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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23화 (23/1,000)
  • 23화 달콤한 미끼 (1)

    <흔들귀(鬼)의 미궁 2층>

    평균 난이도 C+등급의 지하 던전 최심부.

    이곳에서는 지금 연신 요란한 굉음이 터져 나오고 있는 중이다.

    <아카오니가 지진을 준비합니다!>

    평범한 성인 남자 덩치의 일곱 배 이상 큰 악귀 하나가 씩씩 화를 내고 있다.

    커다란 외눈 위로 솟은 붉은 뿔. 근육질의 몸을 가리고 있는 것은 표범 무늬 가죽을 대충 찢어 만든 훈도시다.

    <아카오니(赤鬼)> -등급: C+ / 특성: 거인, 악귀, 자연재해, 융합

    -서식지: 흔들귀의 미궁, 썩고 불타는 땅

    -크기: 12m.

    -7대 악마 중 하나인 벨페골의 부하. 지상을 침공하라는 명을 받아 지옥에서 올라왔지만 머리가 나빠 여태껏 미궁에 갇혀 있다. 오래도록 주인의 명령을 수행하지 못했지만 괜찮다.

    그에게 지령을 내렸던 벨페골도 꽤나 나태한 편이었기에 그의 존재를 잊어버린 지 오래니까.

    초보자 구역에서 가장 강한 보스 몬스터! 12,000에 이르는 엄청난 HP통과 입에서 뿜어내는 초고온의 불길은 실로 강력하다.

    무엇보다 이 몬스터의 가장 까다로운 점은 ‘지진’ 특성이다.

    쿵-

    발을 한번 구를 때마다 지진이 일어나 던전 전체에 광역 데미지를 입힌다.

    놈이 날뛸 때마다 돌기둥과 천장이 무너져 내리며 낙석 샤워가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 이 거구의 몬스터와 일전을 벌이고 있는 존재가 하나.

    “큭……강력하군.”

    투신 마태강!

    현재 데우스 엑스 마키나 안에서 꽤나 핫한 랭커다.

    엄청난 컨트롤과 반사신경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는 잘생긴 얼굴, 어린 나이로 뭇 팬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프로게이머 팀 중 최고로 손꼽히는 ‘국K-1’에서도 최근에 1군으로 승격한 그이다.

    개인방송을 하면 안 된다는 조항 때문에 방송은 켜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의 레이드를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현장으로 몰려든 상태였다.

    “와, 컨트롤 대박!”

    “진짜 잘 싸운다…….”

    “아이템도 좋아 보이네.”

    “캬! 저걸 피하네! 갓갓~!”

    수많은 이들이 투신을 보며 환호했다. 동경과 선망 어린 시선들.

    하지만 투신 마태강은 그런 시선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쿵-

    결국.

    적귀 아카오니가 바닥에 쓰러졌다.

    C+급 몬스터의 솔로 레이드!

    하지만.

    <던전 보스 ‘아카오니’ 솔로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솔로 레이드 랭킹 집계 중...>

    <1위. 고인 물 / 0데스 0기브업 / 1시간 6분 2초 >

    <2위. 투신 / 2데스 3기브업 / 4시간 7분 16초>

    .

    .

    마태강이 그토록 원하는 ‘최초’ 타이틀은 얻을 수 없었다.

    그 말인즉슨, 아이템 드랍 보정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보스 몬스터는 처음으로 공략해야 높은 확률로 동급의 아이템을 떨군다.

    -땅그랑!

    마태강의 경우에는 운이 없었다. 아카오니는 겨우 골드 몇 푼과 재료 아이템을 떨궜을 뿐이다. 경험치가 대폭 오른 게 유일한 수확.

    부들부들…….

    마태강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고인 물’

    영상 속에서 그놈을 처음 봤을 때 느꼈다.

    이놈을 넘어서지 못하면 최고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랭킹 2위인 임요셉 정도는 금방 잡을 수 있다. 장비만 뒷받침되면 PK로 놈을 이기는 것은 일도 아니리라.

    하지만 ‘고인 물’ 이놈은 뭔가 달랐다. 어설픈 듯 보이는 몸놀림, 하지만 그것은 전부 다음 수를 계산하고 난 뒤의 행동이다.

