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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18화 (18/1,000)
  • 18화 이름 없는 여왕 레이드 (2)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알려진 최강의 보스 몬스터.

    <이름 없는 여왕> -등급: B / 특성: 이심전심, 반전, 백전노장, 언데드.

    -크기: 3m.

    -아주 먼 옛날 존재했던 고대국가의 마지막 여왕.

    그녀가 다스리던 국가는 전 대륙을 호령할 정도로 크게 번창했었지만, 어느 날 단 하루 만에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는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망국(亡國), 그녀의 한은 앞으로 천 년은 더 푸르리라.

    이름 없는 여왕이 비틀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잘려 나간 머리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여자…네 몸을……내게 바치거라…….]

    그와 동시에.

    “꺄아악!?”

    유다희는 비명을 질렀다.

    시야가 붉게 물든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릉-

    유다희는 바닥에 떨어진 이름 없는 여왕의 창을 집어 들었다.

    동시에.

    번쩍-

    유다희의 두 눈에서 시뻘건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호호호호! 쓰레기 같은 남자들아. 물러나라!]

    유다희는 전혀 다른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울상이 된 표정을 보아하니 아직 의식은 있는 모양.

    하지만 멋대로 움직이는 몸을 전혀 통제할 수 없는 듯하다.

    그리고.

    유다희의 몸을 차지한 이름 없는 여왕의 상태창이 서서히 변경되기 시작했다.

    <이름을 되찾은 여왕> -등급: B+ / 특성: 이심전심, 반전, 백전노장, 언데드.

    -크기: 3m.

    -이름 없는 여왕은 그동안 깊은 지하 던전에 봉인된 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도굴꾼 여자의 몸을 빼앗아 더욱 더 강하게 진화했다.

    새 몸과 이름이 생겼으니 그녀는 망국의 설움을 풀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이름 없는 여왕이 낮은 HP와 다소 부족한 스테이터스를 가지고 있음에도 난이도 높은 보스 몬스터로 꼽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심전심’ 특성!

    사망하게 되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여자 플레이어의 몸을 빼앗아 더욱 상위 단계의 몬스터도 진화하는 특성 때문이다.

    -띠링!

    <히든 퀘스트 발견!>

    처음 보는 퀘스트 창이 모두의 눈앞에 떠올랐다.

    유창과 유다희 모두 히든 퀘스트를 받았다.

    하지만 그 퀘스트의 내용은 서로 다른 것이었다.

    <유창ver.>

    <지금까지 생사고락을 함께 해 왔던 파티원의 몸에 보스 몬스터의 영혼이 빙의했습니다. 결단이 필요할 때입니다>

    -이름을 되찾은 여왕 ‘유다희’ 처치 0/1

    -보상 / ???

    -패널티 / 경험치 감소, 획득 골드 감소, 접속불가 1일.

    <유다희ver.>

    <종래의 인연은 잊으십시오. 이제 당신은 이 던전의 주인입니다>

    -침입자 처치 0/2

    -보상 / ???

    -패널티 / 경험치 대폭 감소, 획득 골드 대폭 감소, 접속불가 7일.

    유다희와 유창. 그들은 이제야 던전 입장 조건을 떠올렸다.

    2인 이상의 파티원이 있어야 할 것.

    그리고 그 중 여자 캐릭터가 한 명 이상 있어야 할 것.

    왜 그런 괴상한 입장 조건이 붙어있나 했거늘…….

    “빌어먹을, 뭐 이런 미친 몬스터가 다 있어?”

    유창은 황당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일단 누나가 죽었을 경우 사망 패널티가 너무 크다.

    접속불가 일주일이면 거의 게임 접으라는 소리나 똑같다. 파이오니아를 노리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는 정말 시간이 금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창이 유다희를 죽일 수 있느냐. 그건 또 아니었다.

    ‘이름 없는 여왕’이 진화한 ‘이름을 되찾은 여왕’.

