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435화 (435/510)
  • 00435 존재의 긍지  =========================================================================

    “…….”

    웃음 때문에 침묵이 일어나는 경우란 희귀하겠지.

    자신의 범행을 폭로하는 바르바토스는 너무나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어서, 사람들은 한 순간 그녀가 뭐라고 말했는지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바르바토스는 꼭 장난스러운 어린애처럼 히죽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말이야, 솔직히 조금 실망했어. 아무리 파이몬을 죽였다고 해도 나 바르바토스한테 이렇게 못살게 굴어도 괜찮은 거야? 응? 마인 여러분께서는 어지간히도 의리가 없으시네. 이래서야 내 헌신과 노력이 너무 볼품없어 보이는걸.”

    바르바토스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인민을 위한 노력이란 항상 허무하기 이를 데 없다지만 이건 실망 중에서도 대실망이야. 어휴, 진흙탕에 코를 박고 향기롭다는 듯이 음미하는 돼지 자식들아. 도대체 언제쯤이면 제대로 된 후각을 갖출 거냐?”

    다시금 광장에서 오물거리가 날아왔다. 그것들은 대부분 형편없는 명중률을 자랑하여 바르바토스의 발치에 떨어지거나 한참을 빗나갔다. 바르바토스는 눈썹 한번 까딱거리지 않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나는 파이몬을 암살했다. 아아, 그건 사실이야. 하지만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설령 내가 처벌을 당해야 할지라도 너희 같은 오물 덩어리들한테는 당하지 않겠다는 거지. 그럼. 왜냐하면 너희에게는 감히 나를 처단할 권리가 없거든. 없지. 전혀 없어!”

    바르바토스가 턱을 치켜들어 광장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서서히 오시했다.

    “오히려 나는 이 자리에서 너희 마족들, 내장의 썩은 냄새가 사방에 진동하는 오물 인생들을 고발한다. 첫 번째, 너희들은 게으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타인에게 떠넘기며 그것을 가리켜 현명하다 칭송한다. 비겁함과 교활함을 지혜로 치장하는 것은 태생부터 천박한 노예들의 습성이며, 그런 의미에서 너희에게 어울리는 삶이란 영원토록 노예로 살아가며 자신의 더러운 핏줄을 원망하는 것밖에 없다.”

    바르바토스가 입꼬리를 올렸다.

    “노예제가 폐지되어서 정말로 유감이구나! 이제 사람의 얼굴을 하고 들개의 핏줄을 타고난 새끼들을 가리켜서 노예라 부르지 못하게 되었으니, 너희는 신속하게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서 스스로를 자칭해야만 할 거다! 글쎄, 음식물 쓰레기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까. 뭐든지 반쯤 씹다가 버려졌다는 점에서 너희의 가련한 인생과 공통점이 있지. 보는 이에게 구토를 유발한다는 것까지 쏙 빼닮았어.”

    광장의 아우성이 점점 격해졌다. 그러나 바르바토스는 더더욱 기세가 올라서 즐겁게 흥얼거렸다.

    “아직 첫 번째 죄목밖에 말하지 않았어. 한참이나 남았다고. 자그마치 수천 년 동안 너희의 군상을 지켜본 내가 아무렴 이 정도로 끝날까. 두 번째로, 너희들은 멍청하다. 너희가 얼마나 어중지간한 지식에 만족하며 살아가는지 나는 거의 경탄스러울 지경이야. 도대체가 무엇 하나라도 끝까지 숙고하고 생각하여 진상을 알아내는 법이 없지. 너희는 오두막집이 태풍에 무너져도 다시 똑같은 오두막집을 지을 병신들이요, 평생을 미지근한 온수에서 살아가며 자신의 지적 태만을 도리어 자랑스러워 할 머저리들이다.”

    시민들은 이제 목청을 돋구어서 시끄럽게 악바라를 썼다. 소리를 친다기보다 짐승 떼거지처럼 짖어대는 것에 가까웠다. 핏줄이 도드라졌고 팔뚝이 정신없이 위아래로 요동쳤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너희는 비겁하다! 게으르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멍청하기에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 매사에 도망치는 주제에 자신이 도망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지. 그렇기에 너희들의 인생은 비겁함 그 자체다. 단 한번도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한 것들! 너희는 순수한 백성임을 자랑하지만, 더 본질적으로 너희는 악마적인 백성이다!”

    바르바토스가 소리쳤다.

