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471화 (471/510)

00471 악(惡)의 극본  =========================================================================

―――무슨 말을.

방금 아버님이 무슨 말을 한 것인가.

나는 얼굴이 굳었다. 머리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

아버님의 눈동자.

슬픔에 가득 찬 검은색 눈동자만이 나의 모든 시야를 차지했다. 1초가 흘렀다. 어쩌면 3초가. 아니, 어쩌면 1분이 침묵으로 흘렀다. 그제야 나는 아, 하고 소리를 내었다.

이러면 안 되었다. 무슨 일인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어찌되었든 이래서는 안 되었다. 어찌되었든. 왜냐하면 나는 지금 연기하고 있으니까. 아버님을 속여야 하니까.

반드시 그래야만 하므로.

“연기라니. 잠꼬대가 심하시군요.”

내가 입꼬리를 올렸다.

“아버님의 말씀은 원래부터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헛소리가 심했습니다만, 오늘따라 유독 헛소리의 농도가…….”

내 목소리가 점점 더 작아졌다. 아버님의 시선. 저 눈동자 때문에 목소리가 잦아들 수밖에 없었다. 목소리는 작아지다 못해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예 끊겼다. 뒤늦게 내 혀가 멈추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농도가 지독합니다. 의미불명이군요.”

나는 필사적으로 문장을 만들어서 내뱉었다.

“이제 죽을 때가 되었으니 아무런 말이나 주절거리는 건지요. 솔직히 양녀로서 보기 부끄럽습니다. 슬슬 그만해주셨으면 합니다.”

“…….”

아버님은 다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벌써 노망이 들어버리면 효녀인 제가 마음이 아파서 약해지지 않습니까. 만약 그게 아버님의 전술이라고 한다면 실망스러울 따름입니다. 하긴 아버님의 말씀은 원래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잠깐만. 이건 아까 전에 한 말이었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말았다. 실수였다. 이래서야 무대에 오른 배우로서 실격이지 않은가. 설령 똑같은 말일지라도 조금 더 다양하게 표현해야 했다. 괜찮았다. 문제없었다. 내 말솜씨를 따라올 인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버님은 옛날부터 그런 부분이…….”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해야 되는 걸까.

“…….”

입이 닫혔다.

나는 이빨을 꽉 물었다. 대검을 양손으로 강하게 쥐어잡았다. 이건 거짓된 수작이었다. 아버님이 내 연기를 알아차릴 가능성은 만에 하나라도 전무했다. 그런데도 연기를 운운하는 것은, 틀림없이 아버님의 계산된 책략에 불과했다.

직접 시험해보면 간단하게 알 수 있다.

나는 대검을 높이 치켜들어 아버님을 향해 내리찍었다. 바알의 대검이 광풍을 몰아치며 쇄도했다. 칼날이 달려드는 곳은 아버님의 얼굴. 누가 봐도 내 검격은 허초가 아니었으며 내 살기 역시 거짓이 아니었다.

아버님은 분명히 나를 막아낼 방도를 세워뒀을 것이다.

즉, 아버님의 목이 잘리기 전에 무언가가 나를 제지하리라. 투명마법으로 몸을 감춘 암살자라든지. 미리 장치해둔 마법이라든지. 상세한 내막이야 알 도리가 없었지만 그것과 비슷한 무언가가, 아버님의 계략에 어울릴 만한 무언가가 준비되었을 게 확실했다.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내가 휘두른 대검이 점점 더 아버님의 몸에 가까워졌다.

“…….”

아버님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여전히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요, 아버님. 제 검은 틀림없이 아버님의 목을 도륙낼 것입니다. 피하시지 않으면, 막으시지 않으면 바로 다음 순간에 죽어버리고 맙니다. 단순한 죽음이 아닙니다. 당신의 사랑스러운 연인들을 파멸로 몰고 간 원수에게 죽는 것입니다.

칼날이 더더욱 가까워졌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님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내 검을 막으러 뛰쳐나오는 인물이 없었다. 내 몸을 제지하러 발동하는 마법도 없었다. 궁병들은 그저 멀리서 활시위만 붙들고 있었다.

