는 고개를 숙여 그것을 피했다.

    꽤나 여유롭게 격차가 벌어졌다.

    갸아아악!

    그러자 놈은 화가 났는지 전신에서 피어를 끌어올렸다.

    광폭화 상태에 들어간 것이다.

    “그 상태에서 오른쪽-.”

    나는 허리만을 비틀어 우는 갈라테이아의 손톱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이어질 독 숨결을 피해 놈의 사타구니 아래로 바짝 기었다.

    푹-

    깎단이 놈의 턱을 쑤시고 들어갔다.

    우는 갈라테이아는 비명을 지르다가 멈췄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격을 멈추지는 않았다.

    또다시 왼쪽에서 손톱이 날아든다.

    나는 똑같이 허리를 반대로 틀어 그것을 피해 냈다.

    스팍-

    머리카락 몇 가닥이 손톱에 베여 흩날린다. 정수리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아무리 거울로 보고 있다고 해도, 놈의 스피드는 정말로 빠르다. 한 방? 두 방?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와락-

    생각에 빠져 있는 순간, 우는 갈라테이아가 포옹을 시도해 왔다.

    저기 잡히면 100% 죽는다.

    나는 지체 없이 뒤로 굴러 갈라테이아의 포옹을 피했다.

    그러자, 광폭화 된 우는 갈라테이아가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것이 보였다.

    후오오옥-

    놈은 두 손을 뻗어 나를 향하게 하고는 이상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염동력! 멀리 있는 적을 자기 근처로 끌어들이는 기술이다! 저 괴랄한 패턴에 걸려 죽었던 랭커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나는 대비책이 있다.

    “눈 떠!”

    내가 외치자, 방 구석에서 눈을 내리깔고 있던 생존자 여섯 명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쩌적-

    우는 갈라테이아를 향해 시선들이 집중되자, 놈은 언제 움직였냐는 듯 다시 평범한 석상으로 되돌아갔다.

    “……좋아.”

    나는 바닥에 드러누운 채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몬스터는 arvblvcrvdlvervfl패턴 중 d단계에 이르렀을 때 시선이 집중되면 다시 패턴을 처음부터 다시 반복하는 습성이 있다.

    봉인이 다시 풀린다면, 우는 갈라테이아는 다시 a부터의 공격을 반복할 것이다.

    즉 나는 놈의 염동력, HP흡수, 순간이동 등의 패턴과는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다만 d단계 직전에 땅바닥을 구를 때 놈을 순간적으로 볼 수 없음으로, 다른 이의 시선을 잠시 빌려 쓰는 것이다.

    …이렇게만 들으면 쉬워 보이지만, d단계가 막 시작될 때의 그 미묘한 타이밍을 잡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건 나만 되는 거다.

    “자, 다들 다시 눈 까세요.”

    내가 친절하게 손을 흔들자.

    “…….”

    생존자 여섯 명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숙인다.

    이내.

    갸-아아아악!

    우는 갈라테이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퍽- 퍼억- 퍽!

    나는 깎단으로 우는 갈라테이아의 눈을 계속 후볐다.

    10년 전에 했던 동작들임에도 불구하고 손에 착착 감긴다.

    왕년엔 B+급 몬스터 정도는 혼자서도 잡았었지.

    이어진 아직 안 죽었다.

    “엇차!”

    나는 우는 갈라테이아의 포옹을 피해 또다시 뒤로 굴렀다.

    아니, 구르려 했다.

    한데?

    “응?”

    나는 뒤로 구르다 말고 멈칫했다.

    우는 갈라테이아가 포옹을 하려다 말고 황급히 석상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

    나는 불쾌한 표정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움찔!

    내 시선을 받고 뜨끔하는 녀석이 하나 있었다.

    투신 마태강. 그가 이쪽을 쳐다보고 만 것이다. 내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 거의 다 잡았는데 지금 뭐 하는 거야. 너 때문에 막타 놓쳤잖아.”

    내게 힐난을 들은 마태강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보지도 못하냐 ㅅㅂ…….’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 봐도 보인다.

    난생 처음으로 B+급 몬스터를!