    등급이 무려 B에서 B+로 올랐다. B+급 몬스터는 고위 랭커인 유창조차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윽고.

    이름을 되찾은 여왕의 입이 열렸다.

    [나는 용과 악마의 전쟁에 휘말려 멸망한 고대국가 로디지아의 마지막 여왕. 이제부터 로디지아의 부활을 알린다, 미개한 수컷들아!]

    로디지아는 여성들로만 이루어져 있던 신화 속의 고대국가, 이름을 되찾은 여왕은 남자들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증오와 살기가 향한 대상은 오로지 유창 하나였다.

    콰쾅!

    이름을 되찾은 여왕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들었다.

    B+급 몬스터는 B급 몬스터 열 마리가 모여도 상대하기 어렵다.

    유창이 당해 낼 수 있을 리가 없는 일이다.

    퍼억-

    이름을 되찾은 여왕이 휘두른 창, 유창의 방패가 달고나처럼 파삭 깨져 버렸다.

    “큭!? 누나! 몸 좀 컨트롤 해 봐!”

    유창은 방패를 버리며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유다희는 억울한 표정으로 입만 뻐끔거릴 뿐이다.

    아마 채팅금지 상태겠지.

    콰쾅!

    이름을 되찾은 여왕, 아니 유다희가 또다시 창을 들고 공격해 온다.

    쩌저저저적-

    창끝에서 뻗어 나온 뇌전이 사방팔방을 온통 찢어발겨 놓았다. 땅이고 벽이고 허공이고 모조리 찢겨 나갔다.

    유창의 바스타드 소드 역시도.

    콰쾅!

    유창은 숯덩이가 된 채로 바닥에 데굴데굴 굴렀다. 높은 싱크로율 설정 탓에 느껴지는 격심한 고통!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큰 고통은…….

    “으악! 내 아이템!”

    유창은 울상을 지은 채 박살난 방패와 칼을 내려다보았다.

    대장간으로 가면 수리할 수는 있겠지만 새로 사는 것만큼의 수리비용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최대 내구도도 일전에 비해 감소할 것이고.

    마치 중고차 같지 않은가!

    이 칼과 방패를 합친 가격도 실제로 그만치는 될 게다.

    “젠장! 그래! 어디 한번 붙어 보자!”

    유창은 허리춤에서 다시 한번 칼을 빼 들었다.

    어차피 딱 한번 오는 뇌전 공격이 지나갔으니 이제는 패턴만 잘 숙지하면 어찌어찌 상대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명백히 유창의 오산이었다.

    B+급 몬스터는 아직까지 공식홈페이지에 목격했다는 잡글 하나 없을 정도로 귀하고 또 강한 존재.

    B급 몬스터와 궤를 같이할 리가 없다.

    쿵-

    이름을 되찾은 여왕이 창을 들고 육탄전을 벌여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번쩍-

    창끝에서 또다시 뇌전이 빗발친다.

    “어억!?”

    유창은 기겁했다.

    이름을 되찾은 여왕은 이름 없는 여왕 시절과 달리, HP 상태와 상관없이 반전 특성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또한 딱 한번만 쓸 수 있었던 뇌전 공격을 몇 번이고 펑펑 쏟아 내기 시작한 것이다.

    빠지지지직!

    창끝에서 뻗어나온 번개 줄기가 마치 수만 마리의 실뱀처럼 폭사되었다. 그것은 온 던전을 삼켜 버릴 기세로 뻗어나갔다.

    조각상, 항아리, 벽, 횃불. 가리지 않고 죄다 파괴된다.

    번개가 지나간 곳에는 검지손가락 깊이의 홈이 파이며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당연하게도, 유창은 이 공격을 피해 내지 못했다.

    파삭!

    번개에 맞은 그의 몸이 수십 등분으로 토막나 흩어졌다.

    땡그랑- 땡그랑-

    죽으면 자동으로 떨어지는 아이템들이 유창의 인벤토리에서 빠져나온다.

