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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디펜스-443화 (443/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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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 병상에 눕고 열흘쯤 흘렀을까.

“흐악, 크아아아아악!”

“조용히 하십시오. 핏물이 옷에 튀기지 않습니까.”

나는 암스텔에서 저택을 하나 빌려 포로들을 고문하고 있었다. 아버님이 저택에 머무르는 동안, 각국의 첩자들이 몰려들어서 저택을 감시했다. 그중에서 합스부르크 공화국의 간자들이 특히나 악질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정보를 빼내려고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들었다.

이번에도 엘리자베트 통령이라는 여자가 보낸 것이겠지.

그 여자는 아버님께서 유독 신경 쓰시는 여인이었다. 소문으로 듣자니 상당히 미인이라고 했다.

이름부터 조금 재수 없는 여자였다. 이건 편견이 아니라 단순한 사실이었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엘리자베트라는 이름이 왠지 모르게 싫었다.

“크하아아악!”

“아.”

고문을 하는 와중에 그만 강도를 잘못 조절했다. 포로가 실신해버렸다. 나도 모르게 꼬챙이에 힘을 줘서 생살을 과도하게 찢었다.

“죄송합니다.”

내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간만 조금 때어내려고 했는데 실수로 심장 부근을 건드렸습니다. 다음부터는 제대로 순서대로 고문하겠습니다.”

“……프……흐픕…….”

포로는 말이 없이 개거품을 물었다. 이래서 고문 도중에는 딴 생각에 잠기면 위험했다. 효율적으로 느긋하게 가지고 가야 할 자극을 순식간에 몰아넣고 말았다. 만약 평범한 포로였다면 즉사했겠지. 신체가 튼튼한 기사라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왜 합스부르크의 통령은 틈만 나면 암살자들을 파견하는 것일까요. 기사 씨. 혹시 그 여자는 당신들과 같은 사람들로 아버님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불가사의하군요.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일에도 정도가 있습니다.”

“…….”

“혹시 그 여자는 자신에게 아버님을 죽일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툭, 하고 손이 조금 미끄러졌다. 그러자 기절해 있던 남자가 두 눈을 부릅뜨면서 목청이 찢어지라 비명을 질러댔다.

“히끅, 하, 크하아아아악!”

“아.”

또 실수했다.

남자는 회생불가능한 상처를 입어버렸다. 어쩔 수 없었다. 여기까지 손상되면 제아무리 기사라 해도 회복하는 것이 어려웠다. 나는 내 부주의한 실수를 사과하는 의미로 이쯤에서 고문을 중단했다. 즉, 단검을 꺼내들어서 포로의 목에 쑤셔 박았다.

내가 고개를 재차 숙였다.

“죄송합니다. 당신은 처음부터 살려둘 생각이 없었습니다.”

“크릅, 크흐프륵……흑…….”

기사는 몇 번 피거품을 토해내더니 이윽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나는 물양동이에 손을 담가서 핏물을 씻어냈다. 그때까지도 남자는 경련이 멈추지 않았는데, 의외로 명줄이 길다 싶어서 목에 박힌 단검을 옆으로 비틀어주었다. 그제서야 남자는 완전히 사망했다.

나는 고문도구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그때 방문을 누군가가 두들겼다. 반사적으로 단검을 오른손으로 잡은 다음, 문을 노려보았다.

“누구입니까.”

“저입니다, 시녀장 님. 이바르입니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나는 단검을 품안으로 갈무리했다. 이바르 로드브로크는 내 직속 부하로서 약간 일처리가 어수룩했지만 무슨 일에든 의욕이 넘치는 후배였다. 하지만 가끔씩 아버님과 침실을 같이 쓴다는 점이 무척이나 분수에 어긋났다.

그래서 이바르가 막 시녀로 일하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짓궂게 장난을 쳐주었다. “저는 동성애자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이바르가 지은 표정은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그건 조금 훌륭했다. 지금도 그 얼굴을 떠올리면 아무런 반찬 없이도 딱딱한 빵을 먹을 자신이 있었다.

“들어와도 좋습니다.”

“예, 실례하겠습니다.”

이바르는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흠칫 표정이 굳어졌다. 방안에는 기사의 십이지장이 구불구불하게 널려 있었다. 내장이 풍기는 냄새 탓에 이바르는 움츠러든 것 같았다. 이제 슬슬 익숙해질 때가 되었는데 정말 어수룩한 아이였다.

“시녀장 님……그, 몸에 피가…….”

“저는 괜찮습니다. 어차피 갈아 입으면 됩니다. 그보다 무슨 일로 왔습니까? 제 허가 없이는 고문실에 들리지 말 것을 요구했을 텐데요.”

“주군 전하께서 상태가 위독해지셨습니다.”

