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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디펜스-353화 (353/510)
  • 00353 중립국  =========================================================================

    *  *  *

    살아남은 마왕 세 명은 밤낮으로 고문을 맛보아야 했다.

    이들을 경애하는 의미에서 다소 특별한 방법을 동원했다. 보통은 죄인에게 너의 잘못은 무엇무엇이며 이것을 인정하라, 하고 윽박지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건 비효율적이었다.

    어차피 너의 죄를 인정하라고 협박해봤자 순순히 그렇습니다, 라고 인정할 리가 없지 않는가. 정말 시간낭비에 불과했다. 고문하는 사람이나 고문당하는 사람이나 괴로울 뿐이겠지.

    쌍방을 위해서 쓸데없는 짓은 생략하자. 그것이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이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굳게 믿고 있다.

    “크으……빌어먹을 간신배 같으니!”

    고문실에 들어서니 발레포르가 눈알을 부라렸다.

    “네놈이 뭘 꾸미는지 몰라도 내가 순순히 무릎을 꿇으리라고 생각하지 마라!”

    내가 싱긋 웃었다. 기운이 넘쳐보여서 무엇보다 다행이었다. 나는 기운이 넘치는 사람을 좋아했다. 상대가 활기발랄한 모습을 보노라면 내 우중충한 인생도 약간이지만 상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말없이 발레포르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간단하게 고문기술자한테 명령했다.

    “시작해라.”

    “예.”

    이번 심문에는 최고의 고문기술자 두 명이 고용되었다. 바로 제레미와 데이지였다. 지난 삼 년 동안, 두 사람은 내 명령에 의하여 삼백 명이 넘는 사람을 고문해서 죽여보았다. 얘들은 이미 고문업계의 베토벤이나 다름없었다.

    “뭐? 무슨 짓을……크아아악!”

    곧바로 능지형이 거행되었다.

    제레미는 심장에 각인이 새겨져 마왕에게 저항할 수 있었고, 데이지는 인간이니 마왕의 지배력이 먹혀들지 않았다. 그야말로 최고의 인선이겠지.

    “흐끄으읍! 끄아아악!”

    죄인의 살을 산 채로 회뜬다. 그것이 능지형, 달리 불러서 능지처참이었다. 뼈에서 천천히 살을 발라내서 족발처럼 만들어버린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쉬웠다.

    능지형은 죄인에게 너무 극심한 고통을 안겨준다. 본래 마취약을 먹여두고 시작한다. 그러나 여신들께서 축복하사, 마왕은 특유의 재생력 덕분에 아무리 살을 발라내도 금방 회복해버린다.

    덕분에 거의 무한하게 살을 발라낼 수 있다!

    이 얼마나 기적적인 육체인가. 마취약도 포션도 필요없다. 지속-가능한-고문이라는 개념에 이보다 충실한 육체는 없으리라.

    참고로 지속-가능한 고문은 제레미가 제창한 개념으로서, 이것이야말로 고문의 미학에 어울리는 슬로건이라나 뭐라나. 그녀의 말에 따르자면 고문은 “최대한 길고, 최대한 지속되고, 최대한 육체를 손상시키지 않아야” 한다.

    언젠가 내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고문인데 왜 육체를 손상시키지 않아야 하냐?’

    ‘에이, 마왕님도 참. 뭐 당연한 걸 물으세요. 저는 사람을 고문하고 싶은 거지 고깃덩어리를 고문하고 싶은 게 아니라구요.’

    지극히 평범한 어투로 제레미가 대답했다.

    ‘팔다리 찢어지고 얼굴도 뭉개진 사람을 고문해봤자 무슨 재미예요? 저는 사람이 비명을 지르는 모습,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 사람이 발버둥치는 모습에서 보람을 느낍니다.’

    얘도 조금 머리에 맛탱가리가 갔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제레미의 미학은 수제자인 데이지에게 그대로 전수되었다.

    두 사람은 각종 마취약과 포션을 동원해서 인간 모험자를 자그마치 '사만 번'의 칼질 끝에 죽였다. 사만 번이나 칼질을 당할 때까지 그 모험자는 살아 있었다고 한다. 맙소사.

    “단탈리안 전하. 오늘은 감이 좋은걸요.”

    제레미가 기분 좋게 흥얼거렸다.

    “어쩌면 이번이야말로 신기록을 세울지도 모르겠어요. 육만 번, 아니 잘하면 육만오천 번까지. 심지어 포션을 쓰지도 않고요. 마왕은 최고에요!”

    “으이구. 또라이 같으니라고.”

    내가 혀를 쯧쯧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람이 이성적으로 미쳐버리면 답이 없었다. 자고로 사람이 저렇게 되면 못 쓰거늘.

    제레미의 말에 발레포르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피부가 까만데도 희멀겋게 질릴 수 있다니 재밌었다.

    “크흑, 다짜고짜 고문하는 법이 어디 있는가! 하다못해 문초라도 이루어져야 할 것 아니냐!”

