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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4화 (4/1,000)
  • 4화 S급 무기라니! (1)

    ‘이스터에그’(Easter Egg)는 게임 개발자가 게임 속에 ‘재미’로 몰래 숨겨 놓은 메시지나 기능을 말한다.

    게임의 정상적인 기능이라고는 볼 수 없으며 찾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숨겨져 있다.

    찾아 내는 난이도가 높다면, 게임 발매 이후 수 년이 지난 후에 ‘우연찮게’ 발견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       *       *

    <용옥(龍獄)의 고문기술자> -등급: S / 특성: 어둠, 지진, 능지처참(陵遲處斬)

    -크기: 15m

    -서식지: 불타는 땅, 제 1 용옥.

    -드래곤은 레어를 짓고 주변을 미궁처럼 만들어 놓았다. 드래곤의 보물을 탐내다가 이 미궁에 갇힌 자들은 용의 하수인, 이 고문귀들에 의해 벌을 받는다.

    튜토리얼 존에 있는 이 몬스터는 물론 잡으라고 만들어 놓은 몬스터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일단 눈앞에 나타난 이놈을 놓칠 수는 없다.

    지금 여기서 도망친다면 다시 이놈을 만나기까지는 최소 1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릴 테니까.

    “어차피 한 대 맞으면 죽는 거. 니놈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 보자고.”

    나는 머리를 굴려 15년 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용옥의 고문기술자라.

    …어떤 몬스터였더라?

    일단 파충류 계열, 용족에 속하는 이 몬스터는 대륙을 통틀어서도 얼마 없는 지배종 중의 하나이다.

    이 녀석이 처음으로 플레이어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게임이 정식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10년쯤 뒤였을 것이다.

    당시 플레이어들은 대규모 연합을 이루어 용족 몬스터들과 대규모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 전선의 최선두에 갑자기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몬스터였다.

    용옥의 고문기술자는 거대한 덩치를 내세워 맨 앞줄의 탱커 라인을 깨부숴 왔다.

    이놈을 잡기 위해 당시 수준 급 랭커였던 몇몇이 힘을 모았지만 역부족, 저 통나무 같은 팔에 맞아 한 방에 로그아웃 당해 버렸었지.

    무엇보다 놈의 공략을 까다롭게 만든 것은 바로 속도였다.

    힘도 힘이지만, 저 거대한 몸이 어찌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도무지 막아 낼 재간이 없었다.

    당시 플레이어 연합에게 절망처럼 드리웠던 것이 저 용옥의 고문기술자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꽤나 할 만하다.

    놈의 최대 무기인 속도가 봉인되었지 않은가?

    “그-오오오오!”

    튜토리얼의 탑에 갇혀 있는 놈이라서 그런가 위압감도 훨씬 덜하다.

    드넓은 전장을 자유자재로 누비던 놈이 이런 좁은 탑 안에 갇혀 있다니, 그것도 무거운 수갑을 주렁주렁 찬 채로.

    열화(劣化)도 이런 열화가 또 없다.

    콰쾅!

    놈의 발톱이 사원의 기둥을 부쉈다.

    “힘만 세면 뭘 하나? 안 맞는데.”

    나는 흩날리는 파편을 여유롭게 피해 움직였다.

    어차피 놈이 난공불락의 몬스터로 회자되던 것은 막 출현했을 당시뿐.

    몇 년 간의 수없는 시행착오 끝에, 고인 물 게이머들은 기어이 이 몬스터의 공략 패턴을 알아내고야 만다.

    “위↗, 아래↘, 위↗, 위↗, 아래↘”

    나는 고문기술자의 공격을 피하며 열심히 목검을 휘둘렀다.

    딱! 따닥! 따콩!

    미약한 데미지가 고문기술자를 갉아먹는다.

    “크-아아아아악!”

    고문기술자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놈은 전신에 있는 도마뱀 비늘을 칼처럼 세우더니 이내 사방팔방으로 쏘아 날려 보냈다.

    콰콰콰쾅!

    “엇-차. 에구구.”

    나는 너무나도 편안한 표정으로 자리에 드러누웠다.

    노숙자가 햇볕을 쬐기 위해 공원 벤치에 누워 있는 듯한 풍경.

    하지만 내가 누운 자리는 절묘하게 모든 공격들이 빗겨 나가는 찰나의 간극!

    ‘좌측 대각선 7시 방향으로 조용히 누워 있으면 비늘들이 닿지 않는 사각이 생겼었지 아마?’

    모든 것이 전의 기억대로였다.

    우르릉! 쿠드드드……

    주변의 사원들이 무너져 내린다. 나는 잽싸게 몸을 튕겨 일으킨 뒤 또다시 목검으로 고문기술자를 때리기 시작했다.

    딱콩! 딱! 따닥! 따콩!

