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400화 (400/510)
  • 00400 방울져 떨어지는 밤  =========================================================================

    어디로 사라졌는가.

    복도에 멈추어서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하녀가 허리를 낮추면서 공손하게 오른팔을 들었다. 오른팔은 일정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고맙다.”

    하고 나는 하녀가 가리킨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다른 하녀가 한 명 더 서 있었다. 그녀 역시 허리를 숙이면서 어느 방향을 팔로 가리켰다. 그렇게 열다섯 명쯤에 이르는 하녀들이 차례차례 복도에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마치 징검다리를 건너는 기분으로 하녀들의 말없는 안내에 따라서 뛰었다.

    복잡하게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다시 왼쪽으로 돌아서 걸어가자 그곳에는 막다른 골목이 있었다. 조명조차 없어서 어둡기만 한 공간이었다. 창문에서 달빛이 희미하게 비출 따름이었다.

    “…….”

    그곳에서 파이몬은 벽에 기대어 쭈그려 앉았다.

    자신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조용히 어깨를 떨고 있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파이몬.”

    “……거짓말쟁이…….”

    파이몬이 물기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소녀에게 신뢰를 빌려달라고 말했으면서……그래서, 신뢰를 빌려준 대가가 이것인가요? 대공들의 딸들을 첩으로 삼고, 소녀는 첩보다 못한 애인 신세로 내버려두고…….”

    “파이몬. 저는 그녀들을 절대로 사랑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파이몬에게 다가서면서 차분하게 말했다.

    “어차피 정치적인 결혼동맹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당신을 따라오는 것이 아니었어요……!”

    파이몬이 고개를 들어서 나를 노려보았다. 분노와 슬픔, 어떤 애원과도 같은 감정이 눈동자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소녀가 결혼하자는 말을 꺼내지 않은 건 오로지 단탈리안, 당신을 위해서였어요! 당신이 저 한 사람에게 묶여버리면 정치적으로 힘들어지니까! 바르바토스, 시트리, 가미긴과 멀어지게 되면 당신이 곤란해지니까! 그런데, 소녀의 마음을……이런 식으로……!”

    알고 있었다.

    바르바토스도 자기가 본처라고 으스대지만 정말로 결혼을 요구한 적은 없었다. 라우라도, 시트리도, 가미긴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결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안 돼요, 단탈리안. 이건 안 돼요. 저는…….”

    “노예제를 전면적으로 폐지하기 위해서입니다. 필요에 따른 희생이에요.”

    나는 염원을 담아서 말했다. 진심 어린 염원을.

    “파이몬, 당신도 이 세상에서 노예제가 사라지기를 누구보다 바라지 않았습니까?”

    “저에게는 당신이 가장 소중해요!”

    파이몬이 끊임없이 눈물을 흘려가며 오열했다.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저 자신보다, 당신을,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

    “안 돼요, 단탈리안. 이건 너무 고통스러워요……너무 고통스러워요…….”

    내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에 낀 장갑을 벗어서 복도 바닥에 내려놓은 다음, 파이몬을 꾸욱 껴안았다.

    파이몬이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옷이 금세 그녀의 눈물로 흥건히 젖었다. 한없이 어두운 복도에 울음소리만이 작게 메아리를 쳤다.

    내가 조용히 말했다.

    “바르바토스가 당신을 죽이겠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

    “당신이 결국에는 제 목숨을 위협할 거라고. 저를 위해서라도 당신을 죽이겠다고.”

    나는 파이몬의 등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깨지기 쉬운 유리병을 다루듯이, 섬세하게.

    “바르바토스가 반대표를 던진 건 인간종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당신 때문입니다. 바르바토스는 당신을 없애버리기로 단단히 결심했겠지요.”

    “…….”

    “하지만 제가 어떻게 당신을 버리겠습니까. 파이몬. 저는 당신을 오롯하게 짊어지기로 결심한 남자입니다. 당신이 죽이지 못하는 것을 제가 대신해서 죽이고, 당신이 용납하지 못하는 희생을 제가 대신해서 강요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나는 오른손을 움직여서 이번에는 파이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붉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내 손을 포근하게 받아주었다. 정말로 따뜻한 감각이었다. 이대로 계속 쓰다듬고 있고 싶을 만큼.

    “저는 당신의 신념을 대행합니다.”

    “단탈리안…….”

    파이몬이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약간 붉은 빛이 감도는 검은색 눈동자가 처연하게 빛나고 있었다.

    내가 입을 열었다.

    “저와 결혼해주십시오, 파이몬.”

    정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파이몬은 이해하지 못했는지 표정이 서서히 망가졌다.

    “아……?”

