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432화 (432/510)
  • 00432 존재의 긍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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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정대로 니블헤임에서 공개재판이 열렸다.

    도시의 중앙광장에는 마인이 수만 명 집결했다. 이들이 보는 앞에서 바르바토스를 비롯하여 평원파 마왕 전원을 재판하는 것이었다. 보통 재판에서 판결이 이루어지더라도 약간의 유예를 두고 처벌을 집행했지만, 이번은 사정이 달랐다.

    판결이 내려지고 곧바로 처형을 시행한다. 그것이 이번 재판에서 판관으로 임명된 선제후들. 마르바스, 시트리, 가미긴, 바싸고, 네 사람끼리 합의한 사안이었다. 나는 일종의 고발인이자 검사로서 재판을 진행했다.

    요컨대 짜고 치는 도박.

    변호사는 없었다. 평원파 마왕들은 순전히 자신들만의 힘으로 스스로 변호해야만 했다. 그들에게는 증인을 불러들일 권한조차 없었다. 군사재판이나 종교재판보다 더 악독한 재판이, 역사상 유례없이 많은 숫자의 마왕을 한꺼번에 처리했다.

    “……전하께서 암살을 저지르셨을 리가…….”

    “불경한 말을 입에 담지 말게. 저곳에는 마르바스와 바싸고 전하께서…….”

    시민이 오만 명쯤 모였을까. 마왕들의 앞인지라 마족들은 시끄럽게 떠들거나 난동을 부리지 않았으나, 옆사람과 소곤소곤 귓속말을 나누는 소리조차 오만 명이 동시에 내면 이미 거대한 진동이나 다름없었다.

    “단탈리안.”

    재판장을 맡은 마르바스가 나를 불렀다. 내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서자, 마르바스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자네에게 온전히 이번 일을 맡겼네만, 잘 진행되고 있는가.”

    “걱정하지 마시길. 평원파의 우정은 단단한 성채와도 같습니다.”

    내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이번 재판에서 평원파는 반드시 몰락해야 했다. 나는 물론이고 마르바스 역시 지금 정치적인 생명을 걸고 있었다.

    “저를 신뢰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마르바스. 평원파를 신뢰하십시오.”

    “본인은 언제나 자네를 신뢰한다네.”

    우리가 바르바토스를 밀실에서 처형하지 않은 까닭은 단 하나. 바르바토스 본인이 가진 인망 때문이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바르바토스의 유죄를 낱낱이 밝혀내지 않는 이상, 마계의 시민들은 결코 바르바토스가 암살을 범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리라.

    중립파와 산악파가 자작극을 연출해낸 것 아니냐는 의혹이 틀림없이 제기된다. 설령 우리들 앞에서 당당하게 의혹을 폭로하진 못할지라도 의심은 찌꺼기처럼 끈덕지게 남는다. 장래에 위험이 될 만한 요소를 조금이라도 남겨둘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실을 신뢰하지.”

    마르바스가 회색 눈동자로 나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우리에게는 진실이 함께하고 있네. 바르바토스는 파이몬을 암살했으며, 바르바토스가 처단되어야 하는 이상 평원파를 모조리 처분해야 한다. 안 그런가.”

    “예, 세바스토크라토르. 우리 모두가 동의한 사항입니다.”

    “으음.”

    마르바스가 두 눈을 감았다.

    “결국에는 이런 날이 오고 말았는가. 제2차 월맹군으로부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나날이었다. 하지만, 그래. 이미 그때부터 정해진 결말일지도 모르겠군.”

    마르바스는 감상이 남다르리라. 일찍이 함께 군단을 이끌었던 동료한테 사형을 선고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남자의 견고함이 엿보였다…….

    친애를 느낀다. 존경도 표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판단된다면 말끔하게 선을 끊어버린다. 그것이 마르바스라는 마왕이었다. 바로 그런 냉철함 때문에 마르바스와 나는 파트너가 되었다.

    “단탈리안. 회한을 남기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회한에 지지 않을 자신만은.”

    “……그걸로 좋겠지.”

    마르바스가 서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흑색보다 짙은 회색의 눈동자를 빛내면서 마르바스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것은 오늘을 장식할 무대의 막이 오른다는 것을 의미했다.

    “경청하라! 마족들이여!”

    마르바스의 목소리가 확성마법을 타고 널리 울려 퍼졌다.

