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42 DAISY =========================================================================
“아버님은 변태이지 않습니까. 외양에 상관없이 여자라면 누구나 취해버리는 변태입니다.”
“단탈리안 님의 성욕이 다소 지나치다는 것은 사실이지요.”
“그런데 왜 저는 예외로 취급하시는 것인지요?”
라피스 라줄리 국무상서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데이지 양은 양녀이긴 하나 딸입니다. 아비가 딸을 취하는 것은 금기입니다.”
“국무상서는 아버님께서 그런 금기에 아랑곳하실 인물이라고 생각하나요?”
“절대로 아니지요.”
즉답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적어도 아버님의 변태성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아직 데이지 양이 어리기 때문이 아닐까요.”
“마왕 바르바토스는 외관 연령이 저보다 적습니다만.”
“그렇지요…….”
라피스 라줄리 국무상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 아버님의 명예를 지키려고 한 것 같았지만, 어떤 수단을 동원할지라도 아버님의 성욕을 부정하기란 마치 태양을 부정하는 것과 같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정한 모양이었다.
국무상서가 자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아마도 단탈리안 님께서는 데이지 양을 책임지기 싫어하고 계실 것입니다.”
“책임, 입니까?”
“단탈리안 님께서는 일단 한번 몸을 섞은 여인은 어떤 의미로든 간에 책임을 짊어지려고 합니다. 바르바토스 님을 보면 알 수 있지요. 두 분 모두 자유롭게 연애하는 것처럼 가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서로가 서로를 속박하고 있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을 보면 솔직히 소꿉장난을 치는 것 같아서 불쾌했다.
“하지만 데이지 양. 단탈리안 님께서는 이미 수십만 명의 목숨을 등에 짊어지고 있습니다. 알고 있겠지요?”
“예.”
“단탈리안 님의 어깨는 이미 충분히 무겁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책임져주는 관계는 그분께 안 그래도 무거운 짐을 더더욱 무겁게 만드는 요소에 불과합니다. 그분께 필요한 것은 오히려 정반대.”
라피스 라줄리 국무상서의 푸른 눈동자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쌍방이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자유롭고도 대등하게 서 있는 관계. 그뿐입니다. 오로지 그런 관계를 맺은 사람 앞에서만 단탈리안 님께서는 본모습 그대로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있으시겠지요.”
“…….”
내가 멍하게 국무상서의 말을 들었다.
마치 번개가 내리친 기분이었다.
왜 여태까지 그처럼 간단한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을까. 아버님은 수십 만 명을 학살한 악인이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악인이라고 뚜렷하게 인식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악인에게 '당신을 좋아합니다'라고 말해봤자 괴로운 고문밖에 되지 않았다. 자기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노라고. 나 따위를 사랑해봤자 민폐밖에 되지 않는다고 자책하겠지. 세간의 사랑이란 아버님에게 치명적인 독이 될 따름이었다.
도리어 아버님께 필요한 것은 '당신은 악합니다'라고 똑바로 인정해줄 사람.
당신은 증오를 받아 마땅하므로, 내가 대신해서 당신을 증오하겠노라고 당당하게 선언해줄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아버님께 필요했다!
내가 깨달음에 가만히 전율하고 있는 사이, 라피스 라줄리 국무상서가 중얼거렸다.
“저는 당신이 부럽습니다. 데이지 양.”
“제가……?”
“단탈리안 님의 동반자가 되겠다고 저는 결심했습니다. 본래 저는 반인반마에다 비천한 상인으로서, 도저히 단탈리안 님께 어울릴 만한 종자가 아닙니다. 지금도 매일마다 필사적으로 그분의 곁에 있기 위해서 스스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무상서는 마치 일에 미친 사람처럼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밤 늦게까지 업무를 돌보았다. 마왕성과 영지의 모든 서류가 국무상서에 의해 해결되었다. 나는 그런 국무상서가 유능하다며 속으로 감탄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국무상서는 자기 자신을 유능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무능한 상인 출신의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필사적으로 업무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간신히 단탈리안 님의 곁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저에게 과분하게도 국상의 직책을 맡기셨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다릅니다.”
“…….”
“당신은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았는데 단탈리안 님께 동급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제가 각고의 노력을 쏟아내서 겨우 얻어낸 자리를, 데이지 양.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취했습니다.”
국무상서의 눈동자가 어둡게 윤기가 났다.
질투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질책. 당신에게 도대체 무슨 자격이 있어서 그처럼 과분한 자리를 점유하고 있느냐고, 조용히 질책하고 있었다.