    “이런 자리에서 고백하게 되어 미안합니다. 하지만, 진심입니다. 비록 일곱 명을 첩으로 맞이하게 되겠지만 저와 진정으로 함께 나아갈 동반자는 당신이기를 바랍니다.”

    “아, 아아……아아아…….”

    파이몬의 눈가에서 눈물이 넘쳐 흘렀다.

    “다, 단탈리안. 단탈리안……단탈리안…….”

    “숨기지 않겠습니다. 저는 바르바토스도 사랑합니다. 하지만 바르바토스는 당신을 죽이겠다고 맹세했고, 저는 더 이상 두 사람을 함께 좋아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하고 내가 말했다.

    “저희에게는 마계대공들의 협력이 더더욱 필요합니다. 바르바토스는 틀림없이 당신과 제 결혼에 분노하겠지요. 하지만 파이몬, 당신이 이끄는 산악파. 저에게 호의적인 중립파. 여기에 대공들의 전면적인 협력까지 끌어들인다면.”

    “네, 단탈리안……네…….”

    파이몬이 내 두 손을 꼭 붙잡았다.

    파이몬은 울고 있는데도 입가만은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미소마저 힘이 없어서 떨렸지만, 분명히 파이몬은 기뻐하고 있었다.

    “소녀의 모든 걸 바쳐서. 소녀의 모든 걸 희생하더라도. 단탈리안, 오로지 당신만을 위해서 살겠어요. 영원토록 당신만을 사랑하겠어요…….”

    그리고.

    「파이몬의 호감도가 16 오릅니다.」

    「파이몬의 호감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지고지순한 사랑! 상대방은 당신을 완전한 연인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으로 인하여 상대방에게 새로운 칭호가 생성됩니다.」

    우리 두 사람은 길게 키스를 나누었다.

    파이몬은 그후로도 한참이나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어린애처럼 바닥에 주저앉아서 울었다. 허리에 완전히 힘이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체감상 이십 분 정도가 흐른 다음에야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자아, 파이몬.”

    내가 장갑을 다시 쓰면서 말했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습니다. 슬슬 돌아가지 않으면 대공들이 불안해할 겁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대공들을 확실하게 아군으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알고 있지요?”

    “예, 단탈리안.”

    파이몬이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활짝 웃었다. 조명 하나 없이 어두웠지만, 그렇기에 그녀의 미소는 더욱 아름다웠다.

    *  *  *

    우리가 연회장으로 나란히 들어오자 대공들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주고 받았다.

    여자가 홀로 뛰쳐나갔는데도 돌아올 때는 사이좋게 함께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때문이리라.

    “두 분께서 참으로 잘 어울리십니다.”

    독사대공이 눈치 빠르게 굽실거렸다. 파이몬이 부끄러운 듯이 살며시 미소 지었다.

    “연회 도중에 자리를 비워서 죄송해요, 대공.”

    “천만의 말씀이옵니다. 자아, 소신이 두 분의 영광을 염원하며 감히 한 잔 따라 올리겠습니다.”

    대공들이 차례대로 포도주병을 들고 와서 우리에게 술을 따랐다. 우리는 상석에 앉아서 한 잔씩 대공들과 주고 받았다. 참고로 파이몬과 나에게는 오른손 검지에 독극물을 자동으로 검사하는 아티팩트 반지를 착용하고 있었으므로, 독살의 위험은 전무했다.

    “전하.”

    마지막으로 울발라대공이 술을 따르면서 말했다.

    “약소하오나 두 분 전하께 소신이 선물을 준비했사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서 선물을 공개할까 하옵니다.”

    “후후. 깜찍한 계획이네요.”

    파이몬이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웃었다. 다른 대공들도 기대하는 눈초리로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넘실거렸다.

    “예에, 우리야말로 기쁘게 받아들이겠어요.”

    “황공하옵니다.”

    울발라대공이 등을 돌려서 손뼉을 쳤다.

    ─ 짜악.

    연회장 입구에서 두 명의 하인이 큼직한 수레를 끌고 왔다. 평범한 수레가 아니었다. 숫제 황금으로 제작한 수레였다. 더욱이 수레에는 미처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꽃다발이 실려 있었다.

    “오늘처럼 기쁜 날에 꽃이 없어서야 음유시인들이 슬퍼하지 않겠나이까.”

    울발라대공이 웃으면서 자신의 팔로 수레를 가리켰다.

    “이 자리를 기념하자는 의미에서 수레와 꽃을 두 분 전하께 진상하옵니다.”

    좌중이 조용해졌다.

    “…….”

    “…….”

    파이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대공들도 마찬가지였다.