뭐하는 것인가.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로 아버님이 죽는다. 너희의 임무는 아버님을 지키는 것 아닌가! 어서 나를 막아라. 아버님을 사수하라. 그렇지 않으면―――.

이제 칼날이 아버님의 얼굴에 거의 다다랐다.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나아가면, 대검은 거침없이 아버님을 베어버릴 터.

“읏……!?”

내가 필사적으로 검을 멈추었다. 양팔에 사력을 다하여 어떻게든 동작을 정지시켰다. 억지로 칼날을 거두어들인 탓일까. 안 그래도 화살에 날카롭게 베인 양쪽 팔뚝에서 핏줄이 터졌다.

아직 부족했다. 이대로는 칼날이 완전히 멈추기 전에 아버님의 목에 닿아버린다!

‘안 돼!’

나는 온몸을 비틀었다. 여태까지 일부러 힘을 주지 않았던 허벅지와 종아리도 지금 순간만큼은 아끼지 않았다. 상처가 핏물을 왈칵 뱉었다. 고통을 뛰어넘어 격통이 전신을 찔렀다.

그렇지만, 상관없었다.

아버님만 무사하다면 내 몸 따위는 어찌되어도 괜찮았다.

‘제발……!’

염원이 통한 것일까.

대검은 정확하게 아버님의 목에 닿기 직전, 멈추었다.

다만 완전히 기세를 끊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주 살짝 칼날이 아버님의 살갗을 스치듯이 베었다. 붉은 핏방울이 살에서 흘러나와 내 대검을 따라 주르륵 흘렀다.

“아…….”

나는 망연하게 입을 열었다.

정말로 대검이 자신의 목을 그어버릴 뻔했는데도 아버님은 피하지 않았다. 한없이 새카만 눈동자로 내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아버님의 시선은 촘촘한 그물망이 되어 나를 사로잡았다.

“어째서…….”

나는 손가락 하나조차 까닥거릴 수 없었다. 혀를 움직이는 것이 고작이었다.

“어째서, 피하지 않는 겁니까.”

“…….”

“정말로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왜, 어째서…….”

“데이지.”

그때였다.

아버님이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깜짝 놀라서 대검을 거두었다. 자칫 잘못하다 대검이 아버님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아버님은 더 걸어와서, 나를 양팔로 꾸욱 안았다.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아버님의 품속.

듬직하다기보다 허술하고,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야윈 몸이 내 몸을 감쌌다. 아버님은 허리를 살짝 구부려서 나를 안았다. 그 딱딱하고, 부드럽고, 빗물에 젖은 것처럼 축축하며, 비좁지만 충분히 넓은 틈 속에서―――한 줄기 목소리가 간신히 새어나왔다.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아.

“내가, 나란 녀석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랑받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 그러니까 너에게 증오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그래야만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아아, 아―――.

입술이 떨렸다.

몸의 모든 신경이 비명을 질렀다.

이럴 수는 없노라고.

이래서는 안 된다고.

그건 세계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절대로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 어떠한 희생을 치러서라도 반드시 막아야만 하는 재앙이 펼쳐지고 있었다. 내 오른손에서 검이 힘없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그걸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데이지. 나 때문에 너가 모든 짐을 짊어졌구나. 내가 절대로 짊어지지 못하는 것을 너가 대신해서 맡으려고 했어.”

“아……아아아…….”

“미안하다.”

무언가가 내 뺨에 흘러내렸다.

그건 나의 눈물이 아니었다. 아버님이 흘린 눈물이었다.

언제 어디서라도 나에게 강한 모습만을 보여준 아버님이, 나를 껴안은 채 숨 죽여 울고 있었다.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지. 그저 눈앞에 보이는 것만 믿어서. 인간에게는 원래 그런 것 따위 존재하지 않았는데, 허상에 불과한 것에 눈이 사로잡혀서, 너를 그대로 바라보지 않았어. 전부. 전부 내 잘못이야…….”

아니다.

그게 아니다.

내가 당신의 입에서 듣고 싶었던 것은 미안하다는 사과가 아니다.

나는 당신에게 죄책감을 안겨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왜 사과하는 것인가. 아버님, 왜 또 무언가에 사과하고 있나요. 아버님은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사과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쪽은 이 세계입니다!

