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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27화 (27/1,000)
  • 27화 생존비 (2)

    “돈 내놔.”

    그러자, 내 말을 들은 생존자 일곱 명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일그러졌다.

    “이게 뭔 개소리야 뜬금없이?”

    유다희가 신경질적인 어조로 반문하자, 나는 팔짱을 꼈다.

    “너희들 버스 타 본 적 있어, 없어?”

    “…있지. 여기 버스 안 타 본 사람이 어딨어.”

    유다희가 시니컬하게 대꾸했다.

    뒤에 있던 금은동 자매가 약간 뜨끔하는 것 같았지만, 기분 탓이겠지?

    뭐 아무튼. 나는 말을 이어간다.

    “버스 탈 때 그냥 타냐? 돈 내잖아. 안 내면 무임승차고.”

    “…그래서?”

    “너희가 지금 하려는 게 무임승차야.”

    나는 피식 웃고는 살아남은 일곱 명의 얼굴을 한번 쭉 훑어 보았다.

    “우는 갈라테이아는 내가 알아서 잡아 줄 테니까, 너희들은 생존비나 내놔.”

    요컨대 버스를 태워 준다 이거다. 버스비를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한편.

    생존자 일곱 명은 어이가 없다는 기색.

    “우리를 여기로 꼬셔 온 건 네놈이잖냐!”

    유창이 부들부들 떨며 외쳤다. 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 개소리다.

    “누가 고삐 채워서 끌고 왔냐? 워낭소리도 아니고. 늬들이 템 욕심에 눈멀어서 기어 들어온 것 아냐? 아크레까지 날 스토킹한 주제에 뭔…….”

    “…….”

    “빨리 돈이나 내놔. 너희들도 잡지도 못하는 괴물이랑 던전에 갇혀서 눈싸움하긴 싫을 거 아냐.”

    내가 귀찮다는 듯 손짓하자, 다들 그제야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현실이 좀 피부에 와 닿는 모양.

    삥.

    언제 그들이 이런 걸 뜯겨 보겠는가.

    “뭐, 얼마를 달라는 건데?”

    역시 상황 판단이 가장 빠른 이는 유다희다. 그녀는 차갑고 냉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

    하지만 나는 안다. 그녀는 정말로 분노가 머리 끝까지 치솟았을 때 왼쪽 눈꼬리 밑 점 부분이 파르르 떨린다.

    ‘오, 저 정도면 거의 매너모드네.’

    나는 유다희의 왼쪽 애교살이 샌드웜 지진 낸 것 마냥 요동치는 걸 보며 웃음을 꾹 참았다. 그리고 짤막하게 내 요구를 관철했다.

    “1억 골드.”

    4달라가 아니라 1억 골드다.

    내 요구를 들은 모든 이들의 이마에 시퍼런 핏줄이 솟았다.

    “이 미친 변태 새끼가 진짜, 오냐오냐 해 주니까 똥오줌 못 가리고 날뛰네!”

    유창이 폭발했다. 그는 허리춤에서 칼과 방패를 빼들고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서든 어택(Sudden Attack)! 유창의 기세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어맛! 무서워!”

    나는 너무 무서워 그만 눈을 살포시 감아 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스팟-

    오직 내 시선에 의해 저지당하고 있던 우는 갈라테이아가 눈을 떴다.

    놈은 순식간에 움직여 제일 가까운 곳에 있었던 유창의 머리통을 잡고 그대로 으깨 버렸다.

    파삭-

    코끼리 발밑에 깔린 토마토처럼. 유창의 최후는 너무나도 순식간에 결정되었다.

    “…….”

    유다희는 동생이 죽어 사라지는 걸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런 유다희에게 말했다.

    “너는 특별히 버스비 두 배야.”

    “뭐, 뭣!? 왜! 왜 동생 책임까지 나한테 떠넘겨!?”

    “가족이잖니.”

    내가 실실 웃자 유다희는 부들부들 떤다.

    하지만 그녀는 유창처럼 내게 대들지는 못했다.

    예전에 이름 없는 여왕 레이드 당시, 보스 버프로 인해 강해진 몸을 가지고도 나에게 끔살당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리라.

    다만 그녀는 내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조심하면서 중얼거리듯 물었을 뿐이었다.

    “…주, 주면 여기서 내보내 주긴 하는 거야?”

    그러자 금은동 자매와 고인 물 사총사의 유일한 생존자 장태익, 심지어 투신 마태강까지 놀란다.

