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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24화 (24/1,000)
  • 24화 달콤한 미끼 (2)

    뼈와 썩은 살점, 거미줄이 치렁치렁 늘어진 동굴.

    철벅- 철벅-

    발에 와 닿는 느낌이 더럽다.

    물렁물렁한 바닥을 딛을 때마다 종아리에 차가운 바닷물이 출렁거린다.

    -띠링!

    <히든 던전 ‘썩어가는 지하수로’에 입장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내가 동굴 입구에 배를 대고 안으로 발걸음을 들여놓자, 바로 알림음이 떴다.

    이 히든 던전의 이름은 ‘썩어 가는 지하수로’

    참 이름 값 하는 던전이다.

    동굴 속에서 해풍이 불어올 때마다 악취가 물씬 밀려온다.

    하지만 악취보다도 더 성가신 것들은 바로 몬스터들이었다.

    <오물 뱀> -등급: C / 특성: 독, 변온

    -서식지: 부유섬

    -크기: 1m.

    -오물 속에서 살아가는 뱀. 오래된 짐승의 사체를 먹고 산다. 이빨보다는 비늘이 위험하다. 스치기라도 하면 바로 파상풍에 걸린다.

    오물 뱀들이 나를 향해 우글우글 모여들고 있었다. 등급이 높은 몬스터는 아니지만 쪽수로 몰려와서 꽤나 성가시다.

    시익-

    놈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뛰어올랐다. 특이하게도 입을 꾹 다물고 이빨을 감춘 채 달려든다. 그

    도 그럴 것이, 이놈들의 독은 이빨이 아니라 비늘에 있기 때문이다.

    원래는 독이 없는 채 태어났지만 오물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여러 균들을 비늘 사이에 키우게 되었다는 설정.

    “하지만 뭐. 지금은 제 점심이죠.”

    나는 가볍게 발을 굴러 지진을 일으켰다.

    내가 신고 있는 신발은 ‘아카오니의 발가죽’!

    C+급 몬스터 아카오니의 지진 공격이 이 썩어 문드러진 동굴을 한번 뒤집어 놓았다.

    콰-쾅!

    나를 향해 달려들던 뱀들은 그 일격에 모조리 죽어 버렸다.

    혹시나 허공에 떠 있는 중이라서 살아남은 녀석들도 깎단 한 번에 속속 죽어 나간다.

    짤랑- 땅그랑-

    나는 쏟아지는 C급 아이템들을 주섬주섬 쟁여 넣었다. 이것들도 아직은 경매소에서 꽤나 값을 받을 수 있다.

    적어도 하루 일용직으로 일하는 수당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내, 나는 동굴의 최심층부로 들어섰다.

    그러자.

    이내 기대했던 풍경이 보였다.

    동굴 안쪽에는 큼지막한 조각상 하나가 서 있었다.

    근육질의 사내가 울고 있는 석상. 그 뒤에는 찬란한 금화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때.

    시이이익-

    조각상 뒤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시커먼 뱀 한 마리가 붉은 눈을 빛내며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오물 뱀 크리사오르> -등급: B / 특성: 독, 마나 번, 변온

    -서식지: 부유섬

    -크기: 8m.

    -오물 뱀 중 오래 산 녀석은 거대한 덩치를 갖게끔 진화한다.

    비늘에만 있던 독은 이빨과 시선에도 깃들게 되었다.

    오물 뱀 네임드 ‘크리사오르’ 꽤나 귀찮은 몬스터이다.

    놈의 특성 중 하나인 ‘마나 번(burn)’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마나를 태워 버리는 기술이다.

    태워 버리는 것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말 그대로 불태워 버리는 것, 돌로 만드는 것, 중독시키는 것 등 다양한 패턴이 있다.

    크리사오르의 경우에는 보는 이의 마나에 독 속성을 부여함으로서 상대방을 체내에서부터 중독시키는 것이었다. 마나를 다루지 않는 이는 없으므로 모든 이는 크리사오르와 시선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중독된다.

