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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19화 (19/1,000)
  • 19화 이름 없는 여왕 레이드 (3)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몬스터들은 여러 종(種)으로 나뉜다.

    용족과 악마족이 포함되어 있는 ‘지배종’

    먼 옛날 지배종이었다가 지금은 그 자리에서 밀려나게 된 ‘고대종’

    죽음에게서 육신을 빌려 돌아다니는 ‘언데드종’

    깊은 땅 속에서 사는 ‘지하종’

    이 세상 모든 벌레들이 속한 ‘충왕종’

    바다에서만 서식하는 ‘해왕종’

    그 외 몸뚱이 하나 믿고 살아가는 ‘육탄종’ 무리를 이루어 살아가는 ‘군락종’ 강력한 독을 가지고 있는 ‘독종’ 등등.

    수많은 몬스터들은 이처럼 종과 족에 따라 구분되어 또다시 여러 계열, 여러 계파로 나뉘는 것이다.

    <이름을 되찾은 여왕>

    유다희의 얼굴을 한 이 몬스터는 언데드종 중에서도 꽤나 강력한 몬스터이다.

    언데드종 몬스터들은 대부분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생겨나는 몬스터이기 때문에 이들을 사냥한다는 것은 또 다른 퀘스트로의 연계를 뜻한다.

    때문에 게임 초반부의 수많은 용자, 랭커들이 이 몬스터를 잡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름 없는 여왕 역시도 상당히 인기가 많았었다.

    하지만 정작 이 몬스터가 함락된 것은 게임 출시 이후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뒤였다.

    수많은 언데드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지하 7층 최심부에 숨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던전의 까다로운 입장 조건, 난해한 공략 패턴, 그리고 ‘이심전심’, ‘반전’ 등의 괴랄한 특성까지.

    클리어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잘것없어 보이는 언데드 잡몹들도 상당히 잡기 어려운 마당에 보스야 오죽할까.

    일반적인 언데드종 몬스터가 꽤나 단순한 공략 패턴을 가지고 있는 것과 달리, 이름을 되찾은 여왕의 공략 패턴은 상당히 까다롭다.

    물리, 마법 공격 역시 골고루 섞어 쓰니 더욱더 까다로울 것이다.

    …….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게임을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는 뉴비들에 한한 것!

    착-

    나는 자세를 갖추고 눈앞에 있는 보스 몬스터를 맞이했다.

    이제부터 이 게임 16년차, 플레이 시간 7만 시간에 빛나는 고인물의 힘을 보여 주겠다, 이거야!

    하루 12시간씩 단 하루도 쉬지 않고 365일 내내, 16년을 해야 달성할 수 있는 업적인 플레이 시간 70,000!

    참고로 이거 찍은 날 개발사에서 소정의 선물도 보내줬었다.

    …….

    어떻게 이렇게 오래, 많이 플레이했는데도 랭커가 못 됐냐고 안타까워하던 직원의 반응은 잠시 잊어 두도록 하자.

    ‘하지만 이제부턴 다를 거다!’

    나는 깎단을 움켜쥔 채 돌진했다. 아카오니의 발가죽 덕분에 내 이동 속도는 상당한 편이다.

    [더러운 수컷들!]

    유다희가 나를 향해 무시무시한 눈빛을 폭사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도 나를 죽이고 싶을 것이다.

    유다희와 이름을 되찾은 여왕이 완벽하게 의기투합하는 순간!

    쩌저저저적-

    이름을 되찾은 여왕의 창끝에서 무시무시한 뇌전 줄기가 폭사되었다.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공격!

    컨트롤 좀 되는 유창조차도 이 공격이 나왔을 때는 HP칸이 바닥날 것을 각오하고 방패막기를 시전했었다.

    뇌전 한 줄기 한 줄기가 살아 있는 뱀처럼 움직일 뿐만 아니라 너무 빽빽하게 뭉쳐 있어 도저히 피할 수 없다.

    심지어 뇌전이 흘러가는 방향까지도 랜덤이다.

    …….

    어디까지나 뉴비의 시선으로 보자면 말이다.

    “안 맞지 그딴 거.”

    나는 가볍게 한쪽 다리를 들었다.

    오징어 게임, 혹은 사방치기. 그 외 하늘땅 별땅, 망줍기, 땅따먹기 등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놀이.

    어렸을 때 땅에 금을 긋고 깽깽이발로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특정 구역을 밟거나 피해 이동하는 게임이었다.

    지금 내가 하는 것이 영락없는 그 놀이다.

    폴짝- 폴짝- 폴짝-

    나는 바닥으로 쏟아지는 뇌전 줄기와 줄기 사이를 피해 탭댄스를 추듯 발을 움직였다.

    심지어 내가 신고 있는 신발은 아카오니의 발가죽을 벗겨 만든 것으로 ‘지진’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내가 한번 발을 구를 때마다 옅은 지진이 일어 넓은 범위에 데미지를 뿌린다.

    ↗↘⤾↗→↑⤿↗↘↑→↗↕⤿⤤↳↗⤹…….

