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368화 (368/510)
  • 00368 제2차 국화전쟁  =========================================================================

    “밀라노 공작에게는 승리하되 피렌체 대공에겐 패배한다.”

    그것이 라우라가 내세운 전략이었다.

    우리는 밀라노 공작과 피렌체 대공한테 정반대로 대처했다.

    두 대귀족은 내분을 겪고 있다. 하지만 눈앞에 적군을 놔두고 완전히 분열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겠지. 처음부터 적군의 무능함을 기대해서야 못 쓴다. 두 사람이 더 깊이 분열하도록 신중하게 계략을 짜내야 한다.

    먼저 밀라노 공작.

    이 노귀족은 찔끔찔끔 성밖으로 분견대를 보내오고 있었다. 피렌체 대공이 북상하는 것에 발맞춰서 이쪽을 견제하려는 의도겠지.

    우리는 이 분견대를 완전히 묵사발로 만들었다.

    백이십오 명, 삼백 명 단위로 분견대가 뛰쳐나올 때마다 사정없이 짓밟았다. 우리는 적군의 분견대를 쥐 잡듯이 후려쳤다.

    이런 불상사가 다섯 번쯤 계속되자 밀라노 공작은 단단히 질려버렸다. 아예 성문을 걸어잠그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러다 티키누스 전투에서 그나마 살아돌아간 기병들이 죄 죽겠다 싶었을 거다.

    안 되었군, 공작.

    초반에 기병대를 잃어버린 게 뼈아팠다. 당신은 파비아 백작한테 원군으로 기병을 붙여주면 안 되었다. 시민병을 오천 명쯤 쥐어주는 편이 나았을 테지.

    물론 시민병은 전멸했을 것이다. 괜찮다. 애시당초 버리는 패로 사용하면 그만이다.

    민병 오천 명이 궤멸해도 상관없다. 대신에 정예병이 버젓하게 남아 있다. 도시를 지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상황도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아진다. 기사단이 섞인 오천 명의 기병을 분견대로 삼는다면, 지금처럼 우리한테 벌레처럼 짓밟힐 일이 없겠지. 게릴라처럼 치고 빠지기 전술을 구사하면서 얼마든지 우리를 괴롭힐 수가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밀라노 공작은 이웃 도시를 구원하려고 시민병까지 내어준 셈이 된다. 공작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비교적 적어질 수박에 없다. 오히려, 섣불리 출진하는 바람에 시민들을 죽음으로 몰아세운 파비아 백작한테 비난의 화살이 향할 터.

    군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유리해진다. 꽤나 상황이 편해진다……. 결과적으로 우리 제국군은 난감한 처지에 놓였을 것이다.

    하지만 공작은 민병 대신 정예기병을 보내주고 말았다. 실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설마 오천 명이나 되는 기병대가 단 한번의 기습으로 패퇴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겠지. 달리 말해, 라우라가 얼마나 뛰어난 장군인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브르타뉴를 꺾은 것은 요행이라고 생각했는가. 어차피 단순한 스물한 살의 계집애. 그렇게 깔보았는가……. 어리석군. 십 대의 나이에 놀라운 군공을 세운 인간도 역사상 드물지만 있다. 라우라 데 파르네세는 틀림없이 역사에 예외라는 이름의 경고 비석을 세울 인물이다.

    앞으로 대륙은 그걸 알아채는 자와 알아채지 못하는 자로 나뉜다. 밀라노 공작, 너는 안타깝게도 후자에 속한다. 루도비코 데 스포르차라는 이름은 경고의 본보기로써 후세에 전해지겠지.

    이제 공작에게는 이쪽을 견제할 수단이 없다. 기동력에서 싸움조차 안 된다. 노바라-밀라노-파비아 일대를 제어하는 것은 왕국군이 아니다. 우리 제국군이다.

    이 시대, 기동력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한다는 것은 곧 정보전에서 유리해진다는 얘기였다.

    우리는 거미줄을 펼치듯이 사방에 정찰부대를 퍼트렸다. 정찰병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정보를 수집했다. 덕분에 피렌체 대공의 군대가 언제, 어디서, 어디로 움직이는지 정확히 파악했다.

    피렌체 대공은 파죽지세로 북상하고 있었다.

    단순히 속도가 빠른 것에 불과하지 않았는데, 대공은 항구를 보급기지로 확보해두고 그 다음에야 움직였다. 민병을 징집하며 해군으로 활용. 보급선단을 이끌게 만들었다. 전투 부문은 용병에게 맡기고 보급 부문은 바닷물에 익숙한 민병에게 전담시켰다.

    조속하고 깔끔한 솜씨에 라우라가 감탄했다.

    “신속하지만 서두르지 아니하며, 운용 역시 이치에 맞다. 피렌체 대공은 메디치 가문에서 방계에 속한다고 들었거늘.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가주(家主)에 오른 이유가 있었군…….”

    군더더기가 없다. 피렌체 대공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러했다.

