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개 쩌는 보상 (3)
밝은 햇살이 반짝이는 아침.
하지만 내 쿰쿰한 반지하 원룸에는 해당사항 없는 일이다.
“난 햄보칼 수 업서.”
눅눅한 이불을 밀치고 바닥으로 발을 내려놓았다. 쩍- 하고, 장판이 발바닥에 붙었다가 떨어진다.
낡은 드립머신으로 싸구려 커피 한 잔을 내린 뒤, 게임을 하기에 앞서 뭐 새로 올라온 커뮤니티 정보글이 있나 한번 확인해 보았다.
-악몽숲에 히든 보스 한 마리 있는거 이제 찾음ㄷㄷㄷ 님들 ‘젖거미’라고 아심? 개 무섭게 생김...
-가능.
-그거 잡으면 C+급 템 주나요? 제발~~~C급 템이라도 갖고 싶어요ㅠㅠㅠㅠ
-아 저번에 어떤 미친놈이 숨죽이는 평원에 젖거미 풀어놔가지고 죽었잖어ㅡㅡ
-저기 초보자마을 외곽에 폐가 하나 있는 거 왠지 수상함. 가끔 집이 저 혼자 흔들흔들거리는게...뭔가 히든 던전 같은 거 있을 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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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새삼 새로울 것도 없지만 그래도 요즘 랭커들이 게임 진도를 얼마나 나갔나 확인해 보는 것도 일이다.
보아하니 특별한 일은 없는 모양이군.
한데?
“뭐야, 이게?”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HIT! 어떤 무명랭커의 솔로 레이드! 조회수-1,470,052 회- [17시간] [NEW]
공식 홈페이지 대문 메인에 동영상 파일 하나가 보인다.
업로드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미친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동영상.
지난밤 누가 사고라도 친 건가?
뭔가 싶어 클릭해 보니.
“에이, 난 또 뭐라고…….”
그것은 내가 어제 심심풀이로 올린 동영상이었다. 그런데 이게 왜 이렇게 조회수가 높지?
공식홈페이지에 연동되어 있는 개인 채널에 올라온 내 동영상이 지금 홈페이지 최상단에 떠 있다. 공유불가 설정을 해서 그런가 누군가 링크 자체를 떠 박아 놨다.
제목은 굵은 폰트로 변해 있었고 그 앞에 빨간색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딱지들이 덕지덕지 붙었다.
아직 17시간 밖에 안 됐는데 총 조회수가 백사십만을 넘은 상태였다.
댓글들은 하나같이 난리가 났다.
-와 미친 고인물...빠요엔...
-핵 쓴 거 아니냐고 진짜ㅋㅋㅋㅋㅋ
-이 분 신상 아시는 분 계신가요? 제 스승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방송국 기자입니다. 꼭 제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Korean? It is Nonsense.... amazing...
-我无法相信!
-怖い...
-Je veux manger de la baguette!!!!
-ㄷㄷ말이 되는 플레이야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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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금 당황했다. 조회수가 높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설마 공식홈페이지 대문에 걸리다니.
거기에 세계 각국의 게이머들이 죄다 모여들어 용광로마냥 뜨겁게 떠들고 있다.
[쩌저저저적!]
[크-오오오오!]
보기만 해도 살 떨리는 난이도! 해일처럼 몰려드는 번개, 모든 것을 찢어발기는 창!
보스 몬스터의 위압감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안 맞지, 그런 거.]
하지만 초연한 태도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그것들을 모두 피해 나가는 내 모습에 사람들은 미친 듯이 열광한다.
“……고작 이 정도로?”
하지만.
15년간 게임을 해 왔던 내 입장에서 보면 이 정도야 정말 물 마시는 것처럼 쉬운 일이다.
아무래도 이 시기의 게이머들은 내 생각보다 수준이 많이 낮은 듯하다.
“내가 초창기 랭커들을 너무 과대평가했던 건가?”
나는 댓글반응들을 살피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다.
내 기억 속 초창기 랭커들은 하나같이들 다 엄청났던 사람들이었다.
압도적인 피지컬과 카리스마로 전장을 휘젓고 다니던 랭커들.
