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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8화 (8/1,000)
  • 8화 보스 몬스터 (1)

    <흔들귀(鬼)의 미궁> -등급: C

    나는 어렵지 않게 흔들귀의 미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걸 그때는 왜 몰랐을까?”

    초보자 마을 북쪽의 폐가에 들어가 장판을 뜯어내면 바로 지하던전의 입구가 보인다.

    딱히 꽁꽁 숨겨 놓은 것 같지는 않은데, 이게 밝혀지기까지 은근히 시간이 좀 걸렸다.

    “하기야 뭐, 콜럼버스의 달걀도 그렇지. 누가 여기서 굳이 장판을 뜯어 볼 생각을 하겠어.”

    아마 신규 유저들이라면 이 던전을 발견하기까지 꽤나 애를 먹을 것이다.

    ‘나는 그 전에 살짝 재미 좀 보는 것이고.’

    안으로 들어가자, 낡고 오래된 먼지들이 부유하는 것이 보인다.

    나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시커먼 미궁은 위로, 아래로도 전부 복잡하다.

    단순히 좌우로만 움직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계단이나 구덩이, 발판 등을 이용해 위아래로도 움직여야 아래로 가는 길이 나온다.

    <흔들귀(鬼)의 미궁> -등급: C

    -제일 늙고 지혜로운 이조차도 마을 북쪽에 있는 이 오래된 구멍이 언제, 왜 생겨났는지 알지 못한다.

    땅을 잡아 흔들 정도로 큰 귀신들이 이 아래에서 계속 기어 나왔고 이에 몇몇 용감한 이들이 힘을 모아 구멍의 벽에 미궁을 만들어 놓았다.

    그 뒤부터 귀신들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고 한...(▼)

    .

    “아, 안 궁금해요.”

    나는 [SKIP] 버튼을 연타해 던전의 설명을 껐다.

    이딴 거 안 읽어도 게임하는 데 아무 지장 없다.

    “슬슬 나올 때가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미궁 저편이 쿵쿵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벽에 납작 붙었다.

    [오오오오……]

    거대한 인간형 몬스터 하나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키가 최소 5미터는 넘어 보인다.

    근육질의 몸에 외눈, 이마에 돋아난 거대한 뿔.

    신화에 등장하는 악귀의 모습 그대로다.

    <오니(鬼)> -등급: C / 특성: 악귀, 거인, 자연재해

    -서식지: 흔들귀의 미궁, 썩고 불타는 땅

    -크기: 5m.

    -화가 나면 지면을 움켜쥐고 흔든다.

    던전 내부가 맨날 흔들리는 것은 다 이놈들 탓이다.

    “어디 한번 붙어 볼까?”

    C급 몬스터와 독고다이.

    아무리 레벨이 32라고 해도 아무런 아이템이 없는 상태라면 부담스러운 적이다.

    하지만 나는 행동에 아무런 거침이 없었다.

    콕!

    나는 ‘깎단’을 들어 달려드는 오니의 살갗을 살짝 찔렀다.

    이내, 깎단의 진짜 위력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오니-익?]

    오니는 움찔했다.

    깎단의 효과 능지처참으로 인해, 이제 오니는 1초당 전체 HP의 0.01%씩을 잃게 된다.

    오니의 회복력을 감안했을 때 얼추 3시간 정도면 놈은 자연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오-니이이이!]

    오니는 자신이 시한부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듯했다.

    가녀린 몸으로 주저앉아 마지막 잎새를 세는 대신, 녀석은 옆에 굴러다니는 마지막 통나무 하나를 들고 마구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오오-니이이이이이!]

    나는 혀를 빼물고는 잽싸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흔들귀의 미궁은 벽이나 천장에도 계단이 있다.

    괴물들이 하도 흔들어 댔기에 지형들이 이리저리 뒤섞인 탓이다.

    통로는 어디에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철퍽! 철퍼덕!

    슬라임 워커는 이런 방면에서도 매우 유용했다.

    벽과 천장을 평지처럼 달릴 수 있다 보니 천장에 문이 있어도 얼마든지 열고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오?]

    [오니?]

    [니익?]

    나는 복잡한 미궁을 오가며 수없이 많은 오니들을 마주쳤다.

    그런 오니들에게, 내가 건넨 인사는 간단하다.

    콕! 콕! 콕! 콕!

    마치 컵라면 뚜껑에 물을 버릴 구멍을 뚫듯.

    나는 깎단을 들어 마주치는 오니들마다 살포시 칼침을 한 방씩 놔 주었다.

    [오-니이이이익!]

    화가 머리끝까지 난 오니들은 저마다 통나무나 바위를 들고는 나를 향해 달려든다.

    그 수는 이내 몇 마리에서 몇 십 마리까지 확 늘어났다.

    미궁 속에 순식간에 대규모 몬스터 웨이브가 만들어졌다.

    쿵! 쿵! 쿵! 쿵!

