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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디펜스-441화 (44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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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아무래도, 남자는 나를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남자와 만난 지 이틀 만에 그걸 깨달았다. 싫어하는 척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남자는 나를 꺼려하며 피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면 마치 전염병이라도 옮을 것처럼.

    “……하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나를 싫어하는 것일까?

    자만하지는 않지만 난 꽤 귀여운 편이라고 생각했다.

    열 살에 불과했지만 바로 그 열 살짜리의 외양에 넘어가서 마을 어른들이 집단으로 괴롭혔을 정도다. 이때까지 나는 세상의 모든 남자가 어린아이를 성적으로 좋아한다고 착각하고 있었으므로――그럴 수밖에 없었다――남자의 행위는 간단히 말해서 불가사의했다.

    봐라. 남자가 또 나를 보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하아.”

    하고 한숨을 더 깊이 내쉬었다. 가끔씩은 한숨을 내쉬는 대신에 “분명히 후회할 거야”라든지 “잭 올란드도 있었고”라든지 “나는 천하의 멍텅구리다……”라든지, 도저히 알아듣지 못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쩐지 화가 났다.

    남자는 결국에 내 요청을 들어주어서 마을사람들을 살려주었다. 솔직히 나에게 마을사람들은 죽든지 말든지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부모님이랑 루크는 소중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눈앞의 남자였다.

    남자는 내가 상상한 그대로의 인물이었다.

    자기가 악행을 저질렀으면 절대로 정당화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과장하지도 않았고, 상대방을 필요 이상으로 무시하지도 않았다. 올곧게. 똑바로 세상을 바라보는 남자였다.

    나는 처음으로 동족을 만났다는 생각에 잔뜩 긴장하고 두근거렸는데, 남자는 반응이 영 시원치 않았다. 날 구해준 것을 오히려 절실히 후회하는 것 같았다. 이상한 사람이었다. 후회할 거라면 구해주지 말고, 구해주었다면 후회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남자는 후회하면서도 구해주었다.

    이상한 남자가 아닐 수 없었다.

    “아가야.”

    “제 이름은 데이지입니다.”

    “그냥 순순하게 죽어주면 안 되겠느냐?”

    정정하겠다.

    남자는 그냥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정말로 이상한 사람이었다.

    내가 눈을 깜빡거렸다.

    “예?”

    “생각해보거라.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면서까지 살아간다는 건 그리 행복한 삶이 아니다. 루크와 너만 자살해주면 나머지 마을사람들에게 부귀영화를 약속하마. 네 부모에게는 최고의 대우를 해주겠다. 어떠냐.”

    남자는 나한테 자살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었다. 더없이 진지하게.

    이때부터 남자의 인상은 '내 동족'에서 '조금 뇌수가 맛이 간 동족'으로 바뀌었다.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저리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것일까.

    “만약 제가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면, 우선 제 손으로 루크를 죽이게 해주세요. 그리고 마을주민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해주십시오. 제 입장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렇겠지. 바뀌지 않겠지.”

    남자가 침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꼭 물에 푹 젖은 강아지 같아서 귀여웠다.

    “하아. 왜 세상에 네 같은 별종이 존재해서 나를 또 괴롭히는고. 내 삶이란 참으로 저주받았구나. 이제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

    요컨대 남자는 나와 완전히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동족과 조우했다는 생각에 두근거린 반면, 남자는 동족을 만나서 끔찍하다고 절망했다. 이런 태도에 나는 적잖게 실망했다. 사랑을 고백했다가 차여버린 느낌에 가까웠다. 결국 나도 퉁명스러운 태도를 계속해서 취하게 되었다.

    게다가 수술.

    노예각인을 새기는 수술은 정말 끔찍하게 고통스러웠다.

    마취제를 잔뜩 먹여서 고통이 완화되었다지만,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아픔이 생살을 찢어버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남자는――이제 겨우 열 살이 된 꼬마 여자애가 정말 자기 자신을 죽일지 모른다며 진심으로 두려워 하고 있었다.

    왜?

    어째서?

    나는 한낱 초라한 화전민에 불과했다. 가진 것이라고는 허약한 몸뚱어리.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남자를 위협할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남자는 나를 동급으로 취급했다.

