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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5화 (5/1,000)
  • 5화 S급 무기라니! (2)

    나는 믿을 수가 없다는 듯 손아귀 안을 내려다보았다.

    거의 없다시피 한 무게감.

    하지만 손아귀의 서늘함은 분명 무언가를 잡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나에게 떨어진 아이템은 길이 약 60센티미터 정도의 짧은 단도였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키보드 길이보다 조금 더 길다고 해야 하나?

    시커먼 손잡이는 아무런 장식도 없이 거무튀튀했고 칼날 역시 밋밋하니 아무런 특징이 없다.

    언뜻 보면 그냥 커다란 송곳과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오로지 나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이 작은 단도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병기인지 말이다.

    -<깎아 내는 단말마> 한손무기 / S

    고문기술자들 중에서도 가장 음침하고 흉악한 이들이 쓰는 무기. 고결한 천사장조차도 이 칼 앞에서는 신을 모욕할 수밖에 없으리라.

    -공격력 +900

    -파괴불가 (특수)

    -특성 능지처참(陵遲處斬) 사용 가능 (특수)

    통칭 ‘깎단’

    온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암흑랭킹 1위 ‘앙신(殃神)’의 성명절기.

    이것은 그를 상징하던 두 개의 아이템 중 하나이다.

    공격력은 S급 아이템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다.

    900이라면 잘 쳐 줘야 B급 무기의 공격력 정도이니까.

    하지만.

    ‘깎단의 무서움은 공격력에 있는 게 아니지.’

    나는 피식 웃고는 손아귀 속의 단도를 살폈다.

    -특성 ‘능지처참(陵遲處斬)’ 사용 가능 (특수)

    ⤷한번 상처 입힌 상대의 체력을 조금씩 조금씩 깎아 냅니다.

    이 효과는 상대가 죽을 때까지 지속됩니다.

    도트 데미지(Dot damage)!

    방어력을 무시한 채 가해지는 일정량의 출혈 피해.

    이것이 앙신을 암흑랭킹 1위로 만들었던 사기적인 특성이다.

    깎단이 입히는 도트 데미지는 초 단위로 들어간다.

    1초에 깎이는 HP의 양은 상대 총 HP의  0.01%.

    이 단도에 찔린 뒤 10,000초가 지나면 상대는 죽게 된다는 소리다.

    1만 초. 즉 2시간 46분 40초.

    한번 공격에 성공한 뒤 이 시간 동안만 버티면 그 어떤 상대든 100% 죽일 수 있다.

    적의 회복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계산이지만, 확실히 사기는 사기다.

    신전에 가서 부활 주문을 받기 전까지 이 상태이상은 계속된다.

    몬스터의 경우는 회생할 가능성이 없다는 뜻.

    “물론 한 번이라도 공격에 성공해야 하지만 말야.”

    나는 깎단을 인벤토리에 잘 간수해 넣었다.

    이걸 쓰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파는 것이 좋을까?

    나는 인터넷 정보창을 켜 보았다.

    “음……. 현재까지 뜬 아이템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게 C+정도네.”

    그것도 며칠 전까지만 해도 C급이 가장 좋은 아이템이었다.

    처음으로 C+급 장신구를 먹은 사람의 인터뷰가 9시 뉴스에까지 나왔을 정도니 화제긴 화제였나 보다.

    “그런 마당에 S급 무기라니. 참 이거 누가 믿기나 할는지 모르겠다.”

    나는 실소를 머금은 채 인벤토리를 쳐다보았다.

    아마 S급 아이템이 시중에 풀리려면 지금으로부터 10년은 기다려야 할 게다.

    그때.

    -띠링!

    익숙한 전자음이 들려온다.

    <당신은 지금부터 튜토리얼의 탑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가담할 진영을 선택해 주세요.>

    <용 / 악마>

    동시에, 너무 길어서 구구절절하게까지 느껴지는 게임 스토리가 뜨기 시작했다.

    <이 세계를 양분하고 있는 용과 악마의 세력 중에서, 인간은 한쪽 편을 들어 싸워야 합니다.

    후에 대격변이 일어나 두 진영이 본격적으로 기나긴 전쟁을 벌일 때, 용의 편을 든 인간과 악마의 편을 든 인간은 각자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용의 기운을 받은 인간과 악마의 기운을 받은 인간은 차후……한 모습으로 변태하게…….>

    “3줄 요약 매너는 없나?”

    나는 거침없이 [SKIP] 버튼을 연타했다.

    요즘 이런 거 누가 듣냐?

    게임 세계관 설명을 구구절절 늘어놓는 것은 정말 지겹다.

    핸드폰 게임 스타트 화면에서 너무 많이 보는 바람에 눈에 딱지가 앉을 정도.

    “나는 아무 진영에도 안 가.”

    나는 깎단을 들어 선택지를 지워 버렸다.

    그러자 약간의 인내심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발견할 수 있는 선택지가 떴다.

    [인간으로 남으시겠습니까?]

    나는 거침없이 수락했다.

    이것으로, 나는 악마와 용이라는 두 지배종의 컨트롤에서 완벽하게 벗어나게 되었다.

    그 대가로 얻게 되는 각종 특전 보너스, 아이템들은 받지 못하게 되겠지만, 나는 그보다 더 큰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

    “악마나 용 중에 한쪽 편을 들게 되면 아군 진영의 몬스터는 잡을 수가 없게 되지. 그럼 사냥감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셈이란 말야.”

