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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12화 (12/1,000)
  • 12화 진짜 현실 (2)

    유다희.

    그녀를 처음 만났던 것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서 파티 사냥을 할 때였다.

    “오빠, 저 버스 좀 태워 주시면 안 돼요?”

    다소 늦게 게임에 뛰어들어 진도 따라가기가 어렵다고 하던 그녀.

    그 모습이 얼마나 가녀려 보였던가?

    얼굴이면 얼굴, 몸매면 몸매, 머리면 머리, 마음씨면 마음씨. 그녀는 뭐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오빠 소리 한번이면 거대한 몬스터의 목이 잘려 나갔고 훌쩍 소리 한번이면 건너편 길드의 성이 함락되었다.

    퀸.

    그렇다.

    그녀는 금세 게임 속의 여왕이 되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수많은 추종자들 중 하나였다.

    아이템이 필요하다면 아이템을 구해 줬고 퀘스트를 깨야 한다면 퀘스트를 깨 줬다.

    유다희의 레벨이 점점 오를수록, 나는 그녀를 돕는 것이 힘들어져 갔다.

    그녀가 필요로 하는 아이템은 점점 비싸졌으며 그녀가 잡아야 하는 몬스터는 점점 강해졌다.

    나는 그녀의 성장 속도를 완전히 커버할 수 있어야 했기에 더더욱 하드한 플레이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렇게 몇 년 뒤.

    유다희는 게임 BJ로 데뷔했다.

    뛰어난 컨트롤로 PK를 벌이는 BJ.

    장비가 워낙에 넘사벽이었기에 어지간한 랭커들도 그녀를 이길 수 없었다.

    설사 이긴다고 해도, 그 랭커는 유다희를 추종하는 수많은 팬덤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외모 되고, 실력 되고, 아이템 되고.

    유다희의 방송 영향력은 나날이 커져 종국엔 실로 어마어마한 팬덤을 거느리게 되었다.

    너무나도 순조롭게 풀려서 연예인 제안도 엄청나게 받았다.

    그때부터 그녀의 연락은 서서히 뜸해졌다.

    가끔 영상통화를 하면서 내가 마치 애인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져 우쭐대던 나날도 끝이었다.

    나중에는 TV나 대형 포털 사이트의 배너에서 그녀의 얼굴을 더 자주 보게 되었다.

    그럴수록. 나는 그녀의 눈에 들기 위해 더욱 더 애써야 했다.

    작은 성채의 주인이 되었던 것도 포기해 가며, 나는 그녀의 눈길을 끌기 위해 고급 아이템을 두르고 더 크고 강한 몬스터를 잡았다.

    그리고.

    “오빠, 나 공중파 게임 방송 나가는데 그때 들고 있을 칼 하나만 빌려 주라.”

    유다희의 말에 나는 선뜻 아이템을 내주었다.

    그동안 모아 온 모든 돈으로 지른 칼.

    하지만 유다희는 그 칼을 받자마자 PK에 당해 죽었다.

    그리고 그 정체불명의 PK범은 유다희가 떨어트린 내 칼을 가지고 도망쳤다.

    좌절하고 있는 나에게, 유다희는 말했다.

    “오빠. 그러면 우리 돈 한번 빌려 볼래?”

    유다희는 한 신용금고로 나를 데리고 가 대출을 받았다.

    자기 책임도 있고 하니 몇 달 치 이자 정도는 메꿔 준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사채를 썼다.

    그때 내게 돈을 빌려 주었던 대부업자가 바로 유창이었다.

    “어이, 이어진이. 이자는?”

    몇 달 뒤.

    유다희가 이자 지급을 중단했을 때, 나는 유창의 노예가 되었다.

    그리고 그와의 질긴 인연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나는 매크로처럼 사냥을 해 돈을 벌었고 그 모든 것을 이자로 빼앗겨야 했다.

    사냥의 달인이 될수록, 게임 속의 업적이 오를수록, 현실의 나는 비쩍 비쩍 말라갔다.

    그렇게 나의 수 년이 사라졌던 것이다.

    *       *       *

    “……세상에.”

    그리고 지금. 나는 15년 전으로 돌아와 있다.

    미국 유학에서 막 돌아와 게임을 잘 모른다던 유다희.

    그녀의 말은 전부 거짓이었다.

    미국 유학도 가지 않았고 게임은 오픈 베타부터 바로 시작했다.

    그리고 사채업자 유창 놈과는 매우 친밀한 사이인 듯 보인다.

    “게임 BJ해서 나한테 아이템 빌려 주는 애들 것 가로채 볼까?”

    “뭐 어쩌게? 요즘은 게임 상에서 아이템 강탈하는 것도 사기죄에 걸려.”

    “콘텐츠를 PK로 하면 되지. 죽어서 떨궜다는데 뭐 어쩔 거야?”

    “아, 그럼 누나가 아이템 빌리면 내가 가서 누나 죽이고 그거 수거하면 되는 건가?”

    “빙고!”

    유창과 유다희는 아무래도 남매 사이인 듯하다.

