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나는 고인 물이다 (1)
고인 물.
게임 폐인들을 일컫는 신조어이다.
오래된 게임들은 더 이상 뉴비들이 유입되지 않아 올드비들에 의한 ‘그들만의 리그’로 변해 버리곤 한다.
이것이 물이 고여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물이 유입되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해서 생겨난 단어가 ‘고인 물’이다.
이 고인 물은 시간이 지나면 더욱더 안 좋은 상태로 변해 버리게 된다.
이들은 ‘썩은 물’이라고 불린다.
…그렇다.
바로 나처럼 말이다.
“X발, 또 깨졌네.”
한 달 치 생활비를 몽땅 털어 산 가챠 랜덤 박스가 모조리 꽝나자 입에서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온다.
이어진.
나이 서른다섯.
무직. 겜창.
나는 흔히들 말하는 ‘썩은 물’이다.
15년 전에 등장한 가상현실 게임 ‘데우스 엑스 마키나’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이 게임에 빠져들었고 내 인생 전부를 내다 바쳤다.
내가 딱히 드문 케이스는 아니었다. 당시에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줄임말인 ‘뎀’과 ‘아저씨’를 합친 ‘뎀저씨’라는 신조어가 유행할 정도였으니까.
가족도 필요 없고 친구도 필요 없었다. 이 게임에서 최고가 되고 싶은 욕망만이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처음에는 좋았다. 괜찮았다. 탑은 아니었지만 꽤나 선두에서 달렸다.
그러다가 공격대의 대장도 하고 한 길드의 마스터도 해 봤다. 변방 성의 성주가 되었던 적도 있었다.
그때 성에서 거둔 세금만으로 먹고 살 수 있었을 때 그만했어야 하는데…….
“…하.”
지금 내 처지를 보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캄캄한 반지하 원룸. 게임 캡슐이 들어가면 꽉 차는 공간이다.
게임 캡슐은 마치 관짝 같아서 여기에 누워 있노라면 내가 있는 곳이 방인지 무덤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때 그 새끼를 믿으면 안 되는 거였는데…….”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알고 지내던 동생이 BJ활동을 한다며 내 아이템을 빌려 달라고 했을 때, 나는 거래창을 날리는 게 아니라 아구창을 날렸어야 했다.
BJ동생은 내가 빌려 준 무기를 끼고 사냥터를 활보하다가 적대 길드의 사냥꾼에게 당해 죽었고 내가 빌려 주었던 아이템을 떨궈 버렸다.
나는 그 날려버린 아이템을 메꾸기 위해 모든 걸 다 했지만……결국 잘 안 됐다.
급기야, 사채에까지 손을 대고 말았다.
나는 사채업자에게 받은 돈을 모조리 게임에 부어서 꽤 좋은 칼을 하나 샀다.
그리고 그것으로 고렙 몬스터들을 잡아 얻은 잡템을 내다팔아 사채 이자를 갚아 나갔다.
“사냥으로 잡템 모으면 사채 이자는 갚을 수 있어. 대박 뜨면 원금도 회수할 수 있을 거야.”
이러다 좋은 아이템 하나 떨어지면 서서히 원금도 줄여 나갈 수 있겠지.
하지만.
출시된 지 15년이 넘은 게임의 화폐가치는 가면 갈수록 떨어졌다. 맨 처음 10:1이던 비율은 20:1, 30:1, 종국엔 100:1까지 떡락했다.
동시에 실제 세상의 물가는 날이 가면 갈수록 높아지기만 했다.
고렙 몬스터를 잡고 얻은 잡템으로 사채 이자를 메꾸는 것은 점점 힘들어졌다.
감가상각이 명확했으니까.
결국.
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채 빚을 끌어다 써서 산 무기 ‘집행하는 검’
이것에 강화석을 발라 강화 수치를 높인 뒤 되파는 것이다.
“10강화. 10강만 되면 노 난다.”
10강이 뭔가? 7강만 되어도 원금 회수가 가능하다.
내가 막 아이템 강화소로 가고 있을 때.
[어이, 이어진이.]
게임 상에서 메시지가 날아온다.
‘윽…….’
나는 절로 미간을 찌푸렸다.
사채업자가 메신저로 말을 걸어온 것이다.
[너 뭐 딴 생각 하는 거 아니지?]
강화소로 가는 날 보자 사채업자도 불안했던 모양이다.
나는 침착하게 대꾸했다.
“거 푼돈 조금씩 벌어서 언제 원금 다 갚습니까? 남자 인생 한방 아닙니까?”
[자, 잠깐만. 너 극단적인 선택 하지 말고. 좀 침착해.]
사채업자 놈이 어째 나보다 더 당황하는 것 같다.
나는 놈의 말을 씹은 채 강화소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내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아이템 ‘집행하는 검’을 강화 시술대에 올려놓았다.
“후……7강. 7강만 떠도 원금은 건진다.”
나는 크게 심호흡한 뒤 강화석을 들어 칼에 발랐다.
-띠링!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집행하는 검 +1’이 생성되었습니다!