    크아악! 쒸익! 쒸이익!

    덩치 군단이 지축을 뒤흔들며 몰려오는 광경은 실로 압도적이었으나.

    “500m쯤 앞에서 좌회전이었지, 아마?”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고 있는 나는 그것을 볼 일이 없었기에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이동속도를 빠르게 해 주는 아이템이 급선무네.”

    나는 입맛을 다시며 오니 떼로부터 계속 멀어져 갔다.

    목적지는 미궁 제일 안쪽의 벽!

    내가 복잡한 미궁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찾아낸 곳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막다른 길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막다른 길이 아니다.

    퉁!

    내가 벽을 한번 발로 차자.

    철커덩-

    위에서 날이 톱날처럼 까끌까끌한 길로틴 하나가 떨어져 내려온다.

    그것을 잘 피하면, 길로틴은 바닥에 있는 얇은 홈 사이로 파고들고 그것은 그대로 지하로 가는 문을 여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철-컹!

    이내, 지하 2층으로 가는 미궁 문이 열렸다.

    <흔들귀(鬼)의 미궁 2층> -등급: C+

    던전 등급 앞에 +가 붙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오-니이이이이!]

    뒤에서 오니들이 질러 대는 n중창 소리가 시끄럽다.

    아무리 나라도 저렇게나 많은 오니들한테 둘러싸여 짓밟힌다면 살아남을 수가 없을 것이다.

    “못 먹어도 고! 가즈아!”

    나는 거침없는 움직임으로 2층 문을 향해 다이브했다.

    *       *       *

    균열 끝에 진득하게 고여 있는 어둠.

    “헉!?”

    나는 균열에 들어가자마자 미친 듯이 뜨는 경고음을 들었다.

    <보스가 지진을 준비합니다!>

    귓가에 울리는 적색 경보. 하지만 여기서 당황하면 고인물이라고 할 수 없지.

    “들어가자마자 환영이 격한데?”

    나는 빙긋 웃으며 눈앞에 있는 거대한 돌기둥 뒤로 돌아갔다.

    기둥 뒤에 공간 있어요~

    아니나 다를까.

    돌기둥 건너편에 키가 10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괴물 하나가 으르렁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붉은 피부에 외눈. 이마엔 두 개의 뿔이 돋아나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부러져 있었다.

    <아카오니(赤鬼)> -등급: C+ / 특성: 거인, 악귀, 지진, 융합

    -서식지: 흔들귀의 미궁 2층, 썩고 불타는 땅

    -크기: 12m.

    -7대 악마 중 하나인 벨페골의 부하.

    지상을 침공하라는 명을 받아 지옥에서 올라왔지만 머리가 나빠 여태껏 미궁에 갇혀있다. 오래도록 주인의 명령을 수행하지 못했지만 괜찮다.

    그에게 지령을 내렸던 벨페골도 꽤나 나태한 편이었기에 그의 존재를 잊어버린 지 오래니까.

    [오-니이이이익!]

    아카오니가 바닥을 구르며 소리 지른다.

    쿵!

    녀석이 발을 구르자 묵직한 지진파가 장내를 뒤흔들어 놓는다. 천장에서 돌조각들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나는 놈의 최대 HP가 약 1만 2천 가량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반면 내 HP는 꼴랑 320.

    저 놈에게 한 방이라도 맞는다면 50%가 넘게 깎이겠지. 두 대 맞으면 더 볼 것도 없이 사망이다.

    “아마 ‘하극상을 부르는 철갑’을 입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겠지? 이래서 내가 갑옷을 안 사는 거라니까.”

    나는 가볍게 투덜거린 뒤 깎단을 역수로 꼬나 쥐었다.

    그때.

    [오-니이이이익!]

    뒤에서도 요란한 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그동안 자신의 뒤를 따라오며 착실하게 그 수가 불어났던 오니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오니이이익!]

    아카오니는 이 오니들의 대장 격.

    눈앞의 낯선 침입자를 앞두고 부하들이 모인 것을 보자 무언가 안심이 된다는 듯한 태도다.

    하지만.

    [오뉙!?]

    오니들이 모인 무리에서 힘없는 비명 소리 하나가 들려온다.

    앞줄에 서 있던 오니 하나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앞으로 픽 고꾸라진 것이다.

    동시에.

    [오뉙!?]

    [오끼익!?]

    [오켁!?]

    곳곳에서 오니들의 단말마가 속출했다.

    깎단의 효과가 지금에서야 그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먼저 찔린 놈부터 하나하나씩. 착실하게 고꾸라진다.

    “한판 뜨자, 덩치.”

    나는 뒤에 몰린 잡몹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오-니이이이익!]

    도발에 걸린 아카오니가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움직임은 그렇게 빠른 편은 아니나 리치나 도약이 엄청나다.

    콰-쾅!

