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보스 몬스터 (3)
[키-이이이이익!]
날카로운 이빨, 몸에 난 돌기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흰 점액.
젖거미가 나의 뒤에서 여덟 개나 되는 시뻘건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이크!”
나는 잽싸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콰-콱!
머리 위에서 뱀의 이빨과 거미의 다리가 맹렬하게 맞부딪쳤다.
긴칼비늘 킹코브라와 젖거미가 허공에서 맞붙는 모양새가 되었다.
[쉬이이익!]
[키긱! 킥!]
사로 사는 구역이 다른 두 마리의 필드 보스가 서로 팽팽하게 대치한다.
자기 영역에 침범한 적은 절대로 살려 두지 않는 긴칼비늘 킹코브라.
한번 먹이로 찍은 타깃은 반드시 잡고야 마는 젖거미.
숨죽이는 평원의 지배자와 악몽숲의 잠복꾼이 만나게 될 줄은 누가 알았으랴?
[쉬이익!]
선공은 긴칼비늘 킹코브라가 빨랐다.
녀석은 전신의 비늘을 칼처럼 세운 상태에서 온 몸을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키이이이잉!
마치 길쭉한 전동 톱날이 된 듯한 모양새.
놈은 그 모습 그대로 젖거미를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그것은 긴칼비늘 킹코브라의 오판이었다.
찌걱! 찌걱! 철퍽! 푸다다닥!
맹렬하게 회전하던 긴칼비늘 킹코브라의 비늘은 들판에 닿자마자 급속도로 느려졌다.
젖거미가 미리 땅에 깔아 놓은 점액이 비늘과 비늘 사이에 질척하게 엉겨 붙었기 때문이다.
그 틈을 젖거미는 놓치지 않았다.
놈은 떨어지는 기동성을 점액으로 해결하는 타입, 미리 매설된 둥지 속에서라면 동체급 몬스터에게 절대로 지지 않는다.
푹-
젖거미의 독니가 긴칼비늘 킹코브라의 몸통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젖거미의 오판이었다.
쉬리릭-
긴칼비늘 킹코브라는 비늘의 회전을 멈추고는 전신의 근육에 힘을 주었다.
쩌적- 쩌적- 쩌적- 쩌적-
점액에서 비늘들이 떨어져 나온다.
긴칼비늘 킹코브라에게 있어 비늘이란 얼마든지 떼어 낼 수 있는 소모품이었던 것이다.
긴칼비늘 킹코브라는 떨어진 비늘을 점액 위에 버리고는 근육만 남은 맨몸을 움직여 젖거미의 몸통을 휘감아 조였다.
뿌드드득-
젖거미의 단단한 외골격에 엄청난 속도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긴칼비늘 킹코브라는 전신이 근섬유으로 이루어진 몬스터. 그 조이는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쉬익!]
[키킥!]
계속해서 독니를 박아 넣는 젖거미와 전신 근육에 힘을 주는 긴칼비늘 킹코브라.
그 둘의 매치는 난장판이 된 점액 둥지 안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물론.
나는 그 틈을 타서 열심히 실리를 챙기고 있었다.
“이야, 해골 달팽이의 점액 무지 많이 모았네. 이게 또 이렇게 모이기 힘든 건데 말이야.”
나는 젖거미의 그물에 걸려 바둥거리는 해골 달팽이들을 부지런히 잡아 점액을 모았다.
확실히 젖거미의 거미줄은 달달한 냄새 때문에 좋은 미끼가 된다.
이윽고 해골 달팽이 점액이 인벤토리에 꽉 차자.
나는 싸우고 있던 두 필드보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네 아직도 싸우니?”
두 마리의 필드보스는 다해 가는 HP를 의식했는지 미동도 없다. 그저 서로를 향해 죽어라고 살기를 내뿜고 있을 뿐이다.
우직- 우직- 우직!
젖거미의 단단한 외골격이 깨지며 내장이 미어져 나오고 있었다.
긴칼비늘 킹코브라의 근육이 조이는 힘은 그야말로 가공스러운 것이었다.
부글부글부글…….
긴칼비늘 킹코브라 역시 입가로 허연 거품이 흐른다.
