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428화 (428/510)

00428 황금의 몰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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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밤, 평원파 마왕들은 지하감옥에 수감되었다.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끌려가는 와중에도 그들은 기세 좋게 소리를 질렀다. 사실 악바리를 쓴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우리는 바르바토스 전하와 함께 죽기를 맹세했다! 그곳이 전쟁터이든 광장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어! 네놈에게 무슨 사악한 계획이 있을지라도 우리들의 맹세를 깨부술 수는 없다!”

그야말로 핏기가 절절하게 묻어나오는 외침이었다. 동료의 의기에 마음이 움직였는지, 혹은 잠시라도 바르바토스에 대해 의심한 것을 기억에서 지우려는 것인지, 평원파 마왕들은 앞다퉈서 내게 욕을 쏟아부었다.

“그렇다! 헛수작 부리지 마라, 저열한 배신자야!”

“네 녀석이 원하는 것이라곤 우리의 목숨 이외에 아무것도 취하지 못하리라!”

그들은 죽기는 쉽고 살기는 어렵다는 식으로 아우성을 쳤다.

나와 더불러서 중립파 마왕들이 그들을 호송했다. 내가 그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충동적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께서는 파이몬의 죽음에 어떠한 연관도 없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죄를 범한 사람만이 처벌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바르바토스 전하께서는 암살 따위를 행하지 않으셨다!”

한 마왕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여러분께서 결백하시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것입니까?”

그러나 내 말 따위는 들리지도 않고 듣지도 않겠다는 듯, 대다수의 평원파 마왕들은 그저 악바리를 쓰기만 했다.

여덟 명의 마왕은 각기 멀찍이 떨어져서 독방에 투옥되었는데, 한동안 감옥에 갇혀서도 바르바토스와 같이 죽겠노라고 소리 높여 맹세했다.

단지 두 사람, 제파르 형님과 벨레드 형님만은 각기 다른 얼굴로 침묵을 지켰다. 제파르 형님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묵묵하게 입을 다물었고, 벨레드 형님은 당장이라도 파안대소할 것처럼 입가에 웃음기를 띄웠다.

바르바토스는……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원파 마왕들이 모두 뿔뿔이 투옥된 직후. 나는 호위로 데이지를 대동한 채, 먼저 제파르 형님이 갇힌 독방에 찾아갔다. 모든 독방은 철저하게 반(反)마법으로 뒤덮여 있었고, 수감자는 벽면에 사지가 꽁꽁 묶였다.

제파르 형님 역시 온몸이 포박되어 있었다. 내가 철문을 열고 들어오자, 제파르 형님이 빤히 나를 노려다보았다. 무엇을 하려고 여기 왔느냐. 시선이 그렇게 묻고 있었다.

“거두절미하겠습니다, 형님.”

“형님……?”

제파르 형님이 메마르게 웃었다. 사막의 공기가 떠오를 만큼 메마른 웃음이었다.

“네놈이 여전히 나를 그리 부를 이유가 어디 하나라도 있다는 말이냐?”

“뭐라고 말씀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우선 이걸 알아두십시오. 이대로 내일이 지나면, 바르바토스는 틀림없이 죽습니다.”

“…….”

“바르바토스는 정말로 파이몬을 암살했습니다.”

쿵, 하고 제파르 형님이 몸을 비틀었다. 특별히 마력이 서린 강철 쇠사슬로 빈틈없이 신체를 묶어두었음에도, 게다가 제파르 형님 본인부터 팔이 잘린데다 독 묻은 칼날에 몇 번이고 찔렸음에도, 순간적으로 독방이 진동했다.

“그 요망한 혓바닥을 당장 멈추지 못할까……!”

“형님. 제 말을 신뢰하든 신뢰하지 않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다. 그 정도로 생각해주셔도 좋습니다.”

내가 차분하게 말해나갔다.

“만약의 이야기입니다. 바르바토스가 진실로 파이몬을 암살했으며, 그에 대해 확고부동한 증거들이 있다면 어찌하실 셈입니까. 그뿐만이 아닙니다. 마르바스는 일부러 우리 평원파가 산악파를 공격하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일부러……?”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품속에서 담뱃대를 꺼내어서 물었다. 자연스럽게, 데이지가 옆에서 불을 지펴주었다.

“마르바스는 말했습니다. 파벌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바르바토스를 처단한다고. 그렇지만 단순히 바르바토스를 처벌하고자 했다면, 구태여 산악파가 전멸에 이를 때까지 수수방관할 이유가 없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차라리 산악파와 연합해서 평원파를 공격하는 편이 올바르다는 것입니다.”

내가 후우, 하고 연기를 공중에 흘려보냈다.

