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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13화 (13/1,000)

13화 고대문명의 수문장 (1)

-띠링!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당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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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일상을 보내고 난 뒤. 나는 바로 게임으로 복귀했다.

휘이잉-

삭막한 바람 한 줄기가 불어온다. 나는 생각했다.

‘이름 없는 여왕이라…….’

알고 있다. 초보자 존을 둘러싸고 있는 저 황량한 협곡을 건너면 그 뒤에 나오는 광활한 사막.

그 사막의 외곽에는 발견하기 쉽지 않은 피라미드형 던전이 하나 있었다.

그 던전의 최종 보스가 바로 ‘이름 없는 여왕’이다.

이름 없는 여왕은 꽤나 매력적인 보스지만, 그 매력이 본격적으로 각광받는 것은 앞으로 2년 뒤.

앞으로 2년, 정확히 730일 뒤.

이름 없는 여왕은 ‘모종의 이유’로 고렙들의 필수 사냥 몬스터가 된다.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의 이름 없는 여왕은 그저 매우 까다로운 공략 조건을 가지고 있는 보스 몬스터에 불과할 것이다.

‘유다희, 그 여자가 이 사실을 벌써 알고 있을 리는 절대 없을 것이고. 그냥 우연히 사막을 뒤지다가 발견한 건가?’

나는 턱을 짚으며 생각했다.

유다희와 그 동생인 유창이 이름 없는 여왕을 잡으러 간다 이거지?

그렇다면 그걸 그냥 내버려 줄 수야 있나.

나는 이번 생에서 그들이 잘 나가게 두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또한. 이름 없는 여왕은 꽤나 중요한 보스.

더 상위의 몬스터를 잡기 위한 열쇠가 되는 보스 몬스터이다.

내가 먼저 공략의 깃발을 꽂아 둘 필요는 있었다.

계획이 정해진 이상 망설일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거침없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휘이이잉-

또다시 삭막한 바람 한 줄기가 불어온다.

내가 발을 디뎌 놓고 있는 곳은 버섯 모양의 거대한 바위들이 모여 있는 황무지.

<무통증 협곡>

다소 특이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오픈필드.

딱히 던전은 아니면서도 맵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몬스터 필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등장하는 몬스터의 종류는…….

“꺄아아악!?”

나는 생각을 정리할 수 없었다.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 하나가 맑은 하늘에 울려 퍼진다.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버섯처럼 생긴 바위의 아래에서 무언가 거대한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오-오오오오!

바닥에서 거대한 몸뚱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의 외형, 하지만 머리가 없고 두 팔의 손바닥이 비정상적으로 크다.

<머드 골렘> -등급: C / 특성: 암석, 자폭, 하수인

-서식지: 전 대륙

-크기: ?m.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움직이는 진흙덩이. 죽여도 경험치 따위는 일절 없다.

다만 아이템 제작에 필요한 재료를 얻을 수 있을지도……?

전신에서 질척거리는 진흙이 뚝뚝 떨어진다.

진흙이 흘러내리는 몸에서는 비오는 날 무덤가의 부엽토 냄새가 났다.

[우오오오오오…]

머드 골렘은 가슴에 난 외눈에서 붉은 빛을 뿌리며 앞으로 어기적 어기적 걸어왔다.

골렘이 향하고 있는 곳에는 세 명의 여자가 서 있었다.

마법사, 검사, 궁수로 이루어져 있는 파티. 그녀들은 난데없이 발밑에서 툭 튀어나온 골렘을 보고 꽤나 놀란 듯싶다.

“파이어 볼!”

마법사인 듯한 여자가 지팡이를 휘둘러 화염구를 던졌다.

[구-오오옥!]

머드 골렘은 불에 휩싸인 채 발버둥 친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저러면 안 되는데…….”

내 걱정대로, 머드 골렘은 전신에 난 불길을 걷으며 또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쿠르르륵!

불에 구워지자, 머드 골렘의 외피는 점점 단단해져 간다.

그러자 세 명의 여자는 자신감을 얻은 모양이다.

“진흙이 구워져서 도자기가 됐군! 데미지 주기는 편하겠어!”

검사로 보이는 여자가 칼을 휘둘렀다.

쨍그랑!

도자기가 된 머드 골렘은 칼에 맞아 전신이 산산조각 났다.