    랭킹 30위권 안에 드는 랭커인 그는 순식간에 연탄구이 토막이 되어 널브러졌다.

    B+급 몬스터의 힘은 그만큼이나 압도적인 것이었다.

    ‘창아…….’

    유다희는 그 광경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기가 사냥당하는 것보다는 이게 차라리 나았다. 무엇보다 자기는 동생에 비해 사망 패널티도 더 크지 않은가?

    그리고 침입자를 격퇴했으니 나름의 보상도 주어질 것이다. 곧 이 몬스터의 몸에서도 튕겨나갈테니 그 뒤에 동생을 죽인 보상이 무엇인지 확인해 보면 되겠지.

    한데?

    <유다희ver.>

    -종래의 퀘스트는 잊으십시오. 이제 당신은 이 던전의 주인입니다.

    -침입자 처치 1/2

    -보상 / ???

    -패널티 / 경험치 대폭 감소, 획득 골드 대폭 감소, 접속불가 7일.

    보상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

    -침입자 처치 1/2

    그렇다. 레이드는 아직 안 끝났다!

    ‘아, 맞다! 그 변태 놈!?’

    유다희의 머릿속에 퍼뜩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바로 그 순간.

    퍼-억!

    유다희는 자신의 등이 따끔 아려 오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홱 돌리자.

    “아, 실례합니다.”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알몸의 사내가 하나.

    바로 나다.

    *       *       *

    나는 항아리에서 고개만 빼꼼 내민 채 유창과 유다희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고인 물 특) 재미없고 쓸데없는 싸움은 피함.”

    나는 굳이 뺄 필요 없는 땀은 아끼자는 주의이다.

    대신 나는 심심풀이 삼아 셀프 영상을 찍고 있었다.

    유다희의 저 억울한 표정이 킬링 포인트.

    영상을 녹화하는 동안 나는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이름 없는 여왕은 B급 몬스터이지만 어지간한 A급 몬스터만큼이나 상대하기 까다롭다.

    왜냐하면 어떤 레이드가 가든 간에 여자 캐릭터 한 명을 무조건 희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훗날 고위급 랭커들은 이름 없는 여왕을 잡으러 가기 전에 일부러 제물로 바칠 여자 캐릭터 한 명을 섭외해서 간다.

    경험치와 골드가 대폭 깎이고 접속불가 기간도 일주일이나 되다 보니 제물로 바쳐질 여자 캐릭터를 모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때문에 그 이후 이름 없는 여왕 레이드에 제물 역할로 참가하는 여자 캐릭터는 ‘심청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최초의 효녀 심청이 된 것을 축하해, 유다희 씨.’

    나는 항아리에 앉은 채 녹화 화면 속에 담긴 유다희의 모습을 감상했다.

    유다희. 미래에는 게임 방송 BJ ‘YOUdie’로 활동하게 될 인물.

    저 울먹이는 표정, 육감적인 몸매, 잘 뻗어나간 비율.

    저 외모에 혹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허송세월을 보냈던가?

    그런 유다희가 지금 자기 동생을 죽이고 있는 모습을 보자 속이 다 시원하다.

    퍼엉-

    나를 그토록 괴롭히던 사채업자 놈, 유창이 결국 숯덩이가 된 채 로그아웃되었다.

    유다희는 울상을 지은 채 그저 입술만 뻐끔거릴 뿐이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나는 항아리에서 나왔다. 유일하게 내가 들어가 있던 항아리만 뇌전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었다.

    B+등급.

    현 시점 최강 몬스터인 ‘이름을 되찾은 여왕’

    본격적인 레이드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아마 현 시점에서는 그 누구도 엄두를 낼 수 없는 레이드가 될 것이다.

    “엇-차.”

    나는 깎단을 손에 들고 일어났다.

    하지만.

    나는 미처 깜빡하고 있었다.

    아까 심심풀이 삼아 찍던 영상 녹화가 아직까지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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