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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7화 (7/1,000)
  • 7화 변태 메타 (2)

    2020년 6월 5일 금요일.

    현충일을 하루 앞둔 지금, 어째 전국의 고등학교 급식실이 시끄럽다.

    “와, 님들 어제 유튜뷰 올라온 뎀 동영상 보쉼?”

    “데박, 완전 에바 참치 꽁치죠?”

    “고인 물 순식간에 쫄아 버리는 것 실화냐?”

    고등학생 몇몇이 급식실 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유튜뷰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어제 밤 누군가가 올려놓은 조악한 화질의 동영상.

    하지만 그 동영상 속의 내용은 실로 놀라웠다.

    <의문의 알몸 변태 vs 고인 물 레이드>

    동영상 속에서는 1:4의 PK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 새끼! 너 우리가 누군 지 알고 이래!?]

    네 명의 남자가 빼애액 소리친다.

    하지만 그들을 상대하는 의문의 알몸 빌런은 그저 태연할 뿐이다.

    [패기가 좋군.]

    [……?]

    [쥐어 패기가 좋아.]

    말을 마친 알몸의 사내는 손에 든 투박한 송곳을 꼬나 쥔 채 순식간에 앞으로 쇄도한다.

    절대로 튜토리얼 존에서 막 나온 자의 몸놀림이 아니다.

    스팍!

    알몸 사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송곳을 휘둘러 네 명의 사내를 쓰러트렸다.

    화려한 전투는 없었다.

    첫 번째 사내는 제대로 자세를 갖추기도 전에 목에 치명타를 입었다.

    두 번째 사내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는 순간 목젖이 도려내어졌다.

    세 번째 사내는 허리춤의 칼을 뽑으려 하는 순간 팔꿈치 관절을 찔렸다.

    네 번째 사내는 뒤로 돌아 도망치는 도중에 뒤통수에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방금 전 팔꿈치 관절을 찔렸던 세 번째 사내에게 비로소 최후가 찾아왔다.

    그들 하나 하나를 쓰러트리는 과정은 너무나도 처참한지라 곳곳에 모자이크가 생길 정도였다.

    [끄아아악!]

    네 명의 고인 물은 그야말로 포가 떠진 상태로 사망했다.

    하지만.

    끔찍하게 저며진 채 최후를 맞이한 이들을 보며 통쾌해 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내가 저 새끼들 때문에 겜 접었는데. 다시 시작해야지!

    -우리 길드 뉴비님들도 저놈들 때문에 사냥터에서 항상 돈이랑 아이템 상납했다고 그러더라구요

    -여성 유저들한테는 엄청 치근덕거린다면서? 현실 전화번호 묻고 안 알려주면 사냥 방해하고 그랬대.

    ⤷ㄹㅇ쓰레기들이네...

    ⤷와 진짜 사이다다. 저런 고인 물들은 빨리 없어져야 함.

    ⤷...음, 근데 저 변태는 누구?

    ⤷ㄹㅇ정의로운 변태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른 대형 길드에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체 저 알몸의 변태는 누구인가?

    실오라기 하나 걸친 것 없이, 오로지 송곳 한 자루만을 쥐고 저렇게 날렵한 움직임을 선보이다니.

    복장도 그렇고 무기도 그렇고 전투 방식도 그렇고.

    어느 것 하나 비범하지 않은 곳이 없다.

    하지만.

    “저런 뉴비가 있었다니, 당장 스카웃 해야 해!”

    “그런데……복장이 조금 마음에 걸리는군.”

    “실력은 확실히 대단하긴 한데……꼭 스카웃…해야 할까?”

    “우리 길드는 유니폼도 맞춰 입는데…….”

    “천재거나, 변태거나. 아니면 둘 다거나.”

    몇몇 길드들은 그의 복장 상태 때문에 망설이기도 하는 모양이다.

    *       *       *

    한편,

    “자식들. 귀엽네.”

    나는 피식 웃으며 깎단에 묻은 핏물을 털었다.

    저들은 자기 자신을 고인 물이라 생각했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저 한없이 귀여운 뉴비에 불과했다.

    “원래 뉴비는 사랑이라고 배웠지만, 이번 경우에는 조금 예외지.”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네 구의 시체를 뒤적였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PK에서 죽으면 무조건 아이템을 랜덤으로 떨구게 되어 있다.

    나 역시 이 때문에 한번 큰일을 치렀던 적이 있어서 잘 안다.

    “에이, 괜히 시간만 낭비했네. 시간이 곧 금인데.”

    녹슨 철검이나 가죽 갑옷 따위를 뒤적거리던 나.

    순간, 그의 표정이 변한다.

    “어라? 이건…….”

    죽은 네 명 중 한 명이 떨군 아이템.

    그것은 주먹만 한 녹색의 덩어리였다.

    -<슬라임의 정수> D

    슬라임의 살점 1천 개를 모아 끓인 뒤 핵심 물질만 걸러낸 것이다.

    “호오?”

    나는 눈에 이채를 띠었다. 슬라임의 정수라.

    “어쩌면 시간낭비를 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군.”

    눈을 감고 슬라임에 대한 정보를 떠올려 보았다.

    <슬라임> -등급: D / 특성: 재생하는 피부

    -서식지: 전 대륙

    -크기: ?m.

    -젤리 타입의 몬스터. 어떤 커다란 괴물의 목구멍에 낀 가래가 어느 날부터 생명력을 얻어 움직였다.

    경험치, 돈, 아이템. 뭐 하나 주는 게 없는 최악의 몬스터.