가슴이 철렁했다.

다행히도 나는 어느 상황에서건 표정을 관리할 수 있었다. 눈썹이 살짝 매서워진 것 이외에는 얼굴이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다소 급해진 어조가 튀어나가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위독하시다는 것은.”

“소녀도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지금 다른 사람이 마법사와 사제를 급히 불렀습니다. 시녀장께서도 도움을 더해주실까 싶어서 제가 이곳에 왔습니다.”

“훌륭합니다.”

누가 판단했는지 몰라도 적절한 지시였다. 나는 의술에 문외한이었지만 각종 마취제와 환각제에 대해서 통달했다. 만일 아버님이 모종의 수술을 거쳐야만 할 경우, 나는 수술이 완벽히 편안하게 이루어질 환경을 마련할 수 있었다.

내가 방문을 나서면서 말했다.

“이럴 때가 아니군요. 먼저 옷을 갈아 입고 즉시 저택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이바르 양, 혹시 모르니 제 방에서 약품 가방을 갖고 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 마취제가…….”

――그때였다.

무언가가 내 머리를 강하게 때렸다.

나는 눈앞이 핑 돌면서 무릎이 꺾였다. 뒤통수가 욱씬거리는 것과 함께 급격하게 시야가 하얘졌다. 내가 이빨을 깨물고 허벅지에 숨겨둔 단검에 손을 가져간 순간, 다시 한 번 무언가가 내 정수리를 내리찍었다.

“아……?”

나는 본능적으로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그렇지만 손이 미끄러지면서 몸이 무너졌다. 얼굴부터 방바닥에 쓰러지면서 눈앞이 완전히 아득해졌다. 내가 내쉬는 숨소리조차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마지막 순간, 내가 떠올린 것은 이 사실을 아버님한테 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바르 로드브로크는 배신자.

누가 사주했는지 짐작할 수 없었지만 아버님의 왕성에 숨어둔 심장충이었다. 내가 어리석었다. 조금 더 주의 깊게 이바르를 경계해야만 했다. 아버님께서 신뢰하셨기에 나 역시 아무런 조건 없이 이바르를 믿어버렸다.

만약 이바르가 아버님을 속일 만큼 교활한 첩자라면.

그녀를 마지막으로 의심할 수 있는 인물은 나밖에 없었는데도.

“……아버, 님…….”

내 시야가 암전되었다.

이 다음에 내가 눈을 뜬 곳은 마왕성의 지하감옥이었다. 나는 벽면에 사지가 결박되어 있었다. 시험 삼아서 팔을 움직여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눈앞에는 라우라 데 파르네세 군무상서가 서 있었다.

“이제야 일어났군.”

군무상서가 차갑게 뇌까렸다. 나는 한눈에 그녀의 눈동자가 분노와 저주로 일그러진 것을 알아차렸다. 흉흉한 기색이 라우라 데 파르네세라는 여자를 뒤덮고 있었다.

“가증스러운 배신자.”

“군무상서……?”

내가 숨을 토했다. 입안이 비쩍 말라서 혀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목소리가 형편없이 퇴색해서 발음되었다. 어떤 딱딱한 것이 내 뒤통수를 덮고 있었는데, 냄새로 보아 피가 딱지로 굳은 모양이었다.

이바르뿐만이 아니라 군무상서까지 배신자라는 얘기일까.

하지만, 그건 너무 말이 안 되었다. 라우라 데 파르네세는 아버님의 애완용 육인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아버님에 대한 충성심만큼은 고고할 터. 어째서…….

내가 의문을 담아서 물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본녀는 지금부터 그대를 심문할 것이다. 이제까지 그대가 포로들을 매일마다 심문했듯이. 그대에게는 무척 익숙한 작업이겠지.”

“심문…….”

내가 이해가 가지 않아서 멍하게 되풀이했다. 심문이라니? 나를? 무엇 때문에 날 잡아들여서 심문하는가?

라우라 데 파르네세 군무상서가 비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버님의 앞에서는 그녀가 절대로 짓지 않는 표정이었다. 이 여자는 아버님을 대할 때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태도가 천차만별로 바뀌었다. 그건 재수 없는 여자의 공통된 특징이었다.

“하필 주군께서는 바타비아의 총독 관저에서 암살당하실 뻔했다. 여기까지는 주군의 계획대로 흘러갔지. 그러나 어째서 주군은 한참이 지나서 의식을 차린 것인가? 본래 극본대로라면 주군께선 닷새 만에 정신을 되찾으셔야 했다.”

“…….”

입안이 갈증에 시달렸다.

대체 나는 며칠이나 기절한 것일까. 아버님께서 머무르시는 저택은 지금 며칠씩이나 무방비로 노출된 것일까.

여기 있어서는 안 되었다.

