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372화 (372/510)

00372 제2차 국화전쟁  =========================================================================

“대, 대공 전하…….”

부관들이 불안한 얼굴로 대공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대공이 정신을 차렸다. 자신이 당황해버리면 만사휴의였다.

“데 두라초 경! 마법전대를 이끌고 지금 즉시 좌익으로 가라!”

“전하. 하오나 이 노구가 자리를 비우면 여태껏 침묵하고 있던 적군의 마법사들이 이곳 중앙을 노리고 말 것이옵니다.”

늙은 마법사가 걱정했다. 대공은 마법사의 견해가 옳다 느꼈지만, 여기서 말을 번복해버릴 수는 없었다. 총사령관의 명령은 천금보다 무거워야만 했다.

“이제 와서 보병을 보내봤자 좌익이 무너지기 전까지 도착하지 못한다. 좌익이 붕괴하면 다음 차례는 이곳이다! 경의 임무는 어떻게든 기사단장을 도와서 적군의 기병대를 내쫓는 것이다. 알겠는가.”

“지엄한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열다섯 명의 마법사가 순간이동을 사용하여 좌익으로 급히 향했다.

이제 중앙에는 마법사가 세 명밖에 남지 않았다. 각 전선에서 올라오는 보고를 받는 마법사. 그리고 피렌체 대공 개인을 호위하는 마법사들뿐이었다. 이걸로는 도저히 적군이 발사하는 전투마법을 상쇄시키기 힘들었다.

“제장들은 분전하라!”

피렌체 대공이 소리쳤다.

눈앞에서 대공과 궁정마법사가 재빠르게 명령을 주고받자, 부관들도 적당히 냉정함을 되찾았다. 무언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 느낌을 가지게 하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부관들의 눈빛에선 어느 정도 당혹스러운 기색이 걷어졌다.

“중앙에서 오천의 병력을 빼서 우익에 배치하라. 예비대를 사용하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전하!”

“좌익에도 이천을 보낸다. 기사단장이 언제까지 버텨줄지 모른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도록!”

순식간에 예비대가 칠천 명이나 줄어들었다.

“…….”

대공이 마음속으로 혀를 찼다. 부관들이 서둘러 명령을 하달하고 있었지만, 대공의 마음속에선 좀처럼 초조함이 가라앉지 않았다.

바야흐로, 이 시점에서 양군의 중앙은 비등비등한 균형을 이루게 되었다.

제국군은 보병 만오천 명, 왕국군은 보병 만팔천 명.

대공은 적아의 숫자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지만, 눈어림으로 그 차이가 일천보다는 많고 오천보다 적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대략 사천 명. 사천 명의 차이인가……부족하다.’

상대편은 이름 높은 헬베티카 용병. 사천 정도는 아예 차이가 아니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더군다나 왕국군은 제국군에 비해 마법전력이 뒤떨어졌다. 이쪽은 견습을 제외하고 마법사가 열일곱 명이었다. 반면에 제국군은 스무 명이 넘는 마법전대를 꾸리고 있는 것이 거의 확실했다.

지금까지는 적군이 쏘아대는 마법을 방어하기만 했다. 숫자에서 밀릴지라도 방어에 전념하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마법전에서는 방어가 공격보다 훨씬 수월하다. 가령 적 마법사가 불덩어리를 발사하면 이쪽은 수(水)속성 마법으로 방어막을 펼친다. 그렇기에 제국군이 스무 명이 넘는 마법사를 끌고왔을지라도, 피렌체 대공의 마법사들은 여태껏 문제없이 공격을 잘 막았다.

하지만 앞으로도 문제가 생기지 않으리라 보장할 순 없었다.

잠시 뒤.

“……역시 알아차렸나.”

전방에서 적군의 마법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불덩어리가 작렬했다.

왕국군 마법사도 분전했지만 명백하게 역부족이었다. 이쪽은 마법사 두 명이서 진땀을 빼며 마력고갈까지 각오한 채 싸웠다. 반면에 제국군은, 어림잡아 열 명의 마법사를 중앙에 투입하고 있었다…….

적군은 마법전력이 스무 명에 이르렀다. 지금 중앙에 열 명이 있었으니, 나머지 열 명은 또 다른 곳으로 향했을 터. 그곳이 어디일지 대공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대공 전하. 데 두라초 경께서 보고를 올리셨습니다.”

“제국도 마법사로 대응해왔는가.”

“……예. 현재 좌익에 제국이 열한 명의 마법대를 투입했다는 보고입니다.”

대공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병 이천을 정면에서 빼낸다. 좌익에 배치하라.”

자신도 모르게 감정을 죽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전하, 하오나……그리하시면 아군에 예비대가 전무하게 되옵니다.”

“상관없다. 지금이 바로 예비대를 쏟아부을 순간이다.”

대공은 명령을 내리면서도 직감하고 있었다.