주먹 한 방으로 산을 무너뜨리고 칼 한 번으로 거대 괴수를 베어 버리던 존재들.
하지만.
지금은 15년 전! 내 마음 속 우상, 태산과도 같았던 그들이 아직 병아리였을 시기인 것이다.
나는 알게 모르게 미래의 랭커들을 의식해 무의식적으로 나 자신을 낮추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벌써부터 거만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댓글창을 꺼 버렸다.
이 정도 작은 성과에 취해 날뛰게 되면 더 큰 것을 손에 넣을 수 없게 된다.
“바로 게임으로 들어가 볼까?”
나는 발길을 돌려 캡슐로 향했다.
바로 그때.
-띠링!
메시지 알림음이 요란하다.
뭔가 싶어 메시지를 보니, 지난 밤 동안 수많은 메시지들이 와 있는 게 보였다.
-저희 XX정수기는 ‘고인 물’ 님의 채널에 광고를 싣고 싶습니다. 초기 상단 배너에 190X100사이즈로 노출당 2원, 290X70 사이즈의 중단 배너로 노출 당 1원 기준입니다. 좋은 인연 기대하겠습...
-안녕하세요 ‘고인 물’님. ㅇㅇ전자 MD 김ㅇㅇ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광고 문의를 드리려구요^^ 채널 초기면 좌측 여백과 우측 여백에 95X290/85X145 배너 사이즈 기준으로 노출 당 1.6원 어떠신가요? 지금 채널의 조회수 추세라면 일 1,000,000원 이상의 수익은 보장될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긍정적인 답변 기대...
-XX식품입니다. ‘고인 물’님의 채널 흥미롭게 살펴보았습니다.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채널로 판단되어 광고 제휴 컨택 드립니다. 저희는 채널 하단의 프리미엄 텍스트 광고를 주로 삼고 있는데 이 채널의 특성과 잘 부합될 것으로 판단, 1 [SKIP]당 0.5원이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ㅇㅇ완구에서 PPL건으로 문의 드립니다. 게임 내에서 당사의 제품 이미지가 그려진 망토를 입고 다녀주신다면 일급 기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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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어마한 수의 광고 문의 내용이다.
공식홈페이지와 연결되어 있는 내 개인 채널에 광고를 싣고 싶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게임 플레이 도중 PPL을 해 달라는 의뢰까지 들어왔다.
“와, 무슨 스포츠 스타 같네.”
하기야.
스포츠 선수들을 통한 PPL 마케팅의 효과는 대단한 것이다.
옛날에 마이클 조던이 특정 상표 농구화를 신고 경기를 뛰면 해당 메이커의 매출이 수직 상승했었으니까.
E스포츠의 영향력은 지금 메이저 OF 메이저.
이런 광고들이 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막연히 부러워하던 것이 하나둘 현실로 다가오자 조금 얼떨떨해졌다.
“좋아. 이제부터는 레이드 장면을 전부 다 녹화 떠 둬야겠다. 나중에 다 돈 되는 것들이니까.”
다행스럽게 영상 편집 정도는 조금 할 줄 아니, 적당히 더빙도 하고 자막도 입히면 재미있는 방송 콘텐츠들은 꽤나 나오겠다.
“옛날에 유행했던 게임 방송 BJ들 방송을 꾸준히 보길 잘했어.”
어떤 BJ가 어떤 콘텐츠와 어떤 콘셉트로 방송을 해서 먹혔는지, 나는 앞으로 15년간 펼쳐질 게임방송의 모든 것을 꿰고 있다.
어떻게 해야 인기 BJ가 되는지는 어떻게 해야 랭커가 될 수 있는지만큼 빠삭하게 안다.
“개인방송 판도 쓸어 먹을 수 있겠네.”
나는 미래를 구상하며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내 눈에 들어오는 다른 메시지들도 있었다.
<귀하의 인상깊은 플레이를 보고 메시지 드립니다. 저희 프로게이머 팀 국K-1은 명실공이 국내 최고의 팀으로...(중략)...괜찮으시다면 저희 팀에 가입하셔서 귀하의 꿈을 마음껏 펼쳐 보시지 않으시겠...조건은 최고 대우로 맞춰 드리겠...>
프로게이머 서울 팀.