“하지만 마르바스는 산악파가 거의 전부 죽는 것을 용인했습니다. 그 다음에 평원파를 숙청하고자 움직였지요.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형님?”

제파르 형님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답을 모르는 눈치가 아니었다. 나에게 대답한다는 행위 자체가 증오스러워서 입을 다물었을 따름이다.

“정답은 하나뿐입니다. 마르바스는 중립파에 의한 독재를 꿈꾸고 있습니다.”

“…….”

“아니, 독재라고 하면 어감이 과할까요. 학살을 저지른 산악파도, 암살을 범한 평원파도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느낌에 가깝지요. 마르바스는 중립파 이외에는 마족을 통치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사실이었다.

본래 마르바스와 시트리 사이에는 평원파를 협공하기로 약조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마르바스는 중립파의 피해를 최소화 시키려고 한 발자국 늦게 평원파를 공격했다. 어차피 평원파를 전부 숙청해버리기로 결정한 이상, 산악파 역시 숫자가 줄어들 필요가 있다 판단했겠지.

결국 시트리는 어느 쪽에서든 이용당한 셈이 되었다.

나에게도, 마르바스에게도, 산악파의 배신자들에게도.

……여긴 순수한 마왕이 아무런 탈 없이 살아갈 정도로 밝은 곳이 아니었다. 판데모니움. 말 그대로 만마가 모여드는 장소였다. 지금쯤 시트리는 마법사들에게 치료를 받으면서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겠지…….

그리고 나는 시트리가 눈물을 흘리는 광경을 생각하는 동시에――'잘 되었다'라고 생각했다. 정말이었다.

시트리가 중립파에 적대심을 품으면 품을수록 결국 나에게 이득이 되었다. 시트리가 기댈 곳이 더더욱 나 한 명으로 고정되니까. 마르바스에게 환멸감을 품어주는 것이, 배신감을 느껴주는 것이 내게는 좋았다.

그러니까, 그런 얘기다.

나란 녀석은 그런 놈이었다.

“형님. 이대로 평원파 동지들이 자신의 무죄를 고백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유죄를 인정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어떤 극본이 완성될 것 같습니까? 아니. 제가 말해보지요.”

“…….”

“평원파는 전원이 처형당합니다. 바르바토스뿐만 아니라 평원파 모두가 파이몬의 암살에 관련되었다는 의혹이 굳어진 채로. 산악파는 몰락하고, 평원파는 궤멸합니다. 마르바스의 승리입니다.”

제파르 형님이 눈을 감았다. 얼핏 보기에도 괴로운 기색이었다.

“마르바스는 평원파들이 무죄를 고백하는 것을 바라고 있지 않습니다.”

“……본인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게냐…….”

“제발 무죄를 고백해주십시오.”

내가 애절하게 부탁했다.

“그것만이 평원파가 살아남을 길입니다.”

“자네는 아무것도 몰라.”

제파르 형님이 툭, 하고 중얼거렸다.

“우리가 무죄를 고백해본들 어차피 바르바토스 각하께서는 죽음을 면치 못하시겠지. 각하께서 사라지고 나면 우리에게 무엇이 남겠나. 거기에도 여전히 평원파가 남을 것 같은가?”

제파르 형님이 작게 비웃었다.

“……형님. 이건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정말로 자네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일세, 단탈리안. 본질적으로 사람의 마음에 무지하군. 이건 가장 정치적이지 않은 문제야. 각하의 죽음이 곧 평원파의 죽음이다. 이걸 이해하지 못한다면 자네는 영원히 무언가를 이해하지 못하겠지…….”

제파르 형님이 눈을 떴다. 주름진 눈꺼풀 너머에서 회색빛 눈동자가 드러났다. 눈동자는 명백히 고통으로 지쳤다. 하지만 그속에도 형형하게 도사리는 빛이 있었다.

“삶의 문제란 결국에는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죽느냐로 결정된다. 삶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의해서 죽는 방식이 결정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의해서는 삶이 결정된다. 우리는 바르바토스 각하와 함께 죽겠노라고. 반드시 같이 죽겠노라고 결정했다.”

“…….”

“어쩌면 자네에게는 괴로운 입장을 강요했을지 모르겠군.”

제파르 형님이 나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자네는 바르바토스 각하의 애인이었지만 파이몬의 애인이기도 했어. 아아, 그랬지. 자네가 두 파벌을 조율한 덕분에 잠시나마 평화로운 시기가 있었다. 얄궂은 이야기야. 결국 자네 한 사람에게 마왕군 전체가 평화와 전쟁을 떠넘긴 셈이니…….

제파르 형님이 씁쓸하게 한탄했다.

