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356화 (356/510)

00356 외교전의 걸작  =========================================================================

“제국에서 추가적인 숙청은 일어나지 않았는가?”

“예, 통령 각하. 방위사령부는 이미 제도에서 철수했습니다.”

“……결국 일주일의 혼란에 불과했는가.”

엘리자베트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쿠르츠 슐라이어마허가 쓴웃음을 지었다. 단탈리안이 암살되었다는 정보에 엘리자베트 통령은 지난 일주일 동안 극도로 긴장했다. 며칠 밤을 새가며 단탈리안에 대한 정보만 수집할 정도였다.

의도된 자작극인가. 아니면 미처 예방하지 못한 습격인가……. 그것에 따라 향후 방침이 달라진다고 엘리자베트 통령은 말했다. 아무래도 그녀는 방금 확신이 선 모양이었다.

“쿠르츠, 이건 철저히 계획된 자작극이다.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동의합니다. 진짜 범행이었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깔끔하죠.”

“아아.”

엘리자베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쿠르츠도 따라서 턱끝을 숙였다. 지나치게 깔끔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만약 암살이 단탈리안으로서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면,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범인을 색출하는 데 너무나 촉박했다.

“공식적으로는 위장 대역을 세워둔 덕택에 살았다고 발표했지만 그것도 거짓이겠지.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이면 치고들어갈 수 있을까 싶었건만, 헛된 기대였나…….”

“어라. 기대가 엇나간 것치고는 안색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으십니다, 각하?”

쿠르츠가 너스레를 떨었다. 분위기가 필요 이상으로 무거워지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았다.

애당초 이번 사건은 엘리자베트와 쿠르츠 두 사람 모두 ‘이건 자작극일 확률이 9할’이라고 예상한 상태에서 조사에 들어갔다. 단지 1할의 예외를 염려했을 뿐이었다. 쓸데없이 낙담할 필요는 없겠지.

엘리자베트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암살되지 않은 걸 기뻐해야겠지.”

“네엡?”

질색하며 부정하리라고 쿠르츠가 생각한 것과 퍽 다른 반응이었다. 엘리자베트 통령이 단탈리안에게 보통이 아닌 감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은 쿠르츠도 잘 알았다. 그는 반쯤 장난기를 담아 혹시나,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각하. 설마 정말로 그 조그마한 가슴에 연심을…….”

“그런 게 아니다. 천둥벌거숭이 같으니.”

엘리자베트가 코웃음을 쳤다.

“우리 공화국은 제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수세에 몰려 있다. 그런데도 제국이 우리를 침공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겠느냐. 단탈리안이 마왕들의 고삐를 단단하게 쥐고 있기 때문이다.”

“아아, 단탈리안이 죽으면 마왕들이 미친소처럼 날뛴다는 얘기입니까?”

뭐야, 그런 이야기였나. 쿠르츠는 약간 김이 빠졌다.

그러나 엘리자베트는 진지했다. 그녀가 손에 깍지를 끼고 그 위에 턱을 올렸다.

“이번에 숙청된 마왕들은 아마도 미처 재갈을 물려두지 못한 자들이겠지. 훗날 문제가 생기기 전에 미리 해치운 것이다. 쿠르츠.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는가.”

“뭐, 그 남자가 제국의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뜻이지요.”

고작 일주일.

극히 짧은 시간 안에 상대는 자신한테 적대적인 세력을 모조리 숙청했다. 사실상 현재 제국은 단탈리안의 수중에 떨어진 장난감이나 다름없다고, 쿠르츠는 판단하고 있었다.

엘리자베트가 고개를 저었다.

“정답이지만 해답은 아니다. 왜 하필 이런 시기에 숙청을 벌였는지가 관건이다.”

“……으음.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는걸요.”

“만일 본녀가 단탈리안이었다면.”

엘리자베트가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통령이 이럴 때는 저절로 주변의 온도가 내려가는 것 같았다. 쿠르츠는 등줄기가 간지러워지는 것을 느끼며 통령의 시선에 집중했다.

“조금 더 좋은 시기를 골라잡았을 것이다. 어차피 그자는 본녀가 제국의 내부를 뒤흔들고 싶어하는 것을 알고 있을 터.”

“……?”

“그런 내 조바심을 충분히 역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는 편이 그자의 수법에 어울린다. 이렇게 깔끔하게 해치워버리는 것은 단탈리안의 성미에 맞지 않아.”

“저기, 각하.”

잠자코 이야기를 듣자고 생각한 쿠르츠였지만 어딘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마치 선생님에게 수업을 듣는 학생처럼 슬쩍 손을 들어올렸다.

엘리자베트가 눈썹을 찡그렸다.