    수레에 당장이라도 범람할 것처럼 가득 실린, 붉고 또 붉은 꽃.

    피안화(彼岸花).

    죽은 자를 위한 꽃. 지옥꽃이라 불리기도 하고, 노골적으로 사인화(死人花)라 불리기도 했다. 샛붉은 꽃잎이 핏물을 연상시키는 탓이었다. 똑같이 빨강색인 장미와는 정반대로 불길한 징조로 여겨졌다. 농담으로라도 다른 사람한테 선물할 꽃이 아니었다.

    “이게, 무슨 뜻이지요.”

    파이몬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울발라대공은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바르바토스 전하께서 소신에게 대신 전달하라 명령하셨습니다.”

    “……!”

    파이몬이 의자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입구에서 칼을 든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순식간에 오십 명에 이르는 병사들이 파이몬과 나를 반원 형태로 둘러쌌다.

    병사뿐만이 아니었다. 우리의 시중을 들던 하녀들도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들었다. 데이지와 이바르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갔다.

    반면에 마계대공들은 천천히 병사들 뒤로 걸어갔다.

    열다섯 명의 대공 전원이.

    그중에는 독사대공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디서, 감히, 같잖은 짓거리를!”

    파이몬은 분노로 온몸을 떨었다. 그녀가 병사들을 가리키며 명령했다.

    “당장 저 반역자들을 처치하세요!”

    “죄송합니다. 이들은 모두 심장에 노예각인을 새겨넣은 암살자입니다. 망극하게도 전하의 명령은 듣지 않습니다.”

    울발라대공이 여유롭게 말했다.

    “물론 저희 대공들은 각인이 없으니 전하의 명령에 어느 정도 복종하겠지요. 하지만 만일 전하께서 저희에게 어떠한 강압적인 한 마디라도 하신다면, 이 암살자들은 곧바로 두 분 전하를 공격할 것이옵니다. 미리 명령해두었습니다.”

    병사들이 한 발자국 처억, 하고 우리에게 접근했다.

    데이지가 등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바알의 대검이었다. 데이지는 흉흉한 살기를 사방으로 피워내며 암살자들을 노려보았다.

    “아버님.”

    “기다려라.”

    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연스럽게 좌중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었다. 대공들은 겁먹은 시선, 경계하는 시선, 분노에 찬 시선, 무표정한 시선 등, 각양각색의 감정이 담긴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중에 한 명을 바라보았다.

    “울발라대공.”

    뚱뚱한 남자가 움찔거렸다. 울발라대공은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나에 대한 두려움을 전부 감추지는 못했다.

    “정말로 바르바토스가 그대에게 밀명을 전달했는가?”

    “……그렇사옵니다. 저희의 임무는 단탈리안 전하와 파이몬 전하를 감금하는 것. 이제 한두 시간 뒤에 바르바토스 전하께서 긴급하게 발푸르기스의 밤을 소집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노예제를 영구히 폐지 불가능한 제도로 선언할 테지요.”

    내가 고개를 저었다.

    “바르바토스가 찬성표를 던질지라도 다른 마왕들은 반대표를 던질 것이다.”

    “아니옵니다. 만일 만장일치가 나오지 않는다면 저희는 단탈리안 전하의 손가락을 잘라서 합스부르크 황궁에 배달할 생각이옵니다.”

    “그러면 바르바토스의 분노를 살 뿐이다. 바르바토스가 본인의 연인임을 모르는가?”

    “바로 그 연인께서 우리의 계획을 정해주셨나이다.”

    내 옆에서 파이몬이 이빨을 바득 갈았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파악했겠지.

    울발라대공이 침을 꿀꺽 삼키고 마저 말했다.

    “두 분 전하가 인질로 잡혀 있다. 인질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일단 안건을 통과시켜야 한다. 바르바토스 전하께서는 그렇게 다른 마왕 전하들을 설득할 것이옵니다.”

    “멍청하군.”

    내가 작게 웃었다.

    “그대는 사실상 마왕군 전체에 반기를 든 셈이다. 마르바스와 가미긴이 그대를 가만히 내버려두리라 생각하는가?”

    “만일 우리가 인질을 풀어준다면, 예에. 물론 소신은 곧바로 사형에 처하겠지요. 그러므로 저희는 파이몬 전하를 석방하되, 단탈리안 전하만큼은 끝까지 인질로 붙잡아둘 계획입니다.”

    “…….”

    데이지의 살기가 더더욱 짙어졌다. 만일 내가 기다리라고 명령하지 않았다면 이미 뛰쳐나가서 암살자들을 도륙하고도 남았으리라.