    더군다나 대공은 보급과 진군에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쪽이 정찰병을 퍼트렸듯이 대공도 전초부대를 화끈하게 보내왔다. 곧, 이쪽과 저쪽의 정찰병력끼리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성가시게 되었다. 이런 성격은 우직하면서도 신중하다. 스물여섯 살의 대공이라길래 조금 더 조급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완전히 정반대의 인물이 나와버렸다.”

    “이런. 사르데냐에는 유능한 귀족이 많군요.”

    내가 라우라에게 눈짓했다. 라우라도 사르데냐 출신이니 농담을 던진 것이었다.

    내 말뜻을 알아듣고 라우라가 쓰게 웃었다.

    “이러니 저러니 삼십 년 가깝게 내전을 치뤘으니 말이다. 유능한 인간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겠지…….”

    과연. 대륙에 흑사병이 휘몰아쳤을 때도 유독 사르데냐 지방은 피해가 적었다. 심지어 사르데냐에서 흑사병이 처음으로 발생했는데도 말이다. 지배계층의 유능함이란 그런 지점에서 증명되었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파르네세 가문은 저들보다 무능했다는 소리다. 딸아이의 재능도 알아보지 못하고, 내전에서 패배하여 몰락할 대로 몰락했다.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라우라는 무표정하게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부모에 대해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한 척 발랄하게 말했다.

    “어쩔까요? 이건 신경전입니다. 쓸데없이 기병전력을 소모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로서는 지금이라도 정찰부대들을 불러모으는 걸 추천합니다.”

    “그러니까 안 된다는 거다, 주군은.”

    라우라가 어느덧 무표정을 잊고 키득 웃었다. 나는 그것이 기뻐서 일부러 인상을 와락 찡그렸다. 물론 연극이다. 그러나 이것이 연극임을 상대방도 아는 상태에서 진행된다면 그건 단지 연극이 아니다.

    “전 상당히 상식적인 권고를 건넸다고 생각합니다만.”

    “후후, 삐지지 마라. 주군이 어쩌면 귀여운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내가 착각해버리지 않는가.”

    “전 귀여운 사람 맞습니다.”

    하고 나는 라우라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귓볼을 깨물었다. 라우라가 꺄아, 하고 어딘지 즐거운 목소리로 질색했다. 사람은 즐겁게 질색할 수도 있는 법이었다.

    “여긴 군중이다! 하여간 시도 때도 없이 발정하기는!”

    “제가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남자라고 인정해주면 발정기가 끝날 것 같은데요.”

    “무슨, 흡혈귀가 어이없어 눈깔에 마늘을 바를 헛소리를……꺄아!? 알겠다, 알겠다, 주군! 주군은 천하에서 제일 상큼하고 귀여운 남자다! 그러니까 제발 침은 묻히지 마라!”

    “덧붙여서 세상에서 가장 잘 생긴 남자라고도.”

    “이 주군은 일말의 양심마저 없는 건가……!?”

    우리 두 사람은 한동안 꺄아꺄아 거리며 놀았다.

    즐거운 시간이 흐르고 작전회의가 재개되었다. 참, 우리는 작전을 회의하고 있었다. 한 시간 중에서 삼십 분은 항상 아까 전과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어쨌든 작전회의였다.

    나는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거만하게 말했다.

    “자아, 라우라. 세상에서 제일 잘난 저한테 설명하는 영광을 라우라한테 드리겠습니다. 어디 그 짧은 지혜로 열심히 설명해보십시오.”

    “……그냥 이대로 전쟁에서 패배해버릴까 싶은 욕구가 맹렬하게 치솟고 있다마는, 내가 주군보다 어른스러우니 참아주겠다.”

    “하하. 별 말씀을.”

    “칭찬이 아니다, 바보 주군!”

    라우라는 이마에 힘줄을 띄울 기세였다.

    “어휴. 아무튼 기병전력을 불러들이면 안 된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기병을 아낀다는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최대한 병력을 아껴서 결전을 벌이려 한다고 해석하겠지. 그럼 피렌체 대공은 무리해서라도 밀라노 공작과 협력하려 들 거다.”

    병력을 아끼는 것처럼 보이면 안 된다. 그런 말인가.

    하지만 난감했다. 우리는 실제로 결전을, 거대한 회전을 바라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이쪽보다 저쪽이 병력에서 우세하다. 우리에겐 병사 한명한명이 소중하다. 이미 적군의 군세와 지리를 파악해둔 이상, 정찰전에서 쓸데없이 전력을 소모하면 앞으로가 힘들어진다.

    “착각하면 곤란하다, 주군.”

    내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본 것처럼 라우라가 단칼같이 쳐냈다.

    “설령 아군의 기병을 오백 명, 천 명 잃어버린다 해도 피렌체 대공과 밀라노 공작을 철저히 분리시킬 수만 있다면 거저나 다름없다. 반대로, 두 명이 합류해버리면 오백 명의 기병은 이득도 뭣도 아니다.”

    “……옳습니다. 오백 명은 문제가 안 되지요.”

