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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디펜스-362화 (362/510)

00362 제2차 국화전쟁  =========================================================================

적군의 진지에서 나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설마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강줄기를 넘어버릴 줄은 몰랐겠지. 다소 느긋하게 이쪽을 관망하면서 우리군의 상태를 파악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라우라를 필두로 열두 명의 용병대장이, 그 뒤를 삼백 명의 기병이 단숨에 달려나갔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여간 못 말린다니까. 어디, 쫓아가볼까.”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군마가 으르렁거리며 발굽을 내딛었다. 바르바토스에게 선물 받은 녀석으로 흑색 갈기가 멋들어진 명마였다. 내 승마술은 솔직히 볼품이 없었지만, 녀석은 이렇게 얇은 강물 따위는 흙바닥이나 마찬가지라는 듯 거침이 없었다.

수백 명의 기병이 일제히 강물을 가로질렀다.

장관이었다.

사방에서 첨벙거리는 소리와 함께 온 사방에 희뿌연 물보라가 일어났다. 그 위로 태양빛이 새하얀 알프스 산맥을 비껴서 내리 쏟아졌다. 마치 저녁놀이 얇은 커튼에 비추어 찬란하게 빛나듯이, 꼭 그처럼 물보라가 햇빛의 커튼이 되어 환하게 퍼졌다.

“공작 전하, 위험합니다! 뒤로 물러서십시오!”

난쟁이 용병대장이 라우라를 따라잡았다.

“나는 군사들의 뒤에 숨어서 비겁하게 지휘할 생각이 없다!”

“사령관에게 일개 병사의 용맹은 필부의 무모함에 불과합니다! 전하, 부디 재고를!”

“그렇다면 그대들이 나보다 앞서가라.”

라우라가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두 사람의 뒤를 바짝 쫓고 있었는데, 물소리 떄문에 대화가 명확하게 들리지 않았지만 대충 무슨 얘기인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본인이 그대들보다 앞서고, 그대들이 나보다 앞선다. 허면 아무런 문제가 없군!”

용병대장들이 할 말을 잃었다.

거기에 대고 라우라는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새로운 군명이다. 본인보다 적진에 늦게 도착하는 자는 군법에 따라 처벌하겠다! 지각하는 사람은 헬베티카의 신사를 자칭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겠다!”

라우라가 금발을 휘날리며 오히려 말에 속도를 더했다. 용병대장들은 어이가 없겠지만 어쩌겠는가. 아무렴 총사령관을 선봉대장으로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젠장! 명을 받듭니다!”

“내 살면서 이런 분을 대리 군주(軍主)로 받아들일 줄은 몰랐는걸!”

대장들이 라우라를 지나쳐서 돌격했다. 에라이 모르겠다 저질러보자는 심정이겠지.

대장들이 단기필마로 앞장서자 병사들도 용기백배해서 뒤따랐다. 수백 명의 기병이 순식간에 강을 건넜다.

아직도 적군은 대열을 짜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산발적으로 화살을 날려댈 뿐이었다. 수백에 이르는 아군, 그것도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기병에게 화살 몇 개를 쏘아봤자 잘 맞지도 않았다.

기병들이 목책에 수비 병력이 없는 쪽으로 간단히 뛰어넘었다.

어, 어, 하는 사이에 적군은 기병의 난입을 허용하고 말았다.

적군은 어떻게든 서로 모여들어서 방진을 만들려고 했다. 실제로 스무 명 정도가 모이는 데 성공한 곳도 있었다. 그러나 저렇게 만들어진 방진은 지극히 수동적이었다.

“방진을 공격하지 마라!”

라우라가 소리쳤다. 그녀는 용병대장들보다 한 발자국 늦게 적진에 돌입했다.

“적이 모여들지 못하도록 방해하라! 사냥하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용병들은 곧바로 라우라의 말을 이해했다. 아군은 방진을 이룬 보병은 무시하고 지나쳤다. 그리고 동료와 합류하지 못한 알보병부터 처리했다.

이쪽이 말의 속도에 더해서 곡도를 휘두르자, 적은 미처 대적하지도 못하고 수수깡처럼 쓰러졌다. 미처 대열을 짜지 못한 채 기병의 난입을 허용한 것이었다. 결과는 자명하겠지.

“으하아아악!”

“후, 후퇴하라! 후퇴하라!”

한 순간에 결착이 지어졌다.

대충 이백 명쯤 되어보이는 적군은 손도 쓰지 못하고 패퇴했다. 우리가 강을 건널 무렵부터 진즉에 도망쳐버린 몇 명을 제외하고――실로 세상 살아가는 법을 통달한 현자들이다――모조리 사냥당했다.

