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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26화 (26/1,000)
  • 26화 생존비 (1)

    “뭐야 이건?”

    땅땅땅-

    고인 물 사총사 중 하나가 여신상을 두드려 보았다.

    상아를 깎아 만든 듯 보이는 이 하얀 조각상은 실로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보드라운 살결에 덮여있는 하늘하늘한 천, 옷감에 눌려 움푹 들어가 있는 허리의 살 굴곡까지 완벽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의 사랑 이야기를 절로 떠올리게 만들었다.

    “뭐야 이거? 엄청 단단하네.”

    놈은 이내 여신상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어딘가에 숨어있을지 모르는 보스 몬스터를 찾기 위해 방 구석구석을 뒤졌다.

    하지만 방 안에는 딱히 숨을 공간이 없다. 넓은 방은 그저 텅 비어 있을 뿐.

    “어디 있다는 거야?”

    아무리 투덜거려도 보스 몬스터는 나오지 않는다. 방 구석의 횃불 뒤나 항아리를 뒤져도 아무 것도 없었다.

    바로 그때.

    퍽!

    짧고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응?”

    옆에서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던 놈이 고개를 돌리자,

    “헉!?”

    이내 끔찍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 전까지 여신상을 두드리던 녀석의 머리가 터져나가 있었다.

    곧바로 로그아웃되는 동료.

    “야! 뭐야!? 무슨 일이야?”

    나머지 인원들이 죽은 동료의 시체로 우르르 모여든다.

    모든 시선이 시체로 집중되었다.

    그때.

    파삭-

    또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방금 전까지 항아리를 뒤지던 녀석의 머리통이 박살 나 있는 게 보인다.

    “으아아악!? 뭐야!? 무슨 일이야!?”

    순식간에 죽어 나자빠진 동료 두 명을 보며, 남은 하나가 자지러지게 소리쳤다.

    그리고.

    뿍-

    비명을 지르던 놈의 가슴팍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꺄아악!?”

    유다희는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똑똑히 보았다.

    조각상이 눈 깜짝할 사이에 움직여 셋의 목숨을 앗아 버리는 것을.

    “저, 저거! 저 조각상이 한 짓이야!”

    유다희가 외치자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유창이 제일 먼저 유다희의 옆으로 다가왔다.

    “진짜야, 누나?”

    “그, 그래! 방금 저 조각상이 움직였다고! 틀림없어!”

    “……하지만 이건 그냥 조각상인데?”

    “아니야! 몬스터야! 저 핏자국 좀 보라고!”

    유다희는 여신의 형상을 한 조각을 가리켰다.

    그녀의 말마따나, 조각상은 기존에 서 있던 자리에서 꽤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또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그녀의 두 손에는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다.

    “이 자식! 몬스터였구나!”

    금은동 자매가 먼저 레이드를 개시했다.

    콰콰콰쾅!

    참격과 마법, 화살들이 우는 갈라테이아를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우는 갈라테이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우는 포즈를 취하고 있을 뿐, 상아로 만들어진 몸에는 실금 하나 가지 않았다.

    이은비가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파괴불가라고? 말도 안 돼.”

    그렇다. 우는 갈라테이아는 파괴불가 상태였다.

    감정 스크롤을 찢어도 놈의 HP 상태는 보이지 않는다.

    아예 잡을 수 없게끔 처리된 몬스터 같았다.

    방에 있는 사람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은 채 우는 갈라테이아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놈이 공격에 나설 때 말고는 데미지를 박을 수 없는 것 같군.”

    투신 마태강. 그는 팔짱을 낀 채 중얼거렸다. 침착해 보이지만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다.

    유다희는 질린 듯이 중얼거렸다.

    “방금 저 놈이 다른 세 명 죽이는 속도 봤어? 0.1초도 안 걸렸어! 저놈이 언제 움직일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움직이면 절대로 못 막아!”

    그러자.

    고인 물 사총사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 장태익이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근데. 이 여신상. 언제 움직이는 거예요?”

    그의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눈 깜짝할 새 11명 중 3명이 살해당했다.

    하지만 살아남은 일곱 명은 이 여신상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 우는 갈라테이아가 언제 어떻게 움직이는지.

    왜 파괴불가 속성을 가지고 있는지. 무엇 하나 알 수 없었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우는 갈라테이아 조각상은 몬스터라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흉악한.

    “…….”

    결국 생존자 모두는 같은 결론을 낸 것 같았다.

    일곱 명의 시선이 한 곳을 향했다.

    …….

    바로 내가 있는 곳 말이다.

    *       *       *

    몇 분 전.

    “하하, 개판이네.”

    나는 코 밑을 쓱쓱 문지르며 웃고 있었다.

    보스를 먼저 발견하겠다는 욕심 때문일까? 다들 열심히 방 구석구석을 뒤진다.

    그 때문에 방 중앙에 있는 천사 조각상을 주목하는 이는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오직 나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저러다가 큰일 나지.’

