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20화 (20/1,000)

20화 개 쩌는 보상 (1)

상가 건물 2층.

<금연구역>

담배연기가 뿌옇게 솟아오른다.

여기저기에서 뿜어져 나온 담배연기들이 안개를 넘어 구름을 이루고 있었다.

불이 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뿌연 연기들 너머로 어슴푸레한 전자 불빛들이 깜빡인다.

캡슐방.

가상현실 게임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즐기기 위한 캡슐들이 쭉 늘어져 있다.

얼핏 보기엔 관짝들이 줄지어 늘어선 듯 괴기스러운 외형이었지만 그 사이를 오가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몇몇은 캡슐에 눕거나 앉아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었고 다른 몇몇은 헬멧을 벗고 캡슐에 부착된 모니터를 보며 담배만 뻐끔거린다.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사람들도 간혹 보였다.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는 PC방의 풍경과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유난히 초췌해 보이는 한 남자가 캡슐방의 구석진 자리에서 머리를 벅벅 긁고 있었다.

“에이.”

이제 막 3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외모. 손만 뻗으면 정수기와 에어컨이 닿는 위치.

캡슐방 죽돌이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위치를 며칠째 점거하고 있는 이 남자.

이형근. 나이 32세.

그 나이 먹도록 딱히 무언가 이뤄 놓은 게 없는 그이지만, 그에게도 사실 내세울 만한 업적이란 것이 하나 있기는 하다.

게임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랭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랭킹 44위.

VR 가상현실 게임에 모든 인생을 다 바친 인생.

그는 이제 게임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하루에 15시간 이상을 게임에 할애하는 그.

그리고 게임을 하지 않을 때에는 이렇게 모니터를 바라보며 온라인 쇼핑을 한다.

무얼 쇼핑하느냐고?

생필품 따위가 아니다. 당연히 게임 머니, 혹은 아이템이다.

“아 진짜. 이번 주말에 랭킹 좀 바짝 올려야 하는데…….”

이형근은 모니터를 통해 자기 랭킹을 확인하며 초조한 듯 말했다.

지금은 44위였지만 45위, 46위와 레벨은 똑같다.

총 경험치량에서 미묘하게 차이가 나 간신히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언제 랭킹을 빼앗기게 될지 모르는 상황.

“아 진짜, 접속불가 언제 풀려!”

이형근은 엄지손톱을 씹으며 중얼거렸다.

젖거미. 악몽숲의 잠복꾼.

멋모르고 악몽숲에 들어갔다가 이놈에게 당해서 죽는 바람에 24시간 접속불가 패널티를 받아 버린 것이다.

“미치겠네, 진짜! 게임 접으라는 건가? 하루 동안 못 들어가게 하는 게 말이 되냐고! 이런 식으로 사망 패널티를 먹이면 사람들 다 접지! 아오!”

하지만 발끈하고 있는 이형근이 사망 패널티 때문에 게임을 접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더욱더 열심히 할 것 같은 것은 기분 탓일까?

과연 겜창답게.

이형근은 게임에 들어가지 못하는 시간 동안 인터넷 커뮤니티에 상주하며 온갖 공략 정보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현실 돈으로 게임머니와 아이템을 구매하기 위해 경매 옵션 역시 들락날락거렸다.

“아오! 왜 이렇게 매물이 없어, 진짜!”

이형근 저도 모르게 키보드를 쾅 내리쳤다.

경매장에 올라온 아이템과 게임머니의 양은 극히 적은 수준이었다.

이 게임에서는 워낙에 골드와 아이템을 얻기가 힘들기에 1:10의 환율이 아니라 1:9의 환율로도 팔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아이템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경매장에 올라온 아이템들을 바라보던 이형근의 눈이 순간 휘둥그레졌다.

[email protected]@@@@C+급 아이템 팝니다@@@선제@@@경매@@@최저가낙찰@@@

누군가 경매 채널에 글을 올렸다.

C+급 아이템!

현존하는 최고 등급의 아이템이 아닌가! 그 이상의 아이템이 나왔다는 보고는 아직까지 들은 바가 없다.

“오오오! 드디어 떴다!”

이형근은 눈을 빛냈다.

그는 C+급 몬스터를 혼자 사냥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C+급 아이템을 얻기 위해선 별수 없다. 눈물을 머금고 현질을 하는 수밖에.

하지만 괜찮다.

C+급 아이템을 현실 돈으로 사면 사냥을 해서 더 높은 등급의 몬스터를 잡을 수 있다.

그러면 골드도 더 많이 벌 수 있고 다른 아이템들도 많이 건질 수 있겠지. 그것을 다시 현실 돈으로 환전하면 오히려 남는 장사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이형근은 잽싸게 경매 채널을 클릭했다.

-<매설된 악몽 쇠뇌> 한손무기 / C+

암살자들이 애용하는 한손 쇠뇌. 궁수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다룰 수 있다. 이 화살에 맞은 자는 중독 상태에 빠진다.

