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변태 메타 (1)
[저, 정말 이 아이템을 경매에 내놓으시겠습니까?]
NPC의 리액션이 꽤 좋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내 경매품 목록이 새로 갱신되었다.
-<하극상을 부르는 철갑> / 갑옷 / C+
겉보기에는 평범한 갑옷이지만 자기보다 강한 적에게 공격받는 순간 숨겨진 독가시가 튀어나온다.
-방어력 +35
-공격력 +10
-독 속성 공력력 +5
-하극상 특성 사용 가능 (특수)
스켈레톤을 잡고 얻은 아이템.방어력도 좋고 특성도 쓸 만하다.
하극상은 자기보다 강한 상대에게 데미지를 입었을 때 반사 데미지를 돌려주는 특성.
자기보다 강한 이와 싸우기를 즐기는 자에게 딱 어울리는 스킬이라고 할 수 있다.
C+등급의 아이템이 뜨자 경매장 안에 있던 모든 시선들이 죄다 나에게로 쏠렸다.
“세상에! 이거 어디서 났어요?”
“무슨 몹 잡으면 이거 줍니까?”
“와! 대박! 얼마에 파시려고요?”
나는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경매 낙찰가가 정해질 때까지 한시라도 더 움직일 생각이었다.
시간은 곧 돈이다.
내가 막 나가려고 할 때.
“저, 저기요!”
한 여성 유저 하나가 나를 불러 세웠다.
“뭡니까?”
내가 묻자, 그녀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말했다.
“그러고 나가실 건가요?”
여성 유저의 말에 나는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알몸.
‘하극상을 부르는 철갑’을 벗었기에 나는 현재 완전한 알몸이다.
그저 손에 깎단 하나를 덜렁덜렁 들고 있을 뿐.
“…뭐 문제 있습니까?”
내가 묻자, 여성 유저는 애써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그게 아니라. 입고 계신 방어구가 방금 경매에 내놓으신 것 하나뿐이신 것 같아서요. 밖에는 몬스터들도 많고 위험하니, 아무 방어구라도 하나 걸치고 가시는 게 어떨까 해서. 보기에도 좀 외설적이고…….”
말을 마친 여성 유저는 자기가 경매장에 올린 물건들을 내다 보여 주었다.
가죽 갑옷, 천 셔츠, 미늘 흉갑…….
전부 D급 잡템들이다.
“얼만데요?”
내가 묻자, 여인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반지, 목걸이, 투구, 신발, 상하의, 트위스트, 다 해서 30만 골드만 주세요.”
뉴비들 입장에서는 꽤나 솔깃한 제안으로 들릴 수는 있겠지만, 나의 입장에서는 하등 쓸모없는 것들이다.
잔돈푼 하나 허투루 낭비하지 않기로 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주 벗겨 먹으려고 작정을 하셨군?”
그 말을 들은 여자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 벗고 있는 놈이 할 말은 아니지 않나?’
하지만 남의 의견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딴 똥템을 걸칠 바에는 차라리 안 입는 게 낫겠어.”
말을 마친 나는 덜렁덜렁(?) 움직여 경매소를 나가 버렸다.
쿨하고 네이키드한 바람이 경매소 안에 불어온다.
* * *
알몸에 달랑 깎단 하나를 든 나는 마을 중앙 광장에 선 채 생각했다.
‘어차피 내가 지금부터 잡을 몬스터들은 전부 이 레벨로는 꿈도 꿀 수 없는 경지에 있는 고렙 몬스터들. 놈들한테는 스쳐도 사망이야. 당분간 방어구 같은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차라리 장갑이나 신발 같은 가벼운 방어구, 혹은 목걸이나 귀걸이, 반지 같은 장신구가 훨씬 더 도움이 된다.
어차피 스치기만 해도 사망인데 뭐하러 무겁게 갑옷을 걸치겠는가?
“후후후…….”
나는 절로 웃음이 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어느 날인가 게임 플레이를 하도 많이 해서 더 이상 즐길 컨텐츠가 없어졌을 때.
나를 비롯한 고인 물들은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 즐기기 시작했었다.
‘아, 똥망겜이네, 즐길 콘텐츠 겁나 부족하네~’
무기 없이 맨손으로 던전 클리어.
알몸에 기저귀만 하나 찬 채로 필드 보스 레이드.
눈 감고 부비트랩 필드 마라톤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때도 알몸에 기저귀 하나 차고 수많은 던전들을 공략했었지. 뭐, 나중에는 사채 빚 갚느라 못 했지만.”
그러던 것을 지금도 하고 있다. 물론 그때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지만, 적어도 복장만은 똑같지 않은가?
“우후후후후…….”
알몸으로 선 채 고개를 숙이고 소리 죽여 웃고 있는 나.
나를 본 플레이어들은 하나같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흠칫한다.
“오우야…….”
“……뭐야? 이 변태 새끼는.”
“오빠, 우리 다른 데로 가자.”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남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나만의 길을 간다.
바로 그때.
나의 귓가에 알림음이 떴다.
-띠링!
<경매의 최고 낙찰가가 정해졌습니다!>
‘뭐? 벌써?’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원래 경매는 등록한 직후부터 72시간 동안 진행된다.
단 예외가 있었는데, 그것은 최소 경매가의 10배가 되는 금액이 나왔을 때이다.
그렇게 되면 경매는 자동 종료되고 최소 경매가의 10배를 부른 사람은 해당 아이템을 즉시구매 할 수 있는 것이다.
“허어, 어떤 금수저 놈이 그걸 샀대?”
나는 황급히 인벤토리를 열어 보았다.
