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433화 (433/510)
  • 00433 존재의 긍지  =========================================================================

    “거짓말이다! 저 역겨운 배신자를――.”

    “파이몬 전하의 복수를!”

    “당장 죽여――.”

    대공을 매도하는 소리와 바르바토스를 모욕하는 소리가 뒤섞여서 요란하게 진동했다. 마침내 광장은 하나의 거대한 소음이 되어 누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모든 것이 과열되고 흥분되었다. 사람들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함을 질렀다. 굵은 팔뚝들이 피스톤처럼 쉴 새 없이 요동쳤다. 그리하여 아우성들은 단지 아아, 하고 의미없이 메아리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로 전락했다.

    분노.

    시기.

    단순한 재미.

    의심.

    스프를 덜 끓인 가마솥에서 재료들이 둥둥 수영하는 것마냥 감정들이 날것 그대로 허공을 떠돌았다. 예전에는 이런 상태에 놓일 때 괴로웠다. 지금은 달랐다. 감정이 복잡하다면 이성에 근거해서 판단을 내리면 된다. 나는 그걸 배웠다.

    “조용히.”

    마르바스가 정숙을 명령했다. 확연하게 광장이 조용해졌다.

    “바르바토스가 자네에게 파이몬을 암살하라 지령을 내렸다. 자네는 그리 증언했다. 틀림이 없는가.”

    “소인이 거짓을 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전하들께서 잘 아시리라 생각하옵니다.”

    네 명의 재판관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바르바토스께서는 소인 이외에도 모든 마계대공에게 지령을 내리셨습니다. 저희는 함께 모여서 어떻게 해야 파이몬 전하를 암살할 수 있을지 모의했나이다.”

    광장에서 시민들이 소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독사대공은 이번만큼은 계속해서 말해나갔다. 지금이 몰아붙여야 할 타이밍임을 대공은 알고 있었다.

    “파이몬은 수천 년이 넘도록 유구하게 전해져 내려온 노예제를 폐기하려는 악당 중의 악당이요, 마계의 모든 도시와 촌락을 파멸로 이끄는 악몽. 바르바토스께선 그렇게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단호히 파이몬 전하를 처단하라 명령하셨습니다.”

    연이어 터지는 폭로에 시민들은 경악을 멈출 틈이 없었다. 독사대공이 꿋꿋하게 마르바스를 바라보았다.

    “……다만, 저를 비롯하여 일곱 명의 대공은 아무래도 수긍할 수가 없었나이다. 파이몬 전하께서는 마족을 위하여 누구보다 분투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런 분을 암살하라니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과연. 그래서 반기를 들었는가.”

    “예, 전하.”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서 제파르의 눈이 가늘어졌다. 독사대공이 진실을 고하고 있다는 것을 제파르도 체감했으리라. 나는 충분히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하여 입을 열었다.

    “판관을 맡아주신 동지 여러분. 지금 들으셨다시피 바르바토스는 마왕 파이몬을 암살하였습니다. 우리는 바르바토스에게 가장 엄격한 처벌을 내려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과연 이 끔찍한 암살에 오직 바르바토스만이 가담했을지 의문입니다.”

    내가 제파르를 노려보았다.

    “마왕 파이몬은 단순히 한 명의 마왕이 아니라 산악파의 거두였습니다. 즉, 바르바토스가 파이몬을 암살한 것이 아니라 평원파가 계획적으로 산악파를 말살하러 들었다……이쪽이 더 합당한 극본입니다.”

    “증거는 있는가?”

    “우선 강력한 심증이 있습니다.”

    나는 수만 명의 마인을 둘러보았다. 어떤 공기가 내 손아귀에 들어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었다. 내가 나 자신을 통제하며 수많은 대중을 제어한다는 확신. 사람들을 선동하려고 할 때면 언제나 이런 느낌에 사로잡혔다.

    “마왕 파이몬이 암살을 당한 직후, 바로 사흘 전, 평원파는 산악파 전체를 말살하고자 움직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산악파에 소속한 마왕 여덟 명이 사망했습니다. 한 파벌의 수장을 암살한 다음에는 나머지 잔당을 청소한다……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적잖게 절묘하군요.”

    “음.”

    마르바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그 여덟 명 중에 한 명인 마왕 모락스는 수상한 언동을 보여주었다. 모락스는 마치 바르바토스한테 사전에 어떤 약조를 언질받은 것처럼 얘기했지.”

