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1화 (11/1,000)

11화 진짜 현실 (1)

[로그아웃 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와 주세요.]

.

.

로그아웃을 알리는 알림음과 동시에, 나는 캡슐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야. 현기증도 안 나네. 좋구나. 젊다는 건.”

나는 눈을 끔뻑거리며 중얼거렸다.

서른다섯이 넘도록 게임만 하다 보니 안 좋은 것은 다 달고 살았었다.

거북목, 척추측만증, 손목 터널 증후군, 눈 떨림 현상 등등…….

캡슐에만 누워 있었는데 왜 생기는지 의문인 질병들.

하지만 젊은 몸, 새로운 몸에는 그런 것 따윈 없다.

캡슐에서 나올 땐 언제나 머리가 핑 돌고 시야가 깜깜해지는 현상이 있어서 몇 분은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고 골골거려야 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없었다.

“좋아. 이제 다시 시작인 거야.”

나는 새삼 다시 얻은 청춘을 만끽하며 부들부들 떨었다.

위이잉-

하지만 실제로 부들부들 떨리는 것은 내 핸드폰이었다.

“음?”

나는 핸드폰에 뜬 번호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큰아버지.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19살까지 보호자였던 사람이다. 그러니까 2년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이분도 참 오랜만이네.”

흡사 남이라도 대하는 듯 중얼거릴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큰아버지에 대한 좋은 감정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늘 의사, 변호사가 된 자기 두 아들과 비교를 하며 훈계만 늘어놓던 큰아버지.

실제로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군대에 갔기 때문에 금전적으로 원조받은 것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내 부모님의 유산을 가져가서 본인 빚 갚는 데나 썼지.

나는 전화를 받았다.

“네. 큰아버지. 무슨 일이세요?”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큰아버지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당최 어떻게 되어 먹은 놈이냐?]

?

통화 시작부터 이게 뭔 소리람?

황당한 마음에 뭐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큰아버지는 바로 말을 이었다.

[이놈아! 전역했으면 바로 이 큰아버지를 찾아와서 인사도 하고 해야지.]

“아, 예 큰아버지…….”

[곧 제사니까 하루 전에 내려올 수 있게 해라. 그리고 이제 전역도 했는데 좀 어른답게 굴어야지. 네 한 몸 벌어 먹을 재주는 갖추도록 하고. 네 사촌형들 봐라. 다들 얼마나 번듯한 대학 가서…….]

나는 핸드폰에서 귀를 떼 버렸다.

누가 보면 전역 전까지는 먹여 살려 준 줄 알겠다. 부모님 유산으로 살았고 그마저도 자기가 착복한 주제에.

15년 뒤. 큰아버지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던 두 아들.

그러니까 내 사촌형들은 전부 암울한 현실을 살게 된다.

의대에 간 사촌형은 의사가 되었지만 불법 의료시술을 하다가 의료사고를 내는 바람에 거액의 배상금을 물게 되고 결국 의사 면허도 박탈당한다.

그 배상금이란 것은 전부 큰아버지의 은퇴 퇴직금이었고.

법대에 간 사촌형은 변호사가 되었지만 개업하고 몇 년이 지나도록 파리만 날리다가 결국 생활고로 인해 이혼당하고 그 와중에 보증을 잘못 서 비참하게 살게 될 것이다.

수능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찬란하게 빛나던 형들이 그 꼴로 살게 될 줄 누가 알았으리요?

“인생은 정말 한 치 앞도 모르는 거지.”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고졸. 군대 전역증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몸.

하지만 나는 아직 15년간은 창창할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돈 같은 것은 무한대로 벌 수 있다.

그 증거로.

“…….”

나는 캡슐 옆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종이뭉치를 돌아보았다.

돈.

현금 3천만 원.

그동안 플레이하며 모은 잡템들을 경매소에 싹 정리한 것만으로도 이런 금액이 생겨났다. 세금과 수수료를 떼고도 이만큼이다.

“시동만 살짝 걸었는데도 이렇게 들어오네. 하 참, 앞으로는 얼마나 더 들어오려나.”

나는 머리를 굴려 보았다.

전 랭커들이 누리던 어마어마한 특혜, 특권들. 그들에게로 쏟아져 들어가던 막대한 돈들.

미끈한 스포츠카, 커다란 집, 어마어마한 팬덤, 따라붙는 기자들, 잡지 신문을 장식하는 영향력, 각종 CF, 예능 촬영…….

그 모든 것들은 이제 오로지 한 사람만을 기다리고 있다.

