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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16화 (16/1,000)
  • 16화 사막 낚시 (2)

    <샌드웜> -등급: A+ / 특성: 벌레, 땅, 가뭄, 앙버팀, 착굴(鑿掘), 지진

    -서식지: 가혹한 사막 전 구역, 어비스 터미널 ‘칠흑 승강장’ A-51 구역

    -크기: 50m.

    -신화의 끝자락 말석에 표기되어 있는 이 거대한 괴물은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사막의 유목민들만큼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수백 마리의 낙타를 한꺼번에 집어삼키곤 했던 이 모래 속의 악몽을.

    거대한 입. 쭈글쭈글한 가죽.

    샌드웜은 커다란 입을 가진 지렁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지렁이와 다른 점이 있다면 입속에 장검의 칼날 같은 이빨들이 가득 나 고속으로 회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죽은 너무나도 두꺼워 어지간한 물리, 마법 데미지는 박히지도 않는다.

    게다가 몸의 표면에서는 암석이나 모래를 질척질척하게 녹이는 용해액마저 분비되고 있어서 접근전을 아예 차단하고 있었다.

    -샌드웜

    HP: 9,250,000/9,250,000

    A+등급의 몬스터 중에서도 피지컬 최상위권에 있는 이 거대한 몬스터는 당연히 혼자서 잡으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최소한 100명 이상의 파티가 되어야 이 몬스터를 공략 가능하다

    게임 출시 후 약 5년이 지났을 때, 이 녀석은 정말 우연히 한 여행자에 의해 발견된다.

    낙타를 괴롭히는 것을 좋아하던 플레이어 하나가 별생각 없이 낙타를 학대하고 죽이는 순간, 아무도 사냥할 수 없는 이 거대 괴물이 정말 우연한 기회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당시 갑작스럽게 등장했던 이 샌드웜 때문에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죽어 나갔다.

    난다긴다하는 랭커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몇 번을 공략한 끝에 겨우 잡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 사막 맵은 뉴비들에게 있어 절대 들어가면 안 되는 곳으로 손꼽힐 정도였었다.

    [크-워어어어어억!]

    무시무시한 포효가 천지를 진동시킨다. 신화 속에나 등장할 법한 거대 괴수가 나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와, 여전히 대단하네. A+급 몬스터부터는 개인이 상대할 수 없는 영역이라더니.”

    나는 탄성을 감추지 못했다.

    ……이건 절대 못 잡겠지?

    아무리 S급 무기인 깎단이 있다고 해도, 일단 조금이라도 데미지를 먹일 수 있어야 사냥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저 샌드웜에게 1의 데미지도 입힐 수 없었다.

    사방팔방으로 날아다니는 바위와 용해액 때문이다.

    저것은 패턴도 없었기에 한 방울이라도 몸에 닿으면 바로 즉사다.

    “튀는 게 상책이지.”

    나는 잽싸게 몸을 돌려 낙타의 시체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한번 모습을 드러낸 샌드웜은 전투가 벌어지지 않을 경우 몇 분 동안 계속 돌아다니다가 다시 지하 깊숙한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시간 동안이면 충분하다.

    샌드웜은 무시무시한 괴성을 내지르며 나를 추격해 왔다.

    콰쾅!

    몇 개의 모래구릉이 무너져 내린다. ‘지진’ 특성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가 으레 그렇듯, 샌드웜은 주변의 지형을 완전히 초토화시켜 놓고 있었다.

    모니터로는 결코 체험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압박감과 스릴이 심장을 옥죄어 온다.

    나는 죽을 힘을 다해 앞으로 내달렸다.

    목적지는 어느덧 눈앞에 보인다.

    <잊혀진 고대문명의 유적> / B

    지상 위에 세워진 거대한 피라미드. 여자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지하 던전.

    나는 온 힘을 다해 달려 이 피라미드의 벽을 뛰어 올라갔다.

    이윽고.

    콰-쾅!

    아래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유적이 통째로 무너지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큰 지진.

    내 뒤를 바짝 따라오던 샌드웜이 이 지하던전에 몸통박치기를 하게 된 것이다!

    쿠르릉!

    땅이 뒤흔들렸고 이내, 사막은 정적에 휘감겼다.

    샌드웜이 죽었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좋았어!”