    그들은 꽤나 죽이 잘 맞는 성격이었다.

    나에게 다가와 아이템을 빌려갔던 유다희.

    그녀의 접근은 모두 계획된 것이었다.

    심지어 아이템을 잃어버린 뒤로 사채에 휘말려들었던 것까지 모두 그녀의 머리에서 나온 흉계였던 것이다!

    저벅- 저벅- 저벅-

    유창과 유다희를 뒤를 따라 건장한 체격의 덩치들이 걸어 나온다.

    저 녀석들……전부 다 아는 얼굴이다. 내가 이자를 미납할 낌새가 보이면 귀신같이 내 반지하 원룸으로 찾아와 으름장을 놓던 놈들.

    15년 전이라 아직 앳된 얼굴들이긴 하지만 워낙에 삭은 얼굴들이라서 똑똑히 기억난다.

    그렇다.

    전부 한 패거리였던 것이다.

    “어머. 안녕하세요 어린 사장님!”

    부동산 아줌마가 유다희 유창 남매를 향해 인사를 했다.

    “…….”

    유다희는 새침한 표정으로 부동산 아줌마의 인사를 씹었다.

    저, 저, 싸가지 저거. 내가 알던 그 유다희가 맞나 싶다.

    한편.

    유창은 비교적 넉살 좋은 표정으로 부동산 아줌마의 인사를 받았다.

    “어이구. 오랜만이에요 아줌마.”

    “호호호. 요즘 장사는 잘 되시죠?”

    “거 월세 안 밀릴 만치는 되지요.”

    유창은 나이답지 않은 노련함으로 낄낄 웃는다.

    그러자, 부동산 아줌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실내낚시터 간판은 아직 안 치우셨네요?”

    “으응? 응 뭐. 이제 치워야죠.”

    “목이 좀 안 좋아서. 건물 입구 인테리어라도 좀 새로 하고 그러면 좋을 텐데. 사람들 많이 와요?”

    부동산 아줌마의 걱정에 유창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손사래 쳤다.

    “어차피 다 아는 사람 장사라서 상관없어요. 이거 봐. 사람 많잖아.”

    유창이 손짓하자 지하계단 아래에 서 있던 사내들이 우르르 걸어나온다.

    그 모습을 본 부동산 아줌마는 억지웃음을 지었다.

    “아, 아휴. 사람 많네. 요즘 캡슐방이 인기긴 인기인가 봐.”

    그러자. 유창이 미간을 확 찌푸렸다.

    “아줌마. 어디 가서 여기 캡슐방 있다고 떠드시면 안 돼요?”

    순간 주변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뜨거운 여름 기운이 순간 싹 가셨다.

    “호, 호호호. 어머 이거 내 정신 좀 봐. 비밀이랬지? 알겠어요. 아휴, 보통은 소문 좀 내 달라고 아우성인데, 우리 유 사장님은 정말 특이하시다니까? 젊은 감성인가?”

    부동산 아줌마는 애써 웃었다. 하지만 여전히 잘 이해가 안 간다는 눈치다.

    PC방이든 캡슐방이든 사람이 모여야 장사가 될 텐데. 왜 입소문을 저토록 경계하는 것일까?

    안에서 대체 뭘 하길래?

    하지만.

    이내 부동산 아줌마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긴. 캡슐방에서 할 게 게임 말고 뭐가 있겠어.

    “그럼, 가요 아줌마.”

    유창은 바닥에 침을 한번 탁 뱉은 뒤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유다희와 수많은 덩치 사내들이 그 뒤를 따라간다.

    “누나, 이번에 뭐 잡게 그래서?”

    “‘이름 없는 여왕’인가? 그 왜 사막에 있는 던전 있잖아. 그거 한번 공략해 보자.”

    “좋지. 주말에 가자고. 지금 우리보다 클리어 속도 빠른 놈 없지?”

    “그럼~ 우리가 단독 선두야.”

    유창과 유다희는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낄낄거렸다.

    그들의 기척이 저 멀리 골목의 코너를 돌아 사라졌다.

    “...”

    나는 멀리 사라지는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두고 보자. 이번에는 다를 거다.’

    상대방의 존재를 먼저 눈치 채고 대강의 속사정을 파악했다.

    이것은 내 미래를 바꿔 놓는 데 실로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나저나.

    ‘저 녀석들……‘이름 없는 여왕’을 노리고 있나?’

    주워들은 정보 토막으로도 대화 전체를 유추할 수 있다.

    모든 분야에서 이런 능력이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이런 능력은 게임에 관련된 주제에만 한정이다.

    왜냐하면 나는 겜창이니까.

    “마침 잘 됐네.”

    마른세수를 한번 했다.

    놈들의 목표는 나의 목표와 겹친다.

    이 시점에서 ‘이름 없는 여왕’의 던전을 공략하려 하는 것을 보니 꽤나 앞서 나가고 있는 랭커인 모양.

    하지만.

    이를 어쩌나.

    한 던전 안에 두 명의 랭커는 공존할 수가 없을 텐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