    그래서 더욱 더 서둘러야 했다. 이런 종류의 몬스터는 패턴을 알아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팍-

    나는 바로 크리사오르를 향해 칼부림을 날렸다.

    깎아낸 단말마. 통칭 깎단이 허공을 갈랐다.

    쩍-

    크리사오르의 콧잔등에 상처가 났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는 뒤로 물러서 이리저리 도망 다녔다.

    크리사오르는 B급 몬스터 중에서도 패턴이 단순한 편에 속한다. 깎단으로 상처를 입힌 뒤 시선을 피해 가며 두 시간 정도 도망치자.

    쿵-

    크리사오르는 이내 바닥에 길게 늘어지며 죽어 버렸다.

    “휴, 나도 죽는 줄 알았네.”

    나는 해독 물약을 마시며 한숨을 내쉬었다. 300이 넘던 HP는 어느새 100 이하로 줄어 있었다.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이런 데미지라니.

    시선 자체가 폭력이나 다름없는 몬스터다.

    한데?

    “어라, 그 와중에 템을 떨궜네, 이 자식.”

    크리사오르의 시체가 물에 둥둥 떠 뒤집어지자, 뱃가죽에서 아이템의 존재를 알리는 붉은 빛기둥이 솟구친다.

    -<쌍두사(雙頭巳)> 양손무기 / C+

    기형 장창의 한 종류. 창극은 두 갈래로 갈라져 있어서 마치 두 마리의 뱀이 길게 뒤엉켜 뻗어 있는 모양새.

    머리 부분의 두 갈래 창끝에서는 독 기운이 뚝뚝 떨어진다.

    -공격력 +150

    -독 공격력 +50

    -특성 ‘독’ 사용 가능 (특수)

    “이것 봐라?”

    나는 휘파람을 불었다.

    꽤 좋은 무기가 나왔다. C+등급 무기 주제에 공격력이 150이라, 거기에 독 공격력까지 붙어 있으니 거의 200정도의 공격력 수치가 나온다.

    ‘이건 경매장에서 꽤 비싸게 팔리겠는데?’

    나는 흐뭇한 기분으로 창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하지만.

    “지금 이런 잡템이나 줍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나는 재빨리 본래 목적으로 돌입했다.

    내가 볼일이 있는 것은 크리사오르 같은 잡몹이 아니다.

    누가 보면 C+급 몬스터를 날파리 취급하는 내 행동에 깜짝 놀랐겠지만, 15년 뒤의 미래를 모조리 꿰고 있는 내 입장에서야 당연한 일.

    탁-

    나는 오물 뱀 크리사오르가 칭칭 휘감고 있던 조각상을 손으로 만졌다.

    그러자.

    [썩어 가는 지하수로에 온 것을 환영하네, 낯선 이여.]

    조각상은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이 녀석은 히든 NPC였던 것이다.

    <우는 조각상 피그말리온>

    조각상의 머리 위에 그제야 이름이 뜨기 시작했다.

    주르륵-

    석상 피그말리온. 그의 두 눈에서는 갑자기 피눈물이 흐른다.

    [낯선 이여. 염치없지만 나의 부탁 하나를 들어주겠나? 들어준다면 내 뒤에 있는 금화를 모두 주겠네.]

    -수락 / 거절

    내 눈앞에는 선택지가 뜬다.

    퀘스트 내용은 밝히지 않았지만 보상은 확실하다. 뒤에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금화.

    언뜻 봐도 수백만 골드는 되어 보인다.

    하지만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피그말리온은 괴로운 듯 외쳤다.

    [아아! 그러지 말고! 나를 파괴해 주게! 제발 내 고통을 끝내 줘!]

    그렇다.

    피그말리온의 퀘스트는 석상이 된 자신을 파괴하는 것.

    즉 자살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거절 버튼을 눌러 버린 몸. 만약 수락을 눌렀다면 피그말리온은 부서졌고 내 수중에는 약간의 금화들과 경험치가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부탁을 거절한 이상, 퀘스트는 조금 다른 국면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사정을 구구절절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사람이었다네. 유명한 조각가였지.]