투명한 색으로 바뀌어 있던 ‘하극상을 부르는 철갑’이 사라졌고 대신 인벤토리 칸에 엄청난 금액이 입금되어 있었다.
85,000,000G
팔천 오백만 골드. 현실 돈으로 바꾸면 8백만 원이 넘는 큰 돈이다.
“하하. 이거 완전히 남겨 먹는 장사구만.”
나는 흥분 반 허탈함 반으로 웃었다. 고작 C+급 아이템 하나로 이 정도라니.
물론 ‘하극상을 부르는 철갑’이 같은 C+등급 아이템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옵션이 좋았다지만, 이 가격을 받을 정도는 절대 아니다.
아무래도 지금이 게임 초창기라서 그런가 선두를 달리고 싶은 이들의 욕망이 최고조에 달해 있는 모양이다.
“나야 좋지. 앞으로 긴장 타세요, 고객님들. 물량 마구 마구 풀어 드릴 테니까.”
물론 시장 물가를 흐리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C+급 아이템들은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떨어질 테지만, 고위 등급 아이템들은 십 수 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천문학적인 액수로 거래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초반에 C+~급 잡템들을 바짝 팔아 치우고 가치가 변하지 않는, 혹은 몇 배로 뛸 아이템들을 선점하면 되는 것!
‘예전에는 현실에서 돈을 벌면 게임에 현질하느라 바빴지. 이번에는 반대다. 게임에서 돈을 벌면 모조리 현실로 가져와야지.’
목돈을 벌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그때.
나의 기분에 찬물을 끼얹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이, 거기 변태.”
자기를 부르는 줄 모른 나는 그저 히죽히죽 웃으면서 혼자 좋아하고 있었다.
그러자.
딱!
뒤통수가 갑자기 얼얼해 온다.
“……?”
고개를 갸웃하며 몸을 돌리자, 뒤에 네 명의 사내가 건들거리며 서 있는 것이 보였다.
16, 17, 17, 18
네 명의 머리 위에는 레벨이 떡 하니 공개되어 있었다.
뭐 레벨이야 공개하려면 공개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굳이 드러내 놓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
한데 이들은 뭔가 느낌이 달랐다.
킁킁!
나는 코를 벌름거렸다.
이 네 명의 남자에게서는 희미하지만 자기와 같은 종류의 냄새가 났던 것이다.
이 미묘한, 퀴퀴한 썩은 내란…….
‘고인 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이곳은 초보자 마을 중에서도 초보자 존으로 특별 설정되어 있는 구역.
레벨 15를 넘기면 다시 들어올 수가 없게끔 정해져 있다.
나야 튜토리얼 존에서 레벨 32를 찍었기에 아직까지 여기에 있을 수 있지만, 일단 한 번이라도 초보자 구역을 나가면 다시 들어올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고렙들이 초보자들을 괴롭히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설정이다.
하지만.
개중에는 그 설정을 악용하는 이들도 있었다.
일부러 초보자 구역에서 죽치고 앉아 사냥을 하면서 극악으로 오르는 경험치를 모아 레벨 15를 넘기는 이들.
일반적으로 레벨 15가 되면 다른 초보자들은 알아서 초보자 구역을 떠나 본격적인 모험을 떠난다.
하지만 여기 있는 이 네 남자는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어이, 너 아까 보니까 꽤 좋은 아이템을 경매에 냈던데. 그거 어디서 났어?”
“네 레벨에 손에 넣을 수 있는 갑옷이 아니던데. 어디서 주웠지? 퀘스트 보상인가?”
“네가 했다면 우리도 할 수 있겠지. 빨리 말해.”
“말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사냥터마다 따라다니면서 네 렙업을 방해할 거다. 너 튜토리얼의 탑에서 막 나왔으니 아직 레벨 10 맞지?”
그들은 각자 철검과 장창, 방패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꽤나 닳고 닳은 티가 난다. 초보자라면 당연히 주눅이 들 만한 외형이었다.
나는 순한 양처럼 눈을 끔뻑였다.
“음. 그럼 제가 ‘하극상을 부르는 철갑’을 얻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 드릴게요.”
내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네 명의 사내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맴돈다.
“오오? 대화가 잘 통하는데?”
“이 자식. 옷을 다 벗고 있어서 변태 사이코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정상인이잖아?”
“야야, 당장 안내해. 빨리 퀘스트 깨러 가자.”
“근데……이 자식 이거 일단 뭐 좀 입히지? 같이 다니기 좀 쪽팔린데.”
네 남자는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리더니 잡화점으로 들어가 만 골드짜리 가죽 갑옷 하나를 사 왔다.
“야, 이거라도 좀 입고 다녀라.”
“고맙습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가죽 갑옷을 받았다.
이거 그래도 돈 주고 사려면 현실 돈으로 천 원은 있어야 하는 꽤 괜찮은 아이템이다.
이제 나에게 게임머니는 전부 현실 돈으로 보인다. 현실의 돈을 모두 게임 머니로 보던 15년 전과는 정반대다.
“자식. 빨리 안내나 해. 가는 도중 몬스터 있으면 말하고. 엉아들이 쩔 해 줄 테니까.”
네 명의 고인 물들은 내가 꽤나 마음에 드는 듯 껄껄 웃었다.
‘여차하면 이놈을 죽여 버리고 아이템을 독식하자고.’
‘그건 당연한 것 아니냐?’
속으로는 음흉한 계획을 낄낄거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고인 물 of 고인 물.
고이다 못해 썩은 물.
썩다 못해 석유가 되어 버린 나에게 있어 이들의 텃세는 그저 옹알이에 불과할 따름.
나는 생글생글 웃어 보이며 말했다.
“일단 어디 조용하고 으슥한 곳으로 좀 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