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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디펜스-380화 (380/510)

00380 양웅(兩雄)의 조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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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바에서 즉시 선단이 꾸려져 출항했다.

‘제국군을 바다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대공은 선상에 서서 고민했다가 실없는 생각이었다며 자조했다.

사르데냐 왕국군은 육지에서 연전연패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해상의 제왕이었다. 그러나 제국에는 해군이 전무했다. 바다에서 싸우고 싶어도 적국에 아예 군함조차 없어서야, 이야기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다.

제노바에서 라스페치아까지는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였다. 왕국군은 아무런 걱정 없이 항해했다. 그러나 도중, 일찌감치 멀찍이 앞서가던 갤리선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대공이 부관을 불러서 물었다.

“무슨 일인가.”

“마물의 습격입니다, 전하.”

“음. 각 함선은 협력해서 격퇴하도록.”

해상에서 마물이 습격하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일상다반사라고 해도 좋았다. 사르데냐 왕국의 주력선인 5단 갤리선에는 한 척마다 전투병력이 백 명이 넘게 탑승했다. 웬만한 대형 마물이 출현하지 않는다면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금방 가라앉으리라 생각한 소란은 그러나 점점 다른 함선으로 번져갔다. 선장이 당혹에 물든 얼굴로 소리쳤다.

“전하! 포세이돈의 분노입니다!”

“무슨……아직 8월이지 않는가!”

포세이돈의 분노는 사르데냐인이 마물의 대규모 해상 습격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바다에 사는 마물들은 겨울을 기점으로 대거 이동했는데, 이 무렵에 항해하는 것은 극히 위험했다. 그렇지만 아직 8월이었다. 겨울이 오기에는 한참 멀었다.

─ 땡땡땡, 땡땡땡땡.

바다 위에 사방에서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특별히 마물들이 싫어하는 음색을 내는 종이었다. 선원이 필사적으로 종을 울렸지만 마물들은 좀처럼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무수히 많은 인어가, 도마뱀족이 선상으로 기어올랐다.

“밀어내라! 놈들이 올라오지 못하게 밀어넣어!”

“어서 돛을 접어라!”

“젠장할, 왜 이런 시기에!”

병사들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창을 꺼내들었다. 그들은 난간으로 몰려가서 어떻게든 마물들을 떨어트리려고 창끝을 아래로 찔러넣었다. 순식간에 선단이 혼란에 돌입하였다.

“허를 찔렸는가……!”

이 대규모 습격은 틀림없이 제국군이 꾸며낸 짓이었다. 우연이라 간과하기에는 시기가 지나치게 절묘하지 않은가.

대공은 상대편의 계략을 곧바로 눈치 챘다. 마왕군을 동원했다며 비난해도 제국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것이었다. 지금 선단을 습격하고 있는 마물들은 아무런 장비도 갖추지 않고 맨몸으로 공격해오고 있었다……즉, 어떻게 봐도 야생 마물이었다.

'제국은 이들과 일절 관련이 없으며 왕국군이 맞부닥친 것은 어디까지나 야생 마물에 불과하다.' 제국군은 그렇게 주장하겠지. 대공이 신음했다.

“라스페치아는 미끼였다.”

“미끼라니요, 전하?”

“우리를 끌어내기 위한 미끼였다. 제국은 일부러 라스페치아를 함락시키지 않고 극한까지 밀어붙였다. 그리고 우리가 해로를 통해서 올 것임을 간파하고 미리 마물들을 준비시킨 것이다…….”

해상 백병전에서는 대단한 전술을 활용할 수가 없었다. 전함과 전함이 대결한다면 또 모를까, 그저 바다에서 꾸역꾸역 몰려오는 마물을 상대로는 각 함선마다 분투하는 수밖에 없었다.

전방에서 갤리선 한 척이 당했다. 선원과 조타수를 잃은 함선은 무력하게 파도에 휩쓸리다가 옆을 항해하던 동료 함선에 들이박았다. 그렇다고 다른 함선이 좌초되지는 않았으나, 운이 나쁘면 노들이 손상되어 기동력이 잔뜩 떨어졌다.

부관이 걱정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해상전이 익숙치 않은 용병들이 많아서……전하. 마법사를 동원하는 걸 허가해주십시오. 피해가 커지고 있습니다.”

대공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안 된다. 만일 이것이 제국군의 술책이라면 분명히 아직 남은 수가…….”

“크라켄이다!”

공포에 찬 비명이 대기를 갈랐다. 빨판으로 가득 덮인 문어 다리가 파도를 거세게 일으키며 해면에서 솟아나왔다. 보통의 문어와 다른 점이 있다면 빨판마다 날카로운 이빨이 돋았다는 것, 그리고 다리가 고목처럼 거대하다는 것이었다.