    ‘이길 수 있을까?’

    한 번도 자신의 두 주먹을 의심한 적 없던 이가 처음 품어 본 의문이다.

    그리고 지금, 마태강은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털썩-

    마태강은 주저앉아 포션을 마셨다.

    아카오니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천운이었다.

    그는 이 거대한 던전 보스를 잡기 위해 두 번 죽었고 세 번 도망쳐야 했다.

    그리고 만전의 준비를 가한 뒤 도전!

    마지막에 천장에서 떨어진 낙석 때문에 운 좋게 아카오니의 불벼락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운으로 잡은 건가…….’

    마태강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원래라면 못 잡는 몬스터였다. 세 번의 사망, 세 번의 레이드 포기라는 오명을 남길 뻔했다.

    한데?

    다 죽어 가며, 운빨까지 동원해 겨우겨우 잡고 나니. ‘고인 물’이라는 놈이 이미 먼저 솔로 레이드에 성공했다고 뜬다.

    심지어 걸린 시간에도 압도적인 차이가 난다.

    울화통이 터져 죽어 버릴 것만 같은 심경이었다.

    자기는 이제야 겨우 아카오니를 잡았는데, 그렇다면 이미 한참 전에 아카오니를 쓰러트린 그놈은 지금쯤 대체 얼마만큼 앞서 나가고 있단 말인가!?

    미처 가늠도 안 된다.

    투신 마태강. 그는 이를 갈았다.

    뿌득-

    기존에 고수하던 방법으로는 놈을 앞지를 수 없다.

    앞지르기는커녕 따라잡는 것도 벅차서 불가능할 지경.

    ‘꼭 찾아내고 만다! ‘고인 물’!’

    늘 혼자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던 것을 처음으로 취소했다.

    뒤늦게 올라오는 ‘고인 물’의 레이드 영상을 연구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뒤를 밟는 한이 있더라도 그를 실시간 파악해야 한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마태강은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팬들을 무시하고는 커뮤니티 창을 켜 뒤지기 시작했다. ‘고인 물’이 최근에 어디서 목격되었는지 추적하기 위해서이다.

    ‘반드시 찾아내고야 말겠어.’

    승부욕을 활활 불태우며 다짐하는 마태강이었다.

    *       *       *

    한편.

    -띠링!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당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접속하자마자 바로 상태창을 확인했다.

    레벨은 그대로 32.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은 두 가지뿐이다.

    -깎아내는 단말마 / 한손무기/ S / (능지처참)

    -아카오니의 발가죽 / 신발 / C+ / (지진) (융합)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서 캐릭터가 착용할 수 있는 장비는 기본적으로 무제한이다.

    자유도가 높은 게임 특성상 몸에 걸칠 수 있는 장비에는 따로 제한이 없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장비 세팅이란 것은 있다.

    한손 무기(방패 포함) 두 개, 혹은 양손 무기 하나.

    투구와 마스크.

    갑옷과 망토.

    신발과 장갑.

    반지와 목걸이, 귀걸이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현재 신발과 한손 무기 하나를 든 상태. 그러니까 사실상 알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본격적으로 아이템 파밍을 좀 해야겠어.”

    원래 이 게임은 레벨에 큰 의미는 없고 아이템을 모으는 것이 진짜다.

    그래서 나중에는 만렙부터 시작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

    심지어 종국에는 만렙 제한도 폐지된다. 레벨은 오로지 이 사람이 얼마만큼의 게임 숙련도를 가졌는지를 알리는 척도가 될 뿐이다.

    ‘뭐, 잡생각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부터가 본게임이다.

    나는 접속하자마자 바로 사막을 건너 남대륙 최외곽의 정글로 향했다.

    울창한 야자수 숲을 지나 도착한 마을은 ‘아크레’

    ‘고기 삶는 밀림’을 통과하면 나오는 작은 항구마을로 평소에는 맑은 바닷물이 찰랑이는 이국의 바닷가 풍경이다.

    유통되는 아이템도 적고 딱히 특별한 퀘스트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유저들이 거의 찾지 않는 곳.

    하지만.

