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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15화 (15/1,000)
  • 15화 사막 낚시 (1)

    “접속.”

    [음성 인식으로 보안 해제]

    .

    .

    [동기화 중입니다……]

    .

    .

    [동기화 완료!]

    -이어진

    LV: 32

    호칭: 평범한 모험가(특전 없음)

    HP: 320/320

    <아이템>

    -깎아내는 단말마 / 한손무기/ S / (능지처참)

    -아카오니의 발가죽 / 신발 / C+ / (자연재해) (융합)

    .

    나는 상태창을 점검했다.

    튜토리얼에서 S급 몬스터를 잡은 이후 꽤나 많은 보스 몬스터를 거꾸러트렸지만, 레벨은 딱히 오르지 않았다.

    “에이, 상태창 같은 거 자꾸 껐다 켰다 해서 뭐 해. 분량만 잡아먹고.”

    나는 손을 휘저어 시야를 꽉 채우고 있는 상태창을 꺼 버렸다. 앞으로 어지간하면 켜지 말아야지.

    “하지만 아이템 창은 자주 켤 거란다.”

    나는 캐릭터 상태창 대신 아이템 창을 열고는 얼마 전에 얻은 아이템을 감정했다.

    -<고대 문명의 청동 방패> 방어구 / C+

    아주 옛날 방식으로 만들어진 고대의 방패. 너무 오래되어 방어력은 거의 없다.

    반들반들하여 사용자의 얼굴이 비춰 보인다.

    -방어력 +10

    -? (특수)

    꽤나 큼지막한 원형의 방패.

    청동으로 만들어져 있어 푸르스름한 빛을 내고 있다.

    겉면에는 커다란 괴수에게 당한 것처럼 다섯 개의 손톱 자국이 나 있었다.

    C+급 아이템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구린 능력치, 누군가 이것을 얻었다면 똥템이라며 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아이템에는 숨겨진 특수 옵션이 있다. 그 때문에 나는 청동 골렘을 잡고 나온 이 아이템을 버리지 않고 인벤토리에 고이 모셔 둔 것이고.

    “이야, 골렘의 눈알에서 나온 거라 그런가 되게 반질거리네.”

    골렘의 외눈에서 눈동자 역할을 하던 방패답게, 이것은 굉장히 반들반들했다.

    특히나 방패 안쪽은 마치 거울과도 같아서 내 얼굴이 그대로 비칠 정도였다.

    손으로 쓸어 보자 방패 겉면에 커다랗게 난 상처들이 보인다.

    손톱자국. 무언가의.

    “이것들은 용이 낸 것이지.”

    설정 상, 이 방패는 용의 공격을 한 번 막아 냈던 방패다.

    그러니 한때는 꽤나 고위 등급의 아이템이었던 셈. 물론 지금은 그냥 거울처럼 쓰는 용도 외에는 아무런 쓸모도 없다.

    “용이라…….”

    나는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용족.

    이곳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월드를 지배하고 있는 두 개의 지배종 중 하나.

    곧 벌어질 용족과 악마족의 거대한 전투는 곧 이 월드 전체를 삼켜 버릴 것이다.

    그리고 대격변, 전에 없던 엄청난 규모의 업데이트가 이루어지겠지.

    원래대로라면 약 5년 쯤 뒤의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 대격변을 앞으로 확 당겨 놓을 생각이다.

    그때까지 빨리 레벨을 올리고 아이템을 맞춰 놔야 한다.

    청동 방패에 난 용의 손톱자국을 보자 자연스럽게 마음이 급해졌다.

    “…….”

    나는 고개를 돌려 저 사막의 외곽, 모래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초승달처럼 떠 있는 사구들 저편에 작은 마을 하나가 보인다.

    모래바람 너머로 하늘에 닿을 정도로 큰 선인장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그 선인장에는 커다란 대롱 같은 것들이 박혀 있었는데 거기서 물이 졸졸졸 새어나와 시내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물길의 주변으로 천막과 오두막들이 옹기종기 모여 작은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사막마을 케투스. 드디어 찾았네.”