    아카오니가 주먹을 휘두르자 미궁의 벽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나는 날쌔게 몸을 피한 뒤 아카오니의 팔뚝에 깎단을 찔러 넣었다.

    뿍!

    먹혔다.

    이제 3시간 가량만 피해 다니면 이놈 역시 단말마를 내뱉으며 죽어 버릴 것이다.

    문제는……그동안 어떻게 피하느냐 하는 것.

    [오니이이익!]

    아카오니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아카오니가 지옥불을 토해냅니다!>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나는 서둘러 돌기둥 뒤로 숨었다.

    후루루루룩!

    입에서 지옥의 화염이 토해져 나온다. 나의 예상과는 달리, 아카오니는 불을 뿜어내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였다.

    콱!

    돌기둥 뒤에 숨어 있던 나는 조금 당황했다.

    ‘참, 이런 패턴이 있었지?’

    너무 오래 전에 사냥했던 녀석이라 그런지 기억이 가물가물 했다.

    콰-쾅!

    “으아, 죽을 뻔 했네.”

    겨우겨우 아카오니의 공격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피하는 것만 잘 해도 승리는 확실하게 이쪽으로 기운다.

    [오……오오오오오!]

    한데?

    아카오니가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카오니가 지진을 준비합니다!>

    또다시 귓가에 뜨는 적색 경보.

    콰-쾅!

    아카오니가 거대한 발을 들어 올려 지면에 대고 구르기 시작했다.

    놈의 발바닥이 지면을 때리는 순간, 묵직한 지진파가 일어 주변을 초토화 시켜 놓는다.

    놈의 특성 자연재해가 그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핫-챠!”

    나는 자리에서 펄쩍 뛰는 것으로 아카오니의 지진을 피해 냈다. 그리고 이내 내가 바닥에 착지하자.

    꿀-렁!

    슬라임 워커가 부들부들 떨리며 지진으로 인한 충격파를 흡수하는 것이 보였다.

    반 액체 상태나 다름없는 이 젤리 같은 성질이 지진파를 막아 주는 것이다.

    “두 번은 더 버티겠는데?”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슬라임 워커를 쓰다듬었다.

    C+급 몬스터 중에서도 상당히 강력한 축에 드는 아카오니가 상대인지라 오래 버티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세 번이나 되는 지진을 막아 주는 것이 어딘가?

    “오니이이익!”

    아카오니가 소리를 질렀다.

    아카오니의 외눈이 핏빛으로 시뻘겋게 물들고 있었다. 놈의 HP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증거다.

    한층 더 광폭해진 아카오니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일전을 피하며 계속해서 뒤로 물러섰다.

    콰쾅!

    또다시 미궁의 일부가 무너져 내린다. 지형이 변하고 있다.

    특성의 이름이 왜 ‘지진’인지 알 것 같다.

    D급 몬스터 일백 마리가 와도 상대할 수 없는 C+급 몬스터의 위엄.

    [오니이이이익!]

    아카오니가 또다시 지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두 손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가 지면을 향해 쾅 박아 넣는 아카오니. 놈은 그 상태에서 팔에 힘을 주었다.

    우득- 우득- 우득- 우득-

    붉은 팔뚝에 수도 파이프 같은 핏줄들이 불거져 나왔다.

    이내, 아카오니는 온 힘을 다해 꽉 움켜쥔 지면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실로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꿀렁- 꿀렁- 꿀렁- 꿀렁-

    지면이 파도치듯 출렁였다. 발바닥을 통해 몸으로 전해지는 충격.

    하지만 나는 몸을 웅크린 채 지진을 견뎌 냈다.

    슬라임 워커는 충격을 받는 순간 점성이 있는 액체 형태로 변해 데미지를 줄여 준다.

    마치 고무가 지진을 버티는 구조와 같다.

    콰쾅!

    주변 돌기둥이 무너져 내린다.

    나는 쏟아지는 낙석들을 피해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지진도 불도 다 썼구나! 이제 너는 그냥 고기방패일 뿐이지!”

    나는 아카오니가 모든 공격 패턴을 소진했을 이미 알고 있었다.

    철저하게 계산된 루트로 움직여 놈의 필살기를 전부 소모시켰으니 이제는 잡는 일만 남았다.

    퍽- 퍽- 퍽- 퍽-

    단순 공격력으로만 따져도 무시무시한 깎단의 위력이다.

    제아무리 아카오니가 초보자 존에서 가장 강력한 히든 보스라고 해도 필살기를 모두 소진한 이상 그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쿵-

    결국. 이 거구의 육전형 마수는 나의 앞에 무릎을 꿇고야 말았다.

    -띠링!

    <흔들귀의 미궁을 최초로 클리어하셨습니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나는 이번에도 같은 닉네임을 새겼다.

    <고인 물>

    동시에.

    나는 이 붉은 거인의 시체 중앙에서 빛나는 시뻘건 빛 한 줄기를 발견했다.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아이템이 드랍된 것이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