당신에게 살인을 저지르도록 강요했습니다. 학살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삶에 내팽개쳤습니다. 그런데 왜 아버님이 책임을 져야 하는 건가요. 왜 모든 것이 아버님의 잘못으로 귀결되는 것입니까.

그런 건 이상합니다.

잘못되었습니다.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까, 저는.

저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나 같은 건, 처음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

내가 다급하게 아버님의 가슴을 밀쳐냈다.

“무슨 소리입니까……!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겁니까!”

“…….”

“아버님은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요! 잘못된 것은 세상입니다. 아무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고, 아무도 똑바로 마주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디에도 뚜렷한 사람이 없습니다. 시체가 썩은 냄새밖에 없어요. 그런데, 왜 아버님만이 모든 걸 짊어져야 하나요!”

절규했다.

어느새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저에게 사과하지 말아주세요!”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구겨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버님에게 마지막으로 기억될 얼굴 정도는 아름답게 남기길 원했다. 그렇기에 용병들의 장막을 베어 넘기고 필사적으로 돌파하는 와중에도, 얼굴만큼은 상처가 나지 않게 힘껏 노력했다.

“제발, 자책하지 말아주세요……!”

영혼이 찢어지는 통각.

아버님에게 내 연기가 간파당했다.

나의 극본이 실패했다.

“……!”

그리고 나는 이 순간, 아버님이 무엇을 할지 깨달았다.

이제 아버님은 나를 증오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어떻게 하겠는가. 아버님이 자신의 신념을 포기할까? 자기가 학살한 목숨들을 더 이상 책임지지 말자고 결심할까? 그리고, 자신을 알아봐준 나와 함께 비록 비참하게나마 이 연옥을 견디려고 할까?

그럴 리 없었다.

아버님은 나를 죽일 것이다.

나를 죽임으로써 자신을 다시금 가해자의 역할에 올려놓을 것이다.

“안 돼요, 아버님……그것만큼은 안 돼요!”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파이몬을 죽인 것만으로도 넝마짝이 되어버린 아버님이었다. 여기서 나까지 죽인다면? 더군다나 내가 죽고 나서는 바르바토스마저 살해하실 게 분명했다. 아버님은 한꺼번에 나라는 이해자와 바르바토스라는 동반자를 잃게 된다!

내가 재빠르게 바알의 대검을 땅바닥에서 쥐어들었다.

나는 아버님을 향해 칼 끝을 내밀었다. 이미 쓰레기처럼 힘이 빠져버린 내 오른팔이 부들부들 떨었다.

“아버님은 그걸 견디지 못합니다……!”

그렇다.

아버님은 결코 견딜 수 없다.

스스로 파멸해버릴 것이다.

“그런 결말을 허락하느니, 차라리……!”

덜컥 목이 메였다. 나는 마저 말을 이으려고 했지만 목이 막혔다.

차라리, 내가 아버님을 죽인다.

아버님을 지옥으로 떠나보내는 대신 평안한 안식을 선사하겠다.

괜찮다.

문제없다.

어차피 아버님을 죽이고서 나도 곧바로 자살할 것이다. 아버님을 혼자 보내서야 면목이 서지 않으니까. 저래 봬도 아버님은 길을 헤매는 것이 특기였다. 내가 옆에서 안내해주지 않는다면 제대로 가시지도 못하겠지.

“…….”

“…….”

아버님과 나 사이에 기묘한 대치가 이루어졌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대검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했다. 아버님에게는 아무런 무기가 없었다. 그런데도 오히려 불리한 것은 이쪽이었다. 나는 자신의 불리함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더욱 더 살기를 피워냈다.

아버님은 나를 죽이고 싶지 않으면서 죽이려 하고.

나는 아버님을 죽이고 싶지 않으면서 죽여야만 했다.

아버님이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왔다.

내가 입술을 꾹 깨물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하다못해, 약속해주세요……바르바토스를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해주세요. 그럼, 그러면 저는 괜찮습니다……얼마든지 죽어도 괜찮으니까……!”

“…….”

그리고.

아버님은 슬프게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거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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