    그리고 그것을 상대로 1:1 대결을 펼치는 고수를 봤는데 보고 싶겠지.

    정말 미치도록 구경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보면 우는 갈라테이아는 바로 석상으로 돌아간다.

    힐끔 엿볼 수도 없는 일이다.

    *       *       *

    ‘보고 싶다. 아 진짜 미치도록 보고 싶다.’

    생존자 여섯 명의 생각은 모두 똑같았다.

    다들 게임에 대한 열정이 엄청난 이들이니까.

    하지만 조금이라도 엿보면 우는 갈라테이아는 돌이 되어 버린다.

    그 뿐만 아니라 자칭 ‘고인 물’이라는 저 인간이 또 어떤 말로 빈정거리며 속을 긁어 댈지도 알 수 없다.

    대체 어떻게 잡나 궁금해서 살짝 엿볼라치면…… 우는 갈라테이아는 어김없이 돌조각이 되어 있고 저 인간이 이쪽을 향해 혀를 차고 있는 것만 보일 뿐.

    ‘확 그냥 레이드 방해해 버려?’

    여섯 명의 불만이 점점 커져 간다. 여차하면 우는 갈라테이아를 봤다가 확 눈을 감아 버리면? 저치의 움직임도 꼬일 것이고 결국 우는 갈라테이아에게 한방을 허용하게 될 것이다.

    ‘보아하니 알몸이라 방어력도 구릴 것 같은데……한번 질러 볼까?’

    이윽고, 유다희가 제일 먼저 독한 마음을 먹었다. 그녀가 막 한쪽 눈을 빼꼼 떠 보려는 찰나.

    -띠링!

    <세계 최초로 ‘우는 갈라테이아’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모두의 귓가에 요란한 안내음이 들려왔다.

    결국 우는 천사가 쓰러진 것이다!

    “오, 오오오!”

    모두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우는 갈라테이아를 바라보았다.

    쩌적- 쩍-

    우는 천사는 천천히 두 조각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상아로 된 몸에 금이 가며 머리에서 부스러기가 후두둑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아마 가루가 되려나 보다.

    동시에.

    -띠링!

    <우는 갈라테이아 처치 1/1>

    <공탁금이 지불됩니다>

    공탁금 조건이 만족되었다.

    모두의 계좌에서 1억 원씩이 빠져나간다.

    유다희는 특별히 2억이다.

    “땡큐.”

    나는 생존자들을 향해 윙크를 해 보였다.

    7억이라. 이거 통장 잔고가 또다시 빵빵해지겠는걸?

    그때.

    “이게 뭐야? 왜 보상이 없어?”

    유다희가 큰 소리로 투덜거렸다.

    그렇다.

    우는 갈라테이아를 잡았는데 레이드 보상이 하나도 안 떨어진 것이다. 세계 최초로 잡았다는 메시지까지 떴는데 특전이 없다니 이게 무슨 상황일까?

    모든 이들이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장내에 무시무시한 메시지가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

    -띠링!

    <우는 갈라테이아가 절규합니다>

    <조각상 내부에 봉인된 사념체가 깨어납니다>

    <이면세계의 ‘진(眞)’ 보스 몬스터가 눈을 떴습니다>

    동시에.

    쩌저적-

    우는 갈라테이아 조각상이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그리자 그 안에 시커먼 오오라 같은 것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저거!?”

    여섯 명의 생존자가 기절할 듯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은 우는 갈라테이아에서 나온 시커먼 기운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우는 갈라테이아는 사람들의 시선이 닿아 있을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니 우는 갈라테이아 속에서 다른 무엇인가가 깨어난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단 움직이지만 못하게 해 놓으면 다음 계획은 다시 짤 수 있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우는 갈라테이아의 일거수일투족을 똑똑히 쳐다보고 있었다. 눈 한번 깜빡하지 않은 채로.

    하지만.

    “…….”

    오직 나만은 두 눈을 꼭 감은 채 우는 갈라테이아를 외면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우는 갈라테이아 속에서 해방된 사념체가 살아남은 모든 이들을 향해 눈을 번쩍 빛냈다.

    <메두사> -등급: A

    드디어 깨어났다. 이 던전의 진짜 주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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