    심지어 서식지는 대체로 볕이 들지 않는 음습한 던전이다.

    그래서인가 일단 여성 유저들에게는 인기가 전혀 없는 몬스터였다.

    “아무래도 그 고인 물 녀석들은 슬라임만 주구장창 잡고 레벨 업 했던 모양이네.”

    나는 피식 웃었다.

    슬라임의 정수를 얻었으니 슬라임 1천 마리를 잡는 수고는 덜었다. 어찌 보면 상당히 시간 절약을 한 셈이다.

    “마침 앞으로 공략할 던전에 필요했는데. 잘 됐군.”

    나는 그 길로 곧장 대장간으로 향했다.

    대장간에서 커다란 냄비와 주물 틀을 산 나는 필드의 구석진 곳으로 가 모닥불을 피우고 냄비를 달구기 시작했다.

    츄르르르륵-

    이내, 슬라임의 정수가 냄비에 담겨 끓기 시작했다.

    부글부글 끓던 녹색 물질은 이내 점점 검은 빛을 내기 시작한다.

    그쯤에서 청동으로 만들어진 주물틀에 슬라임의 정수를 부었다.

    꼴꼴꼴꼴…….

    부글부글 끓던 슬라임의 정수가 이내 청동 틀에 담겨 싸늘하게 식어 간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나는 청동 틀을 반으로 쪼갰다.

    이내. 나의 눈앞에 녹색의 말캉말캉한 젤리 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워커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생 슬라임 즙 100% 워커> 신발 / C

    슬라임을 그대로 가져다 신은 듯한 착용감. 방어 효과는 그다지 없다. 신으면 기분은 좋을지도?

    -방어력 +5

    -이동 속도 +10

    -독 속성 공력력 +5

    -특성 ‘말랑촉촉 피부’ 사용 가능 (특수)

    물컹물컹한 것이 꼭 흡연자가 뱉은 가래침을 보는 것 같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방어력도 낮고 무엇보다도 끈적거린다며 기피했겠지만.

    “좋네.”

    나는 만족한 표정으로 슬라임 워커를 신었다.

    딱이다. 나는 바닥을 한번 걸어 보았다.

    한번 발을 내딛을 때마다 촉촉하고 말캉한 젤리 같은 것이 발가락 사이를 파고든다.

    기분이 좋다면 좋고 나쁘다면 나쁜, 그런 미묘한 기분.

    하지만. 이 워커의 진짜 힘은 방어력이나 이동 속도 따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특성 ‘말랑촉촉 피부’ 나는 바로 이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게 은근히 초반 꿀템이지.”

    나는 슬라임 워커를 신고 한번 뛰어 보았다.

    착!

    나무에 붙은 나는 그대로 나무를 밟고 올라간다.

    발바닥 피부가 너무 촉촉해져서 나무껍질에 끈적하게 달라붙을 정도.

    마치 거미인간이 된 듯한 기분이다.

    “좋아, 이대로 바로 가 볼까?”

    나는 슬라임 워커를 신은 채 높은 나무 위로 걸어 올라갔다.

    저 멀리, 평원 너머로 내가 목표로 하는 던전이 보이고 있었다.

    <흔들귀(鬼)의 미궁> -등급: C

    지진을 일으키는 대형 몬스터들이 살고 있는 히든 던전.

    물론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곳이 그저 지형의 일부분, 평범한 폐허로 보일 것이다.

    나는 지금부터 그곳을 공략하러 갈 생각이었다.

    “어디보자, 랭킹 몇 위였더라? 그 궁수가.”

    나는 눈을 감고 20년 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꽤 오래 전, 내가 뉴비일 때 랭킹을 한창 떠들썩하게 했던 궁수 하나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궁수는 비인기 직업이었다.

    초반에 드랍되는 방어 아이템들이 너무 좋은 반면, 원딜형 무기들의 드랍 빈도는 터무니없이 낮았기 때문이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전부 좋은 방어구로 무장하고 있는데 조악한 활로 때려 봐야 PK에서 먹힐 리가 없다.

    자연스럽게 궁수라는 직업은 도태되어 가고 있었다.

    그때.

    혜성같이 나타난 한 궁수 랭커가 있었다.

    그는 기묘하게도 뛰어난 무기가 아닌 다른 아이템으로 사냥을 하고 PK를 했다.

    궁수가 활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싸운다니, 코웃음 치던 사람들은 의문의 공격에 당해 어김없이 발목이 부러지는 격통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붙은 별명은 바로 ‘지진 궁수’

    그를 빠르게 랭커로 키워 줬던 저력이다.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그는 흔들귀의 미궁이라는 히든 던전을 처음으로 클리어한 보상으로 특별한 아이템을 받았다고 했다.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것이 아마 핵심일 것이다.

    “나는 궁수는 아니지만, 궁수처럼 빠르게 움직일 필요는 있단 말이지.”

    나는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깔끔한 나체.

    입은(?) 것이라고는 오로지 녹색의 끈적끈적한 신발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냥 나체인 것보다 더욱 더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패션.

    거기에 손에 들린 뭉툭한 송곳이라니.

    “뭐 어때, 어차피 한 방 맞으면 죽는데.”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새삼 낯설지도 않은 고인 물 ‘변태 메타’다.

    물론 시대를 너무 앞서간 패션이기에 남들이 알아봐 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럼 가 볼까?”

    나는 나무를 박차고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눈앞에 있는 히든 던전을 향해다이브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