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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3화 (3/1,000)
  • 3화 나는 고인 물이다 (3)

    -다들 들었냐? ‘뎀’ 소식 말야. 튜토리얼에서 히든 보스 떴다며?

    -ㅋㅋㅋ겜 서비스 오픈한 지 얼마나 됐다고 히든 보스가 벌써 떠?

    -심지어 잡았다더라ㅋㅋㅋ9층까지도 최단기록 경신ㅋㅋㅋㅋ한국 유저라든데, 역시 한국!

    -닉네임 남긴 거 봐 ‘고인물’이래ㅋㅋㅋ수도꼭지 튼 지 얼마나 됐다고 물이 벌써 고여~~나 미쵸~~

    ↳진짜 씹 고인물이네ㅋㅋㅋㅋ

    ↳개인방송 같은 거 안하나? 좋은 건 같이 보자!

    .

    .

    아침부터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게시판에는 댓글들이 활발하다.

    대부분은 지난밤 일어난 튜토리얼 탑 신기록 경신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튜토리얼 탑 9층 클리어까지의 플레이 시간 58분 58초.

    전 신기록이었던 1시간 1초를 깨고 ‘마의 1시간’이라는 통념을 무의미하게 바꿔 버린 존재.

    심지어 레벨 4이하의 실력으로 10층의 C+급 몬스터를 거꾸러트리기까지 했다.

    ‘분명 엄청난 튜토리얼 보상을 받았을 것이다!’

    수많은 이들이 튜토리얼 존과 연결되어 있는 초보자 마을로 통하는 중앙대륙의 도시로 발걸음을 옮겼다.

    화제의 뉴비를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서였다.

    레벨 10이상은 튜토리얼 존에 들어갈 수 없었기에 중앙대륙 마을 ‘유토러스(Utorus)’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

    그중에는 각종 유명 길드의 헤드 헌터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튜토리얼에서부터 이 정도 두각을 드러낼 정도라면 차후 최상위 랭커로 날아오를 것이 분명하다.

    이런 공전절후한 인재는 미리 스카웃해 둬야만 한다. 반드시.

    하지만.

    “안에서 그런 사람 못 봤는데요? 그 정도라면 티가 났을 텐데?”

    “엥? 레벨 4로 C+급을?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말도 안 돼.”

    “저는 옛날 게임 프로게이머인데요. EAPM 한 300 나왔거든요. 그런데 저도 살육 벌 10마리 상대하면서 꽤 고전했어요. 이런 마당에 누가 C+급을 잡을 수 있겠어요. 말도 안 되지.”

    초보자 마을에서 막 나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만 동그랗게 뜰 뿐이다.

    초신성 뉴비에 대한 소식은 금시초문이라는 것이다.

    마을 주변을 뒤져 봐도 딱히 눈에 띄는 뉴비는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헌터들은 매의 눈으로 초보자들을 뒤졌지만 딱히 눈에 띄는 이를 발견하진 못했다.

    10층 클리어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달려왔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별 수 없이, 헌터들은 같은 시간대에 초보자 마을에서 나온 모든 플레이어들을 밀착 마크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정체를 숨기고 있다면 언젠가 드러내는 순간이 왔을 때를 노려 스카웃 제의를 할 생각으로.

    하지만.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다.

    아무도 원하는 바를 이룰 수는 없었다.

    결국 끝끝내 초신성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

    그도 그럴 것이…….

    *       *       *

    “후…….”

    나는 해묵은 날숨을 토해냈다.

    눈앞에는 장신의 괴물 하나가 죽어 있었다.

    <스켈레톤 킹> -등급: C+ / 특성: 어둠, 언데드, 하극상, 백전노장

    -크기: 3m.

    -서식지: 악의 고성, 썩고 불타는 땅

    -전생에 대가의 반열에 발을 걸쳤었던 칼잡이. 죽은 뒤에도 계속 숙련된 동작으로 적의 목숨을 발라 낸다.

    육체는 강인하였지만 정신은 고결하지 못하여 끝끝내 ‘언데드 전당’에 입성하지 못하였고 그 육신은 데스 나이트의 열화판인 스켈레톤 킹으로 남고 말았다.