    나는 수긍했다.

    “그럼 어찌하는 편이 좋습니까?”

    “정찰부대를 계속해서 파견한다. 지금보다 더욱 많이.”

    라우라가 간단한 해답을 내놓듯이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목적은 정찰이 아니다. 피렌체 대공이 진군해오는 것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것이 목적이다. 아니, 집요하게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목적이라고 해야 할까.”

    “흐음.”

    내가 턱을 괴었다.

    “진군을 방해하려면 적어도 천 명 단위의 기병대가 필요하겠습니다.”

    “말하지 않았는가. 정말로 진군을 방해할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그러는 시늉만 하면 충분하다.”

    라우라가 씨익 웃었다.

    “백 명 단위로 정찰부대들을 지속적으로 보낸다.”

    “그래서야 적군의 전초부대에 쉽게 패배……아아. 그렇군요. 그런 겁니까.”

    나는 말하는 와중에 깨달았다. 라우라가 무슨 생각인지 알았다.

    하지만, 하고 내가 걱정이 들어 지적했다.

    “피렌체 대공한테 승리를 안겨줘서 자만시킨다는 대전제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고작 정찰부대를 패퇴시키는 걸로 대공이 자만하겠습니까? 라우라도 말했다시피 대공은 신중하고 우직한 자입니다.”

    “괜찮다.”

    라우라가 자신만만하게 단언했다.

    “나에게 계책이 있다.”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그녀를 말릴 필요가 없었다.

    라우라의 작전안은 그대로 실현되었다.

    밀라노 공작이 자기 도시에 더더욱 수세적으로 틀어박히는 가운데, 피렌체 대공은 연전연승을 거듭했다.

    “파르마에서 아군의 정찰대가 패주했습니다!”

    “크레모나를 감시하던 중대가 후퇴!”

    “전하, 왕국군이 피아센차를 점령했습니다!”

    우세한 기동력을 바탕으로 사방에 펼쳐놓았던 정찰대가 속속들이 패퇴했다.

    대륙력 1512년 6월 25일.

    피렌체 대공은 마침내 코앞까지 당도했다.

    어림잡아 삼만 명이 넘었다. 병력을 소집하느라 제법 허송세월한다 싶었더니 대군을 끌고왔다.

    삼만 명의 왕국군은 언덕에 진을 차렸는데, 피아센차라고 불리는 언덕으로서, 인간들은 정말 세상 어디에나 이름을 붙이는구나, 하는 감상을 남겨주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않는 지명이었다. 내 두개골의 소중한 용량을 소모해서까지 기억해줄 의리는 없겠지.

    아무튼 피아센차이다. 여기가 또 위치가 절묘하다.

    서쪽으로는 아군의 거점이 된 파비아를 노릴 수가 있고, 북쪽으로는 밀라노와 연계할 수가 있다. 이쪽을 견제하면서도 자기네 아군과 연합한다.

    만일 우리가 밀라노를 공격하면 피렌체 대공한테 배후를 드러내게 되고, 만약 우리가 피아센차를 공격하면 밀라노 공작한테 배후를 드러내게 된다. 남정네 두 명이서 여자 한 명을 호시탐탐 노리는 형국이라고 할까. 과연 사르데냐인은 변태였다. 무심코 감탄하고 말았다.

    문제는 남정네 중 한 명이 늙어빠진 물렁자지라는 사실이었다. 밀라노 공작, 이 영감탱이는 가만히 기다리기만 해도 여자가 알아서 기어주리라 착각하고 있었다.

    돈 많은 골방노인이 자기 망상에 빠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불쌍한 노릇이다. 시간은 당신의 편이 아니다. 그 진실을 언제 깨닫게 될지 개인적으로 기대된다.

    이 시점에서 라우라가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파비아를 잿더미로 만들어라!”

    여태까지 제법 온전하게 남아 있던 파비아 시내가 무차별적으로 파괴되었다.

    시민들이 울고불며 제발 용서해달라고 엎드렸다. 자신들의 부모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일군 도시였다. 하지만 라우라는 강철과 같은 의지로 명령을 고집했다.

    그러자 이렇게는 못 살겠다며 시민들 일부가 탈출했다.

    철통과 같은 경계 속에서 그들은 목숨을 내걸고 도망쳤다. 실제로 이백 명의 시민이 죽었다. 그러나, 열 명쯤은 탈주하는 데 성공했다. 탈주자들은 동쪽에 있는 피아센차 방향으로 도망쳤다.

    이건 우연이 아니었다.

    서문, 남문, 북문, 모두 사전에 철저히 틀어막았다. 동문에만 일부러 경비병을 적게 배치했다. 탈주를 시도한 포로 중에서 동쪽으로 향한 자들만 성공한 것은 철저히 계획된 일이었다.

    “기병대를 보내서 추적하지요. 따로 명령할 게 있습니까, 대장군?”

    라우라가 웃었다.

    딱 세 단어로 이루어진 명령은 실로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명문이었다.

    “적당히, 설렁설렁, 대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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