    마치 펌프, DDR, 리듬게임, 오디션 게임 등을 플레이하듯. 나는 미친 듯이 발을 놀렸다.

    두다다다다-

    끝으로.

    탁!

    나는 가볍게 발을 구르며 바닥에 착지했다.

    CLEAR!

    번개의 웨이브가 무사히 지나갔다.

    “…….”

    이름을 되찾은 여왕, 아니 유다희는 입을 반쯤 벌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

    “뭘 가만히 서 있냐?”

    나는 이름을 되찾은 여왕이 뇌전을 한 차례 쏟아부은 뒤 잠시 움직임을 멈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일부러 빈정거렸다.

    그리고.

    퍽!

    내 깎단이 이름을 되찾은 여왕의 다리를 공격한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데미지가 튀었다.

    내 깎단에 맞았으니 3시간도 버티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그 시간 동안 멍하니 기다리긴 싫다.

    계속 데미지를 입혀 빨리 잡아 버려야 또 다음 던전을 찾아 움직이지.

    퍽- 퍼퍽- 깡!

    나는 이름을 되찾은 여왕을 신나게 쥐어 팼다.

    [……이익!?]

    유다희가 막 스턴 상태에서 풀려났다. 그녀가 창을 들어 올려 바닥을 찍자마자.

    호다닥-

    나는 얄밉게도 뒤로 데굴 굴러 그녀의 공격을 피했다.

    콰쾅!

    유다희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돌격해 왔다.

    하지만 나 역시 그런 그녀를 향해 돌격했다.

    [어엇!?]

    유다희가 미처 당황할 틈도 없이,

    쩌억-

    나는 그런 그녀의 옆구리를 스치며 깊은 칼자국을 내 주었다.

    이름을 되찾은 여왕의 돌진 공격은 피하기 힘들다. 좌로 피하든 우로 피하든 창의 긴 범위에 걸려들어 데미지를 입고 만다.

    완전한 회피는 위로 피하는 것이지만 그랬다간 뇌전 공격을 피할만큼의 거리 확보에 실패할 것이다.

    공략법은 오히려 마주 돌진하는 것.

    그리고 부딪치기 직전에 창을 들고 있는 오른손 쪽으로 냅다 굴러 버리는 것이다.

    [이이익!]

    데미지를 허용한 유다희가 잔뜩 분노했다. 이름을 되찾은 여왕이 창을 들고 홱 뒤돌아섰다.

    이번에 올 것은 70% 확률로 창을 풍차처럼 회전시키기, 20% 확률로 창에서 아우라를 쏘아 내기, 10% 확률로 뇌전이다.

    붕붕붕붕-

    아니나 다를까, 이름을 되찾은 여왕은 두 손으로 창을 휘두르며 돌격해 왔다.

    “아함-”

    나는 딱히 방어할 필요도 없이 자리에 벌렁 드러누웠다.

    붕붕붕붕-

    풍차의 날개처럼 돌아가는 창끝이 내 코끝을 살짝 스치며 지나갔다.

    이 공격은 어줍잖게 피하면 오히려 데미지를 입는다. 하단에는 공격이 닿지 않으니 납작 엎드리거나 벌렁 눕는 것이 의외로 상책.

    …….

    …….

    풍차 공격은 꽤나 오래 지속되니 이참에 몇 분간 눈을 붙이는 것도 좋겠다.

    한편.

    [끄-아아아아!]

    공격이 빗나가자, 이름을 되찾은 여왕이 괴성을 질렀다. 이것은 아마 유다희의 분노가 가미된 고함일 것이다.

    빠지지지직-

    또다시 뇌전이 쏟아졌다. 이번에는 반전 특성까지 발현된 듯 보였다. 뇌전들이 전부 좌우가 뒤집어져 있다. 심지어 아까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였다!

    “오오. 이렇게 빠른 공격이라면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 쏟아져 들어오는 벼락 줄기를 보며.

    나는 다급하게 손을 움직였다.

    BGM-<베토벤 바이러스♪>

    베토벤 비창소나타 3악장을 현대식으로 리메이크한 음악으로 빠르고 경쾌한 전자 바이올린 음색이 인상적이다.

    ‘↗↘⤾↗→↕⤿⤤↳↗⤹↑⤿↗↘⤾↗→↕⤿⤤↳↗⤹↑↑→⤾↗→↕⤿⤤↳↗⤹↑↕⤿⤤↳↗⤹↗↕⤿⤤↳↗⤹⤾↗→↕⤿⤤↳↗⤹↑⤾↗→↕⤿⤤↳↗⤹↑↗→↕⤿⤤↳↗⤹↑……’

    나는 또다시 깽깽이 발을 들고 벼락 줄기의 오른쪽을 총총 뛰었다.

    이윽고 뇌전들이 벽을 타오를 때는 왼발로 벼락 줄기의 왼쪽을 총총, 그리고 뇌전들이 본격적으로 팡 터지듯 밀려 들어올 때는 그물코 같은 뇌전 줄기의 사이 사이를 발끝으로 탭댄스 추듯 디뎠다.

    수많은 격자들의 중앙을 톡톡 지르밟으며, 나는 음악에 맞춰 콧노래를 부른다.