    일반적인 성인 남성보다 훨씬 더 큰 키. 뼈 하나하나의 굵기가 가히 짐승의 것이라 할 만 하다.

    삭아서 넝마가 된 망토 아래로 늘어진 양손 대검은 하도 무뎌서 칼이라기보다는 철퇴에 가까워 보였다.

    나는 스켈레톤 킹의 얼굴 중앙에 여섯 개의 벌침을 박아 넣은 상태였다.

    -<살육 벌의 송곳> D

    지독한 마비독이 묻어 있다. 등급과 레벨을 무시하고 적을 1초간 마비시킨다.

    위급한 순간마다 해골의 안면에 벌침을 박아 넣어 극악 난이도의 검술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고인 물답게 언제 어느 타이밍에 찔러 들어올지, 백 스윙을 할지 전부 알고 있었기에 공략 가능했던 것이다.

    언데드나 골렘에게도 효과가 있는 살육 벌의 마비독도 큰 도움이 됐다.

    동체급 몬스터 중에서 당할 자가 없다는 스켈레톤 킹을 손쉽게 해치운 나.

    누군가 보면 기절초풍을 했겠지만, 정작 나 자신은 덤덤하다.

    “…이제 얼추 감을 잡겠네.”

    나는 전신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되새김질하며 중얼거렸다.

    모든 것이 15년 전의 기억 그대로였다.

    스켈레톤 킹의 공격 패턴이야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것. 조금만 긴장하면 단 한 대도 맞지 않고 잡을 수 있다.

    조금만 긴장한다면 말이지.

    “통증도 기억대로네.”

    나는 끙 소리를 내며 팔뚝에 박혀 있던 칼날 조각을 뽑았다.

    내 전성기 때에 비하면 스켈레톤 킹은 쪼렙 몬스터에 불과하다. 그래서 방심했던 것일까? 나는 놈에게 한 방을 허용하고 말았던 것이다.

    꾸역꾸역 몰려드는 통증, 감각 싱크로율을 극한으로 올려 놨기에 현실의 고통과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나는 입술을 깨물며 필사적으로 참아 냈다.

    상태창을 켜 몸 상태를 점검해 보았다.

    -이어진

    LV: 10

    호칭: 초보자(특전 없음)

    HP: 29/100

    <아이템>

    -튜토리얼 목검 / D (특성 없음)

    스텟이야 레벨이 비례하여 일정하게 성장하는 것이니 중요한 것은 체력과 아이템이다.

    기본 체력은 레벨*10이니 체력을 올려 주는 아이템이 별도로 없는 이상에야 100인 것이 정상. 사실상 이 게임에서는 스탯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이템이 중요하지.’

    원래 인생은 템빨이다.

    앞으로 풀릴 좋은 아이템들을 모두 선점해야 한다.

    나는 눈을 번뜩였다.

    어디에 가야 무엇이 있는지 전부 기억하고 있다.

    당장 오늘 먹은 점심 메뉴는 기억 못 해도 그런 것들만은 또렷했다.

    겜창이 괜히 겜창이 아니다.

    “흐음…….”

    나는 다시 한 번 상태창을 살폈다.

    현재는 HP가 3분의 1이하로 줄어들었다. 회복이 필요하다.

    인벤토리에 있는 기본 포션을 먹으려 했지만.

    [튜토리얼 존에서는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무미건조한 알림음만이 반복해서 들려올 뿐이다.

    “아이템이나 챙겨 나가야겠군.”

    나는 목검을 움직여 아이템을 수거했다.

    이윽고, 스켈레톤 킹의 머리통에서 무언가가 드랍되었다.

    -<하극상을 부르는 철갑> / 갑옷 / C+

    겉보기에는 평범한 갑옷이지만 자기보다 강한 적에게 공격받는 순간 숨겨진 독가시가 튀어나온다.

    -방어력 +35

    -공격력 +10

    -독 속성 공력력 +5

    -하극상 특성 사용 가능 (특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꽤 마음에 드는 아이템이 나왔다.