하지만.

콰쾅!

이내, 골렘의 몸 내부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머드 골렘은 죽을 때 10%의 확률로 자폭하는 경우가 있다.

머드 골렘의 질척한 몸은 자폭을 해도 주변에 질척한 진흙을 튀겨놓는 것 말고는 특별한 데미지를 주지 않지만…

화염계열 마법에 당해 몸이 단단해져 있는 상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퍼퍼퍼퍼퍽!

단단하고 날카로운 도자기 파편들이 사방으로 날아 주변을 온통 초토화시켜 놓았다.

콰쾅! 우르릉!

주변의 암석들이 무너져 내린다. 상당한 공격력을 가진 자폭이었다.

사망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인 데미지는 아니었지만, 방어구의 내구도를 대폭 감소시켜 놓기에는 충분한 단말마였다.

자연스럽게. 세 명의 여자는 걸레짝이 된 갑옷을 내려다보며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가볍게 혀를 찼다.

“머드 골렘은 화염계열 마법으로 공격하지 말고 물이나 얼음계열로 공격해야지. 풀이나 바위도 괜찮고.”

하지만 뭐, 이런 공략도 이제 차차 알려질 것이다.

내가 나서서 괜히 남 도와줄 것은 없지. 떨어질 이득도 없는데.

바로 그때.

[구-어어억!]

내 앞에서도 골렘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황토 골렘> -등급: C / 특성: 암석, 자폭, 하수인

-서식지: 전 대륙

-크기: ?m.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움직이는 흙덩이. 죽여도 경험치 따위는 일절 없다.

다만 아이템 제작에 필요한 재료를 얻을 수 있을지도……?

귀찮은 녀석이 나타났다.

이곳 무통증 협곡은 골렘들의 낙원. 설정에 의하면 기억하는 사람 하나 없는 고대문명의 잔재들이 널브러진 곳이다.

이 골렘들은 고대문명의 정수로 통하는 길을 차단하는 수문장들.

따라서 자신의 몸이 파괴되거나 말거나 여행자들의 발목을 붙잡으려고 애쓴다.

지금 내 눈앞에 나타난 이 골렘도 마찬가지다.

왈그락!

황토 골렘은 등장하자마자 돌무더기로 이루어진 손을 뻗어 내 몸을 옥죄였다.

하지만.

미끄덩-

내 몸은 골렘의 손아귀에 닿자마자 위로 쑥 빠져나온다.

[구옥?]

골렘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한 번 손을 뻗어 내 몸을 움켜쥐었다.

미끄덩-

하지만 이번에도 내 몸은 자연적으로 미끄러져 나왔다.

-<해골 달팽이의 정수> / D

해골 달팽이의 점액 1천 방울을 모아 끓인 뒤 핵심 물질만 걸러낸 것이다. (박스 만들어주세요!!!!!!!!!!!!!!!!!!!!!!!)

어떤 것이든 미끄러지게 만드는 물약.

젖거미를 이용해 해골 달팽이 노가다를 마친 나는 그 기름을 내 전신에 발라 뒀던 것이다.

미끄덩- 미끄덩- 미끄덩-

수많은 골렘들이 나타나서 나를 잡으려 했지만, 이 녀석들의 힘으로는 나를 잡을 수 없다.

나는 기름을 발라 번들거리는 알몸으로 힘차게 내달렸다.

[오-오오오!]

내 뒤를 따라오는 수많은 골렘들.

하지만 나는 이 녀석들을 잡을 생각이 전혀 없다.

골렘 따위는 아무리 죽여도 경험치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특정 아이템을 제작해야 하거나 퀘스트 재료를 모아야 할 때 말고는 굳이 잡을 필요가 없는 녀석들, 지금의 나에게는 귀찮기만 한 존재들이다.

그래서 전신에 기름을 발라 뒀다. 상대하기 싫으니까.

미끄덩- 미끄덩- 미끄덩-

골렘들의 손아귀에 잡힐 때마다 그냥 도망쳐 버리니, 자연스럽게 나는 수많은 골렘들을 빠른 시간 내에 스쳐 지날 수 있게 되었다.

어그로는 많이 끌었지만 그만큼 시간이 크게 절약된 것은 이득이다.

