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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2화 (2/1,000)
  • 2화 나는 고인 물이다 (2)

    “흐헉!?”

    나는 상반신을 벌떡 일으켰다.

    땀이 폭포수처럼 솟아난다.

    “뭐, 뭐야? 여기 어디야?”

    게임 속에서 의식을 잃기 전, 나는 분명 반지하 원룸에 있었다.

    한데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어?”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하얗고 깨끗한 방, 나는 지금 병원 침대 위에 누워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벽을 바라보았다.

    “……뭐지?”

    벽에 걸려 있는 달력을 본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2020년 3월자 달력이 왜 여기 걸려 있단 말인가? 분명 오늘은 2035년 3월일 텐데.

    순간.

    벽에 걸려 있는 거울을 본 나는 기겁했다.

    “헉!? 뭐야?”

    거울 속에 비친 나의 얼굴은 주름 한 점 없는 매끈한 피부로 덮여 있었다.

    어딜 봐도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의 젊은 얼굴이다. 담배와 술에 쩔은 35세의 얼굴이 아니라.

    “아, 아니 이게 무슨?”

    내가 당황해서 허둥거리고 있을 때.

    끼익-

    하얀 방의 문이 열리고 가운을 입은 중년 남자 몇 명이 들어왔다. 보아하니 의사인 모양이다.

    옆에는 정장을 입은 남자 몇몇이 서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의사는 아닌 것 같다.

    “아, 깨어나셨군요. 이어진 씨. 걱정했습니다.”

    “네?”

    내가 멍한 표정으로 되묻자, 말을 꺼낸 정장 사내가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어진 씨. 혹시 기억이 안 나시나요?”

    “무, 무슨 기억이요?”

    “신형 캡슐 테스트요, 이어진 씨는 신형 캡슐 체험단 모집에 지원하셔서 오픈 베타 버전의 게임을 플레이 하시다가 그만 발작을 일으키시는 바람에……이 병원에 오시게 된 겁니다.”

    순간, 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악몽에서 깨어난 직후에는 원래 머리가 멍할 수밖에.

    방금 꾼 꿈이 현실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 돼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그 뒤.

    현실은 천천히 찾아온다.

    나는 자각했다.

    나는 스물 한 살의 팔팔한 예비역. 가족도 친구도 딱히 없는, 막 사회로 내던져진 존재.

    전역 후 할 게 없어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거리다가 우연히 신작 게임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테스터 모집 끝물에 당첨되어 이곳에 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시계를 보았다.

    지금은 2020년 3월 21일 오후 두 시 반.

    내가 게임을 체험하기 위해 캡슐에 누운 지 15분 정도밖에는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고, 고작 15분? 그럼 그 긴 시간이 다 꿈이었다고?”

    장장 15년간 겜창 생활을 했던 나로서는 기가 막힐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정장 사내는 공손한 태도로 조곤조곤 말했다.

    “이어진 씨가 이용하셨던 캡슐은 바로 폐기했습니다. 사측에서는 사죄의 의미에서 전혀 문제없는 새 캡슐과 병원비, 소정의 위로금을 지급해 드릴 예정입니다. 아무쪼록 오늘 있었던 일은 외부에는 대외비로…….”

    팀장의 말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15년. 이 캡슐 안에서 꾼 꿈의 시간이다. 그것을 말해야 하나?

    루져, 외톨이, 쎈 척 하는 겁쟁이.

    사채까지 끌어다 쓰던, 그 돈으로 가챠나 하던 썩은 물.

    평생을 탑 티어들의 화려한 아우라만 뒤쫓다가 결국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늙어 버린 망생.

    “네, 고맙습니다.”

    나는 벌겋게 충혈된 눈을 감추며 대답했다.

    이미 정장 사내들의 말 따위는 귀에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앞으로 두 번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겠어.’

    다짐했다.

    캡슐 속에서 겪었던 15년이 진짜 미래이든 그저 오류일 뿐이든, 반드시 그와는 다른 삶을 살아 보이겠다고.

    *       *       *

    “그럼 그게 다 꿈이었나?”

    나는 집에 돌아와 웅크리고 앉아 고민했다.

    볕도 잘 들지 않는 퀴퀴한 반지하 원룸.

    이곳에는 신문 권유도, 보험 권유도, 우유 권유도, 좋은 말씀 나누자는 권유도 찾아오지 않는다.

    그런 원룸에 유일하게 방문한 것은 오늘 온,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개발한 ‘뎀’ 사의 택배뿐이었다.

    게임 캡슐. 그것이 지금 나의 옆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완전 새삥. 신형으로.

    나는 캡슐의 겉면을 손으로 슬슬 쓸어 보았다.

    “정말로, 그냥 악몽일 뿐이었다고?”

    하지만.

    오로지 게임을 플레이하던 그 기억만큼은 뇌리에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칼로 몬스터의 살을 뚫고 뼈를 부러트리던 감각.

    떨리던 마음으로 아이템을 강화하던 감각.

    절벽과 바다를 누비며 레이드를 이끌고 적대 길드를 때려 부수던 감각.