    하극상 특성은 자기보다 높은 레벨의 적에게 공격받았을 때만 반사 데미지를 입히는 패시브 스킬.

    나는 바로 갑옷을 착용했다.

    -이어진

    LV: 10

    호칭: 초보자(특전 없음)

    HP: 29/100

    <아이템>

    -하극상을 부르는 철갑 / 갑옷 / C+ / (하극상)

    -튜토리얼 목검 / 한손무기 / D / (특성 없음)

    보통 몬스터를 잡으면 해당 몬스터의 등급보다 조금 낮은 랭크의 아이템이 떨어지기 마련.

    동 랭크의 아이템이 떨어지는 경우는 상당히 귀하다.

    C+급 아이템이면 현실에서도 꽤나 귀한 대접을 받을 것이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레벨도 올랐고 아이템도 챙겼다.

    이제 튜토리얼 탑 10층을 모두 공략했다.

    출구로 향하는 포탈이 열린다. 튜토리얼 존을 벗어날 시간이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나갈 수야 있나.’

    나는 발걸음을 포탈 반대로 돌렸다.

    언젠가, 까마득한 초 고위 랭커 한 명의 인터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튜토리얼의 탑 10층을 최단 시간 안에 클리어하면 11층으로 가는 특전이 주어진다고.

    그곳이 진정한 튜토리얼의 최상층이며 이 게임의 모든 히든 퀘스트를 통틀어 최고 난이도의 히든 퀘스트라고.

    ‘11층의 입구가 있는 곳은…….’

    나는 탑의 최외곽의 구석진 곳, 스켈레톤 킹의 거미줄이 치렁치렁 내려온 음습한 그늘을 뒤지기 시작했다.

    “……!”

    있다!

    그곳에는 또 하나의 포탈이 있었던 것이다.

    꽁꽁 감춰져 있어 눈에는 보이지 않는 비밀스러운 포탈.

    손으로 더듬어 보니 포탈 옆 돌기둥에 음각된 작은 글씨가 만져진다.

    <11층>

    ‘진짜 있구나!’

    지난 15년간의 경험이 빛을 발한다. 직접 겪은 것이 아니라 들은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신기록을 세운 사람만 갈 수 있는 히든 던전!

    나는 포탈로 한 발을 내딛었다.

    막 11층에 들어서자,

    확-

    주변 풍경이 뒤바뀐다. 하지만 나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내가 새로 바뀐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전신의 감각을 곤두세우는 순간.

    “……!”

    갑자기 머리털이 쭈뼛한다.

    인지 이전에 먼저 느껴지는 감각!

    닳고 닳은 고인물이 아니고서야 절대로 인지 불가능한 감각이었다.

    확-

    나는 온 힘을 다해 뒤로 드러누웠다.

    마치 잠이라도 자듯 편안한 자세.

    하지만.

    쾅-

    동시에, 굉음이 일며 내가 서 있던 자리 뒤의 벽이 박살났다.

    [오-오오오오!]

    숨겨진 포탈에서 튀어나온 것은 바로 거대한 손이었다!

    이윽고.

    거대한 몬스터 하나가 나의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용옥(龍獄)의 고문기술자> -등급: S / 특성: 어둠, 지진, 능지처참(陵遲處斬)

    -크기: 15m

    -서식지: 불타는 땅, 제 1 용옥.

    -드래곤은 레어를 짓고 주변을 미궁처럼 만들어 놓았다.

    드래곤의 보물을 탐내다가 이 미궁에 갇힌 자들은 용의 하수인, 이 고문귀들에 의해 벌을 받는다.

    머리에 너덜너덜한 검은 삼각 두건을 쓴 뚱뚱한 괴물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간형의 육체를 뒤덮고 있는 도마뱀의 비늘, 삭아 너덜거리는 잇몸에는 장검의 날처럼 날카로운 이빨들이 돋아나 있다.

    “까딱하다간 죽는 줄도 모르게 죽었겠군.”

    나는 혀를 차며 뒤로 물러났다.