좌익은 얼마 가지 못해서 붕괴한다. 부기사단장이 즉사해버릴 정도로 기습에 허를 찔렸다. 운 좋게 기사단장이 살아남아 병사를 지휘하고 있다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마법사로 구원하는 방법도 적이 똑같이 응수해오는 바람에 저지당했다.

제국군은 퇴각을 준비한 것이 아니었다. 철두철미하게 포위섬멸전을 노렸다…….

‘도대체 언제부터 복병을……설마, 어제 파비아 시민들을 추격하면서?’

대공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우리를 끌어내려고 파비아를 파괴했는가. 시민을 풀어준 것도, 피아센차로 진군한 것도, 전부 미리 계획된 속임수였는가!’

대공이 전방을 쳐다보았다.

인의 장막 너머. 푸른 산수화가 그려진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일찍이 팔 년 전에 멸망했을 가문이, 다시금 자신의 상징으로써 펄럭거리고 있었다. 팔 년 전에 이루어진 일을 이번에는 정반대로 반복해보자는 것처럼.

대공이 입술을 깨물었다.

입술에서 시뻘건 핏물과 함께 신음이 새어나왔다.

“라우라 데 파르네세……!”

*  *  *

“우익에서 적군이 퇴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피렌체의 검독수리 기사단, 패주. 드 블랑 남작이 기사단장을 격살했습니다!”

“좌익의 아군 기병대. 돌격을 개시합니다!”

각 부대에서 끊임없이 보고가 올라왔다. 대부분이 승전보였다.

지휘부의 사람들은 표정이 밝았다. 이따금씩 웃음소리가 터지기도 했다.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없겠지. 현재 제국군은 교과서적인 포위섬멸전을 재현하고 있었다.

매복은 대성공했다. 적 기사단은 완전히 측면을 노출한 채 이쪽의 돌격에 얻어맞았다. 안 그래도 기사단은 전력이 두 배 차이나는 상황에서 분전하고 있었다. 그럴 때 기습에 돌격까지 닥친 것이었다.

보고에 따르면 오 분 만에 기사단의 절반 가까이가 죽거나 낙마했다. 이런 위기에서는 엘리자베트가 아니라 엘리자베트 할애비가 와도 별 수가 없었다. 엘리자베트의 할아버지는 별로 유능한 황제도 아니었다고 하지만…….

“드 블랑 남작이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는군요. 기사단장의 수급을 취했으니 제1공로자입니다.”

“흠. 훌륭하다.”

내 말에 라우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은 앞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전투가 시작하고 단 한 번도 전방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드 블랑 남작에게 명령을 하달한다. 우익을 정리한 다음에는 곧바로 적 본대의 후방을 몰아쳐라. 단, 적병이 늪지대로 도망치도록 한쪽 구멍은 비워둔다.”

“예, 전하!”

부관이 씩씩하게 군례를 올렸다.

주변에선 라우라를 존경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패배라는 단어를 잊어버린 듯했다. 상대방의 마음이 훤히 보이는 것처럼 전세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었다. 지휘관들은 놀라움 반, 두려움 반을 섞어서 수군거렸다.

‘총사령관 전하께서는 아테나 여신의 환생이시다.’

거의 신성모독에 가까운 얘기였다. 하지만 진지하게 믿는 사람도 있었다. 확실히 라우라는 여신만큼 아름다우니까 숭배하고 싶어질 만했다.

용병대장들은 더더욱 공손해져서 이제 라우라의 명령이라면 당장 포도로 맥주를 만들어내라고 해도 알겠습니다, 전하! 하고 대답해버릴 지경이었다.

내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쯤에서 마법사들에게 전력을 다하라 명령하심이 어떻습니까, 공작. 저들에겐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겠지요.”

“좋다. 마력을 비축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마법사들에게 즉시 명령이 내려졌다. 곧이어 전방에서 수많은 폭발이 작렬했다.

우리군에는 전투마법사가 스물일곱 명 있다. 헬베티카에서 고용한 마법사가 아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계약한 자들이다. 내 영지에는 마탑이 넘쳐났으며, 적당한 조건만 내밀어주면 마법사를 얼마든지 고용할 수 있었다.

적당한 조건에 '포로한테 비인간적인 해부 및 실험을 허가해줄 것'이 포함되지만…….

뭐, 어젯밤 반란을 주동한 파비아의 시민 백 명을 마법사에게 선물했다. 그들에게 남은 미래란 해부용 거치대에 눕혀져서 자기 내장이 무슨 색깔인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보는 것뿐이다.

나머지 시민들의 운명도 결정되었다. 헬베티카 연방에서 이들을 노예로 구입하고 싶다고 의사를 밝혔다. 헬베티카의 거친 산맥에는 광산이 널려 있었다. 노예들은 위험천만한 갱도에서 여생을 보내리라.