내가 경비를 서지 않으면 누군가가 침입할지도 몰랐다. 위험했다. 기사 나부랭이 따위는 감히 들어갈 수 없도록 철저히 함정들을 만들어두었지만, 마왕 정도 되는 실력자라면 돌파할 가능성이 있었다. 며칠이 지났는가. 심장이 촛불에 불타오르는 것처럼 뜨거워졌다.

“마왕 파이몬은 예전부터 주군을 적대해왔다. 그녀가 배후에서 통치하는 바타비아의 암스텔에서 사건이 일어났으며, 바로 그곳에서 주군께선 예정보다 훨씬 더 길게 가사 상태에 놓였다.”

“무슨 소리를……당장 저를 풀어주십시오, 군무상서……저택의 경비에 차질이…….”

“네놈이 파이몬과 작당을 쳤다면 모든 의문점이 해소된다.”

이 머저리 금발녀가.

고작 그딴 의문점을 풀겠답시고 이바르와 함께 작당을 치다니. 그러고보니 이바르도 금발이었다. 나는 이 시간부로 세상의 모든 금발 여자를 증오하기로 다짐했다. 그들의 머리카락이 반짝거리는 까닭은 머리통에서 뇌수가 흘러나와 무지개처럼 빛나기 때문이었다.

“헛소리는 작작 하십시오. 어서 저를 풀어주세요.”

내가 이빨을 으득 물었다. 잇몸이 뿌리부터 고통스러웠다.

“저를 가둬둔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두개골에 정액밖에 들이차지 않은 대가리로는 유추할 수 없는 것입니까. 아버님은 현재 열국의 첩자들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저택의 경비는 완벽하다. 본녀가 모두 방비해두었으니.”

“하.”

내가 코웃음을 쳤다.

당신이 경비를 했으니 완벽하다고? 아무래도 군무상서는 자신이야말로 아버님의 가신들 중에서 가장 허약하고 나약한 아치의 윗돌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슬슬 당신이 전쟁터와 규방이 아닌 장소에서는 발톱에 낀 때만큼도 쓸모가 없음을 알아채면 좋으련만, 이 여자는 언제나 분수도 모르게 끼어들었다.

저쪽에서 이렇게 나오면 나도 할 말이 있었다. 내가 아버님에게 배운 것이 연기술뿐만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했다. 나는 세상에서 두 번째로, 요컨대 아버님 다음으로 사람을 비아냥거리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갖추고 있었다.

“그거 참 믿음직스럽군요. 어련히 아버님의 성노예께서 잘 처리하셨을까요. 하지만 군무상서. 저택의 경비를 단단히 하기 전에 먼저 군무상서의 아랫입부터 제대로 단속하는 것이 어떨까요? 군무상서께서 마왕성 복도에 흘리신 정액만으로도 벌써 능히 호수를 두 곳은 팔 수…….”

차악, 하고 군무상서가 내 뺨을 후려쳤다.

미안하지만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방금 그건 뭐였을까. 모기가 우연히 내 얼굴을 스친 것이었을까. 내가 고개를 꺾은 채, 눈만 슬쩍 돌려서 군무상서를 흘겨보았다. 이 각도가 상대방을 도발하는 데 제일 적절했다.

“죄송합니다. 안 그래도 성기가 헐렁한 걸레짝이 되어버려서 슬프실 텐데, 소녀가 미처 배려하지 못하고 직언을 올렸습니다. 단지 궁금해서 여쭙는 것입니다. 아버님이 군무상서를 취할 때마다 허공에 들이박는 느낌에 시달리는 줄 알고 있습니다.”

“어디 계속해서 떠들어보거라.”

“허면 윗입으로 아버님을 만족시켜드릴 수밖에 없을 터이거늘, 얼마나 그쪽 실력이 출중하기에 아버님이 아직도 군무상서를 찾으시는 것인지요? 경탄스럽습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 하더니 군무상서께서는 걸레짝 성기를 실로 잇몸으로 대신하시는군요. 모쪼록 기회가 된다면 군무상서께 한수 배우고 싶을 정도입니다.”

군무상서가 채찍을 쥐어들었다. 제 딴에는 위협을 가하려는 모양새였다. 안타깝게도 군무상서는 평생 채찍이란 물건을 다루어본 적 없는 것이 분명했다. 채찍을 너무 짧게 잡았다. 저러다가는 십중팔구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하겠지.

“본녀가 요구하는 것은 엄정한 진실이다.”

“아하. 무슨 진실입니까?”

“네놈이 마왕 파이몬과 협력해서 주군의 약에다 독을 탔느냐.”

내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고해라.”

“군무상서의 잇몸은 아직 건강하십니까?”

직후, 채찍이 내 살결을 가차 없이 찢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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