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07 거미와 독사 =========================================================================
“오빠에 대한 소문은 많이 들었어. 주로 여자 관련으로.”
“으응? 하, 하하. 그게 그렇게 소문이 퍼졌나…….”
“두 달에 한 번 꼴로 여자를 갈아치우고 있다면서. 대단해.”
데이지가 빈정거렸다. 그걸 루크는 호의가 섞인 놀림으로 받아들였는지 바보처럼 헤헤 웃었다.
영웅은 호색이라고 했더니, 루크는 정말 도시에 처녀가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찬란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었다. 마왕이자 영주인 내 양자라는 간판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대단한 것까지야. 그냥 대부님한테 배운 걸 실천할 뿐인데.”
“아버님이 뭐라고 했길래?”
“응. 가족이란 제도는 사람이 사유재산을 후대에 물려줘서 결국 부를 대물림하는 거라고.”
루크는 마치 신의 진리를 입에 담는 성직자처럼 확신에 차서 떠들었다.
“진정으로 평등이 이룩되려면 결혼과 가족에 대한 관념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씀했어. 그러니까 마음에 들거나 사랑스러운 감정이 들면,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제일이야!”
……어라? 내가 그런 말을 했나?
아, 아아! 기억이 났다. 언젠가 루크가 제레미와 성교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는지 나한테 몰래 찾아온 적이 있었다. 루크는 제레미가 내 첩실인 줄 알았다. 양아버지의 애인과 몰래 사랑을 나누는 걸 죄악이라고 여긴 것이었다.
그때 저런 말을 들려주었다. 제레미든 누구든 연애는 개개인의 자유라고. 너희 두 명이서 좋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아무렇게나, 대충 떠오른 대로 말했다. 그때 나는 프랑크에서 앙리에타를 어떻게 상대할까 고심하느라 꼬맹이의 상담에 진지하게 응해줄 여유 따위가 없었다.
‘그, 그럼 제가 제레미 누나랑 그걸……해도 되는 건가요?’
‘당연하고 말고.’
머릿속으로는 앙리에타에게 얼마나 큰 엿을 먹여야 거 참 잘 먹였다고 소문이 날지 고민하면서, 나는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남자아이한테 무책임하게 말했다.
‘오히려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좋단다.’
‘네, 네에?’
‘생각해보려무나. 루크. 네가 자유로운 연애를 상대방한테 알려주면 그만큼 널리 자유로운 사고방식이 퍼지는 것 아니겠니? 평생을 걸쳐도 네가 연애할 수 있는 여자는, 아무리 많아봤자 만 명이 넘지 못하겠지. 그래도 만 명이란다. 대단한 숫자야. 만 명의 몫만큼 루크 너는 올바른 일을 한 거란다. 그것이 아프로디테 여신께서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들에게 내려주신 임무이기도 하지.’
‘그, 그렇군요……!’
순진하기 짝이 없는 장래 용사 후보께서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알겠어요! 저, 사제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세상에 자유로운 사랑을 전파하겠어요!’
‘좋은 결심이다, 루크. 그대로 정진하렴.’
……이제 완전히 떠올랐다!
솔직히 루크는 데이지에 비해 너무 멍청해서 만날 대충대충 대응했다. 어차피 제레미가 루크를 농락한 것 자체가 나의 지시에서 비롯한 것이었기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무심코 농담처럼 내뱉은 말에 루크의 연애 철학이 형성되어버렸다!
즉, 지금껏 루크에게 처녀를 빼앗긴 마을 주민과 도시 시민 수백 명은……따지고 보면 나 때문에 처녀를 상실한 셈이었다.
이 무슨 상상하지도 못한 결과인가. 영웅이 호색인 것이 아니라 내가 희대의 호색한을, 괴물 카사노바를 만들었는가……나란 녀석은 얼마나 죄업이 깊은 것인가…….
“흐응.”
데이지가 서늘하게 코웃음을 흘렸다. 단언하건대 방금 방에서 온도가 2도 정도 떨어졌다. 데이지는 아무것도 없는 방바닥을 쿵, 하고 짓밟았다. 당연하지만 녀석의 발은 침대 아래에 숨어 있는 나에게도 아주 잘 보였다.
“무슨 일이야?”
“아무것도 아니야. 개미가 한 마리 보여서 밟았어.”
양녀한테 졸지에 개미 취급을 받아버렸다.
데이지가 자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오빠. 우리는 세상에서 서로에게 단 한 명뿐인 남매야.”
“어? 물론이지.”
“웬만해서는 서로한테 비밀 같은 걸 남겨두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
루크가 응, 하고 몇 번이나 수긍했다. 그저 3년 만에 사랑하는 동생과 길게 대화를 나누는 것에서 소소한 기쁨을 느끼는 것 같았다. 확연하게 들뜬 루크와 다르게 데이지는 어딘지 모르게 냉랭한 기색이 있었다.
“오빠가 연애에 열심이라는 건 알겠어. 나는 거기에 아무런 생각도 없어. 오히려 응원하고 싶을 정도야. 진심으로.”
“하하. 고마워, 데이지. 너도 얼른 좋은 남자 만나서…….”