    마치 오르간처럼 음색은 공기를 내리찍고 짓눌렀다. 물경 오만 명의 시민이 한 순간에 입을 다물었다. 아이를 안고 구경하러 온 오크도, 분개하며 동료들과 떠들던 마녀들도, 가장 앞자리에서 서로 수군거리던 마계대공들도, 모두 마르바스의 지배력에 숨을 죽였다.

    “오늘 이 자리에서, 중대하고도 엄중한 진실이 밝혀질지어다!”

    마르바스가 광장을 오시했다. 누구도 마르바스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단지 마르바스의 양옆으로 앉은 선제후 판관들만이 평소와 똑같은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마왕을 살해했다는 것은 거대한 죄악. 거기에 더하여 암살이라는 흉계를 동원했다는 것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악행이다! 오늘 모인 인물들 중에 누군가가 바로 그 악을 범했노라!”

    가미긴이 싱글벙글 미소를 지었다.

    바싸고가 만사를 경멸하는 눈초리로 허공을 흘겨보고 있었다.

    아직 몸이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시트리는, 목발을 품에 거느린 채 무표정하게 정면을 응시하였다.

    내가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오였다. 샛푸른 하늘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광장의 경비를 보는 와이번들이 하얀 구름을 배경으로 삼아서 천천히 날개짓했다. 누군가가 죽음을 맞이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나를 호위하고 있는 데이지에게 바알의 검을 건네받아서 바르바토스 및 평원파 마왕들의 목을 친다. 바알의 검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라면 바르바토스를 일격에 참수하는 것이 가능했다.

    “나 마르바스가 고귀한 이름으로 선언하나니, 이곳에서 진실은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요, 악행은 의문의 여지없이 곧바로 처단당할 것이다! 그대들은 이 앞에서 엄숙하게 침묵하라!”

    자아.

    “마왕 바르바토스에 대한 재판을 개정한다!”

    공개처형식의 시작이다.

    마르바스가 자리에 앉아 손짓했다.

    “먼저 죄인 제파르를 심문한다. 끌고 오도록!”

    위병 역할을 맡은 중립파 마왕들에게 이끌려서 제파르 형님이 연단에 올라왔다.

    제파르 형님은 얇은 천옷을 걸치고 있었다. 거의 새하얀 속옷이라 봐도 무방했다. 마왕의 위엄이나 체면이라고는 철두철미하게 무시한 복장이었다. 시민들은 제파르 형님의 옷차림에, 그리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한쪽 팔에 충격을 받아 수군거렸다.

    “보호구를 풀어라.”

    중립파 마왕들이 제파르 형님의 머리에서 투구 비슷한 것을 벗겼다. 시각과 청각을 차단하는 투구로써 현재 모든 평원파 마왕들에게 강제적으로 씌워져 있었다. 투구가 벗겨지자, 사흘 내내 감옥에 투옥되어 초라해진 제파르 형님의 얼굴이 드러났다.

    “단탈리안. 시작하도록.”

    “예, 전하.”

    내가 제파르 형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곳은 말하자면 결투장. 콜로세움이었다.

    “…….”

    “…….”

    수만 명의 관중이 구경하고, 네 명의 재판관이 심판하는 가운데, 연단에 올라선 제파르 형님과 내가 서로를 마주보았다. 우리 두 사람의 목적은 정면으로 충돌했다. 바르바토스의 유죄를 폭로하는 것. 그리고 바르바토스가 무죄임을 입증하는 것.

    나는 이미 사흘 전에 거미줄을 쳐놓았다.

    ‘본인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게냐.’

    ‘제발 무죄를 고백해주십시오. 그것만이 평원파가 살아남을 길입니다.’

    ‘자네는 아무것도 몰라.’

    거기에 걸려들지 않을지. 그것이 도박이었다.

    오늘 재판에서는 내가 도박을 건 부분이 두 군데 있었다. 그 첫 번째 내기판이 제파르 형님과 여타 평원파 마왕을 상대로 한 것이었다. 두 번째 내기판의 상대는 바르바토스……. 즉, 나는 두 개의 난관을 넘어서야만 완전무결한 승리를 쟁취했다.

    그렇다.

    바르바토스를 밀실에서 처리해버리는 대신 광장에서 처형하기로 결정한 이상, 당연하게도, 내가 패배할 가능성 또한 생겨났다.

    따라서 대결이었다.

    내가 승리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리 판단하고 있었지만, 평원파가 승리를 거둘 확률 역시 틀림없이 있었다. 그저 이쪽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승부가 아니었다.

    마음껏 덤비도록 해라, 제파르.