    이 작은 항구마을에는 숨겨진 특이점이 하나 있다.

    아크레에는 가끔 짙은 물안개가 끼는 날이 온다.

    그때는 풍랑이 너무 거칠어져 바닷가에 나갈 수 없다. NPC들 역시 밖을 돌아다니는 플레이어들에게 어서 실내로 들어가라고 만류할 정도다.

    내가 조각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 것은 바로 이때였다.

    “어휴. 더럽게 안 보이네.”

    나는 작은 조각배를 타고 노를 저어 바다로 나아갔다.

    파도는 매우 거칠었지만 그렇다고 배가 뒤집히지는 않았다.

    철썩-

    얼굴에 와 닿는 바닷물이 정말로 리얼해서 무서움이 든다.

    하지만 돈을 꽤 써서 좋은 배를 산 이상 침몰할 가능성은 낮으니 믿어 봐야지.

    퍼펑-

    나는 몰아치는 파도를 뚫고 계속 노를 저었다.

    사람들은 으레 바다가 보이면 맵이 끝났겠거니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바다야말로 새로운 맵의 시작이다.

    바닷속, 그리고 저 너머에는 무수히 많은 다른 맵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현시점에서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존재는 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장비와 레벨로는 택도 없는 일이지.”

    내가 가는 곳은 바다 너머나 해저가 아니다.

    그런 곳을 모험하는 것은 아직까지는 너무 위험한 일.

    이번 목적지는 육지에서 그렇게까지는 멀지 않은 곳이었다.

    남부의 해안에서 아주 조금만 배를 타고 가면 만날 수 있는 작은 섬. 다만, 오로지 안개가 짙게 낀 날에만 출몰하는 비밀의 섬이다.

    이내.

    안개와 폭풍우 저 너머로 으스스한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찾았다.”

    나는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부유섬!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섬이다.

    마그마가 굳어 생긴 부석, 썩어서 가스가 찬 시체, 끈적한 진흙이 서로 뒤엉켜서 만들어진 이 기묘한 섬은 그 자체가 거대한 던전이다.

    <부유섬> -등급: ?

    물음표로 처리되어 있는 던전.

    물에 둥둥 떠다니는 이 기묘한 던전은 거대한 섬의 모양새로 나를 맞이했다.

    참고로 이 섬의 진(眞) 보스는 S+급 몬스터.

    지금의 나로서는 그놈을 잡을 엄두조차 낼 수 없다.

    공격 패턴을 알고 있다고는 해도, 놈이 숨 한번 쉬면 나는 그냥 터져 죽을 테니까.

    다만!

    ‘그놈 휘하에 있는 몬스터 하나는 잡을 수 있겠지.’

    이 섬의 보스가 얽혀 있는 메인 퀘스트 말고, 자잘한 부하 몬스터들이 관련된 서브 퀘스트 한 개만 따먹고 튈 생각이다.

    그것만 해도 꽤 대박일 테니까.

    철썩-

    으스스한 물안개 너머로, 파도가 뱃전을 때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나는 천천히 노를 저어 섬의 제일 외곽에 배를 댔다.

    그리고 가능한 메인 퀘스트에 휘말려 들지 않게 조심하며, 섬의 가장 끝 가장자리를 맴돌았다.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고개를 한참 동안이나 두리번거리자, 커다란 짐승의 뼈 밑으로 썩은 살점과 거미줄 같은 것이 휘장처럼 드리워진 만(灣)이 보였다.

    청맹과니의 눈처럼 뿌옇고 멍한 동혈 하나가 뻥 뚫려 있다.

    썩은 물이 그 안으로 천천히 졸졸졸 흘러들고 있었다.

    삐걱- 삐걱-

    나는 그 동굴을 향해 천천히 노를 저었다.

    철썩-

    포말이 뱃전에 닿아 하얗게 부서진다.

    차가운 낭화가 뺨을 적셔왔다.

    우-우우우…….

    썩은 냄새가 실린 바람이 동굴 안에서부터 불어오고 있었다.

    나는 역겨움을 꾹 참고 배를 몰았다.

    뼈와 썩은 살점, 거미줄이 치렁치렁 늘어진 동굴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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