바로 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게임에서의 화려함도 중요한 만큼, 현실에서의 화려함도 중요하지.”

이런 당연한 것을 나는 왜 지난 15년 동안 몰랐던가?

이번 생에서는 절대로 실수하지 않으리라 다짐 또 다짐하면서,

나는 진짜 현실로의 첫발을 내딛었다.

[야 이놈아! 아까부터 이놈 이거, 큰아버지 말 제대로 듣고 있는 거냐!?]

큰아버지의 고함 소리가 반지하 원룸 속에 공허하게 울려 퍼진다.

*       *       *

“어디 보자. 요즘 건물 값이 얼마나 하나?”

나는 지금 부동산을 돌아다니고 있다.

한참 동안 부동산 벽에 붙은 광고지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안에서 한 아줌마가 곰살맞은 미소를 띠며 나를 부른다.

“어머 총각, 뭐 찾아요? 원룸?”

나는 고개를 저었다.

“상가 하나 보려고 하는데요.”

그러자, 아줌마의 표정이 대번에 바뀌었다. 그녀는 내 옷차림을 사삭 훑어본다.

츄리닝에 슬리퍼, 떡진 머리. 거기에 아직 솜털도 안 가신 21살 청년.

“상가는 왜요? 부모님이 찾으시나?”

“네네. 그렇죠 뭐.”

내 말을 들은 아줌마는 그럼 그렇지 라는 표정으로 환하게 웃었다.

“아버님이 어떤 용도로 찾으시는 건가요?”

나는 바로 대답했다.

“캡슐방이요.”

캡슐방. PC방을 제끼고 나타난 신흥 강자들.

먼 옛날,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수많은 PC방을 만들어냈듯. 지금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수많은 캡슐방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나는 이걸 차릴 생각이다.

“아휴. 아버님 사업 감각이 남다르시다! 요즘 캡슐방이 핫하죠. 여기저기 많이 생기고 있어요.”

아줌마는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그리고 자신의 소형차에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나는 아줌마의 작은 차에 탄 채 한 골목으로 향했다.

“호호호. 캡슐방은 아무래도 목이 좀 좋아야겠죠?”

부동산 아줌마는 당연하다는 듯 물었다. 하기야, 그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버지는 지하나 외진 곳도 좋다고 하셨어요.”

“어머? 그래요? PC방이야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쳐도, 캡슐방은 아직까지는 지상이나 좀 사람이 많은 곳에 지어야 할 텐데?”

화재 같은 것이 났을 때 언제든 대피할 수 있는 PC방과 달리, 캡슐방은 캡슐 밖의 이변을 알아차리기 힘들기 때문에 가능한 목이 좋은 곳에 있어야 장사가 잘 된다.

음침한 지하에서 캡슐을 즐기다가 불이라도 나면 낭패가 아닌가.

뭐 그럴 일은 거의 드물겠지만, 그래도 사람 심리가 아직까지는 신기술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했기에 일어나는 초기현상이다.

하지만.

“아뇨. 가능한 외지고 사람 눈에 안 띄는 곳으로 소개해 주세요.”

나는 단호하다.

왜냐하면 내가 운영할 캡슐방은 그냥 캡슐방이 아니었으니까.

‘뭐 어차피 지금은 돈도 별로 없고. 매물만 봐 둬야지.’

외지고 후미진 지하상가는 잘 나가지도 않으니 슬쩍 시세 정도만 공부할 셈이었다.

이윽고.

부동산 아줌마는 나를 데리고 외진 골목에 있는 지하로 들어섰다.

“여기가 싸고 괜찮아요. 사람들 눈에 잘 안 띄어서 저렴하게 나왔어요.”

아줌마의 말은 사실이었다.

가격도 싸고 눈에도 잘 안 띈다. 심지어 빛도 잘 안 들어와서 안에 들어오자 주변이 온통 암흑천지다.

멀쩡한 사람이라면 절대 발을 들여놓지 않을 것 같은 음침한 분위기.

다른 사람 같으면 몸서리치며 호다닥 도망쳤겠지만.

“…….”

내게는 이 어둠이 몹시 친숙하게 느껴졌다.

“좋네요. 일단 나중에 다시 올게요.”

나는 부동산 아줌마에게 한 줄기 희망을 심어 준 뒤 지하계단을 올라왔다.

막 햇빛이 비치는 도로로 올라온 순간.

“아, 저기!”

부동산 아줌마가 앞을 향해 손가락을 뻗는다.

“저 앞에도 총각이랑 같은 거 하시는 분 있어요.”

부동산 아줌마의 말에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곳에 캡슐방을?

