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500화 (499/510)

<-- 지키는 자 --> 『500』

이바르가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실수했다. 단탈리안 전하가 죽었다고 얘기하면 안 되었다. 설마 저토록 단호하게 단탈리안 전하의 의중을 간파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이대로 바르바토스를 처단할 수는 없었다. 지금이야 몰락했으나 명색이 평원파의 우두머리. 한때 합스부르크 제국 전체를 호령하다시피 한 거물이었다. 여기서 독단으로 바르바토스를 처분해버리면, 다른 마왕들이 납득하지 못했다.

‘잠깐만.’

이바르가 문득 사고를 전환했다.

‘이 넓디넓은 대륙에서 단탈리안 전하를 찾아내는 것이 가능한가?’

차라리 모래사장에서 하나의 모래알을 찾는 것이 쉬웠다. 단탈리안 전하가 어디에 있는지, 도시에 머무르는 것인지 시골에 머무르는 것인지, 아니면 아예 외딴 동굴에 틀어박혔는지, 바르바토스는 전혀 알지 못했다.

‘불가능하다.’

문자 그대로 불가능.

바르바토스가 부하를 조종한다면 또 모를까, 혼자서는 절대로 이루어낼 수 없었다. 문제는 어떻게 바르바토스에게서 마왕의 지배력을 앗아가는가. 아니, 지배력뿐만 아니라 그녀의 모든 긍지와 실력을 빼앗는가에 달렸다.

이바르의 입가에 악의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정말로 무엇이든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 예!”

바르바토스의 눈이 환하게 빛났다. 설득이 먹혔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저는 당신의 의지를 믿을 수 없습니다. 믿는다 하더라도 간단히 용납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알고 있겠지요.”

이바르가 차갑게 바르바토스를 쏘아보았다.

“데 파르네세 군무상서의 혓바닥에 놀아나서 실질적으로 단탈리안 전하를 파멸시킨 장본인은 당신입니다. 당신은 이미 한 번 단탈리안 전하를 죽였습니다. 덕분에 저도, 라줄리 국무상서도……모두가 전하를 잃게 되었어요.”

이바르가 오른발을 들어올렸다.

발바닥이 바르바토스의 머리를 꾸욱 짓눌렀다.

“나는 당신을 결코 용서하지 않아.”

“……읏.”

“당신의 경쟁심을. 독점욕을. 무지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아. 알고 있어? 단탈리안 전하께서 가장 사랑하신 여자는 당신이 아니야. 나도 아니지. 그분의 신뢰와 애정을 독차지한 사람은 언제나 라피스 라줄리였어.”

이바르가 오른발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바르바토스는 머리가 바닥에 박혔다. 마왕으로 태어난 이후 단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수준의 굴욕이었다. 같은 마왕도 아니고 한낱 마인에게, 그것도 시녀의 신분에 놓인 자에게 머리를 밟혔다.

“라피스 라줄리는 자살했다. 단탈리안 전하께서 아직 살아 계심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선택했어. 왜 그런 줄 알아? 그녀는 자신의 희망보다, 자신의 신념보다, 단탈리안 전하의 의지를 우선한 거야……단탈리안 전하께서는 자기가 죽었다고 생각해달라 부탁했어. 다시는 우리와 만나지 못해. 만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아.”

바르바토스는 치욕스러운 처사에도 아무런 반항을 하지 않았다.

그저 이바르의 발바닥이 그녀를 짓누르는 대로 노예처럼 수긍했다. 지금껏 지켜온 자긍심을 모조리 땅바닥에 버렸다. 그런 바르바토스를 쳐다보며 이바르가 입꼬리를 올렸다.

“라피스 라줄리는 전하의 요망에 전적으로 따라준 거야. 죽은 것으로 여겨주라고 부탁하셨으니까, 그 반인반마는 정말로 단탈리안 전하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 전하와 우리는 그 정도의 각오를 짊어지고 이 연옥을 연출하고 있어.”

이바르의 눈동자에서 살기가 번들거렸다.

그녀는 오른발을 들어서 바르바토스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저항할 수단도 의지도 없이, 바르바토스가 괴롭게 신음했다. 이바르 로드브로크는 폭력을 멈추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발길질이 끊임없이 바르바토스의 몸뚱어리를 쳤다.

“그런데 감히 너 따위가 전하를 만나겠다고?”

이바르가 이빨을 갈았다.

“나도, 라줄리도, 국무상서도, 어느 누구도 허락받지 못한 사치를―――하필이면 너 같은 원흉에게 허락해달라고?”

“죄송합니……으읏……죄송, 합니다…….”

“주제를 알아라.”

바르바토스가 신음을 억누르며 계속해서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구타에 의해 헛숨을 들이마시면서, 울음을 토해내면서, 어떻게든 사죄를 이어나갔다. 무자비한 학대는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멎었다.

“하, 아……으…….”

바르바토스는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약물과 고문에 의해 신체가 상할 대로 상했다.