-공격력 +90

-독 공격력 +10

-‘독’ 특성 사용 가능

<10,000,000 골드>

아이템을 본 이형근의 눈에 핑크빛 하트가 어린다.

“어머 이건 꼭 사야 해!”

독 특성은 제한된 시간 동안 1초에 최대 HP의 0.0025%에 해당하는 데미지를 지속적으로 입히는 특성이다.

이 제한 시간은 레벨의 영향을 받는다.

고레벨 플레이어가 사용하면 스택 개념으로 데미지가 쌓이기에 초반에 꽤나 유용한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격은 1천만 골드.

현실 돈으로 치면 110만 원 남짓.

하지만 이형근은 주저 없이 지르기로 했다.

“가즈아!”

이걸로 초반에 앞서 나갈 수만 있다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지금은 용감하게 투자해야 할 때다.

하지만.

-띠링!

<아이템이 없습니다!>

공허한 알림음이 텅 빈 경매 채널에 메아리친다.

조금 비싼가? 싶어서 망설이는 0.1초 사이에 누가 벌써 사 갔다.

“젠장!”

이형근은 두 주먹으로 키보드를 쾅쾅 내리쳤다. 알바가 와서 엄중히 주의를 줄 때까지 그의 난동은 계속되었다.

“아오, 이걸 뺏기네.”

이형근은 새치를 움켜잡으며 절망했다. 클릭이 조금만 빨랐어도.

경매는 게임 안에서도, 밖에서도 열리지만 어느 쪽이나 경쟁이 치열하다. 좀 앞서 나간다 하는 랭커들은 경매소 쪽에도 항상 눈독을 들이고 있으니까.

“아아. 이제 C+급 아이템 보기는 진짜 힘들겠네…….”

이형근은 낙담한 표정으로 모니터 앞에 웅크렸다.

아이템 거래소 우측 하단에는 계속해서 팝업창이 깜빡이고 있었다.

마우스 커서를 올리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탑티어 랭커들이 화려하게 레이드를 도는 장면이 gif 움짤로 재생된다.

“……부럽다.”

이형근은 화려한 가상현실 VR 속의 탑 랭커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랭커. 탑 티어.

그들은 프로게이머라 불리며 소속 매니지먼트가 따로 존재한다. 당연히 매니저들도 있고 각종 TV 프로그램에 등장한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방송의 꽃은 개인방송.

탑 티어 랭커들은 BJ, 스트리머 등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분야의 개인방송을 진행한다. 이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실로 막대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미끈한 스포츠카,

커다란 집,

럭셔리한 스포츠 클럽 회원권,

수백만 원대의 분양가를 호가하는 고양이,

비싼 양주,

예쁘고 잘생긴 모델들과의 열애,

잡지 표지를 장식하는 얼굴,

예능에서 활약하는 모습,

연락 끊겼던 친척, 동창들의 친한 척,

끈질기게 따라붙는 파파라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하는 팬덤…….

탑 티어들에게 따라붙는 모든 빛과 어둠.

그 어둠마저도 찬란해 보이는 위엄.

“하아…….”

이형근은 탑 티어들의 레이드 움짤을 보며 한없는 환상에 젖어 들었다. 아메리칸 드림이 아니라 데우스 엑스 마키나 드림이다. 수많은 이들이 꿈을 좇아 또다시 가상현실의 세계로 빠져든다.

바로 그때.

퍼뜩!

이형근은 정신을 차렸다.

정수리에 얼음으로 된 송곳 하나가 푹 박힌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딱히 현실을 깨달은 것은 아니다.

이형근의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게 한 것은 경매장에 뜬 하나의 메시지였다.

-겜 접음. 아이템 정리~

그 흔한 @표시 하나 없는 심플한 문구.

평소대로라면 D급 잡템을 파는 잡상인일 것이라 여기고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매장 채널에 입장에 있는 사람의 수는 이형근의 정신을 번쩍 깨우는 것이었다.

-채널 접속자 수: 7,892명

대체 어떤 아이템을 올려 놨길래 이 경매 방에 근 8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있는 것인가?

이형근은 황급히 경매 채널 입장 버튼을 눌렀다.

-띠링!

<‘고인 물’님의 상점에 입장하셨습니다!>

경매장 입장을 알리는 알림음.

이내.

경매장에 올라온 아이템 목록들이 쫙 나열되기 시작했다.

-<매설된 악몽 쇠뇌> 한손무기 / C+

-<죽음부름 곤봉> 한손무기 / C+

-<패륜아의 가죽> 갑옷 / C+

-<뒤틀린 야망의 큰걸음> 신발 / C+

-<은밀한 눈동자> 반지 / C+

-<오래된 맹약> 목걸이 / C+

.

.

무기와 방어구, 장신구까지.

없는 아이템이 없다.

실로 어마어마한 양의 C+급 아이템! 그 수만 해도 수십 가지나 된다!

팽그르르-

돈다. 돌아간다.

형근이의 눈동자가 미친 듯 돌아가기 시작했다.

“산다! 다 산다!”