“퇴함! 퇴하아아암!”

“으아아악!”

크라켄의 다리들이 갤리선을 감싸더니 마치 과자를 부서트리는 것처럼 간단하게 짓이겼다. 5단 갤리선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살아남은 선원들이 바다로 뛰어들었지만, 이미 마물로 가득한 바다에서 그들이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했다.

“대공 전하!”

“지금이다. 마법사들은 전력을 쏟아부어 대형 마물을 퇴치하라!”

스무 명에 이르는 마법사들이 동시에 크라켄을 향해서 마법을 쏘아날렸다. 몇 개는 빗나갔지만, 대부분이 크라켄의 다리에 명중했다. 살점이 터져나가면서 괴물의 다리가 끊어졌다.

그 광경을 보고 왕국군이 함성을 질렀다. 크라켄은 뱃사람에게 두려움을 안겨주는 폭군이었지만, 두려움을 간단하게 격퇴했을 때 사기는 크게 오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선단 후방에서 다리들이 튀어나왔다.

한 개체가 아니었다. 마치 사방에서 포위하려는 듯이 동시다발적으로 크라켄이 출현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갤리선 다섯 척이 하얀 바다 속으로 침몰했다.

“다섯, 아니 여섯 마리인가!”

“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크라켄이 한꺼번에 여섯 마리라니…….”

“당황하지 마라! 마법사들은 차근차근 한 놈씩 처리해서――.”

그때 굉음이 함단 전체를 뒤엎었다. 피렌체 대공은 인간의 본능적인 공포가 척추를 타고 한순간에 온몸으로 퍼지는 것을 느꼈다.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공을 비롯해서 왕국군은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목격한 것은 많지 않았다. 푸르스름한 비늘로 뒤덮인 무언가가, 마치 거대한 뱀과 같은 몸통이 파도와 파도 사이를 스치고 가라앉았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산산조각이 나버린 함선뿐이었다.

“……보았는가.”

“오, 포세이돈이시여…….”

바다 어디에선가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높은 바이올린 소리와 같은 흐느낌이 노잡이들의 귓가에 불길하게 메아리쳤다. 병사들은 눈앞의 마물을 상대하면서도 등골에 치미는 공포 때문에 팔이 덜덜 떨렸다.

“맙소사. 마지막으로 보고된 것이 반백 년이 넘었거늘…….”

파도가 다시금 높이 치솟았다.

이번에는 대공이 확실하게 보았다. 그것은 뱀의 몸뚱어리를 가진 괴물이었다. 아가리에는 오우거가 우습게 보일 정도로 큼직한 이빨들이 달려 있었다. 괴물은 갤리선을 살짝 쓸듯이 건드리고 또 다시 순식간에 바다로 파고들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갤리선은 힘없이 뒤집혔다. 중장갑을 입은 병사들은 헤엄도 제대로 못 치고 소용돌이 속으로 빠졌으며, 선원들은 득달같이 달려든 마물들에게 목이 물려 뜯어졌다. 가히 찰나에 백 명의 전사를 태운 갤리선이 침몰하였다.

“레비아탄!”

“신이시여――레비아탄이다!”

선단 전체가 삽시간에 충격에 잡아먹혔다. 일 년에 두어 번 보고되기도 힘든 크라켄이 동시에 여섯 마리가 나왔다는 것만 해도 이미 경악스러웠건만, 백 년에 한 번 등장한다던 마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마물조차 아니었다. 레비아탄은 한때 신으로 숭배받던 괴물이었다!

“흐, 흩어져! 흩어져야 산다!”

일부 선장들이 재빨리 조타수에게 명령했다. 이들은 레비아탄을 만난 것이 처음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함선끼리 조밀하게 달라 붙어봤자 좋을 게 없다는 사실만은 알았다. 몇몇 갤리선이 대형을 포기하고 일탈하기 시작했다. 대공이 헛, 하고 정신을 차렸다.

“우둔한 놈들, 대열에서 벗어나지 마라! 흩어지면 죽는다!”

만약 생존하는 게 목표였다면 여기서 각개도주하는 것이 옳았다. 그러나 왕국군의 목적은 생존이 아니었다. 라스페치아를 구원해야 했다. 일단 함선 하나가 도주해버리면 나머지 함선들 또한 공포에 잠식되어 순식간에 선단이 와해되고 말 것이었다.

부관이 수정구를 들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곧 부관은 얼굴이 일그러진 채로 대공에게 보고했다.

“일부 함장들이 명령을 듣지 않습니다.”

“빌어먹을……마법사들은 두 조를 짜서 대처하라! 한 조는 크라켄을 요격하고, 다른 한 조는 레비아탄이 나타났을 때를 노려서 공격하라! 냉정을 잃지 마라! 이 바다는 마물의 것이 아니다! 우리 사르데냐의 것이다!”