    한시름 덜었다. 나는 얼굴에 붙은 모래들을 털어 내며 마을로 향했다.

    *       *       *

    마을의 입구는 삭막했다.

    불타 버린 고목들이 앙상하게 늘어져 있는 모습은 원래 이곳이 사막이 아니라 울창한 숲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마을에 들어서자, 입구에 서 있던 노인 하나가 슬쩍 다가와 말을 건다.

    [반갑네. 나는 이 마을 촌장이야. 괜찮다면 이 마을에 얽힌 비화를 한번 들어볼 텐가? 이곳 사막마을 케투스는 먼 옛날 용과 악마가 벌인 대전쟁에 휘말려 멸망한 고대왕국 ‘로디지아’의 수도였다네. 지금도 모래바람이 부는 날이면 옛 왕성의 여왕님이 절규하시는 소리가 바람에 섞여…….]

    [SKIP]

    이런 자세한 설정 같은 것은 필요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빠른 레벨업과 값비싼 아이템일 뿐.

    나는 촌장의 설명을 가뿐하게 무시하고는 앞으로 스쳐 지나갔다.

    [무기 사세요.]

    [물약은 필요 없으세요?]

    [신관에게 축복 받아가세요.]

    아직 모험가들이 도달하지 못해 텅 비어 있는 마을에서는 NPC들의 대사만이 공허하게 울려 퍼진다.

    그중에서도 내가 향한 곳은 낙타를 파는 상점이었다.

    [여러 종류의 낙타가 있습니다. 골라 보세요.]

    NPC 상인의 말에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제일 저렴한 놈으로.”

    [가장 분양가가 저렴한 낙타는 한 마리에 500골드입니다.]

    상인은 사람 좋은 미소를 띤 채 내게 낙타 한 마리를 내주었다.

    낙타는 상당히 현실적으로 구현되어 있었다.

    타기 좋게 온순하게 길들여져 있어서 사막을 이동하기 위한 수단으로는 제격이다.

    다그닥- 다그닥-

    나는 낙타를 탄 채 마을을 가로질렀다.

    !

    !

    !

    !

    곳곳에 뜬 느낌표들. 수많은 퀘스트 표시들이 나를 불렀지만 전부 무시했다.

    몇몇 종류의 히든 퀘스트가 아니면 대부분 보상이 구리거나 쓸모없는 것들이다.

    나는 낙타를 몰고 곧장 마을을 가로질렀다.

    한참 동안 모래언덕을 타 넘자, 이내 저 멀리 커다란 던전이 보이기 시작했다.

    <잊혀진 고대문명의 유적> / B

    한 눈에 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 피라미드.

    평균 B급 몬스터들이 출몰하는 던전이다.

    지금 내가 목표로 하는 곳이기도 했다.

    “저기를 공략해야 하는데…….”

    나는 피라미드 던전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저 거대한 던전은 사실 일부에 불과하다.

    마치 유빙처럼, 지상 위로 보이는 부분은 얼마 되지 않고, 진짜는 지하에 숨겨져 있다.

    어마어마한 수의 몬스터들이 지하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사력을 다한다면 솔로 클리어가 불가능할 정도의 난이도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망설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잊혀진 고대문명의 유적> / B

    ⤷2인 이상의 파티를 맺은 이들만 입장 가능합니다.

    ⤷파티원 중 여자 캐릭터가 1명 이상 있어야만 입장 가능합니다.

    아주 쓸데없고 까다로운 입장 조건이 붙어 있다.

    2인 이상의 파티, 심지어 여자가 하나는 무조건 끼어 있어야 한다.

    솔로 플레잉이 아예 불가능하게끔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초보자들이 봤다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제한을 걸어 뒀냐고 불평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직 나만은 알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 입장조건이 정말로 무시무시한 함정이라는 것을.

    “흐음…….”

    나는 고개를 돌려 던전 근처를 돌아보았다.