    [어느 날 나는 내 이상형을 조각했어. 현실의 여자 따위는 싫었거든.]

    [수많은 시간을 공들인 끝에, 나는 천사 같은 여자를 조각해 내는 데에 성공했어!]

    [나는 그녀가 사람이 되어 나와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매일 밤 기도했지.]

    [그런데 내 소원이 이뤄진 거야! 내가 만든 조각상이 어느 날 갑자기 진짜 사람처럼 움직이기 시작하더군!]

    […한데, 그 안에 든 것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어. 그것은 그야말로 악귀였지.]

    [그녀는 움직일 수 있게 되자마자 나를 돌로 만들어 버리고는….]

    거 참 길기도 하다. TMI라는 말이 이렇게 적절할 수가!

    나는 바로 [SKIP] 버튼을 눌러버렸다.

    그러자 피그말리온은 비교적 간략한 대사로 자신의 퀘스트를 요약했다.

    [부디 그 증오스러운 조각상을 찾아내 파괴해 주게!]

    동시에 퀘스트 알림이 떴다.

    -띠링!

    <히든 퀘스트 ‘피그말리온의 증오’를 발견하셨습니다>

    <‘우는 갈라테이아’ 파괴 0/1>

    <보상-?>

    <수락 / 거절>

    나는 바로 수락을 눌렀다.

    이 퀘스트를 받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대박! 진짜 이 퀘스트를 여기서 받는구나!’

    먼 옛날 투신의 인터뷰에서 봤었다. 이 퀘스트는 발견하는 것도, 완료하는 것도 정말 힘들었다고.

    하지만 그 보상은 그 어떤 것보다도 달콤했다고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랭킹 10위권 밖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단숨에 랭킹 1위로 만들어 준 것이 바로 이 퀘스트의 보상이었다고……투신은 그렇게 말했다.

    “좋았어. 그럼 이제 진짜 시작이다.”

    나는 청동 골렘과 이름 없는 여왕을 죽이고 얻은 보상을 꺼냈다.

    청동 칼과 청동 방패.

    그리고 피그말리온의 퀘스트까지.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정말로 그동안 벼르고 벼려왔던 ‘그놈’을 잡으러 갈 때가 되었다.

    *       *       *

    철썩-

    요란하게 피어나는 낭화.

    부유섬을 뜨자 안개가 서서히 옅어졌다.

    오-오오오오…

    부유섬의 메인 보스가 울부짖는 소리가 해풍에 섞여 희미하게 들려온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날이 개며, 부유섬은 어느덧 환상처럼 모습을 감추었다.

    “기다려라. 곧 만나러 갈 테니.”

    나는 언젠가 S급 몬스터를 당당하게 잡을 날을 기약하며 노를 저었다.

    …….

    한데?

    열심히 노를 저어 뭍에 대니, 항구에 낯익은 얼굴들이 마중 나와 있는 게 보였다.

    “앗! 저 자식! 이제 오네!”

    이쪽을 향해서 칼을 휘두르고 있는 여자.

    바로 유다희였다.

    그녀의 뒤로 살기등등한 표정의 유창이 보인다.

    비단 유다희 남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날의 복수를 하러 왔다!”

    예전에 초보자 마을에서 양민 학살을 하다가 오히려 나에게 역으로 털린 고인 물 사총사 역시도 보였다.

    그리고 청동 골렘 레이드 때의 일로 나에게 호기심 반 경계심 반을 품고 있는 금은동 자매.

    아마도 예전에 공식홈페이지와 유튜뷰 채널에 올린 ‘이름 없는 여왕 레이드’ 동영상 때문에 내 행적을 쫓는 이들이 꽤나 많아진 것 같다.

    ……그나저나 내가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지?

    그때.

    “……!”

    나는 눈을 번쩍 뜰 수밖에 없었다.

    저 얼굴을 어찌 잊겠나!

    투신 마태강!

