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506화 (505/510)
  • <-- Acta est Fabula --> 『506』

    * * *

    그날부터 바르바토스와 나. 두 사람의 기묘한 생활이 이어졌다.

    바르바토스가 내 마왕성에 놀러와서 일주일이고 보름이고 틀어박힌 적은 꽤 자주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오랫동안 함께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중립적으로 표현해서 동거였고……조금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자아, 단탈리안. 오늘은 닭수프를 끓여봤어.”

    “…….”

    신혼생활.

    거의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봐도 엄청나게 맛있거든. 거의 예술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먹다가 죽어도 시체 처리는 안 해줄 거니까 천천히 먹으라고.”

    바르바토스가 없는 가슴을 당당하게 펴고 우쭐거렸다. 가끔 보면 이 녀석은 자기가 빈약한 가슴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누구든지 육덕진 몸매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도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너가 요리도 할 줄 알았냐?”

    “글쎄. 옛날에 전속 요리사가 그랬는데 요리는 감성이랬어. 마음을 담아 차근차근 만들면 어떤 요리든 맛있게 완성된다던데. 내가 마음을 듬뿍 담아서 만들었으니까 당연히 맛도 훌륭하겠지.”

    내가 접시에 담긴 치킨수프를 내려다보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색깔이 보랏빛을 띄고 있었다. 부글부글, 하고 국물의 표면에서 물거품이 터졌다. 도대체 향신료를 얼마나 집어 넣었는지 모를 정도로 기괴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솔직히 쫄았다.

    사람도 아니고 요리에 쫄아버린 적은 난생처음이었다.

    “마음이 아니라 살기를 담아낸 것 같다만…….”

    “아아앙? 지금 네 혓바닥이 존나게 고급스러워서 내가 손수 만든 요리 따위는 처드시지 못하겠다, 그런 얘기야?”

    유감스럽게도 치킨수프보다 훨씬 더 무서운 여자가 내 코앞에 있었다. 바르바토스는 언제 방실방실 웃었냐는 듯 표정이 급변했다. 전문 암살자조차 지금 바르바토스를 보면 똥오줌을 실례하고 말겠지.

    “당연히 차려줬으니 기쁘게 먹어야지. 딱 한 가지만 물어보자. 너 이거 간은 봤냐.”

    “뭔 소리야? 마음으로 요리했다니까.”

    간도 안 보고 자신의 첫 요리를 선보이는 사람이 여기 있었다.

    나는 부들부들 떠는 손으로 은수저를 쥐었다. 수저가 수프를 떴다. 물컹거리는 감촉이 실감나게 전달되었다. 소름이 돋았다.

    수프라기보다 푸딩, 그것도 끈적거리는 푸딩에 가까웠다. 바르바토스는 정말로 이것을 사람이 섭취 가능한 식품으로 인식하는 것인가. 각막이 손상되어도 단단히 손상된 게 분명했다. 아니면 뇌가 망가졌거나. 아무래도 후자에 가능성이 더 실리는군.

    “재수 없게 재지 말고 얼른 먹어.”

    “으읍!?”

    바르바토스가 이쪽의 수저를 억지로 움직였다. 나는 반항해볼 생각도 못 떠올리고 바르바토스한테 떠밀려 보라색 수프를 먹고 말았다. 두 눈을 질끈 감고 혓바닥으로 수프를 맛보았다.

    잠시 동안 끔찍하게 몰캉거리는 감촉이 혓바닥을 적셨다.

    “……의외로 맛있네?”

    “그치? 마음을 정성스럽게 담았다니까 그러네.”

    “감촉은 더럽게 참혹한데 진짜 맛만큼은 괜찮다…….”

    세계의 불가사의한 비밀을 엿본 기분이 들었다.

    바르바토스는 매일 한 차례 식사를 차렸다. 본인도 귀찮았는지 가끔은 밀빵에 치즈 덩어리만 달랑 올려두었다. 어차피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기에 나는 무시하려고 했으나, 지금 자기의 정성을 무시하는 것이냐며 노발대발 날뛰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접시에 치즈를 올려두는 것도 정성이라면 정성이었다.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바르바토스의 목적을 깨달았다.

    “오늘은 특별히 양고기 꼬치다. 만드느라 힘들었으니 감사히 먹도록.”

    “무슨 마법을 부리면 양꼬치가 녹색이 되는 건지, 원.”

    하루에 한 번이나마 식사를 함으로써 내 일과에 어떤 규칙성이 생겼다. 예전에는 하루이틀은 기본으로 정신을 잃었다. 수면을 취할 필요도, 무언가를 먹을 필요도 없었으니 그저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기본적으로 청소는 하고 살자, 이 화상아. 드러운 놈. 저택을 아주 먼지가 점령하고 있네. 콧구멍이 코딱지로 질식하지 않은 게 기특할 수준이야.”