방진을 이룬 적군은 느긋하게 화살을 쏘고 창을 던져서 처리했다. 동료가 학살당하는 모습을 보고 단단히 겁에 질렸으리라. 대여섯 명이 화살에 맞아서 부상을 입자 저들은 냉큼 항복해버렸다.

오십 명 정도가 포로로 잡혔다. 그들은 험악하게 생긴 난쟁이, 그리고 종족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게 껌 좀 씹을 것처럼 생긴 엘프에게 둘러싸였다. 안색이 시퍼렇게 질린 포로들을 향해서 라우라가 질문했다.

“그대들의 사령관은 누구인가.”

라우라와 시선이 마주친 병사가 우물쭈물거렸다. 아군의 정보를 누설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러자 라우라가 단박에 검을 휘둘렀다. 칼끝이 포로의 목 정중앙을 꿰뚫었다.

“커, 커헉…….”

가래침이 들끓는 것과 비슷한 소리였다. 포로는 한 인간이 마지막으로 남기는 숨결이라고 하기에는 적이 비참한 비명을 흘리고 풀밭에 힘없이 거꾸러졌다.

“흠.”

라우라가 롱소드를 가볍게 내리쳐서 칼날에 묻은 핏물을 털어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서 다음 포로를 바라보았다. 포로가 히익, 하고 공포에 질렸다.

“사령관은 누구인가.”

“스포르차 공작 전하입니다!”

포로가 넙죽 엎드렸다.

루도비코 데 스포르차. 대도시 밀라노를 다스리는 영주였다. 국화전쟁에서는 파르네세 가문과 대립하여 현재의 왕실을 지지했다. 밀라노는 사르데냐의 북방 전선을 다스리는 맹주. 이번 전쟁에서 총사령관을 맡기에 더없이 적절했다.

“스포르차, 밀라노의 공작인가. 타당한 인선이로군.”

라우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파비아 백작은 밀라노 공작의 휘하에 있는가?”

“죄, 죄송합니다. 그것까지는 잘…….”

병졸이 사령부의 인선을 정확하게 알기란 어려웠다. 다행히 모든 병졸이 그런 것은 아니라서, 라우라는 파비아 백작이 적군에 있음을 알아냈다. 그리고 적군의 본진이 노바라라는 도시에 있다는 정보도 얻었다.

라우라가 포로를 심문하고 지도를 살펴보는 동안, 아군의 나머지 군사가 느긋하게 강을 도하했다. 큰 전투는 아니었어도 초전에서 기분 좋게 승리했다는 사실에 병사들은 낯빛이 여유로웠다.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공작?”

내가 라우라에게 물었다.

참고로 나는 라우라와 엇비슷하게 전장에 난입했지만 직접 싸우지 않았다. 그저 등에 걸쳐맨 석궁을 꺼내잡아 화살만 몇 발 날렸다. 나는 평화주의자이니까 말이지. 무서운 싸움은 무서운 아가씨한테 맡겨두자는 것이 내 신조이다.

“음. 적군은 전방에 본진을 차리는 대신 도시를 거점으로 만들었다.”

라우라가 지도를 손으로 짚었다. 용병대장들도 주위에 모여서 그녀에게 귀를 기울였다.

“저들이 도시를 놔두고 진군하지 않은 까닭은 한 가지다. 아직 군세가 충분히 모이지 않은 것이다.”

제국은 처음부터 전쟁을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에 사르데냐는 외교전으로 승부를 보려고 했다. 당연히 전쟁에 대처하는 속도에서 사르데냐가 반 발자국 느렸다.

그 반 발자국을 한 발자국으로 늘려버린 요인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우리 제국에서 헬베티카 용병을 독점해버린 것이었다. 사르데냐 입장에서도 헬베티카는 가장 빠르고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용병 시장이었다. 그곳을 우리가 선점했다…….

사르데냐가 제아무리 허겁지겁 군대를 소집해봐도 다소 늦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적보다 일보(一步) 앞서 있다.

“지금쯤 사르데냐의 중부에서는 한창 용병을 소집하고 있겠지. 병력이 전부 모이기 전까지는 도시를 거점으로 삼아 방어한다. 그것이 적군의 의도이다.”

“전하. 허면 도시를 지키는 수비 병력도 대단치 않겠군요.”

한 엘프족 용병대장이 말했다.

“적은 우리가 진군해온 것을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단숨에 진격하면 쉽게 밀라노를 포위할 수 있습니다.”