    나는 온 신경을 방 중앙에 있는 천사상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기야 뉴비 입장에서는 저것이 단순한 조형물, 맵의 일부로 보일 수도 있겠다.

    원래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까.

    하지만.

    나는 저것의 진짜 정체를 알기에 마냥 태평할 수만은 없다.

    <우는 갈라테이아> -등급: B+ / 특성: 암석, 관심종자

    -서식지: ‘은밀한 꼭두각시 회동’ (2)

    -크기: 2m.

    -여행자여. 그대가 이 설명을 읽고 있을 때쯤이면 이미 늦었다. 이 끔찍한 존재, 조금 더 상세히 기술하자면 ‘상아로 만들어진 조각상 속에 깃든 이 정체불명의 사념체’는 그대가 눈을 깜빡이거나 시선을 떼는 순간 곧바로 달려들어 그대를 먹이로 삼을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그대가 이 설명을 읽고 있으면서도 아직 조각상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면 이 말을 명심해라.

    ‘절대로 눈을 깜빡이지 마라’

    -『피그말리온의 유언』 中 발췌-

    아따, 설명 참 길기도 하다.

    나는 눈을 감지 않기 위해 조심하며 하품을 내뱉었다.

    우는 천사. 몬스터 등급은 B+.

    초반 공략 난이도는 ★★★★★. 별이 다섯 개다.

    참고로 이 우는 천사의 공략 난이도는 실로 미친 듯이 괴랄해서 출시 이후 약 3년간 누구에게도 잡힌 적이 없었을 정도였다.

    그 이유는 바로 이놈의 몇 안 되는 특성 중 하나인 ‘관심종자’ 때문.

    우는 천사는 누군가의 시야 속에 머물러 있을 때 조각상 상태가 되어 움직이지 못한다.

    하지만 그 누구의 시야에도 들어있지 않을 때, 즉 아무도 자신을 보고 있지 않을 때면 무시무시한 속도로 움직여 주변에 있는 모든 살아 움직이는 것을 찢어 죽인다.

    ‘……어디서 많이 본 설정이지?’

    그렇다.

    이 끔찍한 조각상 ‘우는 갈라테이아’는 1963년부터 이어져 오는 초흥행작 SF 드라마 ‘닥터*’에 등장하는 ‘우는 천사’에게서 오마주된 몬스터이다.

    이 ‘우는 천사’라는 몬스터는 수없이 많은 파생 문화를 낳으며 일약 유명해졌는데 수많은 괴기소설 들에서 오마주, 패러디되었으며 위키* 엔진을 기반으로 하는 집단지성 ‘SC* 재단’ 등에서 특히 활발하게 재창작되었다.

    ‘……이 게임에서도 오마주 된 것은 맞는데, 피그말리온 신화에 게임성이 덧붙여져서 한층 더 변태같은 몹으로 바뀌었지.’

    ‘우는 갈라테이아’는 누군가 보고 있을 때에는 파괴불가 상태가 되어 맵의 일부로 취급되는 통에 사냥도 불가능하다.

    유일하게 데미지가 먹혀들어 가는 순간은 놈이 움직일 때, 그러기 위해서는 이놈을 보면 안 된다.

    다른 이들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아야 움직이기 때문이다.

    보지 않고 잡는다.

    우는 갈라테이아는 엄청난 스피드와 공격력을 가지고 있기에 어지간한 랭커들도 반응하기가 힘들었다.

    이놈을 보지 않고 잡기 위해서는 모든 패턴을 분석하는 것은 물론이요 실제상황에 익숙해지는 과정도 필수적이다.

    원래 미래에서는 그런 시도가 장장 3년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그만큼이나 난이도가 높은 보스 몬스터였다.

    우는 갈라테이아가 처음으로 발견된 지 3년 뒤.

    결국 놈은 무릎을 꿇었다.

    집단지성의 힘을 빌린 헤비 게이머들의 손에 의해서였다.

    수없이 많은 고수들이 우는 갈라테이아에 의해 목숨을 잃어 가며 하나하나 공격 패턴을 분석했다.

    그리고 그것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이하 뎀) 위키에 일일이 다 기록했다.

    집단지성. 귀납적 기록들. 모든 이변과 변수, 숨겨진 선택지들.

    그 모든 메뉴얼을 숙지한 정예 레이드가 전멸을 각오하고 몇 번을 덤빈 뒤에야 비로소 이 무시무시한 괴물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일련의 과정들을 전부 지켜봤던 나는 아무래도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

    그래, 3년 동안 저 녀석을 X빠지게 잡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도 그때 그 레이드에 있었거든.’

    그때는 놈의 얼굴을 보는 데만 해도 거의 1년의 시간이 필요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게임이 출시된 지 6개월 만에 이 자리에 서 있다.

    다른 잡 엑스트라들이 몇 끼어 있었지만 전혀 상관없었다.

    어차피 저 녀석들은 내 공략을 보고 훔치기는커녕 싸우는 장면조차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될 테니까.

    “일단 한번 움직이게 해 볼까?”

    나는 모두의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있을 때, 조용히 눈을 감았다.