    특이점들이 몇 보인다.

    던전 입구 근처에 거대 전갈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다는 것. 그리고 물을 저장하고 있는 선인장 몇 개가 뽑혀 있다는 것.

    ‘누군가 지나갔군.’

    나는 고개를 돌려 피라미드 던전을 바라보았다.

    지금 누군가 저 던전 안에 들어가 있다. 나는 지금 그들이 유다희 파티일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이름 없는 여왕’

    잊혀진 고대문명의 유적을 지배하는 보스 몬스터.

    부동산 아줌마의 차에서 엿들었을 때, 아마 유다희와 유창은 이곳을 공략할 계획을 토의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것들에게 최초 클리어를 빼앗길 순 없지.”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낙타를 몰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증오스러운 유다희, 유창 남매는 던전을 클리어해나가고 있을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나도 저 던전에 뛰어들어야 한다.

    하지만 2인 이상의 파티, 그것도 여성 파티원이 없다면 저 피라미드의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솔로 플레이만 하는 나로서는 꽤나 난감한 상황.

    “그래도 다 방법은 있는 법.”

    나는 빙긋 웃고는 낙타를 몰아 던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나왔다.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딨겠나? 다 된다.

    솔로 플레이가 불가능한 던전에서 솔로 플레이를 하는 법.

    나는 지금부터 꼼수를 쓰려 한다.

    “어디 보자……‘그것’이 처음 젠 되는 곳이 가혹한 사막 B구역 (1). 놈의 평상시 이동 속도를 시속 40킬로미터로 잡으면 하루 뒤에는 A구역 (4), 그 다음에는 A구역 (3)……서비스 시작한 날짜에 대입해서 계산해 보면 지금쯤…….”

    눈을 감고 복잡한 계산을 마쳤다.

    이상하게 구구단은 가끔 틀려도 이런 류의 계산은 기가 막히게 잘 된다.

    게임에 관련된 거라면 뭐든지 잘 계산되고 잘 외워지는 것이다.

    “수학을 이렇게 했으면 진즉에 서울대 갔겠네.”

    나는 씁쓸하게 투덜거리며 낙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발로 바닥을 한번 쿵쿵 굴렀다.

    “좋아. 계산이 맞다면 분명 여기쯤일 거야.”

    나는 아무것도 없는, 완전한 사막 귀퉁이에 섰다.

    그리고.

    썩-

    깎단을 들어 낙타의 목을 베어버렸다.

    낙타가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애초에 이를 위해 데려온 놈이니.

    철썩-

    뜨거운 피가 사막 모래 위에 쫙 끼얹어졌다. 모래가 검붉게 물들어간다.

    나는 모래 아래로 서서히 스며드는 낙타의 피를 보며 중얼거렸다.

    “물어라…물어라…물어라…….”

    몇 분이나 지났을까.

    드드드드드…….

    옅은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발바닥을 간질이는 수준에서 이내 몸 전체를 덜덜 떨리게 만들 정도로 강력해졌다.

    콰콰콰콰콰콱!

    저 멀리서 모래가 요란하게 튀어 오른다. 거대한 땅봉우리가 위로 툭툭 불거져 나오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실로 맹렬한 속도가 아닐 수 없다!

    나는 그제야 감았던 눈을 떴다.

    “물었다!”

    그와 동시에.

    콰-쾅!

    낙타 시체가 땅속으로 쑥 빨려 들어갔다.

    우직- 우직- 우직-

    살점과 뼈가 으깨지는 소리가 리얼하게 들려온다.

    이내 땅 밑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솟구쳐 올랐다.

    퍼퍼펑!

    요동치는 대지, 사방으로 뿜어지는 모래.

    지금까지 봐 온 몬스터들 중 가장 거대한 것이 그 흉측한 모습을 드러낸다.

    <샌드웜> -등급: A+

    15년 전 본캐로 와도 못 잡을 몬스터.

    진짜 괴물 보스의 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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