“그건 하책이다.”

라우라가 고개를 저었다.

“저들에게 용병이 없을지언정 시민병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고향 도시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시민병도 필사적으로 농성할 터. 더욱이 밀라노는 대도시다. 간단하게 떨어트릴 수 없다.”

그렇군. 사르데냐가 방어 전략을 취한 것은 시민병의 애향심을 염두에 둔 것인가.

시민병은 용병보다 약하다. 그러나 고향을 지키는 전투에 한정해서는 때때로 놀라운 전투력을 발휘한다. 도시가 함락되면 자신의 가정이, 부모가, 자식이 약탈당한다. 침략자에게 필사적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다.

“또한, 적의 본진인 노바라가 어디에 위치했는지 보아라.”

라우라가 지도를 가리켰다.

“밀라노의 바로 옆에 있습니다, 전하.”

“그렇다. 우리가 밀라노를 공격하면 곧바로 원군을 보내올 수 있는 장소이다. 즉, 적군은 시민병을 밀라노에 배치하고 그외 나머지 소수의 용병은 전부 이곳에 배치했을 가능성이 높다.”

“확실히…….”

대장들이 진지하게 턱을 주억거렸다.

라우라가 확신에 차서 단언했다.

“제장은 잘 듣도록. 적군의 기본적인 전략은 시민병과 용병의 보조에 있다. 시민병이 밀라노를 방어하며, 용병은 소수의 유격대로서 우리를 방해할 속셈이다. 이러한 작전의 목적은 후방에서 병력이 충분히 모일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이다.”

대장들은 잘 이해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몇 명은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일부에는 나 또한 포함되었다.

나는 군략에 있어서 아마추어다. 하지만 라우라가 어떤 점에서 대단한지 정도는 알고 있다. 상대방의 의중을 언제나 읽어버리는 것, 그것이 라우라의 특징이자 강점이다.

파편처럼 이리저리 흩어진 정보를 조합해서 적군의 작전 계획을 간파한다. 말로 표현하면 쉬워보이지만, 실제로 라우라가 포로들한테 얻어낸 정보라고는 두 개밖에 없다. 적군의 사령관이 밀라노 공작이라는 것. 그리고 본진이 노바라에 있다는 것.

고작 두 개의 정보를 가지고서 순식간에 전체 전략을 조합해냈다. 나 같은 범재가 흉내를 낼 만한 묘기가 아니었다. 용병대장들도 자신들의 총사령관이 어떤 재능을 가졌는지 알아차렸겠지. 아직 반신반의하는 대장이 다수 있었지만.

라우라가 말했다.

“여기서 우리가 밀라노를 공격하면 적의 의도대로 놀아주게 된다. 밀라노 공략은 불허한다.”

“전하. 밀라노 주변을 마음껏 약탈하는 것은 어떻나이까?”

난쟁이족 용병대장이 제안했다. 라우라에게 키스 세례를 받은 대장이었다.

“도시 주변이 대대적으로 약탈되면 밀라노 공작도 틀어박혀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

“대신에 우리 제국군은 악명을 떨치겠지.”

라우라가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귀족들 사이의 명예 다툼 때문에 무고한 백성들을 다치게 했다고 말이야. 불허한다.”

“전쟁에서 약탈은 악덕이 아니옵니다, 전하.”

“왜냐하면 전쟁 자체가 악덕이기 떄문이다. 우리 스스로 백성을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다.”

대장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다들 시선에 의문이 생겨났다.

“공성전도 약탈도 아니된다 하시면 어찌해야 좋을지, 소관은 모르겠나이다.”

“내 말을 잘못 이해했군. 본인은 밀라노를 건드리면 안 된다고 명령했을 따름이다.”

라우라가 지도에서 특정 부분을 손끝으로 짚었다.

“밀라노가 아닌 지역. 그중에서도 우리 제국이 정당하게 약탈할 권리를 지닌 곳이라면 상관없다.”

파비아.

라우라가 가리킨 곳에는 그런 글자가 필기체로 적혀 있었다.

“우리는 밀라노를 공격하지 않고, 노바라를 공격하지도 않는다. 두 도시 사이를 빠르게 지나쳐서 파비아로 향한다. 본관을 노예로 팔아먹은 지역이다. 하물며 파비아 백작은 감히 황제 폐하를 모욕했다.”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이제 와서 우리에게 약탈을 당한들 변명할 수 없겠지. 제군. 파비아에 지옥도를 펼쳐주자.”

============================ 작품 후기 ============================

작품설정란에 사르데냐 북부 지방의 지도를 올려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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