    “그렇습니다. 존경하는 동지 여러분. 바르바토스의 계획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내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첫 번째, 마왕 파이몬을 암살하여 산악파를 뒤흔든다. 이것은 대공들의 증언에 의해서 진실임이 드러났습니다. 두 번째, 산악파가 흔들리는 틈을 타서 배신자들을 섭외한다. 이것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강력한 심증이 있습니다.”

    악의적인 속임수가 펼쳐지고 있었다.

    어느새 바르바토스가 파이몬을 암살한 이유가 '산악파를 없애기 위해서'로 고정되었다. 만일 이곳에 뛰어난 변호사가 있었다면 곧바로 허점을 노리고 파고들었겠지만, 안타깝게도 평원파를 위한 변호사 따위는 없었다. 마르바스와 나의 암묵적인 연극 아래 진실이 하나씩 은폐되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배신자들까지 포함시켜서 산악파를 전원 말살한다. 이것이 사흘 전, 마왕 파이몬이 안치된 건물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바르바토스는 간악하게도 배신자들마저 숙청함으로써 행여라도 자신의 계획이 새어나가는 것을 방지했습니다…….”

    내가 슬프게 분노한 표정을 지어 내보였다.

    “평원파와 산악파가 서로 대립한다는 사실은 어린애조차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상대 파벌을 짓누르고자 열망할지라도, 바르바토스의 수단은 지나치게 참혹합니다. 그녀는 파이몬을 암살했습니다. 그녀는 상대 파벌의 동료들로 하여금 서로가 서로를 죽이도록 조장했습니다. 거기에 더 나아가, 여덟 명의 마왕을 참혹하게 살해했습니다.”

    나는 광장을 정면에서 바라보았다.

    “저는 고합니다. 만일 세상에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 한 명 있다면 그것은 바르바토스입니다. 여기에 재판관으로 나와주신 시트리 전하를 언급하자면…….”

    내가 오른팔로 시트리를 가리켰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바르바토스에게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파이몬을 죽인 것에 대해 솔직하고 진지하게 사과해줄 것. 그것이 다만 시트리 전하의 요청이었습니다. 하지만, 존경하는 동지 여러분. 그때 바르바토스는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단지 한 마디의 사과를 바랄 뿐인 시트리 전하를 어떻게 대했습니까?”

    내가 입술을 꾹 다문 다음에 눈을 찡그렸다. 그리고 숨결을 토해내듯이 말했다.

    “천박한 돼지 새끼라고 모욕했습니다.”

    나의 호흡을 따라하듯이 광장의 인민들이 숨을 죽였다. 기묘하리 만치 적막해진 광장에 내 조용한 분노가 가라앉았다.

    “그녀는 시트리의 팔다리를 잘랐습니다. 그때조차 시트리는 눈물을 흘리면서, 사과하라고, 파이몬을 죽인 것에 대해 사과하라고 울부짖었습니다. 하지만 바르바토스는. 한때 전사였을지 모르나 지금은 권력욕에 눈이 멀어 비열한 정치가로 전락해버린 이 암살자는, 시트리의 손등을 짓밟고, 시트리의 머리채를 잡아뜯으며, 그녀에게 침을 뱉고, 그녀를 고문했습니다.”

    분노는 조용할수록 위력적이었다.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바르바토스의 죄목을 고발했다. 이 순간 내 머릿속에 스치는 것은 바르바토스와 내가 수없이 나눈 웃음소리였다. 그 가벼운 웃음소리를 한켠으로 밀어내며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 광경을, 저는 바로 이 눈앞에서 지켜보았습니다.”

    “…….”

    “동지 여러분. 그대들도 함께 보았을 터입니다. 누군가가 이 죄악을 처단해야만 합니다. 저는 이번 암살과 숙청에 관여한 모든 평원파 마왕들에게 참수형을 요청합니다.”

    전원 참수형.

    광장이 다시 한번 떠들썩해졌다. 그러나 아까 전과 같이 소란스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불길함과 음산함, 폭로된 진실의 무게에 시민들은 헛숨을 삼켰다. 마르바스 역시 그들을 내버려두었다.

    다음으로, 독사대공 이외의 마계대공들이 차례차례 증인석에 올랐다. 그들은 입을 모아서 바르바토스의 지령이 실제로 이루어졌음을 증언했다. 이로써 바르바토스의 죄는 명백해졌다.