    “설마 청소는 나보고 하라는 얘기입니까.”

    “그럼 내가 요리를 도맡고 있는데 청소까지 하랴. 조금만 더 있으면 나보고 엄마 거리면서 모유도 달라고 조르겠다, 야?”

    바르바토스가 찾아온 날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설령 정신을 잃더라도 꼭 한 번은 일어나야만 했다. 여기에 설거지와 청소, 빨래까지 더해졌다. 일과가 성립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멋대로 흘러가던 시간에서, 하루가 하루로서 차곡차곡 쌓이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곳에는 바르바토스가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도중에도.

    “단탈리안. 오늘도 나 안 그려?”

    “……짜샤. 그림 그릴 때 방해하지 말라고 부탁했잖아.”

    “허구한 날 다른 년들 초상화나 그리고 앉았으니까 말하는 거지. 이번에는 네 국무상서. 저번에는 라우라. 저저번에는 쌍년. 나는 대체 언제 그릴 예정인데.”

    “죄송합니다. 당점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을 취급하지 않습니다, 손님.”

    “악랄한 시체성애자 새끼.”

    바르바토스가 혀를 찼다.

    그러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오른 것일까. 그녀가 입가를 올렸다. 바르바토스는 캔버스에서 약간 왼쪽으로 비낀 자리에 서더니, 원피스의 어깨끈을 손가락으로 슬쩍 들어올렸다. 어깨는 부드럽고 가냘파 보여서, 조금이라도 힘을 주어도 부러질 것 같았다.

    “이건 어때.”

    원피스가 스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새하얀 나신이 드러났다.

    바르바토스는 단지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만으로 속옷을 입고 다니지 않았다. 창가에서 햇빛이 들어와서 그녀의 몸을 절반 가량 비추었다. 나머지 절반에는 조명이 없는 저택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늘의 군청색 속에서, 바르바토스는 환하게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

    그림자와 빛의 압도적인 대비에 한순간 숨이 멎었다.

    심장이 뛰는 박동이 느껴졌다. 바르바토스의 장난질에 핀잔을 주려고 했는데 차마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분하게도, 그녀는 내 시선을 완벽하게 잡아 끌었다. 농락당했다고 표현해도 좋으리라.

    바르바토스가 얄밉게 미소를 지었다.

    “바보야. 이래도 나 말고 다른 애 그릴 거야?”

    정말이지. 이런 수법에는 두손두발 전부 들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바르바토스는 거부할 수 없는 수단을 동원해서 조금씩 조금씩 나의 일과를 조정하였다. 정신을 차렸을 무렵에는 이미 아침에서 새벽까지 일정한 리듬이 짜여 있었다.

    우리는 똑같이 이른 아침에 기상했고, 같은 탁자에 앉아서 식사했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바르바토스는 바이올린이나 첼로를 연주했다. 그리고 잡다한 집안일이 끝나면, 똑같은 침대에 누웠다. 바르바토스는 조금 억지를 써서라도 내가 수면을 취하게 만들었다.

    “단탈리안!”

    물론 수면은 나에게 적대적이었다.

    정신이 흐릿해지면 나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스스로를 자해했다. 주변에 날카로운 물건이 있으면 단검이든 연필이든 잡아서 손등을 찍었다. 날카로운 물건이 없어도 손톱으로 생살을 찢었다.

    그럴 때마다 바르바토스가 내 몸을 강하게 껴안았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 내가 있으니까. 나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으니까. 응.”

    “…….”

    “단탈리안. 전부 괜찮아질 거야…….”

    발작은 몸이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제정신으로 깨어 있는 것보다 잠이 드는 것이 훨씬 더 괴로웠다. 나 자신이 한 명의 사람으로서 끝장났다는 사실. 이미 쇠락할 대로 쇠락했다는 사실만큼 쓰라린 일은 없었다. 의문의 여지 없이 나는 망가져 있었다.

    바르바토스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회복 따위는 불가능했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바르바토스도 마찬가지였다. 이백 년의 고통스러운 여행은 그녀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바르바토스는 가만히 있는데도 식은땀이 곧잘 흘렀다. 가끔 의식을 잃고 발광하기까지 했다. 내가 자해하는 방식으로 발작한다면, 바르바토스는 가슴이 들썩거리거나 괴로운 듯 신음을 흘렸다.

    “…….”

    그때는 내가 바르바토스를 꾹 안아주었다.

    바르바토스가 내게 그러했듯 나 역시 귓속말로 괜찮다는 말을 반복했다. 한 시간쯤 흐르면 바르바토스도 기력이 다하여 지쳤다. 매일 밤마다 여섯 시간에서 일곱 시간, 서로가 탈진하여 쓰러질 때까지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았다…….

    우리는 이미 지나치게 망가졌다.

    바르바토스에게도 나에게도 하루하루가 빠듯한 한계였다. 정신. 육체. 어디든 불쾌하게 삐꺽거리지 않는 구석이 없었다.