    여기까지 오며 유다희의 더러운 성질머리를 겪어 봤던 탓이다. 이 기센 여자가 이렇게까지 눌리다니.

    그들은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못 믿겠으면 공탁 걸어.”

    데우스 엑스 마키나(D.E.M, 이하 ‘뎀’)에는 특이한 제도가 하나 있다.

    바로 ‘공탁(供託)’ 제도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거래를 할 때 돈이나 아이템을 바로 주지 않고 거래대상이 특정 조건을 만족했을 경우 지급되도록 제 3의 공간에 예약 송금을 걸어 두는 것.

    일종의 안심 거래다.

    공탁금을 걸면 돈을 주는 사람도, 돈을 받는 사람도 그 돈을 건드리지 못한다.

    돈을 받는 사람이 돈을 주는 사람의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면 그 돈은 다시 원주인의 인벤토리로 돌아간다.

    돈을 받는 사람이 돈을 주는 사람의 조건을 만족한다면 그제야 원활한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스템이다.

    공탁금이 저장되는 제 3의 공간은 누구의 인벤토리에도 속하는 공간이 아니며 절대적인 법칙에 의해 보호를 받기 때문에 절대 털릴 걱정이 없다.

    -띠링!

    <‘고인 물’님이 공탁 계좌를 열었습니다>

    <조건: 우는 갈라테이아 처치>

    내가 계좌를 열자, 생존자 6명은 고민하는 듯한 기색이다.

    그들은 지금 저울질 하고 있을 것이다.

    보스 방에서 그냥 로그아웃해서 온갖 디버프에 시달릴 것인가.

    아니면 그냥 한번 깔끔하게 죽고 사망 패널티를 받을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돈을 내고 나와 함께해서 저 전대미문의 보스를 사냥할 것인가!

    ‘어차피 보스를 처치하면 보상은 나눠진다.’

    유다희는 생각했다.

    일단 명색이 파티인 이상, 보스가 죽으면 아이템을 분배받을 권리가 생긴다.

    그뿐만이 아니다.

    보스를 잡는 영상을 커뮤니티에 올리기라도 하면 조회수 수익, 후원 수익, 광고 수익도 기대할 만하다.

    레이드를 중간에 포기하고 나가면 녹화된 영상도 자동 폐기되니 무조건 레이드 포기만은 피해야 할 일.

    지금까지 찍었던 영상이 아까워진다.

    결국.

    유다희는 결정을 내렸다.

    “낼게. 생존비.”

    그러자 다른 이들이 일제히 끙 소리를 냈다.

    사망하거나 레이드를 포기하는 것보다 나에게 빌붙어 던전을 클리어하는 편이 더 낫겠다고 판단한 모양.

    나름대로 현명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 잘 생각했어. 1억 골드면 6명이니까 1인당 얼마냐면 천 사백만…….”

    내가 인심 써서 뿜빠이, N빵 계산을 해 주려고 하자…….

    -띠링!

    그보다 먼저 내가 연 공탁금 계좌로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인 물’님이 공탁 계좌를 열었습니다>

    <송금 조건: 우는 갈라테이아 처치>

    -YouDie 님이 200,000,000 골드를 입금하셨습니다.

    -GoldRain 님이 100,000,000 골드를 입금하셨습니다.

    -SilverRain 님이 100,000,000 골드를 입금하셨습니다.

    -BronzeRain 님이 100,000,000 골드를 입금하셨습니다.

    -장태익 님이 100,000,000 골드를 입금하셨습니다.

    -투신 님이 100,000,000 골드를 입금하셨습니다.

    ‘……헐.’

    나는 속으로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7억 골드.

    현실 돈으로 거의 8천만 원에 이르는 거금이다!

    나는 다 합쳐서 1억만 내놓으라고 한 거였는데, 다들 1인당 1억씩을 내놓았다. 이런 쿨 거래라니…….

    ‘진짜 어지간히도 클리어하고 싶구나. 이 던전…….’

    파이오니아를 향한 그들의 열망이 액수에서부터 느껴진다.

    하기야, 지금 죽거나 패널티를 받으면 너무 아깝지.

    애써 초반부 선두주자로 뛰기 시작했는데 바로 후발주자들에게 다 따라잡힐 테니까.