“단탈리안 님께 부끄러운 존재가 되지 마십시오.”
“…….”
“이건 제 경고입니다. 단탈리안 님께서 당신을 예외적인 인간으로 여기고 계신다면 부디 그에 걸맞는 능력을 보여주십시오.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단탈리안 님의 곁을 떠나세요.”
라피스 라줄리 국무상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을 나갔다.
나는 허리를 깊이 숙여서 국무상서를 배웅했다. 그녀에게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다. 만약 국무상서가 충고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천치 벌거숭이마냥 아버님을 오해했겠지. 그녀가 집무실에 나가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나는 계속해서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그날부터 내 인생의 목적은 정해졌다.
나는 아버님을 증오한다.
아버님께 필요한 것은 맹목적인 사랑이 아니었다. 맹목은 아버님의 목을 조를 뿐이었다. 그분께 진정으로 절실한 것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증인이요 목격자였다.
오로지 그래야만 아버님의 삶을 모욕하지 않을 수가 있었다.
“아버님께서는 진실로 쓰레기 같은 분이군요.”
“딱 아버님이 떠올릴 법한 계략입니다. 썩은 내가 진동해서 차마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왜 눈물을 흘리십니까? 아버님께서 방금 학살한 파리시오룸 시민들에게 갑자기 미안해지기라도 하셨습니까? 우습군요. 그 따위 죄책감으로 아버님의 죄악을 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비웃는다.
조소한다.
아버님께 필요한 증인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다.
그때마다 아버님은 분노에 폭발해서 내게 채찍을 때리거나 고문을 가했다. 그렇게 가슴속에 맺힌 진노가 풀리면 또 며칠 동안은 아버님의 정신이 안정되었다. 이것 역시 내가 나 자신에게 내려준 역할이었다.
“잭……어머니……아아, 저는……저는…….”
아버님은 잠에 빠져드는 밤마다 집요하게 악몽에 시달렸다.
그때면 내가 아버님을 무릎에 뉘여서 조그맣게 노래를 불렀다. 나는 무엇이든 평범한 사람보다 월등하게 뛰어났는데, 하다못해 노래에 있어서도 그러했다. 내가 천천히 노래를 속삭이면 아버님도 신음하다가 곧잘 숙면에 접어들었다.
내가 아버님에게 속삭였다.
“괜찮습니다. 당신은 언젠가 반드시 형벌을 받습니다.”
“…….”
“아무도 그 일을 해내지 못하면 제가 하겠습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지금은 눈을 감으세요.”
나는 잠에 빠져든 아버님의 이마를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아버님께서는 '마왕에게 숙면은 별로 필요없다'라며 자기가 잠을 즐기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지만, 사실은 달랐다. 악몽에 시달리는 게 싫어서 나흘에 한 번씩만 잠드는 것이었다.
그렇다.
사랑 따위는 얼마든지 라우라 데 파르네세에게 넘겨주겠다.
바르바토스든, 파이몬이든, 시트리든, 얼마든지 아버님을 사랑하도록 내버려두겠다. 당신들은 결국에는 아버님의 목을 조르리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마음껏 사랑에 도취해라. 그렇게 사이 좋게 파멸하면 좋다.
그러나 증오만큼은.
아버님을 증오하는 역할만큼은 내가 대신한다.
당신들은 아버님이 이십 만 명을 학살했음에도 '그래도 상관없다' 하고 아버님을 사랑한다. 바로 그 '그래도'가 얼마나 아버님을 상처 입히는지도 알지 못한다. 어리석은 여자들. 오직 나만이 아버님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망각은 도피.
위안은 변명.
도취는 죄악.
이 한없이 윤리적인 정식들이 아버님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너희는 모른다. 이해하지 못한다. 아버님과 정신적으로 똑같은 핏줄을 타고난 내가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아버님을 오롯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문제는, 아버님이 연기의 달인이라는 것이었다.
어설프게 배역을 수행하다가는 간단히 간파당하고 말겠지. 그렇다면 아버님을 속이기 이전에 나 자신부터 완벽하게 속일 필요가 있었다. 매일 새벽,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거울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나는 아버님을 증오한다.
아버님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쓰레기이다.
나는 그런 쓰레기를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래서 네 년이 안 된다는 거다, 머저리 같으니!”
“멍청하기는. 배운 것이 책밖에 없어서 해결책이랍시고 내놓는 것도 우둔하기 짝이 없구나.”