    “내 목을 잘라서 이 니블헤임의 광장에 걸어두거라! 그리고 지금 내가 내리는 선고를 영원토록 기억하라! 천박한 돼지들아. 나 바르바토스는 너희의 나태함과 우둔함 그리고 비겁함을 경멸하며 너희들에게 목 매달아 자살할 것을 선고한다!”

    그리고 바르바토스는 큰소리로 웃었다.

    중립파 마왕들이 달려들어서 바르바토스에게서 확성마법 아티팩트를 떼어냈다. 바르바토스의 웃음소리는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공중에 메아리쳤다. 그녀는 도시의 종소리처럼 웃고 있었다.

    심문이 끝났다. 여섯 명의 평원파 마왕은 모두가 범죄 사실을 인정했다.

    평원파 마왕들은 바르바토스를 구하기 위해서 죄를 인정했고, 바르바토스는 부하들을 구하기 위해서 죄를 받아들였다. 서로가 서로를 위한 이 희생극은 그러나 애시당초 비극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이쪽의 승리였다.

    망설일 이유도 주저할 이유도 없겠지. 나는 연단에 우뚝 서서 논고를 시작하였다.

    “존경하는 동지 여러분. 저는 더 이상 더러운 살인자들이 자신들의 범행을 자랑스럽게 떠들어대는 광경을 용납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음과 같은 사실이 명확해졌습니다.”

    내가 주로 마르바스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나는 손가락을 하나 들었다.

    “첫 번째, 평원파는 산악파를 정치적으로 완전히 말살하려 들었습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 바르바토스는 마왕 모락스의 배신을 유도했고, 제파르는 마왕 벨리알의 이반을 획책했습니다. 평원파의 간부가 명확한 목적을 지니고 움직였음이 분명합니다.”

    내가 두 번째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두 번째, 평원파는 마계대공들을 겁박하여 파이몬을 암살하라 지령을 내렸습니다. 정확하게 누가 대공들을 협박한 장본인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평원파 마왕 전원이 사전에 암살계획을 알고 있었다는 점, 또한 전원이 자신이야말로 실행범이라고 자백했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지난 암살 사건은 누구 한 사람에 의해서 계획되고 시행된 것이 아니라, 평원파 전체의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쉽게 추론할 수 있습니다. 마왕 파이몬을 죽인 것은 평원파 그 자체입니다.”

    나는 주먹을 쥐고 광장을 둘러보았다.

    수만의 시선과 수만의 감정이 내게 쏠려 있었다. 그것을 마주보며 내가 나지막하게 선언했다.

    “이상의 죄과로――저는 평원파 전원에게 참수형을 선고할 것을 제안합니다.”

    시민들이 열광적으로 환호성을 보내왔다.

    바람잡이가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사형을 울부짖었다. 바르바토스에 대한 애정을 저버리지 않은 소수의 시민도 있겠으나, 그들은 거대한 목소리에 대항하기에는 너무도 미약했다.

    무엇보다도 평원파 마왕 중에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을 변호하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 대중에게는 결정적인 증거, 즉 실제로 그들이 파이몬의 암살을 주도했다는 것에 대한 입증으로 비추었다.

    변호의 여지는 없었다.

    마르바스가 함께 재판관을 맡은 마왕들을 호명했다.

    “시트리.”

    “……선고에 동의해.”

    “가미긴.”

    “당연히 동의하지. 화형이 아니라 참수형이라서 안타까울 정도인걸.”

    “바싸고.”

    “동의한다.”

    마르바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 역시 선고를 받아들인다. 네 명의 판관이 만장일치로 선고에 동의하는바, 평원파 전원에 대해 유죄를 선포하는 동시에 그들 모두를 참수형에 처한다. 보통 형벌이 집행될 때까지 유예를 두는 것이 관례이나.”

    마르바스가 엄숙하게 말했다.

    “이번 범행은 그 죄악이 심각하게 악질적이며 마왕군은 물론, 더 나아가 마계사회 전체에 크나큰 해악을 미쳤으므로 일고의 망설임도 없이 즉시 집행해야 마땅하다. 평원파는 지금 이 자리에서 만신의 형벌을 받을지어다.”

    마르바스가 법봉을 들어서 망치처럼 휘둘렀다. 쿵, 하고 선고가 결정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이어서 중립파 마왕들이 제파르를 끌고 단상에 올라왔다.