“단지 궁금한 점이 있어. 오빠는 거의 항상 연인이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잖아.”
데이지가 말했다.
“그런데 왜 매일 발정난 개처럼 자위를 해대는 거야?”
“…….”
침묵이 내려앉았다.
루크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녀석이 크게 당황했다는 것쯤은 공기로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이제야 데이지의 의중이 짐작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역시 소리없이 경악했다.
“무,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의 의미야.”
데이지의 목소리가 서서히 협박조로 바뀌었다.
“시치미 잡아떼도 소용없어. 제레미 스승이 오빠한테 건네준 물건이 있을 거야.”
“……아, 제레미 누나가 말한 거구나. 하하. 난 또 뭐라고. 하여간 제레미 누나는 사람 놀리는 걸 너무 좋아해서 탈이라니까. 너도 제레미 누나한테 성격이 옮았구나.”
루크는 어떻게 해서든 농담으로 화제를 돌리려고 애썼다. 그만큼 소년에게 당혹스럽고 부끄러운 소재라는 얘기였다. 데이지는 그러나 단호하게 분위기의 흐름을 잘라 끊었다.
“지금부터 내가 질문하는 말에 대답하지 않으면 오빠와 영원히 절연하겠어.”
“데이지……?”
“부끄럽다는 거 알아. 말하기 싫은 것도 알아. 하지만 내가 굳이 이런 밤에, 삼 년 반이 넘도록 피해온 오빠를 아무도 없는 방으로 불러들여서, 이걸 물어보는 데엔 전부 이유가 있어. 그러니까 대답해.”
데이지가 루크에게 한층 가깝게 다가갔다.
“애인이 널렸으면서, 왜 그딴 슬라임을 계속 사용하는 건지.”
“…….”
잠시 뒤, 루크가 입을 열었다.
“왜 질문하는 건지 이유를 알려줄 거야?”
“오빠가 성실하게 대답해준다면.”
“정말로 중요한 질문인 거, 맞지?”
“약속할게.”
루크가 한숨을 쉬었다.
“으으, 알았어. 뭐. 생각해보면 별로 부끄러운 것도 아니려나. 내 나이에 그런 짓을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내 질문에 대답해줘.”
“……일단 그건 제레미 누나한테 선물받은 거야. 글쎄. 벌써 오 년 정도 됐나. 너도 알겠지만 제레미 누나는 여러가지로 짓굳은 면이 많아서……아마 그때도 완전히 어린애였던 나를 놀려먹으려고 했던 것 같아.”
루크가 종종 말끝을 늘어트리며 설명했다. 목소리에서 부끄러움이 넘쳐났다. 동생한테 자신의 치부를 밝히는 것이 어지간히 화끈거리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된 일이냐면……자세한 것까지 다 말해야 돼?”
“아니. 중요한 것만 대답해줘도 상관없어.”
“어휴, 다행이다. 아무튼 제레미 누나는 그 물건으로 나를 엄청 자주 괴롭혀서. 뭐라고 해야 할까.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도 거기에 익숙해져서…….”
루크의 목소리가 모기 소리처럼 작아졌다.
“지금도 난 어리지만 그때는 더 어렸으니까. 제레미 누나같이 다 큰 사람이 놀려대면 그냥 어쩔 수가 없어. 아니, 제레미 누나가 나쁜 건 아니고. 어쨌든 그렇게 됐어. 응.”
“나중에 가서는 오빠한테 애인들이 많이 생겼잖아. 그런데도 물건에 의지할 필요가 있었어?”
“아니……필요가 있었다고 할까.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데이지가 차갑게 질문을 이어나갔다.
“기분이 좋았구나?”
“어, 응. 뭐. 그런 거지.”
“다른 애인이랑 자도 만족할 수가 없었어?”
“……내가 특이한 거지. 어쩌면 일종의 첫경험이었어서 이상한 후유증이 남은 걸 수도 있고. 후우, 데이지 너는 아직 모르겠지만……그,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는 궁합 같은 게 있거든.”
루크는 아직도 부끄러워했지만 조금 전보다는 한결 자유롭게 말했다. 아마 마음속에서 현 상황을 어떻게든 납득한 듯했다. 순수하게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한테 오빠인 자신이 성교육을 시켜준다. 그런 식으로 이해했을지 몰랐다.
“저기. 내가 이런 말을 해도 웃지 마.”
“안 웃어. 전혀 웃기지 않은 내용이니까.”
“……아무래도 난 그 물건이랑, 궁합이 제일 맞는 것 같아. 으. 진짜 내가 좋아한 여자애들도 몇 명 있었어. 그런데도 사랑을 나눌 때나 나눈 다음에나, 이상하지만 그 물건보다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하아. 사실 이게 정말 나랑 사귀어준 여자애들한테 미안한 말인데.”
데이지가 작게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어떤 식으로 이해했을까. 루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웃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응, 미안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어.”
“됐어. 이제 아무것도 얘기 안 해줄 거야.”
루크는 단단히 삐진 어투였다.