    내가 천천히 연회장을 살펴보았다. 병사들과 하녀들이 무표정하게 병장기를 세우고 있었다. 대공들은 그들 뒤에 숨어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테이블이 엎어지는 바람에 요리가 어지럽게 바닥에 쏟아졌다. 유리잔이 깨졌고, 포도주가 엎어졌다. 모든 것이 난장판이었다.

    “울발라대공. 자네는 요컨대 바르바토스와 나, 둘 중에 바르바토스를 선택했군.”

    “그러하옵니다, 전하.”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확신하는가.”

    울발라대공이 웃었다.

    “당연하고 말고요. 단탈리안 전하. 전하의 권력은 애시당초 바르바토스 전하의 호의 아래에서 비롯했습니다. 평원파가 더 이상 전하를 지지하지 않는다면, 전하는 이미 날개를 잃어버린 새가 되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저희가 어찌 바르바토스 전하 이외에 다른 분을 선택할 수 있었겠나이까?”

    대공들이 그에 따라 웃음을 터트렸다. 울발라대공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다른 대공들과 눈을 마주쳤다. 시선이 마주친 대공들은 더 크게 웃었다.

    웃음소리가 연회장의 공기를 가득 메웠고.

    나는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 순간, 병사들이 칼을 휘둘렀다.

    “――아아아악!”

    “아악! 끄하아아아아!”

    웃음소리는 사라졌고 오로지 비명만이 울려 퍼졌다.

    병사가 병사를, 하녀가 하녀를 죽였다. 칼날이 목을 그었다. 스무 명의 목에서 동시에 공중을 향해서 핏물을 토해냈다. 동료들에게 완전히 방심하고 있던 암살자들은 조금도 저항하지 못한 채 쓰러졌다.

    무도회장 바닥에 붉은 늪이 펼쳐졌다.

    “무, 무슨……이게 무슨…….”

    몇몇 대공들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망가진 기계처럼 망연하게 서 있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들은 충격을 오래동안 견딜 필요가 없었다.

    일곱 명의 대공이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들어 자신들의 앞이나 옆, 뒤에 있던 다른 대공의 목덜미에 칼날을 쑤셔박았다.

    “크프읍!”

    “끄허어어억!”

    일곱 명이 한 명씩.

    열다섯 명의 대공 중에서 단숨에 일곱 명이 목덜미가 뚫려서 피를 쏟았다. 이들은 억, 억, 하며 손으로 상대방을 붙잡았다. 마치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손짓이었다.

    그러나 일곱 명의 대공은 다시 단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확실히 사살하기 위해서. 이들은 각자 마음에 드는 대로 목에, 가슴에, 배에, 눈에 칼날을 박아 넣었다. 단검에 찔린 대공들은 제대로 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

    단검을 빼어든 일곱 명을 제외하면, 오로지 울발라대공만이 살아남았다.

    울발라대공은 말조차 나오지 않는지 다만 덜덜 떨었다. 무릎이 떨렸고, 어깨가 떨렸으며, 턱이 떨렸다.

    나는 식탁에서 술잔을 집어들었다.

    “울발라대공. 내 다시 한번 묻도록 하지.”

    “으, 어하, 으으으아아…….”

    “본인이 아니라 바르바토스를 고른 것이 정말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보는가.”

    울발라대공이 바닥에 온몸을 투지했다.

    “사, 살려주십쇼, 전하! 소신이, 소신이 어리석었나이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시옵소서! 소, 소신의 모든 걸 드리겠나이다. 재산도, 노예도, 무엇이든, 그러니, 제발 목숨만은……자비를, 관용을 베풀어주시옵소서!”

    내가 독사대공에게 눈짓했다.

    독사대공이 고개를 끄덕이고 단검에 무게를 실어서 그대로 울발라대공의 등에 내리찍었다.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대공들이 마치 늑대처럼 달려들어서 울발라대공의 몸을 찔렀다. 단검이 살을 뚫고 헤집을 때마다 울발라대공은 찢어지라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급격하게 비명의 강도가 낮아졌고, 30초가 흐를 때쯤에는 소리 자체가 어디론가 내려앉았다.

    침묵.

    파이몬이 나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데이지가 어딘지 한심하다는 기색으로 자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대공들이 전신에 피칠갑을 한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술잔을 내 눈높이까지 들어올렸다.

    “모든 마족을 위하여.”

    하녀를 위장한 암살자들이 대공들한테 술잔을 쥐어주었다. 일곱 대공이 나를 따라서 유리잔을 높이 들었다.

    “단탈리안을 위하여.”

    ============================ 작품 후기 ============================

    참고로 저 일곱 대공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전에 한번 등장한 공통점이요 >_<);;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