피렌체 대공은 어떻게든 자신의 카리스마로 선단을 유지했다. 마물들이 도망치는 함선을 우선적으로 골라서 침몰시킨 탓도 있었다. 이것은 무시무시한 공포를 불러일으켰지만, 동시에 흩어지면 죽는다는 대공의 말에 강한 믿음을 실어주었다.

바다 위에서 처절한 사투가 이어졌다.

마법사들은 마력이 고갈될 때까지 싸웠으며, 실제로 몇 명은 순간전이를 쓸 마력조차 남지 않아서 함선과 함께 가라앉았다. 많은 용병들이 해상 백병전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사력을 다하여 응전했다. 제노바의 시민병으로 이루어진 노잡이들까지 창을 들고 맞서 싸웠다.

세 시간 후.

왕국군은, 기적적으로 마물을 퇴치하는 데 성공했다.

함장에서 노잡이에 이르기까지 탈력해서 갑판에 나앉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크라켄은 여섯 마리 중에 네 마리가 죽었다. 레비아탄은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큰 상처를 입은 것만은 분명했다.

“이, 이겼다! 우리가 이겼다!”

“사르데냐 왕국 만세!”

마지막 크라켄이 물러나는 것을 보고 왕국군이 마지막 힘을 쥐어짜서 함성을 질렀다. 제노바에서 위풍당당하게 출항한 백삼십여 척의 선단은 육십 척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절반이 넘게 바다의 망자가 되었다. 사실상 전멸이라 해도 좋았다…….

“후우우.”

대공이 바닥에 털썩 앉았다. 기진맥진했다. 세 시간이면 육지 위에서 싸워도 체력이 소진되었다. 그만한 시간을 바다 위에서 견뎌야 했으니 온몸에 힘이 빠졌다. 승리했지만, 상처뿐인 승리였다…….

“전하,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대공의 우울한 낯빛과 대조적으로 부관은 감격하고 있었다.

“일찍히 레비아탄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해군……아니, 살아남은 해군조차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기적을 이루어내셨습니다.”

“……부관. 라스페치아에 연락하라. 원군은 없다.”

대공이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이런 함정이 준비되어 있었다면, 제국이 여태껏 라스페치아를 함락시키지 않은 것 또한 기만책에 불과하겠지. 지금 라스페치아로 향하는 것은 사지에 제 발로 들어가는 격이다. 우리는 제노바로 회항한다…….”

“알겠습니다, 전하.”

부관이 각 함선에 명령을 전달했다. 선원들은 지친 몸을 재촉해서 돛을 펼쳤다. 전투 도중에 대다수의 함선이 노가 상했다. 바람의 힘을 믿고 항해하는 수밖에 없었다.

“……?”

각 함선이 돛을 움직이려고 한참 분주하게 움직이는 때였다. 한 선원이 바다 저편을 보고 가만히 눈을 찡그렸다. 선원이 팔꿈치로 동료를 툭툭 쳤다.

“뭐야.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구만 괜히 시비 털지 마라.”

“네가 힘들어 죽겠으면 난 이미 관짝에 처박혔다. 어이, 저거 보이냐?”

“어?”

선원이 가리킨 방향을 동료가 유심하게 바라보았다.

“……마물은 아닌데.”

“그야 하얀색 마물은 없으니까. 저거 배 아니야?”

이와 비슷한 대화가 여러 함선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정보는 빠르게 선원에서 지휘관으로, 지휘관에서 함장으로, 함장에서 피렌체 대공으로 전달되었다. 대공은 망원경을 꺼내들어서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

대공의 몸이 돌처럼 굳었다. 부관이 의아해서 물었다.

“전하. 무슨 일이옵니까?”

“……왕국 국기를 달고 있다. 라스페치아의 함단이다.”

뜻밖의 희소식에 부관이 반색했다.

“잘 되었군요. 라스페치아에 가망이 없으니 해군이라도 도주한 모양입니다. 저들에게 도움을 받으면 조금 더 수월하게 제노바까지 돌아갈 수 있습니다.”

“전원, 전투를 준비하라.”

“예?”

대공이 망원경을 접었다.

“……라스페치아의 외성이 함락되었다고 보고가 올라온 게 이미 한참 전이다. 외성이 뚫렸는데 항구에 정박한 배들이 멀쩡할 리가 없다. 즉, 저들은 지금까지 어딘가에 숨어 있었거나, 아직까지 외성이 뚫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어느 쪽이든 우리를 기만한 것이지.”

대공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즉시 명령을 하달하라, 부관. 지금부터 라스페치아는 우리의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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