    내가 데이지에게 바알의 검을 넘겨받았다. 살짝 무거웠지만 어떻게든 들 수는 있었다. 이 검은 사용자에게 맞게 적당히 크기가 변형되어서 괜찮았다. 나는 검을 거꾸로 잡은 채 확성마법을 꺼트렸다.

    중립파 마왕들이 제파르의 무릎을 거세게 꿇어 앉혔다. 그들이 투구를 벗기자, 제파르는 천천히 좌우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제파르는 이내 상황을 전부 이해했다는 듯이 허심탄회하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되었는가…….”

    제파르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단탈리안, 최후로 한 가지만 묻고 싶다. 솔직하게 대답해줄 수 있겠나.”

    “어떠한 질문에도 진실을 말씀드릴 것을 맹세합니다.”

    “바르바토스 각하는 어찌 되셨는가?”

    나는 무표정하게 제파르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짙은 잿빛을 감상하며 내가 입을 열었다.

    “동토의 감옥에서 사백 년 동안 유폐될 것입니다. 그 대신, 제파르 형님과 벨레드 형님을 비롯하여 네 명의 평원파 마왕이 처형됩니다. 형님들께서 원하시는 대로 바르바토스는 살아남았군요.”

    “…….”

    “후회하시지 않습니까?”

    제파르가 고개를 저었다.

    “후회밖에 없는 삶이었다. 구태여 말할 것도 없겠지.”

    제파르는 나를 바라보았다.

    “바르바토스를 부탁하네, 단탈리안. 그녀는 누구보다 상냥한 여자야.”

    “……어느 여신에게 최후의 인도를 청하겠습니까?”

    “미안하지만.”

    제파르가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본인은 무신론자일세.”

    내가 눈을 잠시 감았다가 떴다. 나는 검자루를 굳게 쥐고, 제파르의 목덜미를 향해 정확하게 칼날을 내리쳤다. 뼈가 갈라지는 느낌이 손바닥을 통해서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툭, 하고 제파르의 머리가 몸뚱어리에서 분리되어 나뭇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시민들이 환호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 이름을 연호했다. 단탈리안, 하고. 그 홍수와 같은 부르짖음 속에서 푸른색 빛이 잠깐 번쩍였지만 나는 그걸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중립파 마왕들이 제파르의 시체를 끌고 사라졌다.

    다음은 벨레드였다.

    마왕들에게 이끌려서 벨레드는 정확히 제파르가 무릎 꿇었던 곳에 앉혀졌다. 그 역시 투구가 벗겨졌다. 벨레드는 나를 지그시 노려보며 눈썹을 찡그렸다.

    “어떤 무례한 놈이 나보다 먼저 뒈진 거냐.”

    “제파르입니다.”

    벨레드가 크흥, 하고 코를 울렸다.

    “결국 나보다 늦게 태어나서 나보다 빨리 꺼꾸러졌으니 내 승리로군. 바르바토스 각하는?”

    “동토의 감옥에서 사백 년 동안 유폐될 것입니다.”

    “흐흐. 이 벨레드, 주군보다 오래 사는 불충은 겪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군.”

    그리고 벨레드는 길게 목을 빼들었다. 유언 따위는 남기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내가 기억하기로 벨레드는 여신의 이름을 입에 담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아마, 제파르와 마찬가지로 기도문구를 읊으면서 최후를 맞이하는 것 따위는 사절하고 싶겠지.

    그렇기에, 나는 잔말을 떠드는 대신 검을 치켜들어 내리 베었다. 무겁고 둔중한 소리를 울리며 벨레드의 머리가 떨어졌다. 핏물이 대량으로 뒤기면서 내 옷자락을 흠뻑 적셨다. 나는 그것을 닦지 않고 가만히 다음 차례를 기다렸다.

    다음도, 그 다음도.

    평원파 마왕들은 바르바토스가 어찌되었느냐는 질문만을 입에 담고 순순하게 머리를 숙였다. 나는 그때마다 바르바토스에게 유폐형이 선고되었노라고 대답했다.

    당신들의 자작극이 성공하였노라고, 당신들이 죄를 위증한 탓에 바르바토스의 형량이 가벼워졌노라고 대답했다. 내 대답을 듣고 마왕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만족스럽게 최후를 맞이했다.

    그들은 끝까지 거짓만을 안은 채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들의 죽음을 모욕하는 데 이보다 효율적인 속임수는 없겠지.

    “…….”

    나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마지막으로 중립파 마왕들이 한 명의 소녀를 끌어올렸다.

    당연하게도, 그 소녀의 이름은 바르바토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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