국K-1.
한국 최고의 프로 팀이자 나중에는 전 세계 최고의 팀이 될 구단.
현재 인재를 막 끌어 모으고 있기로 유명하다.
“그러고 보니…투신 그 사람도 지금쯤 2군에 배속되었겠네.”
나중에 부동의 랭킹 1위가 될 투신 역시도 이 팀에 속해있다.
“흐음…….”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짤막하게 대꾸했다.
“귀찮아.”
짧은 대답.
명백한 거절이다.
…….
하지만 사실 이 제안을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지금은’ 프로게이머를 할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지금 2군으로 들어가서 심사 거쳐 1군 갈 바에는……몸값 더 높여서 바로 본게임 리그로 편입되는 게 낫지.”
어차피 지금 프로게이머가 되면 독점 조항 때문에 개인방송 등이 금지되어서 돈도 별로 못 번다.
하지만 머지않아 독점 조항들은 완전히 사라진다.
프로게이머도 개인방송을 하고 SNS로 부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때가 되어서 프로게이머를 해도 늦지 않다.
“그리고……솔직히 내 게임 짬밥으로 선수 하는 건 좀…….”
건방질지도 모르지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차라리 현역 선수를 함과 동시에 코치를 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 혼자 다 해 먹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장래 유명해질 랭커들을 거둬다 키워서 구단을 차린다면?
그리고 나중에는 세계 이적 시장까지 손을 뻗어 나가 온 세계 선수들을 죄다 영입하는 거지.
현실에서는 구단, 게임 내에서는 길드.
거기에 내가 부리게 될 어둠의 세력 ‘캡슐방 작업장’ 라인까지 가동된다면?
“그것도 재밌겠군.”
머릿속에서 계획이 착착 선다.
하지만.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선 들뜨면 안 된다.
거만해져서도 안 된다.
전 생애에서의 실패는 근거 없는 낙관과 오만에서 왔다.
와신상담(臥薪嘗膽).
가시나무 침대에 누워 곰 쓸개를 핥는 심경으로, 나는 게임 캡슐에 누웠다.
그래 지금은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더 강한 보스를 잡고 더 좋은 아이템을 구한다.
게임의 기본에 충실할 때다.
나는 게임 세계에 접속하며 미리 안배해 둔 두 개의 아이템을 떠올렸다.
-<고대 문명의 청동 방패> 방어구 / C+
아주 옛날 방식으로 만들어진 고대의 방패. 너무 오래되어 방어력은 거의 없다. 반들반들하여 사용자의 얼굴이 /비춰(비쳐)/ 보인다.
-방어력 +10
-? (특수)
-<고대 문명의 청동 검> 한손무기 / C+
아주 옛날 방식으로 만들어진 고대의 한손 검. 너무 오래되어 공격력은 거의 없다. 반들반들하여 사용자의 얼굴이 비쳐 보인다.
-공격력 +80
-? (특수)
‘잊혀진 고대문명의 수문장’ 청동 골렘과 ‘이름 없는 여왕’을 잡고 얻은 두 개의 아이템.
언뜻 보면 무가치해 보이는 똥템이지만, 사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이 두 아이템은 굉장히 귀한 것이다.
왜냐하면 게임 세계에서는 청동 자체가 굉장히 희귀한 광물이기 때문이다.
-<청동> 광물 / D
-무르고 약해서 잘 쓰이지 않지만 파충류나 어둠 계열 몬스터들에게 굉장히 강한 저항력을 보여 간혹 무당, 제사장 등에 의해 장신구 재료로 쓰인다.
채굴량이 적어 굉장히 희귀하다.
<아이템 표 만들어주세요>
그런 청동이 통짜로 녹아들어 간 방패와 칼. 게다가 숨겨져 있는 두 개의 특수 옵션까지!
당연히 이것들은 훌륭한 ‘퀘스트 아이템’인 것이다.
‘그리고…나는 이 두 개를 이용해서 잡을 몬스터가 있지.’
나는 기분 좋은 미소를 띤 채 가상현실 속으로 깊게 침잠해 들었다.
이제부터 리얼 본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