“원래 실제랑 물건이랑 느낌이 다른 법이라구. 애당초, 아버님은 데이지 너한테 너무 물러. 완전 그쪽 방면에 무지한 채로 교육하시다니! 알고 나서 상관하지 않는 거랑 알지도 못한 채로 상관하지 않는 것에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어. 내일이라도 당장 대부님한테 말씀드려서 숫기가 없게…….”
“나야. 오빠.”
데이지가 말했다.
아무런 색채가 없는 목소리로.
“그거, 내 거야.”
“……이번엔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건데?”
드디어 사람 좋은 루크도 서서히 역정을 냈다.
데이지는 대답하는 대신 자리에서 일어섰다. 녀석은 방 저편에 놓인 서랍으로 다가가더니, 뭔가를 꺼내는 듯 부스럭거렸다. 내 각도에서는 데이지가 무엇을 꺼내는지 안 보였다. 그러나 빤히 예상되었다.
“이거랑 똑같잖아. 오빠가 쓰는 슬라임.”
“…….”
“오빠는 모르겠지만, 그 투명 슬라임은 반쪽이야. 나머지 반쪽과 감각이 공명해. 예를 들어서 오빠의 슬라임이 구부러지면 이 슬라임도 똑같이 구부러져.”
“아까부터 너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진짜 하나도…….”
“오 년 전, 프랑크의 숲속이었지.”
루크가 입을 다물었다.
데이지가 조곤조곤 말해나갔다.
“너무 울창해서 햇빛마저 드문 숲이었어. 낮이지만 조금 쌀쌀했지. 며칠 전, 제레미 스승이 내 몸안에 투명한 슬라임을 삽입했지만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어. 나는 그날 제레미 스승이 오빠를 숲속으로 데리고 가는 걸 보고, 몰래 따라갔어.”
“어, 아……?”
“수풀에 숨어서 두 사람을 훔쳐봤어. 오빠는 바위에 앉아 있었고. 제레미 스승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오빠를 애무하고 있었어. 충격적이었지만 바로 다음에 내가 보게 된 광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
압도적인 진실에 약간의 거짓을 섞어서.
데이지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날카로운 화살촉이 되어서, 루크의 폐부를 찔렀다.
“제레미 스승이 무언가를 꺼내들었어. 거리가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게 며칠 전 나한테 강제로 선물한 물건과 똑같이 생겼다는 것쯤은 알아볼 수 있었어. 그때만큼 내 좋은 시력을 원망한 적도 없었지만.”
“거짓말……데이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루크는 목소리가 떨렸다.
“장난이 너무 심하잖아. 제, 제레미 누나야? 제레미 누나가 시킨 거야……? 안 되겠어. 제레미 누나 침실이 어디지? 이 층에 있는 거지? 당장 가서 한 마디를 해야…….”
“도망치지 마.”
루크가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주춤거린 순간, 더없이 싸늘한 목소리가 데이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침대 위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데이지가 점점 더 루크에게 몸을 가깝게 기울이는 것만은, 두 사람의 발목 위치가 바뀌는 걸 통해 알았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봐. 끝까지 들어.”
“으, 아으…….”
“그 물건이 오빠의 몸을 덮었어. 동시에, 내 몸안의 물건도 똑같이 진동했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오는 걸 필사적으로 참았어. 땅바닥에 쓰러져서 지옥 같은 시간이 어서 끝나기만을 간절히 원했어.”
“거짓말……거짓말이야…….”
“어제 두 번.”
루크가 흐느끼는 것이 뚝 멈추었다.
“한 번은 정오 무렵. 나머지 한 번은 새벽. 어제 잠이라도 설쳤어, 오빠? 덕분에 나도 어제는 꼭두새벽부터 깨어나서 업무에 지장이 많았어. 그저께는 다행히 한 번이었네. 지난 오 년 동안 내가 가장 절실하게 바랐던 게 뭔지 알아?”
“아, 아…….”
“오늘은 한 번만. 제발 오늘은 한 번만이었어. 오빠가 그 궁합이 좋다는 슬라임으로 장난칠 때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단지 제자리에 서서 견뎌야 했으니까.”
루크의 발이 떨렸다. 온몸을 떨어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언젠가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견디자. 그러면 언젠가 끝나겠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어.”
“아, 으, 아……아아…….”
“오빠가 애인들을 사귄다고 들었을 때 조용히 눈물을 흘렸지. 드디어 끝났다고.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일 년이 지나도, 이 년이 지나도……시간이 계속 흘러도 지옥 같은 순간은 끝나지 않았어.”
데이지가 희미하게 자조했다.
“결국 더 이상은 오빠 얼굴을 바라볼 자신이 없어졌어. 부모님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절연했지. 자기 아들딸이 사실상 매일마다 교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랑 어머니가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렇게 다시 삼 년이 지났지만 오빠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어. 내가 왜 오빠를 피하기 시작했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고. 나만, 오직 나만 고통받고 있었어.”
“…….”
“그래서 오늘 진실을 말해주기로 결심한 거야. 루크. 내 오빠.”
데이지가 루크에게 몸을 밀착했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오빠는 친동생을 오 년 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수없이 강간한 개자식이야.”
――순간.
간신히 버티고 있던 루크의 정신이 뚝, 하고 끊어지는 것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