    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발레포르 님. 제가 죄를 인정하라고 말하면 순순히 인정할 것입니까?”

    “본인은 아무런 죄도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 인정할 것도 없다!”

    “거 보십시오.”

    저절로 어깨가 으쓱거렸다.

    “어차피 제가 양해를 구해도 응답해주지 않을 게 뻔합니다. 그런데 뭣하러 정성을 들여 하문합니까. 그냥 진이 빠질 때까지 고문이나 하고 말지요.”

    “뭐, 뭣…….”

    “이래 봬도 저는 바쁜 사람입니다. 쓸데없이 낭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내가 제레미에게 눈짓했다. 얼른 시작하지 않고 뭐하는가.

    “부디 서로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자, 잠깐……흐아아아악!”

    쇠사슬로 벽면에 묶인 발레포르가 발버둥을 쳤다. 워낙 꼼꼼하게 묶어둔 탓에 그래봤자 목 위로 얼굴만 조금 들썩거렸다. 나는 두 시간마다 고문실을 돌아가며 마왕들을 따로 고문했다.

    그렇게 순전히 고문으로만 이루어진 첫째 날이 지나갔다.

    둘째 날부터는 방식이 약간 달라졌다.

    “발레포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뭡니까?”

    고문 중간중간에 의미없는 질문을 넣었다. 당연히 고문 때문에 분노가 쌓인 상대방은 악바리를 써가며 대답하지 않았다.

    “헛소리는……집어치워라!”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상대가 대답하지 않으면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고 고문을 이어나갔다.

    여기서부터 재밌는 일이 일어났다.

    살아남은 마왕은 세 명이고, 그들은 각각 두 시간씩 돌아가며 차례대로 고문을 받는다. 즉 일단 고문을 받았으면 앞으로 네 시간은 편하게 쉴 수 있다.

    네 시간의 휴식. 이것이 핵심이다.

    이 시간 동안 마왕들은 상처를 회복하고 정신적으로 위안을 되찾는다. 모진 고문에 의해 거의 굴복할 뻔했던 마음을 다시 추스른다.

    ‘아무리 괴로워도 두 시간만 참으면.’ 그런 일념 하나로 버틸 수가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비록 고문실을 따로 쓰고 있지만 세 명의 마왕이 전원 똑같이 고문을 감내한다는 것. 나만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동료들도 똑같이 고문을 견뎌내고 있다. 이런 심리가 작용한다.

    즉, 고문에 일정한 휴식시간을 보장받는 것과 집단심리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했다. 덕분에 마왕들은 능지처참이라는 끔찍한 고문을 받고 있음에도 반항심이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그러나 저것들이 무너지면 어떻게 될까.

    “……?”

    내가 고문실에 들어서자 발레포르가 이상한 듯 쳐다보았다. 그럴 만했다. 내가 발레포르를 심문하고 떠난 지 아직 네 시간이 채워지지 않았으니까. 글쎄, 겨우 세 시간이나 지났을까.

    “아직 시간이 안 되었을 텐데?”

    “예정이 조금 앞당겨졌습니다.”

    내 뒤를 따라 데이지가 고문기구를 챙겨 발레포르에게 바싹 다가섰다. 데이지는 어제는 조수로 활동했지만 오늘은 어엿한 주 고문기술자로 나섰다.

    “지금부터 다시 발레포르 님을 심문하겠습니다.”

    “흐, 본인을 집중해서 고문해봤자다. 우리는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는다.”

    “정말로 그럴까요.”

    내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모종의 불길함을 느낀 것일까. 발레포르가 눈썹을 찡그렸다.

    “……무슨 뜻이냐.”

    “발레포르 님의 고문 예정이 앞당겨진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제 질문에 다른 분이 기꺼이 대답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설마……말도 안 된다.”

    발레포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인상을 구겼다.

    “뭐가 그렇게 놀랍습니까? 딱히 대단한 질문에 대답한 것이 아닙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첫사랑은 무슨 종족이었는지. 그 정도는 어린애라도 대답할 수 있겠지요.”

    “…….”

    “다만 저는 이성적으로 대화가 통하는 분을 좋아해서 말입니다. 특별히 그분의 고문을 중단하고 다음 차례로 건너뛰었습니다.”

    그럼 또 시작해볼까요, 하고 고문을 지시했다.

    어제와 똑같이 고문이 이루어졌지만 딱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다.

    마왕들은 깨달아버린 것이었다.

    “발레포르. 가장 좋아하는 술 종류가 무엇입니까?”

    “…….”

    질문에 대답하면 고문이 짧아진다는 사실을.

    따라서 고민한다. 어제는 바보 같은 질문 따위 집어치우라고 일갈했으나 지금은 고민할 수밖에 없다. 단순한 질문 그리고 단순한 대답. 단 한 마디의 말로 고문을 단축할 수 있다…….

    “……헛소리나 들으려고 본인에게 왔는가? 장소를 잘못 찾았군.”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단, 거절하는 말에서 명백히 색채가 부족해졌다. 머뭇거림과 주저함이 무채색과 같은 침묵을 낳았다.