정신이 들자마자 덮쳐온 폭력에, 바르바토스의 몸은 맥없이 널브러졌다. 헛구역질이 몇 번이나 일어나서 위액을 토했다. 위액에 핏기가 섞여 있었다. 그녀는 숨 쉬는 것조차 괴로웠다. 혼절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웠다.

“좋아. 허락해달라니 기꺼이 허락해주지.”

이바르가 바르바토스의 옆얼굴을 짓밟았다.

“하지만 단탈리안 전하께서는 이미 돌아가셨다. 사후의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당신 또한 한번 죽어야만 해. 당연한 조건이야.”

“…….”

“첫 번째 시험을 내려주마. 바르바토스. 너의 마나를 폭주시켜라.”

마나의 역류.

마법사로서 일생을 바친 자에게 죽음과 같은 형벌이었다. 심장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서클을 억지로 망가트린다. 그동안 일정하게 보조를 맞추면서 체내에 마나를 공급하던 서클들이 폭주하고, 제멋대로 방향과 속도가 일그러지면서 서로 충돌한다.

“지금 당장.”

일찍이 파이몬이 겪었던 고통이었다.

파이몬은 마나 역류로 인해 이천 년 간 쌓아올린 경지를 잃어버렸다. 바르바토스도 똑같은 처지로 전락하겠지. 심지어 그때 파이몬에게는 의료진이 달라붙었다. 반면에 바르바토스에게는 치료 따위 호화스러운 망상에 불과했으며, 이미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십중팔구, 마나를 역류시키면 죽음에 이를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바르바토스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최대한 비굴한 표정을 보여주기 위하여 억지로 입가를 움직였다. 바르바토스에게는 이미 그 정도 힘밖에 남지 않았다. 단지 기회를 내려주었다는데 감사하며 바르바토스가 말했다.

“잠시만……아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금방 끝낼 테니……단숨에, 끝내버릴 테니까…….”

이바르가 비웃음을 머금었다.

“모쪼록.”

그녀는 바르바토스의 신체를 구속한 마력봉인구를 풀어주었다. 이로써 바르바토스는 마력을 제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바르 로드브로크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녀는 현재 바르바토스의 상태가 얼마나 나쁜지 잘 알았다.

구속구를 풀자, 검은색의 마나가 바르바토스를 서서히 감쌌다. 짙은 그림자와 같은 것이 사지가 잘려나간 부위에 모여들었다. 그것들이 팔과 다리의 형태를 이루었다. 이윽고 검정빛 마나가 벗겨져 흘러내렸다. 살결이 새하얀 사지가 드러났다.

“하아……흐읍…….”

바르바토스가 두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최소한의 마력을 돌렸을 뿐인데도 숨이 벅찼다. 당장이라도 뱃속에서 무언가가 역류할 것만 같았다. 구역질로 인해 귀가 먹먹했다.

이바르가 싸늘하게 말했다.

“뭐하고 있습니까, 바르바토스 전하. 아직 시작도 안 되었습니다.”

“네, 잠시만……잠깐이면 끝나요…….”

“전하에게는 잠깐이라는 단어가 다소 특이하게 정의되어 있는 모양이군요. 우리 둘 사이에 오해가 없도록 제가 시간을 계산해드리겠습니다. 1분. 앞으로 1분 안에 마력을 폭주시키십시오.”

“…….”

주저할 시간이 없었다.

바르바토스는 심장 부근에 모인 마나에 집중했다. 몇 달이 넘도록 봉인구에 의해서 억눌러진 탓일까. 마나는 불안정하기 그지없었다. 대마법사로서의 지식은, 이런 상태에서 마력을 역류시키는 것은 자살이나 다름없다고 경고했다.

‘괜찮아.’

바르바토스가 심장에 걸린 여덟 개의 고리에 속삭였다.

‘응. 괜찮을 거야.’

그리고 바르바토스는.

눈을 감은 채, 여덟 개의 고리에서 제일 바깥에 있는 것을 의도적으로 잘라냈다.

“……!”

마력이 즉시 폭주했다.

바르바토스가 피를 토했다. 핏물에는 검붉은 덩어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어디의 내장인지, 바르바토스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오장육부가 비틀어지고 뼈가 비명을 질렀다.

“크, 흐으으……으으, 끄으읏……!”

바르바토스는 자신이 흘린 피웅덩이에 상반신이 고꾸라졌다. 안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몸을 떠받치던 팔뚝에서 힘이 완전히 빠져나갔다. 고통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길을 잃어버린 마나가 체내를 마구잡이로 헝클어트리며 쏘다녔다.

그녀의 머리 위로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떨어졌다.

“설마 그걸로 끝입니까?”

“읍, 하아아……흐윽…….”

“어쩔 수 없군요.”

이바르 로드브로크가 한숨을 쉬었다. 다분히 비아냥이 섞인 한숨이었다.