    우리는 보이지 않는 칼날을 서로에게 겨누고 있다. 형님 대접을 받을 생각 따위는 집어쳐라. 나는 전력으로 당신을 사냥하겠다.

    “저 단탈리안은 마왕 파이몬을 암살한 범인으로서 마왕 바르바토스를 고발합니다.”

    내 목소리 역시 확성마법을 통해서 광장에 퍼졌다. 이미 재판 내용이 어느 정도 공개되어 있었지만 시민들이 경악하는 걸 막지는 못했다. 게다가 바르바토스의 첫 번째 남자로 유명한 내가 그녀를 고발한다니 충격이 배가 되겠지.

    “먼저 증인들을 부르겠습니다. 오늘 증인으로 출두한 일곱 명의 마계대공. 그들 전원에게 증언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허가한다. 증인은 본인이 호명하는 순서대로 출두하여 증언석에 서도록.”

    첫 타자는 독사대공이었다.

    나이가 지긋하게 든 흡혈귀가 하인들의 시중을 받으면서 증인석에 올라왔다. 하인 두 명이 큼직하게 양산을 펼쳐서 주인을 보호했는데, 흡혈귀가 대낮의 태양빛에 노출되는 건 별로 유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우선 존경하는 재판관 여러분께 소인이 오로지 진실만을 증언할 것을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아폴론과 하데스의 이름에 맹세하나니, 제 증언에 터럭이라도 거짓이 섞인다면 재판관 여러분께서 만신(萬神)을 대신하여 소인을 처벌해주실 것이며, 오늘 광장에 자리한 신민이 만마의 의지로써 소인을 저주할 것입니다.”

    독사대공이 공손하게 재판관으로 나온 마왕들에게 허리를 숙였다. 독사대공은 네 명의 마왕에게 절도 있으면서도 빠른 속도로 각각 한 번씩 인사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등을 돌려서 광장을 향해 특히나 깊이 허리를 기울였다.

    의례가 정리되자 내가 대공에게 질문했다.

    “독사대공. 그대는 올해 12월, 마왕 바르바토스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받았다. 맞는가?”

    “예, 전하. 소인은 분명히 바르바토스 전하께 비밀리에 연락을 받았나이다.”

    “그 연락의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대공이 슬쩍 광장을 훑어보았다. 한 박자 느릿하게 대답을 함으로써 이목을 끌려는 것이었다. 대공이 아주 약간 머뭇거렸을 뿐인데도 광장의 공기가 순식간에 긴장으로 팽팽해졌다.

    “……소인은 감히 참람하여 말씀드리기가 두렵습니다.”

    “그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진실만을 말하기로 약속했다. 침묵은 결코 진실을 대신할 수 없으니, 왜냐하면 침묵이란 거짓에 유예를 주는 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내가 엄하게 독사대공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사전에 계획된 것으로써, 지금 독사대공이 난처하다는 듯이 얼굴을 구기는 것도 극본에 짜여진 그대로였다.

    “물론 소인은 감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주권자이신 여러분들 앞에서 거짓을 고하거나 유예할 생각일랑 눈꼽만치도 없습니다. 하오나, 진실은 때때로 그것을 입에 담은 자를 해하기 마련입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소인의 안전을 약조해주시옵소서.”

    독사대공이 말을 끝내자마자 광장이 들끓었다. 법정에서 공개적으로 안전을 요구하는 행위는 재판관들을 모욕하는 것이었다. 무례하다든지, 주제를 모른다든지, 일부 과격한 시민들이 삿대질을 하며 소리 질렀다.

    “조용히.”

    마르바스가 말했다. 그러자 광장의 소란도 잠잠해졌다. 마르바스는 차가운 시선으로 독사대공을 노려보았다.

    “그대는 우리의 증인이요, 이곳은 우리의 법정이다. 이미 그대에게 안전을 보장했건만 또 다시 보증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송구하기 이를 데 없나이다, 전하. 하오나 소인은 재판의 결과가 어찌되든 상관없이 절대적인 안전을 보장받기 원합니다.”

    “그대는 우리들의 약속을 받았노라.”

    마르바스가 반쯤 몸을 일으켜서 하문했다.

    “지난 해 12월. 그대는 바르바토스로부터 무슨 언질을 받았느냐.”

    “이미 승하하신 파이몬 전하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전하.”

    “그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바르바토스께서는.”

    독사대공이 잠시간 뜸을 들이고 입을 열었다.

    “바르바토스께서는 파이몬을 암살할 것을 소인에게 명하셨나이다.”

    ――광장에서 폭발음과 같은 아우성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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