    나는 잠잠해진 지면 위로 폴짝 뛰어내렸다.

    이제 입구가 생겼을 것이다.

    *       *       *

    나는 샌드웜이 맨 처음 등장했던 땅굴로 되돌아갔다.

    낙타의 시체 앞에 뻥 뚫려 있는 거대한 싱크홀. 그리로 들어가 샌드웜이 이동한 땅굴을 횡단했다.

    땅굴은 길고 구불구불했다. 벽면은 샌드웜의 체액에 의해 질척하게 녹아내려 있었지만 금세 다시 딱딱하게 굳어 걷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다 왔네.”

    길고 구불구불한 땅굴이 끝나자, 갑자기 텅 빈 지하공간이 나타났다.

    그곳이 바로 ‘잊혀진 고대문명의 유적’의 내부! 나는 지금 지하던전의 중간 스테이지로 불법 침입한 것이다.

    “샌드웜의 설정 덕분에 살았네.”

    게임 설정에 의하면 샌드웜은 지하종에 속하는 몇 안 되는 몬스터 중 하나이다.

    이 지하종 몬스터들은 땅 밑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는데 그것은 바다나 호수, 던전 역시도 마찬가지.

    그래서 샌드웜은 필드의 조형물이나 지하 던전 같은 것도 퍽퍽 파괴하고 지나가곤 한다.

    원래 습성대로라면 던전이 있는 먼 곳까지는 나오지 않지만, 일단 한번 먹이를 감지하면 어디든 따라오는 것이 녀석이다. 일전에 젖거미의 경우도 그랬지 않던가?

    2인 이상의 파티원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상에 있는 던전 입구에서만 통하는 법칙.

    나는 샌드웜이 던전 중앙에 뚫어 놓은 길을 여유롭게 뒤따라갔다.

    이내 던전 내부에 들어오자, 피라미드의 내부가 훤히 드러냈다.

    거대한 광장, 횃불들이 일렁거리고 있다. 주변은 온통 황토와 금 장식물로 가득했다.

    특이점이 있다면 건너편 벽에 내가 들어온 곳과 같이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다는 점.

    “샌드웜은 저리로 나간 모양이군.”

    던전에 난입한 김에 보스라도 좀 해치워 주고 나갔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샌드웜은 지하던전에 떨어진 즉시 반대편 벽을 뚫고 나가 버린 모양이다.

    “거 들어왔으면 같이 밥도 묵고, 싸우나도 하고, 다 하고 갈 일이지. 참 붙임성 없네.”

    나는 가볍게 투덜거리며 던전 내부로 들어왔다.

    그러자, 으스스한 알림음이 떴다.

    -띠링

    <잊혀진 고대문명의 유적 지하 6층에 입장하셨습니다.>

    <죽은 자들의 광기가 활성화됩니다.>

    언데드 몬스터들 특유의 개떼같은 물량.

    그것을 알리는 경고음이다.

    하지만 딱히 6층을 클리어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었다.

    다각- 다가각-

    벽에 죽 세워져 있던 관들은 전부 박살이 난 채 바닥에 흩어져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수많은 미라들 역시도.

    <고대문명의 생매장된 전사> -등급: C / 특성: 언데드, 백전노장, 하수인

    -서식지: 고대문명의 유적지

    -크기: 2m.

    -지금은 잊혀진 고대문명의 근위대.

    사후세계에서도 여왕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생매장되었다.

    지금은 그때의 결정을 꽤나 후회하고 있는 듯하다.

    수없이 많은 미라들이 손에 칼을 쥔 채 버둥거리고 있었다.

    하나같이 팔다리가 부러져 있는 상태.

    하지만 그것도 샌드웜의 습격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것들의 이야기다. 대부분은 뼛조각 하나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 버렸으니까.

    푹- 푹- 푹- 푹-

    나는 미이라들을 가볍게 죽이며 앞으로 전진했다.

    S급 몬스터를 잡아 확 올라간 레벨은 C급 몬스터 몇 마리를 잡는 것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막 지하 7층, 보스 방이 있는 최후의 문 앞에 왔을 때.

    “어라?”

    온갖 함정들이 가득한 던전의 광장 너머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고개가 절로 번쩍 들린다.

    저 앞에 낯익은 얼굴이 둘 보인다.

    유다희와 유창!

    그들이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