시작부터 느낌이 좋다. 쫄보들이었다면 강화 실패 확률이 급격하게 올라가는 3강부터는 강화석에 손도 못 대겠지만……이럴 때는 못 먹어도 고!
“가자!”
나는 연달아 강화석을 발라 댔다.
-띠링!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집행하는 검 +2’이 생성되었습니다!
-띠링!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집행하는 검 +3’이 생성되었습니다!
-띠링!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집행하는 검 +4’이 생성되었습니다!
-띠링!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집행하는 검 +5’이 생성되었습니다!
필 쏘 굿!
대박 예감이다. 강화석을 스트레이트로 발라서 그런가 운 좋게 5강까지 한 방에 왔다.
역시 도박은 기세가 절반!
+5강만 되어도 사냥은 훨씬 쉬워진다.
나는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여기서부터는 고비다.
+6강부터는 정말 잘해야 한다.
터질 확률이 수직으로 상승하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하느님, 예수님, 부처님, 옥황상제님, 오딘님, 알라님, 마호메트님, 제우스님, 오벨리스크님, 조로아스터님, 마리아님, 봉인된 엑조디아의 왼팔, 오른팔,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님! 제발 나에게 힘을!’
나는 내가 살아오며 이름을 들어 본 모든 신들에게 맘속으로 기도했다.
‘나에게 힘을 빌려 줘!’
동시에,
“가즈아!”
나는 강화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띠링!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집행하는 검 +6’이 생성되었습니다!
나는 쾌재를 부르고 나서 식은땀 한 방울을 훔쳤다. 게임 속이라 땀이 날 일은 없지만, 그래도 버릇이 된 손동작이다.
“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
나는 속으로 빌고 또 빌며 일곱 번째 강화석에 손을 가져갔다. 이 기세를 몰아야 한다. 주춤하면 될 것도 안 된다.
“제발……그아앗! 가즈아아!”
애초에 살아오면서 이렇게 뭔가를 간절하게 빌어 본 적이 없다. 이 정도 지극정성으로 빌었다면 세상에 안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 정도 간절함이라면 삼신할매도 감격해서 날 임신시켜 줬을지도 몰라.
나는 온 우주의 기운과 처절함, 간절함을 모아 강화석을 발랐다.
그리고.
-띠링!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집행하는 검 +7’이 생성되었습니다!
이 메시지를 듣는 순간.
나는 전신의 맥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오싹한 전율이 내 전신을 휘감는다.
“끼얏호!”
나는 목청껏 소리 질렀다.
-띠링!
사채업자 놈이 메시지를 보내온다.
[야, 뭐야? 뭐야? 된 거야? 어이 이어진이, 너 강화소 갔다며? 뭐야? +5강이라도 뜬 거야? 대답 좀 해 봐!]
이딴 새끼 이제는 안 무섭지!
+7강 집행검이 뜬 이상 옵션 경매에 팔아 버리고 원금 상환 하면 그만.
그럼 이제 대등한 사회인 대 사회인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쫄 필요 없어 이제!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7강이 된 칼이 나를 반긴다.
전과는 달리, 몰라보게 강해진 내 칼이다.
이거라면 더 상위 등급의 몬스터를 잡아 돈을 벌 수도 있을 것이다.
굳이 원금상환을 지금 할 필요 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새 출발 하는 거야.”
나는 눈물 콧물이 범벅된 얼굴로 칼을 쓰다듬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잠깐. 그럼 이 칼을 팔면. 난 뭐가 남는 거지?’
그렇다.
이 칼을 팔아도 겨우 사채 원금만을 갚을 수 있을 뿐이다.
죽도록 노력해서 겨우 0.
그러고 나면 내게는 뭐가 남나?
나이 서른다섯, 남들은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 대리, 과장 등의 직함을 명함에 새기고 있을 나이.
할부 낀 차, 융자 남은 집, 토끼 같은 마누라와 곰 같은 자식.
어설프지만 갖출 것들은 다 갖추고 있을 나이 아닌가.
하지만 나는 게임 폐인에 불과하다. 아무것도 없는.
‘이제 와서 텅 빈 손으로 다시 뭘 할 수 있을까?’
그 생각이 들자, 나는 강화소를 나가려던 발을 멈춰 세울 수밖에 없었다.
순간, 무서운 생각이 뇌리 속에 똬리를 튼다.
‘한 번만 더 할까?’
+7강이 한 방에 성공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뭔가 되는 날 같다.
+7강과 +8강의 시세 차이도 어마어마하다.
+7강짜리를 팔면 사채 빚 원금 정도.
하지만 +8강짜리를 팔면 거기에 아파트 한 채는 얹을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망한 인생이었잖아. 지금 와서 무일푼으로 다시 시작해도 무슨 소용이 있나?’
어차피 마흔 다 되어 가도록 가족도 친구도 애인도 없는 망생이다.
빚만 청산한다고 해서 사람답게 살 수 있을 리는 없겠지.
돈이라도 있어야 어디 비빌 수 있을 게 아닌가?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강화 시술대 앞에 섰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나는 ‘집행하는 검 +7’을 놓고 강화석 하나를 더 집어 들었다.