    “제파르.”

    “…….”

    “당신은 평원파의 핵심 간부이자 바르바토스의 측근입니다. 바르바토스가 계획적으로 산악파를 말살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당신이 몰랐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합니다. 당신에게 질문하겠습니다. 마왕 파이몬을 암살하는 계획을 당신은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습니까?”

    여기서 제파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

    하나는 진실을 말하는 것. 즉, 암살 계획은 들어본 적도 없으며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것이었다. 이 경우, 제파르는 증거가 부족하는 이유 아래 풀려나리라.

    다른 한 가지는.

    “아아. 인지하고 있었다.”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범행을 고백하는 것이었다.

    내가 마음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걸렸다.

    제파르는 내가 쳐놓은 거미줄에 정통으로 걸려들고 말았다.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달리 말해 범행에 참여했다는 뜻입니까?”

    “그렇다. 본인은 마왕 파이몬을 암살하는 데 누구보다 깊이 참여했으며, 사실상 그 계획을 주도한 장본인이나 다름없다.”

    광장이 술렁거렸다.

    정말로 단순한 함정이었다. 제파르는 바르바토스가 이런 자리에서 죽기를 절대로 원하지 않았다. 바르바토스의 죽음을 내버려두고 자기 혼자 살아남기란 더더욱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파르와 같은 충신이 선택할 길은 단 하나뿐.

    “하지만 대공들의 증언에는 잘못된 곳이 있다.”

    “잘못된 곳? 그게 무엇입니까.”

    “마계대공들에게 지령을 내린 사람은 바르바토스 전하가 아니다. 바로 나, 제파르가 그들에게 지령을 내렸다.”

    바르바토스를 대신하여 모든 죄를 자신이 끌어안는다.

    제파르는 당연하다듯이, 자신이 희생하는 길을 선택했다.

    내가 눈썹을 찡그렸다.

    “그건 납득하기 어렵군요. 대공들은 분명히 바르바토스에게 직접 지령을 받았다고 증언했습니다. 어떻게 당신이 지령을 내렸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폴리모프 마법을 동원했다. 간단한 일이었지.”

    제파르가 덤덤하게 말했다.

    “바르바토스 전하가 잠시 황궁을 비운 사이, 내가 전하의 접견실을 이용해서 그들을 불러들였다. 대공들은 멍청하게도 본인이 바르바토스 전하라고 철썩같이 믿더군. 그들을 속이는 것은 쉬웠다.”

    “……당신의 주장이 옳다는 증거물은?”

    “없다.”

    제파르가 씩 웃었다.

    “파이몬을 암살하는 일이다. 주의에 주의를 기울였지. 증거 따위 남겨두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러나, 내 주장이 틀렸다는 증거물 역시 없을 터. 아니 그러한가.”

    “…….”

    내가 잠깐 침묵했다.

    “이해할 수 없군요. 왜 굳이 바르바토스를 가장해서 당신이 지령을 전달할 필요가 있었습니까? 바르바토스 본인이 밀명을 내리든, 당신이 밀명을 내리든, 큰 차이는 없습니다.”

    “아니. 매우 커다란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파이몬을 암살할 것을 떠올리고 계획한 자가 바로 본인이기 때문이다!”

    제파르가 광장을 쳐다보며 크게 소리쳤다.

    “바르바토스 전하는 이 계획에 참여한 적도 없다. 모든 것은 나 제파르의 주도 아래 이루어졌음이라.”

    “무슨 소리를…….”

    제파르의 도발적인 선언에 시민들이 수군거렸다. 나 역시 충격을 받은 표정을 가장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제파르는 끊임없이 말해나갔다.

    “본인은 예전부터 파이몬, 그 허술하기 짝이 없는 창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왕인 주제에 쓸데없이 인명을 아끼고 선정을 베푼다면서 노예제를 폐지하려 들었다. 천박하고 멍청한 년이었지!”

    제파르가 파안대소했다.

    “그 창녀가 마계로 향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지금이야말로 기회라고 직감했다. 아아, 그래서 마계대공들을 불러모았다. 바르바토스를 흉내 내서 암살을 명령했다. 훌륭한 계획이었지. 단탈리안, 네놈까지 거기서 죽어버렸다면 더없이 완벽했을 텐데 말이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