    발레포르는 두 시간을 꼬박 버텼다.

    그러나 고문이 끝나고 고작 두 시간 만에 내가 되돌아오자, 발레포르의 눈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할 말을 잃고 날 바라보는 발레포르에게 멋진 미소를 돌려주었다.

    “이야아. 다른 분들은 대화가 통해서 즐겁군요. 덕분에 저도 수고를 줄였습니다.”

    “그, 그럴수가.”

    “세상 사람이 모두 당신처럼 꽉 막히지는 않았습니다. 어디 또 시작해볼까요.”

    고문이 재개하고 한 시간쯤 지났다. 나는 평소처럼 간단한 질문을 던졌다. 아무리 발레포르의 의지가 강할지라도 더 이상은 버티지 못했겠지. 그가 떨리는 입술로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포도주를……사르데냐의 포도주를 즐겨 마신다.”

    대전제가 무너진 것이었다. 두 시간만 버티면 네 시간을 쉴 수 있다. 나뿐만이 아니라 동료들도 똑같은 무게의 고문을 받고 있다……그 전제들이 붕괴되었다.

    내가 활짝 웃었다.

    “아하. 포도주입니까. 저도 포도주는 좋아합니다. 하지만 인간계의 포도주는 아무래도 수준이 떨어지지 않나요? 개인적으로 발열지옥에서 제조하는 포도주가 극상의 품질을 자랑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저열하게 고급품만 찾는 것이 네놈 수준에 딱 들어맞는군.”

    “혹시 따로 추천하는 지방이라도 있습니까?”

    시덥지 않은 잡담.

    일상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 대화가 지금은 막중한 의미를 가졌다. 잡담을 나누는 동안은 고문을 받지 않을 수가 있었다. 1분짜리 대화보다 3분짜리 대화가, 3분짜리 대화보다 10분짜리 대화가 당연히 큰 의미를 지녔다.

    “좋습니다. 절 상대해주시니 기분이 좋군요. 특별히 다음 차례로 건너뛰겠습니다.”

    대화가 끝나고 나면 일어서서 떠났다.

    발레포르는 물론이고 다른 마왕들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간단한 질문의 반복. 약간의 대화.

    “무슨 색깔을 가장 좋아하십니까.”

    “켄타우로스가 첫사랑이었다고요? 흥미롭군요. 자세히 얘기를 들려주십시오.”

    “마왕성을 경영하는 데 뭐가 제일 골치가 아픕니까?”

    마왕들은 처음엔 한 시간 정도 고문을 참다가 그 이후에야 질문에 대답했다.

    그러나 점점 더 고문을 견디는 시간이 짧아졌다. 한 시간, 삼십 분, 십오 분……이날 하루가 끝날 무렵에는 내가 찾아오자마자 질문에 대답했다. 마왕들을 차례대로 순례하는 시간도 극단적으로 짧아졌다.

    그렇게 고문 이틀째 날이 끝났다.

    세 번째 날도 똑같았다.

    다만 질문의 내용이 바뀌었다.

    “마계의 대공들 중 일부가 이번 암살을 후원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뭐라……?”

    발레포르가 얼토당토 않다는 표정이었다.

    “암살에 성공하면 대공들이 마계에서 소란을 일으킵니다. 사람들이 난리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서 여러분들이 단숨에 정국을 장악합니다. 이런 계획이 있지 않았습니까?”

    “개소리. 우리는 자발적으로 일어섰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아침에는 세 마왕 모두 두 시간을 버텼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한 마왕의 시간을 건너뛰고, 곧바로 발레포르한테 재방문했다. 내가 고문실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 발레포르의 눈이 심하게 떨렸다.

    “거짓말……말도 안 돼, 그런 질문에 동의했을 리가 없다!”

    “상상은 당신의 자유입니다. 발레포르.”

    내가 싱긋 웃었다.

    “고문을 시작하지요.”

    네 시간의 휴식이 세 시간으로, 두 시간으로, 이윽고 삼십 분까지 줄어들자 발레포르는 버티지 못했다. 회복력이 상처를 따라가지 못할 수준에 이르자 발레포르는 넝마짝이 되어버렸다.

    “다시 한번 질문하겠습니다.”

    “…….”

    “대공들이 여러분을 후원했습니까?”

    사흘째.

    나는 열한 명의 대공이 암살에 연루되어 있다는 '증언'을 메모리아로 확보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틀째에 나의 질문에 순순하게 대답한 마왕은 아무도 없었다. 사흘째 그랬던 것처럼 한 사람을 고의적으로 건너뛰었을 뿐이다. 그 사람한테는 나 대신 제레미를 보내서 고문시켰다.

    신뢰의 가장 큰 적은 의심이다. 그 단순한 진리는 고문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나는 감옥탑에서 나오자마자 파벌들에 동의를 얻고 명령했다.

    “마계대공들을 붙잡아라.”

    자아.

    숙청이 이루어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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