    인간은 뭐든지 할 수 있다. 지금 누리고 있는 달콤한 혜택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하긴, 이 정도 집념이 있으니까 여기까지 온 것이겠지? 미래에 잘 나가게 되는 이유가 있구나……. 나였으면 그냥 한번 죽고 말았을 텐데,’

    나는 탑 티어 급 랭커들의 집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과연 최상위 0.01%에 속하는 사람들은 마음가짐부터가 다르구나 싶다. 이런 건 보고 배워야지.

    게다가.

    ‘……흠.’

    나는 공탁금 계좌를 살폈다.

    -YouDie 님이 200,000,000 골드를 입금하셨습니다.

    유다희는 유창의 몫까지 2억 골드를 입금했다. 집념은 대단하지만, 속 좀 쓰리겠는걸?

    ‘뭐, 하지만 내 알 바는 아니지.’

    나는 피식 웃고는 공탁금 상태창을 껐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최후의 6인을 바라보았다.

    “우는 갈라테이아를 잡고 나온 보상은 알아서들 가져. 나는 손 안 댈 테니까.”

    내 말을 들은 모든 이들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들은 분명 여기까지 오면 봤다. 내가 무수히 떨어지는 C+급 아이템들을 잡템 취급 하는 것을.

    하지만 우는 갈라테이아는 B+급 보스 몬스터.

    세계 최초 클리어일 것이 분명하기에 떨어지는 아이템도 등급 보정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 대단히 높은 확률로 B+급 아이템이 떨어진다는 이야기인데…….’

    모두의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대박이다!’

    현 시점에서 풀린 최고 등급 아이템은 C+급 아이템.

    그런데 이 마당에 B+급 아이템이 풀린다? 그것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앞으로 한참은 더 앞서나갈 수 있다.

    그 누가 그랬던가?

    세상에 천재는 많지만 정점(定點)은 하나라고.

    B+급 아이템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탑 티어 중의 탑 티어, 말 그대로 ‘정점’에 설 수 있을 것이다.

    모두는 그렇게 생각했다.

    심지어 그 침착한 투신마저도 동요하는 눈치.

    다만.

    단 한 사람만은 못내 불안한 표정이었다.

    ‘B+급 아이템을 포기한다고? 대체 뭐지?’

    유다희.

    그녀만은 초조한 표정으로 엄지손톱을 씹고 있었다.

    ‘저 자식은 대체 얼마나 좋은 템을 가지고 있길래 B+급 아이템을 포기한다는 거야?’

    그녀는 나를 주시하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과연 눈썰미 좋은 여자다.

    내가 B+급 아이템보다 훨씬 좋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모를 것이다.

    내가 우는 갈라테이아를 잡고 나온 아이템을 마음대로 가져가라고 한 것은 그냥 선심으로 한 말이 아니다.

    ‘다 나름의 이유가 있지.’

    하지만 굳이 저들에게 설명해 줄 의무도, 의리도 없다.

    나는 공탁을 걸었고 그들은 그것을 수락했다. 그뿐인 거래다.

    총 7억 골드의 추가 보상이 걸린 레이드. 아주 좋은 기회였다.

    나는 생존자 여섯에게 뒤로 멀리 떨어져 우는 갈라테이아를 바라보게 시켰다.

    그리고 나 자신은 우는 갈라테이아의 정면에 섰다.

    “내가 신호를 보내면 우는 갈라테이아에게서 눈을 떼라.”

    내 말을 들은 생존자 여섯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나는 인벤토리에서 오래 전부터 준비해 뒀던 아이템을 꺼냈다.

    -<고대 문명의 청동 방패> 방어구 / C+

    아주 옛날 방식으로 만들어진 고대의 방패. 너무 오래되어 방어력은 거의 없다. 반들반들하여 사용자의 얼굴이 비쳐 보인다.

    -방어력 +10

    -? (특수)

    거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반들반들한 청동 방패.

    옵션이 구리긴 하지만 나는 이것을 들었다.

    깎단은 한손무기이니 다른 손에 방패를 드는 것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이내, 시선을 돌린 내 시야에 방패의 안쪽에 비친 우는 갈라테이아의 모습이 보인다.

    “눈 깔아.”

    내가 입을 열자.

    “…….”

    생존자 여섯 명이 일제히 시선을 바닥으로 옮겼다.

    동시에.

    청동 방패에 비친 여신상의 모습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악-

    우는 갈라테이아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두 손을 치웠다.

    뻥 뚫린 눈, 문드러진 잇몸, 날카로운 이빨.

    흉악하게 일그러진 놈의 얼굴이 그제야 내 시야에 똑똑히 드러난 것이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