    그 모든 것들이 이 손아귀 속에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도 전부 허상이었다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한 개의 유망한 게임이 고인물 게임이 되기까지 걸렸던 시간 15년.

    그 세월을 통째로 함께했던 인생이다.

    “플레이 해 보면 알게 되겠지.”

    나는 옆에 놓인 캡슐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띠링!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당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익숙한 알림음.

    나는 발끝에 닿는 감각을 느끼며 눈을 떴다.

    “역시.”

    나는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보인 튜토리얼 탑의 모습.

    그것은 15년 전 나의 기억 속에 있었던 것과 완전히 똑같았던 것이다!

    “단순한 꿈이 아니었어.”

    입술을 깨물었다.

    70,000시간의 플레이.

    나를 겜창으로 만든, 끝내는 파멸하게 만든 게임 데우스 엑스 마키나.

    물론. 폐인 겜창 인생을 산 것은 나 자신의 잘못이다. 누굴 탓하랴?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 다를 거야!”

    나는 이를 악물었다.

    15년 전 과거로 돌아왔다. 또다시 주어진 기회.

    이번에는 정말로 전의 삶처럼 살지 않으리라!

    전의 삶에서는 순수하게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 플레이했다.

    그러다가 인생이 망하는 바람에 누구보다 순수하지 못하게 게임을 플레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생은 다르다. 게임 속 모든 기연, 아이템, 히든 피스를 모조리 씹어 먹고 정점에 설 것이다. 그때가 돼서야 순수하게 게임을 즐겨 주리라.

    “근데……내가 본 미래가 어디까지 맞아 떨어지려나 모르겠네.”

    나는 약간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튜토리얼의 탑 위치나 외형 등은 모두 기억과 같았지만, 당장 내용물이 달라졌으면 어쩌나?

    막상 내가 지난 15년간 플레이 해 오던 게임과 전혀 다른 게임이면 어쩌지?

    그러나.

    그런 걱정은 튜토리얼의 탑 1층의 문을 여는 즉시 사라졌다.

    위잉-

    귓전을 스치는 불쾌한 소음.

    착!

    나는 재빨리 인벤토리에서 목검을 꺼내 손에 쥐었다.

    -<튜토리얼 목검> 한손무기 / D

    튜토리얼 존에서만 쓰이는 목검

    -공격력 +10

    -파괴불가 (특수)

    -튜토리얼 존을 떠나면 자동 파괴 (특수)

    옵션이 좋은 아이템은 아니지만 지금 기댈 구석은 이 목검뿐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소음의 진원지를 바라보았다.

    윙윙윙윙-

    눈앞에 나타난 것은 사람만 한 사이즈의 거대 말벌이었다.

    “역시나.”

    쾌재.

    눈앞에 있는 대형 벌은 나의 기억 속에 있던 튜토리얼 몬스터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살육 벌> -등급: D / 특성: 독, 벌레, 군락

    -크기: 1m.

    -서식지: 전 대륙.

    -덩치는 크지만 느린 벌. 날개를 움직이는 속도조차 느려 높이 날 수도 없다.

    양 앞다리와 꽁무니에 붙어 있는 송곳 끝에는 맹독이 감돌고 있다.

    쪼렙 시절 수없이 잡았던 몬스터다. 이놈을 잡는 것은 컵라면을 끓이는 것만큼이나 쉽고 익숙한 일.

    퍽-

    발에 힘을 주고 도약하자, 이내 몸이 작살처럼 쏘아져 나간다.

    35살의 썩어 가던 몸으로는 결코 낼 수 없는 몸놀림. 몸이 젊으니 게임 속 캐릭터도 절로 젊어진 듯했다.

    살육 벌은 갑자기 튀어나오는 나의 움직임에 크게 당황한 듯 보였다.

    빠각!

    나는 목검으로 벌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터질 것 같은 손아귀, 느껴진다, 묵직한 반동, 이 타격감, 전율!

    모든 것이 기억 속 그대로다!

    붕-

    벌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 앞다리의 송곳을 휘둘렀다.

    하지만 나는 이미 송곳이 날아들 줄 예측하고 고개를 숙여 피했다.

    ‘이놈의 급소는……목덜미였지?’

    타격점이라도 해서 다 같은 타격점이 아니다.

    무기의 공격력과 근력 스텟으로 인한 힘을 100% 발휘하기 위해서는 몬스터의 급소를 노릴 필요가 있다.

    살육 벌의 경우에는 목덜미가 바로 그곳이다.

    경추와 대가리가 만나 이어지는 삼각형 모양의 등갑.

    그곳의 밑변을 날카로운 것으로 찌르면.

    와긱-

    단단한 외골격이 너무나도 쉽게 쪼개졌다. 목검에 강타당한 경추가 으깨지며 질척한 체액이 터져 나온다.

    우직-

    나는 손으로 벌의 날개를 잡아 찢어 버렸다.

    이 벌의 날개는 결이 가로로 나 있기 때문에 세로로 찢으면 질겨서 잘 찢어지지 않는다.