부동산 아줌마가 가리킨 곳에는 허름한 간판 하나가 보인다.

<뽀식이네 실내 낚시터>

언제 망했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오래된 간판.

저게 캡슐방이라고?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부동산 아줌마는 곰살맞게 웃었다.

“저 사장님이 캡슐방을 하시는데, 이상하게 간판은 예전 낚시터 하던 사람이 놓고 간 거 그대로 두시더라고? 홍보하실 마음이 없으신가 봐~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이거 비밀로 해 달라고 했는데!”

순간. 나는 냄새를 맡았다.

눈에 띄기 싫어하는 캡슐방이라. 게다가 간판은 낡다 못해 썩어 들어간 실내낚시터 간판을 걸어놓고.

아주 구린내가 풀풀 풍긴다.

나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이곳 실내낚시터, 아니 캡슐방을 기웃거렸다.

바로 그때.

“야. 나 본격적으로 이 게임 BJ 해 보려고.”

저 앞쪽 지하계단에서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슬쩍 부동산 아줌마의 차 뒤에 숨었다.

저 지하 캡슐방에서 나오는 사람의 얼굴을 한번 봐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게임 BJ하면 쏠쏠할 것 같지 않아? 나 정도 외모면 절대 빠지는 편도 아니고.”

“하긴. 누나 정도면 뭐.”

점점 가까워지는 목소리.

순간.

오싹-

내 등골에 원인모를 소름이 타올랐다.

‘뭐지?’

절로 손이 덜덜 떨려온다.

저 아래서 올라오는 두 남녀의 목소리를 듣자 식은땀이 흐르고 다리에 힘이 풀린다.

“총각, 괜찮아요?”

아줌마는 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들여다보았다.

“네, 네. 저 먼저 차에 좀 타 있을게요.”

나는 재빨리 차 문을 열고 조수석으로 몸을 던져 넣었다.

그리고 운전석의 창문으로 건너편 건물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도로로 모습을 드러내는 두 명의 사람.

하나는 보는 이의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 만큼 예쁜 여자였다.

8등신의 몸, 쭉 뻗은 다리.

가뜩이나 우월한 가슴과 골반을 확 강조한 옷은 마치 섹시 컨셉의 아이돌 무대의상을 보는 듯하다.

얼굴 또한 어지간한 걸그룹을 씹어 먹을 정도로 예뻤다.

반달을 엎어 놓은 듯한 눈 속에 사슴처럼 큰 눈망울.

오똑한 코, 나방의 더듬이처럼 도톰한 눈썹, 가만히 있어도 웃는 듯한 입꼬리까지.

그리고.

나는 분명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유다희!’

유다희.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프로 게이머이자 유명한 게임 BJ, 스트리머. 나중에 연예계까지 진출하게 되는 알파걸.

물론 이는 지금으로부터 한 3년 정도 뒤의 일이다.

‘저 여자가 왜 여기에……?’

나는 입을 반쯤 벌렸다.

원래 미래대로라면 저 여자와 나는 1년 정도 뒤에 게임 길드에서 만나 친해지게 된다.

근데 그때는 막 외국 유학이 끝나서 아무것도 모를 때 였을 텐데? 다희는 그때 분명 게임 처음 해 본다고…….

하지만 지금 유다희의 말을 들어보면, 그녀는 꽤나 고수 같다.

“얼굴이나 가슴 인증 좀 하면 좋다고 달려드는 놈들이 많아서 좋아. 게임 하기 참 편해.”

그녀는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신랄한 말을 내뱉으며 깔깔 웃는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그렇다. 유다희. 그녀는 내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은 여자.

약 3년쯤 뒤, 나는 그녀의 BJ활동을 돕기 위해 막대한 양의 돈을 별조각, 후원금으로 쓰기 시작한다.

그것도 모자라 내 모든 것을 다 바쳐 산 아이템마저 방송 활동을 위해 빌려줬었다.

그리고,

그녀는 PK를 당해 아이템을 잃어버렸다.

순진한 표정으로 눈물만 뚝뚝 떨어트리는 그녀에게, 나는 차마 책임을 묻지 못했다.

그 뒤로 사채까지 써 가며 게임에 빠져들었다. 잃어버린 아이템을 메꾸기 위해서. 그리고 사채 이자를 갚기 위해서.

그리고, 그런 유다희의 옆에서 피식 웃고 있는 남자.

그 남자를 보는 순간 내 몸은 한 번 더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유창.

내가 돈을 빌렸던 사채업자.

저놈이 대체 왜 저기에 있단 말인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