이형근은 이성을 잃고 말았다. 그는 출판사를 관두며 손에 쥔 모든 퇴직금을 경매장에 들이부었다.

점점 올라가는 가격, 거듭되는 상회입찰. 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즉시구매가로 사는 것이 답이다.

“사야 해! 다 사야 해!”

이형근은 미친 듯이 아이템을 구매했다.

월급통장, 생활비 통장의 돈이 빛의 속도로 사라져 간다.

동시에 게임 속 이형근의 캐릭터는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우와아아! 드디어 나도 C+급 아이템 얻었다!”

이형근은 캡슐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쳐다볼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기쁨이 듬뿍 배인 함성. 오늘이 이형근의 인생 중 가장 기쁜 날이었다.

*       *       *

한편.

“어라? 다 팔렸네?”

나는 3분 전에 만든 경매 채널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경매 채널을 만든 뒤 그동안 인벤토리를 지저분하게 채우고 있던 잡템들을 싹 올렸다.

보기에도 어수선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레이드를 돌 때 방해되기 때문이다.

‘좋은 아이템이 나왔는데 인벤토리가 쓰레기로 꽉 차 있으면 귀찮으니까.’

그래서 별 생각 없이 잡템들을 경매 채널에 쭉 등록해 놨던 것이다.

한데 이 정도로 인기가 좋을 줄이야?

아직도 C+등급 이상의 아이템은 경매장에 보이지 않는다.

내가 인벤토리가 지저분하다고 싹 정리했던 쓰레기 아이템들은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현 시점 최고 등급의 장비들이었던 것이다.

‘예전에 튜토리얼에서 C+급 아이템을 얻었을 때부터 약간 짐작은 했지만, 설마 아직까지도 이 정도가 최고 등급이라니…….’

아무래도 지난 15년의 게임 생활 동안 내 눈이 지나치게 높아져 버린 것 같았다.

아무래도 현재의 유저들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윽고.

아이템들을 팔아 번 돈이 정산되어 내 통장에 입금되었다.

-78,310,450 원.

칠천 팔백 삼십 일만 사백 오십 원.

근 8천만 원에 가까운 돈이 내 통장에 바로 꽂혔다.

총 23개의 C~C+등급 장비들을 팔아 치운 결과였다.

“이야. 저번에 벌었던 3천만 원을 더하면……. 1억을 넘었네, 벌써.”

나는 혀를 내둘렀다. 이런 식으로 가면 금방 부자 되겠다.

이 돈을 다 어디다 쓰나?

“어디다 쓰긴?”

나는 피식 웃고는 통장을 덮었다.

1억?

이 정도 금액은 아직 모래 한 줌에 불과하다.

나는 사막 전체를 통째로 털어먹을 생각이다. 고작 이런 푼돈에 기뻐하기엔 이르지.

앞으로 펼쳐질 진짜 레이드.

이젠 이름 없는 여왕 따위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강적을 상대해야 한다.

다루게 되는 아이템도 이런 잡템들과는 격이 달라질 것이다.

“앞으로가 기대되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침대로 가 누웠다.

규칙적인 수면과 운동이 장시간 게임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오늘은 이만 푹 자야지.

그때.

“응?”

나는 캡슐에 연결된 핸드폰의 화면 상단부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띠링!

<레이드가 끝났습니다>

<녹화가 종료됩니다>

이상한 알림 메시지가 떠 있다.

“뭐지?”

뭔가 싶어서 메시지를 클릭해 보니.

[콰콰콰쾅!]

[안 맞지, 그딴 거.]

[쩌저저적! 우르릉!]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내가 이름 없는 여왕을 사냥하는 장면이 재생된다.

“아 맞다. 그때 항아리 속에 숨어서 영상 녹화했었지. 내가 그걸 안 껐구나.”

우연히 내 사냥 영상을 남겨 버렸다.

유다희의 표정이 너무 쌤통이라서 찍어 놨었는데 레이드 과정이 풀로 찍혀 버릴 줄이야.

지울까 하다가 이내 관뒀다. 이왕 찍힌 영상인데 보존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러고 보니 내 첫 레이드 영상이네.”

나는 피식 웃고는 영상을 편집했다.

얼굴을 지우고 그 외, 나의 신상을 알 수 있는 상태창 정보들을 모두 모자이크 처리했다.

“심심한데 커뮤니티에나 올릴까?”

나는 게임 공식 홈페이지 유저 게시판에 영상을 업로드했다.

솔직히 별생각 없는 행동이었다. 졸려서 빨리 자고 싶은 마음만 들었다.

98%…99%……100%!

영상이 잘 업로드된 것을 확인한 뒤, 나는 커뮤니티를 끄고 드러누웠다.

“이제 자자. 더럽게 피곤하네.”

하루종일 게임만 해서 그런가 더 피곤한 것 같다. 나는 눈을 붙이고 금세 깊은 수면으로 빠져들었다.

…….

그래서일까?

불과 몇 초 뒤.

나는 머리맡에 둔 핸드폰 화면이 미친 듯이 반짝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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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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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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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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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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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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