    결을 따라 가로로 찢어야 놈의 날개를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놓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도 숙련된 조교만이 알 수 있는 꿀팁.

    벌은 땅에 떨어져 뒤집힌 채로 바둥거리기 시작했다.

    날개는 가로로 찢어져 있었기에 몸에서 떨어져 나가지는 않았지만 이미 제 구실을 못할 만큼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여섯 개의 다리를 활짝 벌리자 놈의 부드럽고 통통한 배가 보인다.

    푹!

    나는 가차 없이 목검을 찔러 넣어 말벌의 배를 터트려 버렸다.

    왈칵-

    내장들이 쏟아진다. 19금 필터링을 설정하면 잔인한 장면은 흐릿하게 뭉개져 보이겠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디 보자, 이놈이 주는 아이템은…….”

    나는 고개를 숙여 벌의 시체에서 아이템을 수거했다.

    -<살육 벌의 송곳> D

    지독한 마비독이 묻어 있다. 등급과 레벨을 무시하고 적을 1초간 마비시킨다.

    “예상대로야! 전부 내 기억대로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나의 플레이를 누군가 봤다면 아마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D등급 몬스터라고 해도 1레벨에게 이렇게 쉽게 사냥당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기본적으로 이 세상의 몬스터라는 것은 지독하게도 강하게 설정되어 있어서 살육 벌을 잡기 위해서는 적어도 5분 정도는 때려야 한다.

    그것을 나는 3초도 되지 않아 해치워 버린 것이다.

    실로 경이로운 사냥 속도였다.

    물론 벌의 급소를 정확히 알고 있는데다가 같은 몬스터를 수없이 반복해 사냥한 결과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가능하다! 가능해!’

    나는 입술을 깨물고 목검을 쥐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앞으로 전진했다.

    천천히 걷던 나는 이내 뛰기 시작했다.

    비틀거리던 걸음걸이는 어느덧 안정되어 있었다. 몸은 마치 바람을 탄 듯 빠르게 움직였다.

    현실의 육체와 가상의 육체 사이의 괴리감이 아예 없어지다시피 한 듯했다.

    하기야 지난 15년간 밥만 먹고 이 게임만 했으니 그럴 법도 한 일.

    가상현실 게임에 처음 들어오는 뉴비들이 이 광경을 봤다면 아마 좌절해서 바로 게임을 접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튜토리얼의 탑은 1인용이었기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       *

    나의 기억에 의하면 튜토리얼 존은 탑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총 10층으로 구성된 이 탑을 모두 오르면 레벨 10이 되고 본격적으로 메인 월드로 넘어가게 된다.

    한 층을 오르면 그때마다 젠 되는 벌의 숫자가 늘어난다.

    1층에는 벌 한 마리. 2층에는 벌 두 마리……9층에는 벌이 아홉 마리.

    레벨 역시 한 층을 오를 때마다 순조롭게 늘어났다. 레벨 5정도가 되면 튜토리얼 탑을 무리 없이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막 벌 아홉 마리를 사냥한 뒤 10층의 포탈 문을 여는 순간.

    -띠링!

    익숙한 알림음이 뜬다.

    <튜토리얼 9층 최단 시간 클리어.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셨습니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

    나는 잠시 멈칫했다.

    나는 고인 물이긴 했지만 히든 피스나 각종 특전들과는 거리가 멀었었다. 공략을 참고해 가며 탑 티어들의 행보를 뒤따라 가기에도 벅찼던 실력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이름을 남겼다.

    ‘고인 물’

    내가 이름을 남기는 순간,

    또 한 번의 알림음이 들려온다.

    [10층의 보스 난이도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선택 가능한 보스 등급: D, C, C+]

    “어라?”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전 기억에서는 겪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떤 랭커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지. 튜토리얼의 탑 속에는 수많은 히든 피스랑 특전들이 숨겨져 있다고.’

    누가 말했는지는 불투명하지만 아무튼 기억이 그렇다.

    나는 신중한 표정으로 선택지를 살폈다.

    아무래도 신기록을 경신한 소수에게만 지급되는 특전인 모양.

    원래라면 D등급의 몬스터 열 마리, 혹은 D등급보다 10배 강한 C등급의 몬스터 한 마리가 나와야 한다.

    일반적으로 몬스터는 한 등급 당 10배로 강해진다.

    즉 C+급 몬스터는 D등급 몬스터인 살육 벌보다 적어도 100배 이상 강하다는 뜻.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튜토리얼 마지막 단계에서 갑자기 이렇게 난이도를 수직으로 올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스의 등급이 C+로 상향 조정됩니다.]

    나는 거침없이 C+등급의 보스를 골랐다.

    지난 15년간 고이고 고이다 못해 썩어 버린 물이다.

    그동안 A급 몬스터, A+급 몬스터도 수없이 잡아 왔다.

    S급 몬스터와 일전을 겨룬 적도 있었다.

    ‘고작 C+등급 따위의 몬스터에게 기가 눌려서야 쓰나.’

    나는 10층, 튜토리얼 존의 끝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향해 히죽 웃어 보였다.

    고이고 고인 물.

    썩은 물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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