“무엇이냐?”

“죄송합니다. 아까 전부터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각하가 제국의 내부를 뒤흔든다는 것은 뭐고, 또 그걸 단탈리안이 알고 있다는 건 뭡니까? 제가 명색에 각하의 그림자입니다만 처음 듣는 정보인뎁쇼.”

쿠르츠 슐라이어마허는 비밀 정보기관의 이인자였다. 엘리자베트에게 들어가는 모든 정보는 쿠르츠의 눈과 귀를 거친다고 해도 좋았다. 하지만 지금 엘리자베트가 하는 말들은 쿠르츠도 전혀 몰랐다.

“그대야말로 무슨 소리인가.”

웬 뚱딴지처럼 구냐는 식으로 엘리자베트가 인상을 찌푸렸다.

“전쟁으로 제국을 압도하기가 불가능하고, 외교로 제국을 압박하기도 글러먹었다. 그러면 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제국의 내부에 아군을 만드는 것밖에 없지 않느냐.”

“……뭐, 그건 그렇죠. 하지만 그걸 단탈리안이 알고 있어서 이번에 숙청을 일으키는 데 고려했다고요?”

엘리자베트가 즉답했다.

“당연하다. 본녀가 알고 있는 것을 단탈리안이 모를 리 없다.”

“…….”

어라.

무언가 이상했다. 쿠르츠는 무척이나 기묘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겠지만 뭔가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느낌의 정체를 캐묻기 전에 엘리자베트가 얘기를 이어나갔다. 쿠르츠는 일단 감정을 가슴 한켠에 치워버렸다.

“어찌되었든 단탈리안은 최대한 빨리 내부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쿠르츠. 권력을 쥐어잡은 자가 급하게 내부를 정리해야 하는 순간은 언제라고 생각하는가?”

“그야, 어디로 멀리 떠나 있어야 할 때이지요.”

자리를 비운 사이에 쿠데타가 일어날지 모른다. 미리 청소해두고 떠난다. 그런 상황을 떠올리며 쿠르츠가 대답했다.

엘리자베트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단탈리안이 자리를 비운 동안에는 섭정인 바르바토스가 제국을 지킨다. 바르바토스가 건재한 이상 제국의 안쪽이 흔들릴 일은 없겠지. 그런데도 단탈리안은 급하게 숙청에 들어갔다…….”

“…….”

“즉, 바르바토스도 단탈리안과 함께 제국을 비운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단탈리안이 바르바토스와 함께 움직인 경우는 오직 한 가지뿐이다.”

“……!”

쿠르츠가 깜짝 놀랐다. 그는 엘리자베트의 말뜻을 파악한 것이었다.

“설마, 전쟁입니까!”

“그럴 가능성이 높다. 이번 숙청은 전쟁에 나서기 전에 미리 화근을 뽑아두는 사전작업일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쿠르츠는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꼭두각시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제국에 전비를 감당할 여력이 있을지.”

“이번에 숙청된 인물들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마왕, 거기에 말로만 듣던 마계의 대공들이다. 어느 쪽이든 마족의 정점에 군림하니 쌓아둔 재화가 상당하겠지.”

쿠르츠가 무심코 침음을 삼켰다.

“숙청은 군자금을 확보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런 말씀입니까…….”

“문제는 단탈리안이 어디를 노리냐는 것이다.”

엘리자베트의 시선은 이미 쿠르츠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어두워진 눈동자가 조용히 허공을 바라보았다.

“일단 프랑크는 아니다. 튜튼도 단탈리안에게 작위를 내렸으니 아니다. 남은 선택지는 폴리투니아, 아니면 우리 공화국…….”

“각하. 우리를 노리는 것일까요?”

“아니. 폴리투니아일 가능성이 가장 높겠지. 제국과 폴리투니아는 영토 분쟁에 놓여 있다. 전면전으로 확대될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하고 엘리자베트가 중얼거렸다.

“바토리 대왕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아무리 단탈리안과 바르바토스가 나선다고 해도 쉽사리 꺾이지 않을 것이야. 전쟁은 길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만큼 제국도 허점을 보이게 되겠지. 반드시 빈틈을 쑤실 기회가 생긴다.”

“…….”

“그래서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단탈리안이 굳이 본녀한테 허점을 보일 전쟁을 치를지가 의문이다. 단탈리안은 그럴 자가 아닐 터……아무래도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는구나.”

엘리자베트의 의문은 의외로 빠르게 풀렸다.

찜찜한 대화가 있고 난 바로 일주일 뒤, 합스부르크 제국과 폴리투니아 왕국 사이에 공식적인 화해가 발표되었다.