“위선자 녀석아. 네 오래비를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더냐!”
나는 연기에도 재능이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내 눈앞에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배우가 표본으로서 있었다. 아버님을 보면서 연기에 대해 배우자, 나는 금세 자기 자신마저 속이는 경지에 이르렀다.
아버님이 내게 분노를 토해내면 토해낼수록, 고문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나는 내가 성공적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사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아버님은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연기를 했다. 반면에 나는 딱 두 사람. 아버님과 나 자신에 대해서만 연기하면 그만이었다. 아니――연기라니? 그게 아니었다. 나는 진심으로 아버님을 증오한다. 연기가 아니다.――나는 이것이 연기임을 자각하면 안 되었다.
“데이지. 이 자의 최후를 잘 봐두어라. 우리 같은 부류는 절대로 맞이할 수 없는 죽음이다. 똑똑히 기억에 새겨두도록.”
예, 아버님.
저는 세상에서 오로지 아버님 한 명을 위해 무대에 올라선 배우.
당신만을 위해서 연기하고, 당신만을 위해서 노래합니다.
이 세상은 당신에게 잔혹함만을 선물했습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선물을 거부하지 않았고, 이것은 자신의 죄업이라면서 스스로 멍에를 짊어졌습니다.
세계가 당신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으니.
제가 아버님께 저 자신의 영혼을 드립니다.
비록 당신께는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당신을 이해하는 자가 한 명이라도 있다는 사실을, 제가 간직하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태어난 이유.
저의 생명.
저의 모든 것.
단탈리안.
저의 아버지.
단탈리안.
당신을 진심으로 증오하고 있습니다.
* * *
――가장 처음으로 균열을 눈치 챈 것은, 아마도 나였다.
“솔직하게 토로해라. 네놈이 저질렀는가.”
바타비아 총독 관저에서 아버님이 쓰러졌을 때였다. 라우라 데 파르네세 군무상서가 다짜고짜 나를 저택의 구석에 몰아세웠다. 군무상서는 얼굴이 악귀처럼 흉흉해져 있었다. 나는 영문을 모르겠어서 고개를 까닥거렸다.
“무슨 소리인지요, 군무상서 각하.”
“주군 말이다. 네놈이 주군에게 들어가는 약물에도 독을 탄 것 아니냐! 그게 아니라면 어째서 주군이 며칠이 지나도 의식을 차리지 못하는 게야!”
이 멍청한 여자는 무슨 헛소리를 나불거리는 것일까.
나는 원천적으로 아버님께 해를 끼치지 못했다. 이게 주관적인 판단이라서 더욱 까다로웠다. 만일 내가 조금이라도 '아, 이건 아버님께 별로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일으킬 것 같다'라고 느끼면 곧바로 그 행위를 할 수 없었다.
기껏해야 배개를 아버님한테 던지는 정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딱히 아버님께 해가 가지 않을 거다'라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행위가 허용되었다.
애당초, 내가 아버님에게 위해를 가할 리가 없지 않은가.
“무언가를 착각하고 계시는 것 같군요. 저는 아버님의 시녀입니다. 또한 그에 앞서서 아버님께 종속된 노예이기도 합니다. 제가 무엇 때문에, 무슨 수단으로 아버님에게 위해를 가하겠습니까?”
“…….”
라우라 데 파르네세 군무상서의 초록빛 눈동자가 차갑게 내 얼굴을 노려보았다.
“그 말, 진심이겠지?”
“저를 신뢰하지 못하시겠다면 아버님을 신뢰하십시오. 아버님의 계책은 언제나 완벽했습니다. 설마 저 같은 시녀에게 당할 정도로 아버님께서 무방비하시리라 생각하십니까.”
모쪼록 당신의 머리통에 뇌가 있다면 생각이란 걸 해보기를 바랐다.
군무상서는 정말이지 외모가 그럭저럭 뛰어난 것과 군략에 재능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쓰잘데기가 하나도 없었다. 당신 같은 사람에게 중책을 맡기면 왕국 하나가 거덜날 것이 분명했다. 아버님도 무슨 생각이신 건지.
“저는 아버님의 침대를 청소해야 하므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내가 군무상서의 팔을 툭, 하고 거둬 쳤다.
그걸로 간단하게 군무상서의 포위를 풀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슬쩍 숙인 다음에 옆으로 빠져 걸어나갔다. 그녀가 끝까지 나를 노려보는 것이 등 뒤로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그것이 모든 붕괴의 서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