    단순히 동류일 뿐만 아니라 동급으로.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남자는 자기 자신을 쓰레기로 취급하고 있었으며, 나한테 무한한 재능이 숨겨져 있음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 두 사람은 정반대로 생각한 것이었다.

    나는 내가 쓰레기라고 생각했고, 남자는 자기야말로 쓰레기라고 생각했다. 나는 남자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남자는 내 쪽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우스운 일이었다. 우리는 완벽하게 엇갈려서 상대방과 자신을 평가하고 있었다.

    물론 당시의 내가 그런 사실을 깨달을 리는 없었고.

    나는 노예각인 수술이 너무 고통스러웠던 나머지 남자에게 ‘죽여버리겠습니다’라든지 용서하지 않겠다든지, 아주 약간 불평불만을 토로했다. 솔직히 그 정도 불만은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심장이 생살로 찢어졌다가 붙었는데 당연하지 않을까.

    불만스러운 눈길로 남자를 바라보자니, 남자가 말했다.

    “너는 일단 내 양녀로 되어 있다. 필요할 때는 아버님이라고 불러라. 기본적으로 도시나 마을에 갈 때, 주변에 낯선 인간이 있을 때 아버님이라 부르면 된다.”

    그렇다. 아버님이었다.

    나는 단탈리안이라는 남자를 그때부터 아버님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동류였지만 역설적으로 동류였기에, 상대방이 나 자신을 정반대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채, 부녀가 되었다.

    *  *  *

    언제 아버님이 나를 범할까 기다리던 나날이 이어졌다.

    나를 이상하다고 여기면 곤란했다. 자그마치 여덟 살 때부터 남자들에게 노리개로 쓰였다. 설령 내가 세상의 모든 남자를 소아성애자로 착각할지라도 이쪽의 잘못이 아니었다. 아버님은 내 몸에 눈꼽만치도 관심이 없는 첫 번째 남자였다.

    혹시 고자인 것일까?

    “아흥, 앗, 하읏, 전하! 조금 더! 조금 더 거칠게 다뤄주세요!”

    “하하하. 역겨운 변태 돼지 같으니라고. 어디 돼지처럼 울어보거라!”

    “꾸울. 꿀, 꿀, 흐으윽!”

    아니었다.

    아버님이 제레미 스승과 미친 듯이 성교하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 이후, 아버님-고자설은 전격적으로 폐지되었다. 고자는커녕 지금까지 내가 만나본 어느 남자보다도 왕성한 성욕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어른인 여자에게만 흥분을 느끼는 체질일까?

    “으응, 단탈리안, 나, 더 이상 못하니까……하으읏! 이제, 몸이 버티지 못하는데……!”

    “제발 용서해주세요 주인님, 이라고 말하면 그만두지 못할 것도 없지. 자아. 어서 말해봐. 무릎을 꿇고 개처럼 빌어보라고.”

    “주인님……흐아앙, 주인님, 제발 천박한 노예를 용서해주세요…….”

    아니었다.

    아버님은 도리어 어린애 체격을 좋아하는 듯했다. 제레미 스승과 성교할 때보다 바르바토스와 교접할 때 훨씬 더 왕성하게, 훨씬 더 즐겁게 놀았다. 가끔씩 바르바토스가 마왕성에 놀러오면 이틀은 가뿐하게 그 짓을 하면서 소모했으니까. 나는 아버님-누님파설을 폐지할 수밖에 없었다.

    사태는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어느 날, 나는 진지하게 거울을 바라보았다. 객관적으로 내 외모를 평가하기 위해서였다. 라우라 데 파르네세 군무상서나 바르바토스, 제레미 스승, 파이몬, 시트리 등등, 아버님의 온갖 기라성과 같은 애인들을 떠올리면서 찬찬히 비교해보았다.

    ……아무리 봐도 내가 더 이쁘다.

    자만심이 아니었다. 명백한 사실이었다. 내 흑발은 밤하늘보다 아름다웠고, 새하얀 살결은 살짝 건드려도 미끄러질 것처럼 매끈했고, 두 눈동자는 흑요석보다 깊이 있게 매혹적이었다. 단언하건대 나는 나보다 아름다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

    그런데 왜 범하지 않는 걸까…….

    라우라 데 파르네세 군무상서는 허구한 날 마왕성을 돌아다니면서 “주군은 하여간 너무 많이 해댄다!”, “내 몸이 남아날 틈이 없다!” 하고 불평불만을 토로했지만, 솔직히 배부른 투정으로만 보였다.