“전하, 우익이 정리되었습니다. 드 블랑 남작은 다음 단계로 이행하겠다고 보고했습니다.”

남작이 이끄는 이천 명이 그대로 적의 배후로 돌아갔다.

사면포위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배후를 완전히 틀어막을 필요는 없었다. 배후에서 적을 압박한다, 그 사실 자체로 충분했다. 적은 이제 전방뿐만 아니라 후방까지 신경을 써야 했다. 필연적으로 전면의 대열이 얇아졌다.

그렇게 얇아진 대열에 이쪽 마법사들이 사정없이 불덩어리를 꽂아넣었다. 폭발음에 대지가 부르르 진동했다.

사면포위에 무차별적인 마법의 포화. 사르데냐 왕국군은 지옥을 맛보고 있다.

삼십 분 뒤, 적 중앙의 모서리가 허물어졌다.

“적군의 일부가 도주하고 있습니다!”

“왕국군 전열이 차례대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전하! 전열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지휘부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끝이로군.

전열은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삽시간에 도미노처럼 쓰러진다. 그걸 막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예비대다. 무너질 위험이 있는 대열에 재빨리 예비대를 보충해주어야 한다.

사르데냐 왕국군에는 예비대가 다 떨어졌다. 즉, 여기서 끝이다.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은 오늘 몰락한다…….

“푸른 산양 연대에서 추격전을 요청!”

“드 블랑 남작도 추격을 허가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내가 쓴웃음을 지었다. 성급하기는.

각 연대에서 줄줄이 추격을 허락해달라 요구해왔다. 반항하는 적병을 공격하는 것보다 도망치는 적병을 사냥하는 것이 당연히 편했다. 전과를 확대하기도 쉬웠다.

다만 조금 지나치게 빨랐다. 아직 피렌체 대공이 저항하고 있었다. 지금은 조금 더 대공을 몰아세워야 할 때였다. 추격이야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았다.

“추격을 허가한다.”

“……공작?”

라우라 입에서 뜻밖의 명령이 나왔다.

내가 당혹감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아직 왕국군의 일부가 격렬하게 맞서고 있습니다만.”

“본관도 알고 있다.”

“가만히 내버려두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지금 추격을 허락하면 적군에게 '도망치면 사냥당한다'라고 인상을 심어주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적군의 반항이 더 심해집니다.”

라우라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 또한 숙지하고 있다.”

“허면 어째서…….”

“궁중백.”

전투가 벌어지고 처음으로 라우라가 시선을 돌렸다.

사파이어처럼 푸른 눈동자가 내 얼굴을 직시했다.

“과거에 스승이 본관에게 가르쳐준 것이 있지. 완벽한 승리는 완벽한 패배만큼이나 해롭다는 것이다.”

“…….”

내가 라우라한테 해준 말이었다.

“하지만, 피렌체 대공을 사로잡을 절호의 기회입니다.”

“지금은 대공을 격살할 때가 아니다. 궁중백. 본관을 신뢰하라.”

나는 납득하지 못했지만 바로 허리를 숙였다. 총사령관의 명령은 지엄해야 마땅했다.

아군의 기병이 적군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기병에게 등을 보인 병사의 말로란 비참했다. 그들은 강줄기에 닿기도 전에 기병도에 맞아 절멸했다.

그걸 보고 적군의 남은 전열이 똘똘 뭉쳤다. 내가 예상한 대로였다.

적군은 필사적으로 아군의 중앙을 돌파하려고 분투했다. 피해가 심각해질 지경에 이르자, 라우라는 또 다시 이상한 명령을 내렸다.

“적군이 중앙을 돌파하도록 내버려두어라.”

일부러 맞서싸우지 말고 접전을 피하라는 얘기였다.

이 명령에는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지휘관이 의아해했지만, 이미 완전무결한 승리를 보여준 총사령관이기에 다들 군말없이 따랐다.

피렌체 대공은 이쪽 중앙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그후 대공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무분별한 후퇴가 아니라 엄중하게 항오를 갖추어서 물러서는 것이었다. 섣불리 추격하면 당할 위험이 있었다. 결국 일만 명 정도가 대공과 함께 전쟁터를 빠져나갔다.

기껏 완벽하게 포위를 해놓고 다시 풀어준 꼴이 되었지만, 대승은 대승이었다.

“승리를 축하드리옵니다, 전하!”

“전하께선 실로 아테나 여신의 이름을 대신하신 자격이 있습니다!”

연대장들이 달려와서 땅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적군 삼만 중에서 이만 명 가까이가 쓰러진 것이었다. 일만 명의 보병을 제외하고, 사르데냐 왕국군은 문자 그대로 녹아내렸다. 대륙력 1512년 6월 28일의 태양은 그렇게 졌다.

또 한 번의 대승.

이제 사르데냐인은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라우라 데 파르네세는 재앙이 될 것이라고.

============================ 작품 후기 ============================

설정란에 지도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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