양국은 국경이 접한 지대를 중립지역으로 선포하고 그곳을 신전들에 나누어줬다. 신전들은 양국의 결단에 대하여 ‘대륙 평화를 위해 진심 어린 결단을 내렸다’라고 극찬했다.

화해 선언에 대한 소식을 입수하자마자 쿠르츠는 허겁지겁 통령 집무실로 달려갔다.

단탈리안이 노리는 곳은 폴리투니아가 아니었다. 그걸 알리기 위해서였다. 폴리투니아가 선택지에서 제외된 이상 제국과 국경을 맞댄 적국은 이제 공화국밖에 남지 않았다!

쿠르츠가 집무실 문을 벌컥 열었다. 근위대장인 쿠르츠에게는 언제든지 집무실을 방문할 자격이 있었다. 엘리자베트도 기다렸다는 듯이 쿠르츠를 바라보았다.

“각하!”

“사르데냐 왕국이다, 쿠르츠! 사르데냐였다!”

그녀가 난데없이 소리쳤다. 쿠르츠는 예상하지 못한 발언에 멈칫했다.

“사르데냐 왕국이라니요?”

“헬베티카 연방이 제국에 복속하지 않았더냐. 새로운 길이 열렸다. 단탈리안은 알프스 산맥을 건너서 사르데냐로 진격할 속셈이다.”

“……!”

쿠르츠가 아차, 하고 입을 벌렸다.

“사르데냐까지 굴복하면 우리 공화국은 사방이 틀어막힙니다!”

“아아.”

엘리자베트가 차갑게 노려보았다.

“사르데냐는 우리의 유일한 우방이기도 하다. 사르데냐에서 보내오는 지원이 끊기면 아국의 경제는 파탄나겠지. 단탈리안은 사르데냐를 겁박해서 굴복시킨 다음, 우리를 천천히 말라죽이려는 것이다…….”

북쪽은 합스부르크 제국에, 서쪽은 프랑크 제국에, 동쪽은 폴리투니아 왕국에 가로막혔다. 유일하게 남은 통로가 남쪽의 사르데냐 왕국이었다. 거기까지 단탈리안의 손길이 닿게 되면 공화국은 말 그대로 사면초가에 직면했다.

쿠르츠는 그 미래를 떠올리고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러나 동시에 흥분되었다.

만일 정말로 단탈리안이 사르데냐를 노리고 있다면, 지금 자신들은 틀림없이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그 남자의 속셈을 알아차린 자들이었다! 군대를 움직이기는커녕 소집하기도 전에 상대방의 의중을 꿰뚫어보았다.

“대단하십니다, 각하. 각하가 아니라면 누가 그 자의 계획을 알아냈겠습니까.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다시 그 자에게 당해버렸을 겁니다.”

마치 미래를 예측해낸 것처럼 쿠르츠의 안색이 달아올랐다. 그는 정말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눈앞의 여인은 역시 걸작이었다. 이 사람에게 인생을 내건 자신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다…….

엘리자베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사르데냐 왕국에 연락해야 한다. 사르데냐는 지금껏 국경을 방비하는 데 소홀했다. 우리를 지원하는 것으로 국방을 대신했지. 분명히 군사력이 형편없는 수준일 것이다……하루라도 빨리 대책에 들어가야 해!”

“알겠습니다. 외무상서를 부르겠습니다.”

쿠르츠는 집무실을 뛰어나갔다. 그리고 며칠 전에 자신이 느낀 위화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엘리자베트는 지금까지 대륙을 논하면서 단탈리안을 다루었다. 어디까지나 대륙이 먼저였고 단탈리안은 부차적인 것, 말하자면 이상을 이루는 데 걸림돌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는 둘 사이의 중요도가 역전된 것이었다.

아니, 초점이 달라졌다고 해야겠지. 대륙을 바라보며 단탈리안을 다루는 것이 아니었다. 단탈리안을 바라보면서 대륙을 다루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쿠르츠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위화감을 느꼈다…….

하지만 뭐가 나쁠까?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겠지.’

쿠르츠가 고개를 저었다.

단탈리안이 그만큼 공화국의 주적이라는 얘기였다. 대륙을 논하려면 먼저 단탈리안을 밟고 넘어야 한다. 그 정도 의미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사르데냐를 어떻게 설득하냐는 것이었다. 콧대 높은 귀족들로 가득한 그 왕국을 설득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으리라. 쿠르츠는 외무상서에게 전해줄 말을 떠올리며 급하게 통령 관저를 뛰어갔다…….

============================ 작품 후기 ============================

단탈리안: 아 님 치트 자제요.

엘리자베트: ………….

현재 합스부르크 제국 주변부의 상황을 설정란에 지도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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