    상태창이 알려 오는 몬스터의 위험등급.

    하지만 듣고도 못 믿을 정도로, 몬스터의 등급은 괴랄하다.

    세상에 튜토리얼에서 S급 몬스터라니?

    아직 C+급 몬스터가 공략되었다는 보고도 없는 마당에 S급 몬스터를 만났다. 그것도 초보자 마을도 아닌 튜토리얼 존에서!

    [그-아아아아아!]

    용옥의 고문귀는 정면을 향해 포효를 내질렀다. 역겨운 침과 잇몸 조각들이 사방으로 나부낀다.

    쿵!

    계속되는 공격에, 나는 정신없이 뒤로 물러나기만 할 뿐이었다.

    한데?

    뭔가 이상하다.

    쿵! 쿵! 쿵!

    이 몬스터는 어째 미묘하게…

    ‘느리네?’

    처음 만났을 때는 당황해서 몰랐지만, 이 몬스터는 어깨와 팔, 다리 등에 무거운 구속구를 차고 있었다. 그 때문에 움직임이 극도로 단순하고 느린 것이다.

    말하자면……열화판이랄까?

    쿵!

    물론 주먹 한 방 한 방은 대지를 뒤집어 놓을 정도로 강력했지만, 고이고 고인 물인 내가 피하지 못할 수준의 속도는 아니었다.

    “그렇구나. 잡으라고 만들어 놓은 게 아니구나 이거. 에이!”

    나는 혀를 끌끌 찼다.

    한 짓궂은 게임 개발자가 세계 신기록을 세워 한창 자신감 뿜뿜 터지는 뉴비의 기를 죽여 놓기 위해 만든 것인가 보다.

    참 괴랄한 이스터에그가 아닐 수 없다.

    일반적인 사람 같으면 잡으라고 만든 몬스터가 아님을 깨닫자마자 도망갔겠지만,

    “…나를 자극시키기에 충분하군.”

    나는 아니야.

    퍽!

    초보자용 목검이 휘둘러졌다.

    딱!

    미약한 소리와 함께, 고문기술자의 주먹에 생채기가 났다.

    <용옥(龍獄)의 고문기술자> -등급: S / 특성: 어둠, 지진, 능지처참(陵遲處斬)

    -HP: 129,999,975/130,000,000

    목검의 데미지 10, 갑옷 공격력 10, 독 속성 공격력 5.

    총 25의 데미지가 들어갔다. 개미가 문 것보다도 못한 수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웃고 있었다.

    믿는 것은 두 가지.

    하나는 튜토리얼 목검의 ‘파괴불가’ 특성.

    그리고 다른 하나는…….

    [튜토리얼 존에서는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귓가에 들려오는 이 알림음의 내용이었다.

    ‘분명 몬스터 역시 회복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겠지.’

    원래 S급 몬스터의 회복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몇 그룹이나 되는 레이드가 총공격을 퍼부어도 몇 시간 뒤면 다시 쌩쌩해질 정도니까.

    하지만 이곳에서는 다르다. 튜토리얼 존의 룰은 플레이어나 몬스터나 동등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나는 목검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단 한 방이라도 맞으면 무조건 죽는다. 그것도 지독한 고통을 느끼면서.

    위험한 것은 몬스터의 공격뿐만이 아니다.

    후두둑! 후두둑! 후두둑!

    튀는 돌조각 파편들에도 주의해야 한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해야 할 정도.

    깊은 몰입도 때문에 이쪽에서의 고통은 실제의 고통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지독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빠르고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공격이 미처 벌어지기도 전에 피할 수도 있다. 마치 몇 초 앞의 미래를 내다보는 것처럼.

    이것은 몸이 기억하는 감각이다.

    획- 획-

    쾅- 쾅-

    나는 목검을 쥐고 계속해서 움직였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목검이 허공에 그려 놓는 검은 궤적이 점점 더 짙고 복잡해진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지금, 시간은 오로지 나의 편이다.

    튜토리얼에서 만난 S급 몬스터.

    썩은 물이 이제는 아주 펄펄 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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