그리고,
-띠링!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집행하는 검 +8’이 생성되었습니다!
아아, 글로리! 신이여! 당신은 정녕 존재하셨군요!
나는 두 주먹을 꽉 쥔 채 부르짖었다.
아아, 세상은 이토록 아름다운 것. 총천연색으로 반짝거리던 것이었다.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온다.
[어이. 이어진이, 그동안 고생 많았어. 축하해.]
한결 따듯해진 사채업자 놈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한데.
발걸음을 돌리자니 뭔가 아쉽다.
“…….”
나는 다시 한 번 내 손에 들린 칼을 내려다보았다.
‘집행하는 검 +8’
이거면 사채 빚을 모두 갚을 수 있다. 거기에 작은 주공아파트 한 채 정도는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딱 한 번.
딱 한 번만.
진짜 딱 한 번만 더 성공하면?
+9강.
0.00000012%의 확률.
아이템은 총 10강까지 강화할 수 있지만…
10강화는 특별한 주문서가 동봉되지 않으면 불가능했기에 사실상 9강이 한계점이다.
만약 ‘집행하는 검 +9’를 만들 수 있다면. +7강이나 +8강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부를 손에 넣게 될 것이다.
원금 회수는 물론이요 강남의 고급 아파트를 살 수도 있다.
그동안 소원해진 지인들과의 관계도 모두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인생의 전성기, 가장 젊고 가장 찬란했던 그 시절보다도 더욱 더 짱짱한 시기가 찾아오는 것이다.
‘그래. 오늘은 뭔가 되는 날이다!’
나는 한 번 더 강화 시술대 앞에 섰다.
+9강. 게이머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 보는 경지.
평민들이야 꿈만 꾼다지만, 나는 직접 여기 이렇게 서 있지 않은가?
게임 속에 전설처럼 떠돌아다니는 +9강 무기는 이렇게, 되는 날, 되는 놈의 손에 의해서 탄생하는 것이었다.
그걸 나는 이제야 알았다.
나는 특별하고, 또 특별하다. 오늘은 뭘 해도 되는 날인 것이다.
“가즈아아아아아!!!!”
나는 거침없이 강화석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칼에 가져다 대고 발랐다.
키융-
강화가 이루어지는 소리.
눈이 멀 듯 찬란한 빛.
꿈도 희망도 모두 내 손 안에 있다.
…….
정확히는.
있었다.
-쨍그랑! 강화에 실패하셨습니다. ‘집행하는 검 +8’이 파괴되었습니다!
순간.
나는 차가운 물이라도 한 바가지 뒤집어쓰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아…….”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내 눈앞에서 산산조각으로 변해 사라져 버린 칼을 보며. 나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게 현실이라는 실감이 들지 않는다.
왜 +9강 무기가 내 손에 없지? 오늘은 뭘 해도 되는 날이 아니었나?
뭐 돌려주는 것 없을까 해서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봤지만 강화 시술대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현실 도박에서 지면 개평이라도 조금 나눠 받겠지만, 여기서는 그런 것 쥐뿔도 없다.
[……이어진이. 너도 가자.]
사채업자 놈에게 온 음성 메시지를 듣자 무서운 현실이 피부에 와 닿는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드럼통 안에 들어가 시멘트로 반신욕을 하게 될까?
닭 사료 분쇄기 속에 던져져 대한민국 치킨업계의 무궁한 발전을 위한 초석이 되는 걸까?
내가 왜 그랬을까? 왜 분수도 모르고 설쳤을까?
+5강일 때 멈췄더라면 원금은 거의 갚았을 것이다. 수 년만 죽었다 생각하고 알바를 했으면 빚을 갚을 수 있었을 것이다.
+7강일 때 멈췄더라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겜창인생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를 위해 돈을 벌고, 주변 사람들도 돌아보는 건실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였는데…….
+8강일 때 멈췄어야 했다. 사채빚을 갚고 조그마한 아파트라도 들어가 열심히 살걸. 그러면 적어도 이 나이 대에 맞는 사람 구실은 했을 것 아닌가.
아니.
아니다.
아예 강화를 하면 안 됐다.
아예 사채를 썼으면 안 됐다.
아예 이 게임을 시작했으면 안 됐다.
“…….”
눈물이 비처럼 흘러내린다.
15년 전 이 게임이 처음 나왔을 때로 돌아간다면. 그렇다면 절대로 이렇게 살지 않을 텐데.
하지만 모든 것이 너무 늦어 버렸다.
나는 고인물이고, 이렇게 썩어 버렸다.
썩은 물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누군가의 몸속에 들어가도 그를 아프고 병들게 할 뿐이다.
‘망생(亡生)’
이번 생은 틀렸다.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주저앉은 그 순간.
“……어?”
눈에 보이는 풍경이 저 멀리 아스라진다.
머리가 빙빙 돌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로 인한 고혈압일까?
[돌-아-가-즈-아.]
귓가에 늘어지는 사채업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