    전쟁질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금발녀 주제에.

    나는 예전부터 라우라 데 파르네세 군무상서가 싫었다. 이 여자는 조금 분수를 몰랐다. 신하들이나 영지민들이나 마치 군무상서가 아버님의 아내인 것처럼 대접했다. 군무상서도 그런 착각이 싫지는 않은 듯이 흐흥, 하고 콧대를 높이며 돌아다녔다.

    나보다 머리도 나쁜 주제에.

    라우라 데 파르네세는 고작해야 여섯 개 국어밖에 몰랐다. 반면에 나는 아버님의 양녀가 된 지 2년 만에 여덟 개 국어를 익혔다. 두뇌 수준에서 군무상서는 내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군무상서는 마치 자기가 역사상 최고의 철학자인 것처럼 우쭐거렸다.

    하긴 바보는 자기가 바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니까.

    나는 너그러이 그녀를 용서하기로 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점이 있었다. 이 여자의 두개골에 위생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군무상서가 마왕성을 거닐다가 아버님에게 덮쳐져서 세 시간 정도 성교하면――매우 자주 벌어지는 일이었다――그 다음에 힘없는 발걸음으로 터덜터덜 지하연못을 향해 걸어갔다.

    아버님이 싸지른 정액을 마왕성 복도에 뚝뚝 떨어트리면서.

    이 얼마나 경악스러운 광경일까.

    라우라 데 파르네세 군무상서는 한 마디로 수치심이란 걸 모르는 여자로서, 어떤 날에는 “어차피 주군이 찢어버릴 것인데 귀찮게 옷을 입고 다닐 이유가 어디 있는가” 하고 아예 알몸으로 생활했다.

    조금 제정신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라우라 데 파르네세 군무상서가 어지럽힌 복도를 치우는 것은 언제나 시녀장인 내 몫이었다. 그녀가 걸어가고 나면 나는 재빠르게 청소도구를 손에 쥐어들고 정액을 청소했다. 이게 얼마나 정신 나간 작업인가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공감할 수 없겠지.

    마음 같아서는 그녀가 흘린 정액을 싹 다 양동이에 모아서 언젠가 면상에 쏟아버리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아버님이 내게 내린 명령 때문에 불가능했다. 나는 아버님을 비롯해서 아버님의 연인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었다. 이 명령만 아니었다면 라우라 데 파르네세 군무상서는 정액으로 목욕을 해도 벌써 수백 번은 했을 거다.

    “시녀장. 오늘따라 손이 둔하군요.”

    아버님의 집무실을 청소하고 있자니, 라피스 라줄리 국무상서가 말을 걸어왔다. 나는 청소도구를 바닥에 내려놓고 즉시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라피스 라줄리 국무상서는 라우라 데 파르네세 군무상서와 격을 달리하는 인물이었다. 국무상서는 아버님의 신뢰를 듬뿍 독차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에 든 것은 두 가지, 즉 라피스 라줄리 국무상서가 단 한 번도 잘난 척을 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아버님의 총애를 받을 만큼 실제로도 유능하다는 것이었다.

    참고로 그녀는 아버님과 성교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

    딱히 별로 중요한 정보는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습니까? 데이지 양은 단탈리안 님의 딸입니다. 고민이 있다면 저에게 털어놓으셔도 괜찮습니다.”

    국무상서는 거의 항상 아버님을 '단탈리안 님'이라고 불렀다.

    그런 호칭이 허락된 사람도 라피스 라줄리 국무상서뿐이었다. 다른 신하들은 '주군', '전하', '마왕님'이라는 호칭을 주로 사용했다. 반면에 국무상서는 아버님의 신하임에도 불구하고 아버님을 이름으로 불렀다.

    그건 조금 분수를 모르는 일이었지만, 이 역시 너그러이 용서해주기로 했다. 국무상서는 그래도 군무상서에 비하면 성인군자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사실 특별하기는커녕 약간 불쌍한 면이 있는 호칭이니까.

    “예. 고민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왜 아버님은 저를 취하지 않는 것일까요?”

    “…….”

    라피스 라줄리 국무상서가 '이 아이는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일까' 하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조금 실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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