    “아. 오늘은 꽃이 예쁘더라.”

    그래도 우리는 필사적으로 정상을 연기했다.

    하루라도 더 버티기 위해서 일상을 조작했다. 평범한 생활을 영유하듯이 식사하고 산책하고 웃고 떠들었다. 말을 주고받았다. 살을 섞었다. 부끄러워하고, 욕설을 내뱉고, 토라지고, 어쩔 수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순식간에 1년이 흘렀다.

    우리는 아무런 언급도 꺼내지 않았다. 1년만 이곳에 머무르고 떠나겠다. 분명히 그런 약속을 나누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약속은 의미가 없을 터. 바르바토스도 나도, 당장 내일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바르바토스에게 속았다는 느낌도 적잖게 들었지만.

    이 세계에서 단 하루라도 더 살아 남겠다는 내 목적은, 지금에 이르러서 바르바토스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지탱되고 있었다. 바르바토스가 사라지면 나는 고작 사흘도 버티지 못해 자살하겠지.

    우리는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으며.

    다만 서로가 서로를 향해 무너지고 있었기에, 아주 잠깐, 상대방의 몸에 기대어서 버틸 수 있었다.

    약간의 유예.

    “단탈리안. 벚꽃이 피면 꽃놀이를 가자.”

    “수레에 술통을 잔뜩 실어서?”

    “역시 말이 통한다니까.”

    그 유예된 공백을 색칠하기 위해서 우리는 소리 없이 발버둥쳤다.

    뒷산에 벚꽃이 찬란하게 꽃필 무렵이면 우리는 항상 놀러갔다. 금세 연례행사로 자리잡았다.

    우리는 술을 통째로 가져가서 온갖 진상을 다 부렸다. 이백 년 전에 너와 내가 얼마나 멍청한 짓거리를 벌였는지 기억하냐며 낄낄거렸다. 둘이서 옷을 벗어 던지고, 벚꽃나무 아래서 어린애처럼 와락 뒹굴었다. 모든 것이 필사적인 요행이었다.

    힘겹게 2년을 버텼다.

    여름에는 개천에 뛰어들어 일대 물장난을 펼쳤다. 바르바토스는 웃기게도 수영이 영 잼병이었다. 발목을 붙잡고 물 밑으로 끌어 내리면 진심으로 무서워했다. 바르바토스가 무서워하는 모습은 극히 드물었기에 여러 번 시도했다. 그러니까 녀석이 발차기로 내 불알을 차버리기 전까지 말이다.

    가을에는 낙엽을 침대로 삼아 느긋함을 즐겼다. 온도조절이 걸린 모포를 뒤집어 쓰면 딱히 춥지도 않았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누워서 끝없이 하늘을 올려보았다. 말수가 적어졌고 대화가 드문드문 이어졌지만, 꼭 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겨울에는 벚꽃을 기다리며 조용히 저택에 머물렀다. 바르바토스와 내가 취미에 가장 몰두하는 계절이기도 했다. 바르바토스는 눈이 나빠져서 안경을 끼곤 했는데, 이상하게도 안경 낀 모습을 내게 보여주기 싫어했다. 여전히 알다가도 모를 여자였다.

    시간이 흘렀지만.

    봄으로, 여름으로, 가을로, 겨울로 흘렀다.

    5년을 버티지 못하겠지 싶었는데 자그마치 10년을 버텼다.

    늘어난 시간만큼이나 새로운 기억이 생겼다.

    다시 그것에 의지하여, 조금 더 버티기로 했다.

    우리는 많이 괴로워했고.

    자기도 모르게 많이 울었지만.

    그보다 더 많이 웃는 데 그럭저럭 성공했다.

    17년.

    우리 두 사람이 기적적으로 견뎌낸 시간이었다.

    “바르바토스.”

    “응, 단탈리안.”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손을 꾹 쥐었다.

    둘 모두 말하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이제 최후가 바로 등 뒤까지 다가왔다는 것을.

    ========== 작품 후기 ==========

    [리리플]

    NineBreaker// 저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이미지에 슬픔을 느낍니다.(...)

    얀데레고양이// 얍얍.

    마리오넷// 저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이미지에(이하생략).

    물ing// 예, 그렇습니다.

    드림스윗// 맞습니다. 순위권 단골손님들은 항상 그런 꼼수를!

    수천천사// 사실 바르바토스가 단탈리안을 처음으로 덮쳤을 때도 강간이나 다를 바가...

    Omicron// 믿어주십시오. 깨끗한 공백입니다.

    halem// 저 때문에 독자 여러분의 경계심이 야생의 맹수와 같이 날카로워졌군요. 책임을 느낍니다.(...)

    rrrt123// 히이이이익;

    오룔리// 파이몬이 죽었을 때만큼 충격을 받겠지요.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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