    이 짓도 벌써 두 달째.

    여차하면 사원의 갈라진 틈을 찾아 숨어 로그아웃했다.

    식사와 배변을 할 때에는 짧게 나갔다가 재접속했다.

    같은 곳을 때리고 때리고 때리고 때리고 때리고 때리고 때리고 때리고 때리고 또 때렸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지만…

    계란이 무한대로 있으면?

    언젠간 바위는 깨지고 만다.

    회복이 안 되는 상황에서는 용옥의 고문기술자 역시 깨진 바위나 마찬가지였다.

    “크-오오오오오!”

    내가 마지막으로 목검을 세워 놈의 아킬레스건을 찔렀을 때.

    쿵!

    드디어 이 S급 몬스터는 나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다리가 파괴된 다음은 금방이었다.

    다음 다리 역시 금방 끊겨 나갔고 그 다음은 양 팔이었다.

    결국. 목검으로 때리기 시작한 지 세 달 반 만에. 놈은 완전히 늘어지게 되었다.

    “후……진짜 변태 같은 몹이었어.”

    나는 흘릴 리 없는 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 업을 알리는 효과음. 그것들이 뭉쳐서 들린다. 얼마나 오른 걸까?

    상태창을 켜 보니, 전과는 확 달라진 수치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어진

    LV: 32

    호칭: 초보자(특전 없음)

    HP: 29/320

    <아이템>

    -하극상을 부르는 철갑 / 갑옷 / C+ / (잠복)

    -튜토리얼 목검 / 한손무기/ D / (스킬 없음)

    레벨이 순식간에 32로 올랐다. 동시에 HP를 비롯한 각종 스텟들 역시 크게 상승했다.

    “인터넷에 쳐 보니, 현 랭킹에 등록된 1위가 25라는데…….”

    나는 무시무시한 폭업에 혀를 내둘렀다.

    게임에 자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랭킹에 자기 레벨을 바로바로 등록하는 편이니 아마 현 상황의 최고 레벨은 25 정도가 맞을 것이다.

    가끔 은거기인 놀이를 좋아하는 고수들이 있다고 쳐도 26을 넘지는 못하겠지.

    힘과 민첩, 마력 등의 스텟은 보통 레벨에 비례하여 상승하곤 하는데 그렇게 크게 중요하진 않다. 사실상 게임 플레이를 결정짓는 것은 아이템이었으니까.

    “자, 그럼 뭐가 나왔나 한번 볼까?”

    나는 용옥의 고문기술자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세계관 속의 아이템은 대충 다음과 같은 순으로 가치가 매겨진다.

    잡템<장신구<방어구<무기

    물론 잡템들 사이에서도 격이 나뉘는 것처럼, 장신구나, 방어구, 무기 등에서도 격이 나뉜다.

    방어구 중에서는 갑옷이 가장 가격이 비쌌고 무기 중에서는 한손 무기가 가장 귀한 대접을 받았다.

    두 개를 들 수 있다는 점에서 바로 그렇다.

    물론 개중 괴물 같은 피지컬을 지닌 이들은 양손 무기를 한 손 무기처럼 휘두르고 다녔지만, 내가 그런 재능충에 속하지는 않으니까.

    “A+급, 아니 A급 템만 떨어져도 대박이겠다.”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고문기술자의 시체를 뒤졌다.

    S랭크인 이 몬스터는 과연 어떤 아이템을 떨궜을 것인가?

    “A급 반지만 하나 떨궈 줘도 절을 할 텐데…….”

    현재까지 등장한 아이템들 중 가장 좋은 등급이 C+급이다. 만약 A급 반지가 떨어졌다면 부르는 것이 곧 값일 것이다.

    참고로 15년 전의 내가 착용했던 아이템 중 가장 고가였던 ‘집행하는 검’이 A+등급의 양손 무기였으니까.

    “알몸에 반지만 하나 끼고 돌아다녀도 양민 학살 가능하겠다.”

    실실 웃으며 시체를 뒤지던 나.

    순간.

    이내 그의 몸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굳었다.

    “……이, 이건?”

    나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려왔다.

    고문기술자의 시체 속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는 무기.

    그것은 ‘한손 무기’ 특유의 금빛 광채였다!

    장신구만 나와 줘도 감사할 판에 무기, 그것도 한손 무기가 나왔다.

    그렇다면 등급은?

    나는 재빨리 시체를 헤집고 아이템을 꺼냈다.

    이윽고.

    손에 휘감기는 차갑고 단단한 기운.

    결과물을 확인한 나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진다.

    15년 전 전 재산을 꼴아 박았던 A+급 양손무기. 집행하는 검.

    그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아이템이 떴다!

    “세상에…….”

    나는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앙신(殃神)’ 그 자식. 이걸 어디서 얻었나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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