“좋습니다. 자비를 베풀겠습니다. 고리를 하나 제거하는 데 1분씩. 모두 다 합쳐서 8분의 시간을 드리지요. 자그마치 제한시간을 여덟 배로 늘려주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소녀의 배려에 조금은 의지가 생겨나는지요.”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바로 다음 차례로 넘어가시길.”

이바르가 이죽거렸다.

“벌써 1분은 다 지났습니다.”

“…….”

이런 고통을 앞으로 일곱 번이나 더 견뎌야 했다.

아니, 고리를 하나 풀어갈 때마다 고통은 중첩되었다. 두 배. 세 배, 네 배……. 바르바토스는 이빨을 물고 상반신을 일으켰다. 가느다란 팔이 바르르 떨렸다. 그런데도 바르바토스는 두 번째 고리를 단숨에 끊어냈다.

“아……!”

더 이상의 비명은 없었다.

식도를 거슬러 터져나온 핏물에 모든 소리가 묻혔다. 바르바토스는 숨을 쉴 수 없었다. 내장들이 찌그러졌다. 마왕의 회복력이 어떻게든 장기를 복구하려 들었으나, 회복력도 마나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엉망진창으로 날뛰는 마나 때문에 회복 자체가 끔찍한 고통을 더했다.

찢어지고, 회복되고, 다시 찢어지고, 회복되려고 하면 완전히 찢어 발겨졌다.

“……, …….”

입에서 쉴 새 없이 핏덩어리가 흘러나왔다.

이바르가 중얼거렸다.

“1분이 지났습니다. 다음.”

“…….”

세 번째 고리를 끊었다.

입뿐만이 아니라 귀에서 피가 흘렀다.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기에, 이바르는 말로 명령하는 대신 발바닥으로 바르바토스의 몸을 쳤다. 사전에 약속되지 않은 신호. 바르바토스는 지옥과 같은 고통 속에서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 알아들었다.

네 번째 고리를 끊었다.

피눈물이 흘렀다. 살갗이 터지면서 검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이제 막 생성되어 안정되지 못한 사지에서 주로 그러했다. 바르바토스가 품은 내장 중에서 어떤 것도 제 기능을 유지하지 못했다. 형태마저 잃었다.

마지막까지 심장이 견디다가 허물어졌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마침내.

여덟 번째.

“………….”

몇 번을 혼절했을까.

수십 번, 수백 번 의식을 잃어가면서도, 이바르가 몸을 툭 건드리면 바르바토스는 정신을 붙잡았다. 이미 막사는 바르바토스가 흘린 피로 흥건하게 젖었다. 자그마한 소녀의 체구에서 나왔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그 붉은색의 한가운데, 버려진 쓰레기처럼, 바르바토스가 파묻혀 있었다.

몸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호흡은 멈춘 지 오래.

단지 여전히 뱃속에서 날뛰는 고통의 감각으로, 아직 살아 있구나, 하고 간신히 깨달았다.

“팔 분은커녕 두 시간이 걸렸습니까. 한심한 노릇이군요.”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걷어찼다.

발길질에 그대로 떠밀려 바르바토스는 피웅덩이에 재차 엎어졌다.

“오늘은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제한시간을 한참 어겨버린 만큼, 첫 번째 시험은 성공도 뭣도 아닙니다. 다음 시험에서는 부디 바르바토스 전하의 진심을 보여주시길.”

발자국 소리가 멀어졌다.

바르바토스가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아까 전부터 시야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눈을 감아버리면 정말로 끝나버릴 것 같아서. 영원히 잠들어버릴 것 같아서, 필사적으로 눈꺼풀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약간의 휴식.

아주 약간의 휴식이 주어졌다.

“…….”

눈을 감자, 어째서인지 녀석의 얼굴이 떠올랐다.

‘단탈리안.’

바르바토스는 그 사람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고 싶었다. 간절하게.

하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생각도 이어나갈 수 없었다. 온몸이 피로 더럽혀진 채, 바르바토스는 까마득한 의식의 그림자로 떨어졌다…….

========== 작품 후기 ==========

[리리플]

NineBreaker// 바르바토스... ;ㅅ;

사실파괴// 사실파괴 님의 피는 무슨 색깔입니까.

한뫼사람// 이제 저는 변명을 포기했습니다...

asd메이지// 무엇을 숨기랴. 저는 조아라 로맨스 판타지의 팬이기도 한 것입니다. 특히 궁정물을 애정합니다. 로○마리, 귀족○가씨 같은 작품이 취향에 적중하지요. HAHA.

사리면// 단탈리안 ts라니... 저는 무섭고 두려워서 살 수가 없습니다.

물고기인간// 개그가 되어버리는 거군요. 알고 있습니다.

페르르// 표지는 강력했습니다.

no name//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래도 고통이 부족하지 않을까요...

산초나베// 얍얍.

NeoGGM// 욥욥.

500화라니. 믿기지 않는군요... ;ㅅ;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독자 여러분 덕택입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조금만 더 써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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