    이 세상 모든 것을 자기 먹이로 생각하는 자의 머릿속에서만 나올 수 있는 생각이다.

    *       *       *

    나는 튜토리얼의 탑을 나와 곧장 초보자 마을로 향했다.

    으레 초보자들이 튜토리얼의 탑을 나와 가는 곳은 초보자 사냥터이다. 살육 벌 외에 다양한 몬스터들을 체험해 보고 싶은 것이리라.

    또한 초보자 퀘스트를 주는 NPC들이 저레벨 몬스터를 잡아 달라고 부탁해 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보게. 나는 이 마을의 장로일세. 요즘 부쩍 개체수가 불어난 쥐떼 때문에 골치야. 부디 밖으로 나가 역병 생쥐의 꼬리 10개를 모아다 주지 않…….”

    “싫어.”

    “안녕하세요. 저는 주점의 넬이에요. 살육 벌들이 모은 로열 젤리가 그렇게 꿀맛이라던데. 그것을 구해다 주시면 충분한 사례를…….”

    “안 돼.”

    “오! 안녕하신가! 힘세고 강한 아침! 내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몰라.”

    나는 단호했다.

    ‘초반 사냥터는 갈 것도 없다. 바로 템 맞춰서 현장으로 뛰어든다.’

    지금 시점에서 나의 레벨은 단연코 월등하다.

    맨몸뚱이의 스텟만으로도 중무장한 중수 플레이어 한둘쯤은 우습게 씹어 먹을 정도.

    거기에 깎단의 기본 공격력까지 생각해 보면?

    ‘깎단이 나중에 고인 물 리그에서나 공격력 낮다고 욕먹지. 지금 레벨에서는 능지처참 특성이 없다고 해도 최상급 살상력이다.’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답이 나온다.

    ‘지금은 이 깎단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익혀야겠지?’

    모든 NPC들의 퀘스트를 죄다 거절한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예상치 못하게 등장한 이 S급 아이템을 가장 잘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그 해답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       *       *

    “아이템을 등록하러 왔다.”

    나의 말에 경매장 NPC는 묵묵히 일을 처리한다.

    그러자, 경매장 구석에서 물건을 구경하고 있던 몇몇 사람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오? 뭐 쓸 만한 거 파시게요?”

    “경매에 올릴 것도 없어요. 저희 레이드가 값 잘 쳐드릴 수 있는데.”

    “어떤 거 등록하시려고요?”

    한창 게임 인기가 좋다 보니 사냥을 통해 아이템을 모으는 것이 귀찮아 돈으로 해결하려는 이들도 꽤 많았다.

    그들이 하는 것이라곤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경매장에 죽치고 않아 괜찮은 매물을 구경하는 것이 전부였다.

    현재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골드와 현실의 돈 교환 비율은 10:1.

    게임 초반이라 그런가 골드 가격이 한창 핫할 때다. 이쯤 되면 거의 가상화폐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골드를 구하기가 거의 극악으로 어렵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래 전에 유행했던 게임 X니지의 초창기 화폐 비율이 이쯤 됐었지?’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주위를 흩었다.

    경매 마감이 임박한 아이템들이 몇 개 상태창에 떠 있다. 나는 손을 뻗어 ‘높은가격 순’ 버튼을 클릭했다.

    -트롤 이빨 철퇴 / 양손무기/ C+ / (재생 피부) -8천만 골드

    -겁쟁이 견습기사의 유품 / 갑옷 / C / (백전노장) - 4천 5백만 골드

    -죽어가는 고블린의 증오 / 반지 / C / (특성 없음) - 1천만 골드

    .

    .

    “흐음. 가장 좋은 아이템이 트롤 이빨 철퇴로군. 8천만이라……특성으로는 ‘재생 피부’가 붙었네? 나쁘지 않아.”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8천만 골드면 현실 돈으로 8백만 원에 이르는 거금이다.

    사실 지금에야 C+급 아이템이 이런 대접을 받지만, 당장 몇 달만 지나도 가격은 많이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최고의 자리를 선점하고 싶은 이들에게 있어 이 정도 투자는 별다른 디메리트가 되지 못한다.

    D급 아이템 천지인 이 시점에서 C급 C+급 장비를 손에 넣어 앞으로 치고 나간다면 장차 더 많은 특전을 누릴 수 있지 않겠는가?

    어찌 생각하면 그리 비싼 가격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초창기에는 말이지.”

    나는 피식 웃었다.

    이내.

    나는 경매장에 한 가지 아이템을 등록했다.

    -띠링!

    <아이템이 등록되었습니다. 총 경매 시간은 72시간입니다. 가장 높은 입찰가를 부르신 분에게 자동으로 넘어갑니다.>

    “아 뭐 파시려구요? 그냥 저희랑 거래해요.”

    “아 됐어. 어차피 잡템이겠지. 봐봐, 튜토리얼 탑에서 막 나온 모양새잖아.”

    곳곳에서 아우성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주변에서 지저귀는 잡소리들을 싹 무시한 채 경매 창에 매물을 올렸다.

    그러자.

    “……헉!?”

    주변에서 들려오던 아우성이 뚝 멎었다.

    이내.

    나의 경매 창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세상에! 이, 이거 어디서 구했어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