    슥-

    눈꺼풀을 당기자, 당연하게도 시야가 까맣게 변했다.

    우는 갈라테이아를 향해 고정되어 있던 내 시선이 사라졌다.

    놈을 바라보는 시선의 수는 이걸로 0명이 되었다.

    이내.

    번쩍-

    우는 갈라테이아의 ‘관심종자’ 특성이 발현되었다.

    파팟!

    우는 갈라테이아는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놈은 방금 전 자신의 몸을 두드렸던 플레이어의 머리를 일격에 부숴 버렸다.

    그리고 모두가 당황해서 시선이 분산되는 사이, 또다시 연달아 두 명의 플레이어의 목숨을 끊어 놓는다.

    …….

    언제 움직였냐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고 있는 조각상.

    이내 모든 이들이 알게 되었다.

    이 우는 갈라테이아가 예사 조각상이 아니라는 걸.

    “…….”

    내가 눈을 뜨자,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었다.

    “꺄아아악!”

    유다희가 비명을 질러댔다.

    “저, 저거! 저 조각상이 한 짓이야!”

    그녀의 말에 나는 조금 감탄했다. 대번에 우는 갈라테이아의 존재를 알아채다니. 눈썰미가 제법 좋다.

    하긴, 그러고 보니 유다희는 15년 뒤에 꽤 엄청난 랭커가 되지. 나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이 높이 올라가는 존재가 아닌가.

    눈썰미가 예리한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그리고 유다희의 뒤를 이어, 몇몇 인물이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파괴불가라고? 말도 안 돼.”

    이은비. 금은동 자매의 둘째. 그녀 또한 미래에 고위 랭커가 된다.

    그녀는 영리하게 감정 스크롤을 찢어 우는 갈라테이아의 특성 중 일부를 바로 눈치챘다.

    준비성이 철저하고 상황 판단이 빠르다.

    “아무래도 놈이 공격에 나설 때 말고는 데미지를 박을 수 없는 것 같군.”

    투신 마태강.

    한국 랭킹의 영구결번 1번.

    그를 빼고는 세계랭킹을 논할 수 없다는 말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아직 19살에 불과한 그이지만 벌써부터 각이 날카롭다. 순식간에 몬스터의 특성을 간파하는 저 능력이라니.

    “…….”

    나는 팔짱을 낀 채 상황을 관망 중이었다.

    장차 탑 티어에 올라설 랭커들을 보고 있자니 어딘가 감회가 새롭다.

    그토록 대단해 보이던 이들이지만 지금은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 신세구나.

    내가 가만히 선 채 말이 없자, 유다희가 그런 나를 돌아보며 빽 소리쳤다.

    “야, 변태! 어떻게 할 거야! 우리를 여기로 끌고 온 건 너잖아!”

    그녀는 이곳에 갇히게 된 책임을 나에게 전가할 모양이다.

    …….

    뭐 바라는 바였다.

    생존자 일곱 명의 시선이 오직 나를 향해 집중된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던전을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어.”

    다들 귀를 쫑긋 세운 채 내 입만을 바라본다.

    나는 중지 하나를 길게 폈다.

    “첫째. 죽어서 나가는 것.”

    그러자 다들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생각하기도 싫은 선택지인가 보다.

    “둘째.”

    나는 중지에 이어 검지를 펴 들었다.

    “우는 갈라테이아를 잡고 나가는 것.”

    내가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하자, 유다희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외쳤다.

    “야! 잡을 수 있으면 진작 잡았지! 저걸 우리들이 무슨 수로 잡아! 보면 파괴불가고 안 보면 X나 빠른데!”

    그녀의 말에, 나는 아까 펴 들었던 검지를 내렸다. 그러자 중지만 남았다.

    “누가 ‘우리들’이 잡는대?”

    “……뭐?”

    유다희가 표정을 찡그리며 묻자, 나는 친절하게 다시 대답해 주었다.

    “‘나 혼자’ 잡을 거야.”

    그러자.

    생존자 일곱 명은 벙찐 표정을 지었다.

    혼자 잡겠다니?

    지금 B+급 몬스터, 그것도 저렇게 괴랄한 패턴을 가진 몬스터를 상대로 솔로 레이드를 선포한 건가?

    유다희는 황당해서 말도 안 나온다는 듯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 그럴 거면 우리는 여기 왜 데려온 건데?”

    그녀의 말에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쓸모가 있기 때문이지.”

    그러자 이번에는 투신 마태강이 앞으로 나섰다.

    “쓸모? 무슨 쓸모? 우리는 저 몬스터의 패턴을 모른다. 도울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이는데?”

    과연 예리하다. 미래의 한국 랭킹 1위답다.

    하지만 그의 말은 틀렸다.

    너희들이 도와줄 수 있는 게 없기는 왜 없어?

    분명 있다.

    저 녀석들이 나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그래서 지금부터 그 방법을 친절하게 설명해 줄 생각이었다.

    나는 웃는 얼굴로 생존자 일곱 명을 쭉 둘러보았다.

    그리고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돈 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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