    이윽고.

    탁-

    빠르게 재생되던 음악이 끝날 때쯤 돼서, 이름을 되찾은 여왕은 또다시 멍한 표정으로 스턴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 새끼 대체 뭐지?’

    라는 표정이다.

    나는 여왕의, 아니 유다희의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

    번쩍-

    그저 묵묵히 말뚝 딜을 먹일 뿐이다.

    *       *       *

    퍼엉-

    요란한 굉음과 함께, 내 앞에 알림음이 떴다.

    -띠링!

    <세계 최초로 ‘이름을 되찾은 여왕’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세계 최초의 ‘이름을 되찾은 여왕’ 솔로 레이드입니다!>

    <‘잊혀진 고대문명의 유적’을 최초로 올 클리어하셨습니다!>

    <‘여왕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약 한 시간 반 정도의 레이드 끝에.

    나는 결국 ‘이름을 되찾은 여왕’, 아니 ‘유다희’를 잡을 수 있었다.

    이름을 되찾은 여왕은 죽기 일보 직전. 그러니까 HP가 1%이하로 떨어졌을 때, 잠시 연기를 하며 ‘저 빙의가 풀렸어요, 죽이지 마세요!’ 라는 대사까지 쳤지만…….

    “빙의랑은 상관없이 죽이는 건데?”

    그 역시 보스의 패턴임을 알고 있는 나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애초에 몰랐다고 해도, 상대가 유다희인 이상 봐줄 생각도 없고.

    땅그랑-

    이름을 되찾은 여왕이 쓰러지자 아이템 하나가 떨어졌다.

    이름을 되찾은 여왕이 들고 있던 창의 손잡이 부분이 모래로 변해 사라지고, 그 창날 부분만이 남은 것이다.

    -<고대 문명의 청동 검> 한손무기 / C+

    아주 옛날 방식으로 만들어진 고대의 한손 검. 너무 오래되어 공격력은 거의 없다. 반들반들하여 사용자의 얼굴이 비쳐 보인다.

    -공격력 +80

    -? (특수)

    “휴…….”

    나는 유다희를 죽이고 얻은 청동 검을 집어 들었다.

    ‘똥 쓰레기 템.’

    만약 내가 아닌 누군가가 이 아이템을 주웠다면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 고생을 해 가며 겨우겨우 잡았는데 고작 C+ 등급의 아이템이 떨어지다니!

    아무리 몬스터가 자기랑 동급~두 단계 이하의 아이템을 떨군다고는 하지만, 막상 두 단계 이하의 아이템이 떨어지면 진짜 열 받는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불만 없이 청동검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옵션이 구리기는 하지만, 이 아이템의 숨겨진 진가를 안다면 그 누구도 불평할 수 없으리라.

    “좋아. 이제 모을 건 다 모았네.”

    나는 개운한 걸음으로 일어났다.

    한데?

    던전을 나가려고 보니 바닥에 반짝거리는 것들이 꽤나 많다.

    “오호?”

    눈이 절로 동그래진다.

    바닥에는 자루에 담긴 금화가 가득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유창과 유다희가 죽으면서 흘린 돈인 것 같았다.

    아쉽게도 유다희 남매는 딱히 값나가는 아이템을 떨구지는 않았다. 대신 막대한 양의 금액을 흘린 듯싶다.

    사망 패널티에는 최대 소지금의 1~10%를 떨굴 수 있다는 선택지도 포함되어 있으니까.

    “이게 웬 꿀밭이람.”

    나는 바닥을 기며 골드를 삭삭 긁어모았다.

    돈은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는 것이라지만, 사실 그것은 헛소리다.

    원래 돈은 개처럼 벌어서 정승한테 뺏기는 것이다.

    그러니 이 경우에는 내가 정승이라고 할 수 있겠지.

    바로 그때.

    “야, 이 새끼야! 그거 줍지 마!”

    어디선가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시선을 돌리자, 저 멀리 여왕의 시체 위에 뿌옇게 뜬 영혼 하나가 보인다.

    바로 유다희였다.

    “아, 맞다. 죽으면 10초 정도 파티원에게 유언을 남길 수 있지.”

    나는 손뼉을 짝 쳤다. 그래 이런 기능도 있었다는 걸 깜빡했다.

    “너…너……너 대체 뭐 하는 새끼야!?”

    유다희는 내 플레이를 남김없이 지켜본 최후의 1인이다.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

    나는 대답 없이 그저 윙크를 한번 해 보였을 뿐이다.

    그러자 그녀는 욕을 했다.

    “너 이 개XX XX 확 그냥 XXXXXX XX XXXX아!”

    어우, 못 들어 주겠네.

    한때 그토록 순하고 여려 보였던 그녀가 이렇게 살벌한 욕을 하다니. 없던 정도 더 떨어진다.

    “너 진짜 뭐하는 새끼냐고!?”

    유다희는 나를 향해 바락바락 악을 썼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막 던전 클리어 기록에 이름을 남기려던 참이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나는 수락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유다희에게 하는 대답 겸 해서, 짤막하게 내 이름을 입력했다.

    “고인 물.”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