쿠구구구구-

수많은 골렘들이 나를 따라 움직이자, 거대한 몬스터 웨이브가 생겨났다.

무통증 협곡 전체가 쿵쿵 뒤흔들릴 정도로 요란한 움직임이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플레이어들은 입을 딱 벌린다.

이 정도 수나 되는 골렘들의 어그로를 끈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복장이 대체 왜 저래?”

“알몸에 기름칠, 거기에 빨간 신발?”

“저거 안 본 눈 삽니다.”

“Fuck! 손에 든 건 뭐야? 송곳? 저걸로 뭘 찌르려고…….”

“으, 변태 같아. 더러워. 일상생활 가능한가?”

“으악 내 눈! 저거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곳곳에서 비난의 소리가 드높다. 특히나 몇몇 여성 유저들은 노골적으로 경멸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남의 시선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디냐.’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냉철한 눈으로 주변을 샅샅이 흩고 있었다.

내 기억에 따르면, 13년쯤 전 어떤 랭커가 다음과 같은 인터뷰를 했다.

‘무통증 협곡의 골렘들을 다들 천덕꾸러기 취급 하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보물 같은 맵이라고 생각해요. 더군다나 그곳에 숨겨져 있는 히든 보스는 필수적으로 잡아야 합니다. 모르고 지나가면 무조건 손해죠.’

그렇다.

지금 내가 향하고 있는 곳.

무통증 협곡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있는 이 폐광에는 필드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히든 보스 몬스터’가 잠자고 있는 것이다.

‘아직 그 누구도 이 녀석을 잡은 적이 없을 것이다.’

원래 미래대로라면 이곳의 히든 보스가 잡히게 되는 것은 앞으로 6개월쯤 뒤.

그리고 그 몬스터가 주는 아이템의 진짜 가치가 밝혀지게 되는 것은 그로부터 2년 뒤이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들을 앞으로 확 땡겨 올 심산이다.

바로 지금으로!

그때.

“이봐요.”

폐광 입구에 막 도착했을 때, 저 뒤에 있는 바위 아래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고개를 돌리자, 아까의 그 여자 세 명이 나를 화난 표정으로 올려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여기까지 따라온 건가?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그녀들 중 리더 격으로 보이는 칼잡이 하나가 내게 물어왔다.

“……?”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아니, 잡지도 못할 골렘들을 그렇게 몰고 다니면 어쩌겠다는 거예요. 골렘들이 뭉쳐 있으니까 사냥도 못 하겠잖아요.”

순간.

나는 그녀의 목소리가 어딘가 낯익다는 생각을 했다.

‘아!’

그래. 생각났다.

한때 ‘미녀 삼총사’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랭커이자 미래의 ‘프로게이머’들.

내 기억이 맞다면 저 셋은 분명 자매일 것이다.

이금비, 이은비, 이동비.

전원이 명문대를 나왔고 나중에 각각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에 붙은 것으로 유명하다.

출중한 외모 때문에 몇 년 뒤에는 게임 잡지 인텔리 게이머 특집 모델도 하게 되지 아마?

하지만.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

고시 붙어서 나한테 고시레 해 줄 것도 아니고.

저들이 나중에 잘 된다고 해서 잘 보일 필요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고시생들은 가서 공부나 할 것이지 왜 게임이나 하고 있어?”

내가 툭 내뱉자, 금은동 자매들의 눈꼬리가 확 치켜져 올라간다.

“뭐!? 너 누구야!? 우리가 고시 공부 예정인 줄 어떻게 알고? 혹시 스토커냐!?”

……아차, 괜한 말을 했나?

내가 말이 없자.

“야! 이리 내려오라고 이 어그로꾼 스토커 자식아!”

“우리 고시 준비하는 거 어떻게 알았냐고!”

“언니들 비켜 봐. 내가 바닥을 무너트릴게!”

그녀들은 격분한 채 날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굳이 금은동 시스터즈가 나서서 내가 있는 곳을 무너트리지 않아도.

쿠드드드드드…….

이변은 알아서 먼저 시작되고 있었다.

“응? 어?”

세 여자가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는 순간.

콰-쾅!

주변에 있던 모든 버섯 바위들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오-오오오오오!]

지면 아래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융기해 오르고 있었다.

동시에, 나와 세 여자들의 귓가에 요란한 경고음이 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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