젖거미의 신경독은 그만큼 위험하고 음흉했다.
어지간한 플레이어들이었다면 그 둘의 싸움을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당해 다리에 힘이 풀렸을 것이다.
애초에 그 둘의 싸움을 구경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줄행랑을 쳤겠지.
하지만.
나 같은 고인 물에게 있어 그런 싸움은 그저 재미있는 구경거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예전에는 랭커들의 S급 몬스터 레이드도 참관했던 나이다.
나는 C+급 몬스터, 필드보스들의 대전을 흥미진진하게 관전하고 있었다.
“원래 싸움은 X밥 싸움이 제일 재밌다지?”
세상에 그 누가 감히 필드보스 급 몬스터들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내가 아니고서야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말이다.
몇 분인가가 더 지나고도 승부가 나지 않자.
“야, 생각해 보니 친구들끼리 싸우면 못 쓴다. 애들이 뭘 보고 배우겠니.”
나는 두 필드 보스에게 가볍게 훈계를 하고는 허리띠에 매달린 깎단을 역으로 쥐었다.
원래 목표를 이루었으니 이제 기대하지 않았던 부수입을 챙길 시간이다.
* * *
몇 시간 뒤.
나는 후련한 표정으로 경매장 안에 들어섰다.
“뭘 좀 내놓으려고 하는데…….”
내가 매물로 내놓은 아이템을 본 NPC들의 눈이 다시 한 번 휘둥그레졌다.
-<매복자의 외골격> / 갑옷 / C+
어둠 속에 도사리는 자들은 독하고 조용해야 한다.
이 은밀한 갑옷은 주인의 음흉한 속내를 돕는다.
-방어력 +35
-공격력 +10
-독 속성 공력력 +10
-특성 ‘잠복’ 사용 가능 (특수)
-<피도 눈물도 없는 비늘 검> / 양손무기 / C+
이 칼을 손에 쥔 자는 일말의 감정도 없이 적을 죽이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싸늘하게, 마치 파충류처럼.
-공격력 +300
-독 속성 공력력 +5
-특성 ‘변온’ 사용 가능 (특수)
무려 C+급 아이템이 두 개나 떴다. 초보자 마을에서는 정말로 구경하기 어려운 경사였다.
잠복 특성은 움직일 때 5% 확률로 소리가 나지 않게끔 해 준다.
변온 특성은 우선 불 데미지를 얼음 데미지로 바꾸고 얼음 데미지를 불 데미지로 바꿔 준다.
잘만 사용한다면 얼마든지 전략적인 플레이가 가능한 특성들이었다.
어쌔신들이나 마법사들에게는 꽤나 환영받겠지.
“대, 대체 이것들을 어디서 얻었습니까?”
“뭐 잡으면 떨어지나요? 이런 레어템들은?”
“좀 같이 압시다! 노하우가 뭐요!?”
“저거 핵 쓴 거 아냐!? 버그네 버그! 아무튼 버그임!”
경매장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묻는다.
부러워하는 이들, 질투하는 이들, 존경심을 품는 이들, 호기심을 가진 이들.
참으로 다양한 시선들이 나를 향한다.
나는 대답해 줄까 하다가 말았다.
옛날 같으면 이 시선을 마음껏 즐겼겠지만, 이번 생에는 아니었다.
“…….”
나는 남의 시선에는 아예 신경을 끄기로 했다.
이번에는 결코 한심하지 않은, 찌질하지 않은 삶을 살아 보리라. 오로지 나의 성공을 위해서!
한편. 머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맹렬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어차피 초보자들이 갈 수 있는 구역에 숨겨진 히든 보스들은 전부 다 잡아 버렸다. 보상도 확실하게 챙겼고.’
필드보스 두 마리와 던전 보스 한 마리.
이제 이 구역에 더 강한 몬스터는 없다.
고로 보상도 이게 마지막이란 말씀.
“3천만 골드!”
“장난해? 5천만 내지!”
“6천!”
“6천 5백!”
내가 혼자 고민하는 사이,
주변에서 터져 나오는 상회입찰가는 실시간으로 치솟는다.
결국 몇몇 사람이 힘을 합쳐 돈을 모아 즉시구매 버튼을 누르게 되는 현상도 벌어졌다.