“자네를 사이에 두고 바르바토스 각하와 파이몬이 말로 다투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어쩌면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찰나의 꿈이었군. 결국 어느 한쪽도 선택하지 못하게 되었어. 자네에게 요 몇 달은 영원토록 최악의 실수이자 악몽으로 남겠지…….”

”…….”

“아마도 바르바토스 각하께서는 정말로 파이몬을 암살하셨겠지.”

내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무죄를 인정해주십시오!”

“아니다. 단탈리안, 정반대다. 자네는 여전히 아무것도 몰라.”

제파르 형님이 슬쩍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수염도 입가도 핏물로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바르바토스 각하께서는 곧 죽으셔도 암살 따위는 행하지 않을 분이다. 상대가 파이몬이더라도 마찬가지야. 아니, 숙적인 파이몬이기에 오히려 절대로 암살을 택하지 않겠지. 그건 마왕의 자존심이 걸린 지점이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미간을 찌푸렸다. 절반은 연기였고, 절반은 진심이었다.

제파르 형님은 내 의도대로 속아주고 있었다.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결심했는지, 나는 눈금 들여다보듯 훤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제파르 형님이 지금 내뱉는 말들은 내 계획상에 없었다.

큰 물줄기가 흘러가지만 어딘가 한가운데에서 빙글 돌아버린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바르바토스 각하께서 만일 암살을 범하셨다면 그건 마왕으로서 행한 일이 아니다.”

“…….”

“단탈리안. 각하께서는 자네를 사랑하는 한 명의 소녀로서 그러신 게야.”

아마도.

지금 내 얼굴은 굳어 있겠지.

“어떤 고난이 들이닥쳐도 긍지와 신념을 꺽지 않는 분이시다. 다른 무언가를 위해서가 아니야. 그분께서는 그분 자신을 위해서 죽는 그날까지 신념을 지키시겠지. 하, 실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시는 분이지 않는가.”

그렇기에.

오히려 그렇기에, 하고 제파르가 말했다.

“만일 그분께서 긍지를 접는다면 그건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다른 사람을 위해서다.”

거기까지 말해라.

“자네를 위해서다.”

그딴 것쯤은 알고 있었다.

“바르바토스 각하께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시는 만큼. 꼭 그만큼 자네 역시 사랑하고 있는 것이야.”

이미 파이몬을 죽이는 그 순간부터. 그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나 때문에 비롯했다는 사실 따위는, 진즉부터 깨닫고 있었다.

그걸 구태여 내 면전에서 되새기게 하지 마라.

“우리 평원파가 숭배하는 마왕 바르바토스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단지 그분에게는 자신의 신념만큼이나 거대한 무언가가 생겨버렸을 뿐이지. 만약 그것이 사랑이라면, 단탈리안. 나는 기쁘게 바르바토스 각하의 이율배반을 인정할 것이다.”

바르바토스가 내 배신을 깨닫고 눈물을 흘린 까닭.

아무런 항변도 변명도 하지 못한 채 그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이유.

그건 그녀가 정치적 동반자인 나에게 배신당했기 때문이 아니라――단지 사랑하는 여자로서, 사랑하는 남자에게 배반당했기에, 소리없이 흐느끼는 것이었다.

“바르바토스 각하께서 홀로 떠나시게 내버려둘 수야 없지. 나 제파르, 태어난 의미를 깨달은 그 순간부터 각하를 모셨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각하를 옆자리에서 지키겠다. ……단탈리안. 안타깝지만 자네의 제안에 응해줄 수는 없다.”

그걸로 제파르 형님은 다시 눈을 감았다. 축객령이었다.

나는 말없이 독방에서 걸어나왔다. 걸어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얼마간 눅눅하고 축축한 복도를 걷고, 나는 몸이 기울어지면서 벽에 부딪쳤다.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두근거렸다. 숨이 가빠왔다. 내가 벽면에 미끄러지면서 쓰러지자, 데이지가 조심스럽게 내 몸을 받아냈다.

“하아, 흐윽……하아…….”

이건 연초 때문이었다. 그렇다. 연초에 중독된 탓에 갑작스레 심장이 날뛰는 것이었다. 그것 이외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가끔씩 이런 발작이 일어났다.

데이지가 물끄러미 검은 눈동자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히죽 웃었다. 입꼬리가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어찌되었든 미소를 만들어냈다. 웃음을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악덕이었다.

“뭘 우습다고 보고 있느냐.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거늘.”

“…….”

“일으켜라, 우둔한 것.”

데이지가 조용히 나를 부축해서 일으켰다. 잠시 뒤에 어지럼증이 사라졌다. 심장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평소대로의 나. 언제나와 같은 내가 완성되었다.

좋았다.

제파르 형님의 마음속에 심어둔 의심의 꽃이 만개했다. 시나리오는 완벽을 향해서 질주하고 있었다.

이제, 바르바토스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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