    아직 무명,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시절의 그가 사람들 속에 섞여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언제나 오만하고 고고하던 그의 시선은 나를 향한 질투와 동경, 경외심, 그리고 승부욕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세상에 천하의 투신에게 저런 시선을 받아 보다니, 이런 영광이 또 없다.

    내가 노를 저어 뭍에 닿자.

    차앙-

    몇몇 이들이 성급하게 칼부터 빼 든다.

    “이 쪽수를 상대로 네가 버틸 수 있을까?”

    고인 물 사총사가 으르렁거렸다.

    이곳에 모인 사람은 총 10명. 그중에 6명은 확실하게 적이다. 그 외에도 나에게 우호적인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몬스터를 잡는 거랑 PK는 다른 일이지. 누나의 복수를 해 주마.”

    유창은 칼과 방패를 든 채로 나를 노려본다. 저 저, 시스콤 자식. 아이템 번지르르한 것 좀 보소. C+급 아이템으로 싹 빼 맞췄구만. 나를 잡기 위해 돈 좀 들인 게 보인다.

    ‘어? 근데 저것들 대부분이 내가 경매장에 잡템떨이로 팔아 치운 것들인데?’

    어쩐지 유창 놈의 방어구가 죄다 낯익다 싶더라니.

    나는 터지려는 웃음을 꾹 참았다.

    ‘어떤 말랑말랑한 흑우가 사 갔나 했더니만 너였냐.’

    15년 전에는 나를 호구 취급 하던 놈이 이제는 나에게 호구 취급을 당하고 있다.

    세상 참 아이러니하군.

    한편.

    일주일간의 사망 패널티를 치르고 온 유다희 역시 증오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에게 양학당했던 고인 물 사총사 역사 마찬가지였다.

    긁적-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었다.

    그렇다. 확실히 10명이 PK를 시도해 오면 나로서는 조금 곤란할 수밖에 없다.

    깎단이야 저렙이 고렙 보스 몬스터를 변태적으로 사냥하는 데 특화된 아이템이고 아카오니의 발가죽 신발도 지진 특성이 붙어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방어구에 불과하니까.

    보스 몬스터의 패턴이야 꿰고 있다고 해도, 플레이어들 간의 PK는 아직 조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겠지.

    …….

    하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눈앞의 10명을 바라보았다.

    ‘뭐, 그렇다고 해서 쪼렙 뉴비 10명을 겁낼 이유는 전혀 없지.’

    10:1의 PK가 자신 없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15년 동안 게임을 한 고인 물 10명을 상대로 했을 때의 전제이고.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한 뎀린이 10명쯤은 우습게 찜쪄먹을 수 있다.

    …….

    그러나.

    자고로 고수는 싸우지 않고도 이긴다고 했다.

    지금 눈앞의 10명을 PK로 죽여 쓸데도 없는 카르마 수치를 높이는 것보단, 이들을 최대한 나에게 도움이 되게끔 이용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마침 엑스트라들이 좀 필요하던 참이지.’

    그래서 나는 움직였다.

    칼을 쥔 손이 아니라 입속의 혓바닥을.

    “얘들아. 아조시랑 비밀 레이드 돌지 않을래?”

    비밀 친구를 권하는 아저씨처럼 은밀한 제안.

    ……!

    그 말을 들은 열 명의 사람이 모두 귀를 쫑긋했다. 티는 안 내도 다들 움찔하는 게 보인다.

    하기야 놈들도 나를 잡으러 온 이유는 단순히 분풀이가 아니었겠지. 진짜 원하는 것은 내가 가진 정보일 것이다.

    그동안 내가 앞서 나가며 사냥해온 수많은 보스 몬스터들, 히든 던전, 퀘스트들에 대한 정보.

    파이오니아(Pioneer).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시장의 선두주자로서 계속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수겠지?

    나는 쐐기를 박았다.

    “이건 특급 정보야.”

    열 명의 목젖이 꿀꺽 요동친다.

    암살자들의 종래의 목적을 잊게 만들 정도로, 나의 혓바닥은 달콤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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