뭐 누가 돈을 모아서 사든, 더러운 돈으로 사든, 빚을 내서 사든, 내가 알 바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나도 저랬던가…….”
경매 물건을 손에 들고 환호하는 이들을 보며, 나는 잠시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앞서가는 존재가 별 필요 없어 버린 부스러기에 울고 웃는 존재들이라니.
탑 티어, 얼리 어뎁터들의 시야란 이런 것일까 싶어 미묘한 감정이 든다.
“…….”
나는 경매장을 나와 인벤토리를 열어 보았다.
-소지 금액: 270,000,000G
2억 7천만 골드.
현실 세계의 돈으로 환전하면 약 3천만 원에 가까운 금액.
딱히 힘도 들이지 않고 이 정도 돈을 벌었다.
그것도 아직 본격적인 사냥을 시작하기도 전, 밑 준비 단계만으로도.
“아카오니의 발가죽을 경매에 내놓으면 2억도 받겠는데?”
나는 발을 감싸고 있는 붉은 워커를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하지만 아직은 안 된다. 이것은 차후 쓸모가 많은 ‘융합형’ 아이템이었으니까.
“아직까지는 게임 머니가 필요 없으니, 억 단위 골드는 전부 현실 돈으로 바꿔야겠다.”
나는 옵션 거래소 창을 띄워 자기가 가진 게임머니를 올렸다.
-띠링!
<2억 골드가 거래되었습니다!>
올린 지 얼마나 되었다고 바로 입질이 온다.
나는 계좌를 열어보았다.
-입금: 20,000,000원
깔끔하게 2천만 원이 입금되었다.
때마침 옵션 거래소 이벤트 기간이라서 그런가 수수료도 없다.
이쯤 되면 어지간한 직장인의 1년치 연봉이다.
“필드보스는 한 달에 한 번씩 리젠되니까. 한동안은 그놈들로도 충분히 쏠쏠하겠군.”
나는 필드 보스들이 젠 되는 비밀구역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씩 웃었다.
이걸로 당분간 한 달에 2천만 원 정도는 꼬박꼬박 들어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한’ 것들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진짜 대박들은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다.
“이제는 초보자 구역에는 정말로 미련이 없다.”
나는 잡화점에 들어가 초대형 냄비 하나를 샀다. 그리고 또다시 사냥터 외곽으로 가 장작을 모아 모닥불을 피우고 냄비를 달구기 시작했다.
철퍽! 철푸덕!
그동안 모은 해골 달팽이의 점액이 냄비 안에 가득 찬다.
그것은 불기운을 받아 이내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끓기 시작했다.
한참을 끓이자, 이내 해골 달팽이의 점액이 한계까지 졸아붙는다.
-띠링!
<‘해골 달팽이의 점액’ 이 ‘해골 달팽이의 정수’ 로 변화했습니다!>
나는 해골 달팽이의 정수로 바뀐 뒤에도 한참이나 냄비 밑으로 장작을 집어넣었다.
이내. 해골 달팽이의 점액은 최종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해골 달팽이의 젤> / 재료/ D
해골 달팽이가 마음에 드는 이성을 발견했을 때 내뿜는 윤활유.
매우 미끌거리기 그지없어서 어지간한 속박 정도는 무시하고 미끄러진다.
-특성 ‘마찰계수’ 사용 가능 (특수)
“달팽이는 자웅동체 아닌가?”
나는 냄비 속에서 끓는 액체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나뭇가지를 뻗어 휘저어 보자, 이내 만족스러운 점성이 느껴진다.
뽁-
나뭇가지를 빼내 허공으로 들어 올리자, 이내 나뭇가지 끝에서 액체 한 방울이 꿀처럼 길게 늘어져 흐른다.
“좋아. 이 정도 점성이면 합격.”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닥불을 끄고 냄비를 식혔다.
그리고,
첨벙!
나는 냄비 안으로 몸을 던져 넣고는 해골 달팽이의 젤을 온 몸에 처덕처덕 바르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미친 변태라고 욕할 만한 광경이었지만.
“…….”
나의 눈동자는 극도로 차갑고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매의 눈빛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