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351화 (351/510)
  • 00351 중립국  =========================================================================

    단탈리안은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죽음의 기사들이 나오려는 듯 그림자가 일렁거렸지만, 고작 한 사람의 마왕이 여섯 명의 마왕이 발휘하는 지배력에 앞설 수는 없었음일까. 흑기사들은 그림자에서 나오지도 못했다.

    “크으……흐아아!”

    단탈리안이 품안에서 단검을 꺼내들었다. 그는 자신의 오른팔을 붙잡은 발레포르를 향해 찍어내렸다. 의외로 기세가 대단했다. 발레포르가 당황하여 순간 손을 놓아버렸고, 단탈리안은 이때다 싶었는지 냉큼 도망쳤다.

    아차, 하고 발레포르가 소리를 질렀다.

    “잡으시오! 여기서 저놈을 놓치면 전부 끝장이오!”

    마왕들이 서둘러 단탈리안의 뒤를 쫓았다. 몇 명은 재빨리 주문을 외어 마법을 쏘았다. 그러나 단탈리안이 걸친 옷에 상당한 수준의 반(反)마법이 걸려 있었는지, 마법들은 제 힘을 쓰지 못하고 튕겨나갔다.

    “반마법이다!”

    “찔러서 죽입시다!”

    방안이 널찍했지만 단탈리안은 순식간에 구석으로 몰렸다. 이제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었다 싶을 때였다. 단탈리안이 테라스로 빠져나갔다.

    무려 높이가 3층에 이르렀다. 땅바닥에는 충격을 어느 정도 무마시켜줄 수풀이 없었다. 그러나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었다. 단탈리안은 곧바로 테라스 밑으로 몸을 던졌다.

    “쓸데없이 끈질기기는……!”

    “절대로 놓치면 안 됩니다!”

    마왕들이 혀를 차며 테라스에서 뛰어내렸다.

    ――백주 대낮.

    황궁의 안뜰에서 난데없이 도주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소란에 사람들의 시선이 끌렸다. 수많은 관리와 하인이 궁전을 오가고 있었다.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시끄럽나, 하고 사람들이 안뜰을 바라보았다.

    화려하게 대리석으로 도배된 광장이었다. 단탈리안이 마왕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제대로 낙법을 펼치지 못한 탓인지 그는 심하게 발을 절뚝거렸다. 결국, 몇 걸음 도망치지도 못하고 추격자들한테 따라잡히고 말았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사태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 광경에는 어딘지 비현실적인 구석이 있었다.

    이제 막 몰려든 봄철의 햇살이 화사하게 대리석 광장을 비추었다. 빛무리가 새하얗게 반사되는 한복판에서,  한 마왕이 단탈리안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단탈리안이 그를 뿌리치려고 팔을 내뻗었다. 그 순간이었다. 곧바로 두 번째로 도착한 마왕이 단검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칼날은 아슬아슬하게 단탈리안의 목덜미를 스쳤다.

    붉은 핏방울이 햇빛을 내리받으며 허공에 흩날렸다.

    그제야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을까.

    “꺄아아아악!”

    “세상에, 여신이시여!”

    사람들이 경악했다.

    황궁에서 일하는 시녀와 시종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모두 숙련된 전사로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마왕들이 단체로 한 명의 마왕을 살해하다니――그건 만약의 사태라 표현하기에도 너무나 버거웠다.

    그때부터 사냥이 시작되었다.

    “독재자를 처단하라!”

    “마족을 배신하고 인간종에 빌어먹는 놈!”

    무소속 마왕들이 굶주린 늑대처럼 떼거지로 달려들었다. 단탈리안이 고레고래 비명을 지르면서 그들에게 대항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여섯 명의 마왕이 단탈리안을 둘러싸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공격했다.

    푸욱, 하고 칼끝이 단탈리안의 등에 내리꽂혔다. 단탈리안이 발악하며 뒤를 돌아섰다. 이번에는 반대편에 서 있던 마왕이 칼을 휘둘렀다. 칼날이 깊숙하게 단탈리안의 허리살을 꿰뚫었다.

    “끄흐억……흐어어억……!”

    단탈리안이 서서히 쓰러졌다.

    그는 끝까지 왼손에서 단검을 놓지 않으려 했으나, 발레포르가 능숙하게 칼을 빼앗았다. 그리고 단탈리안의 손등을 발로 짓밟았다. 이제 단탈리안은 완전히 바닥에 엎어졌다. 여섯 명의 마왕이 수십 번이 넘도록 칼을 쑤셔박았다. 마치 시체를 파먹는 미친개들처럼.

    온 사방이 햇빛으로 가득했으나 오직 단탈리안의 몸만 그늘에. 마왕들이 빙 둘러싸서 드리운 그림자에 어둡게 가려졌다.

    어느 여인의 속살처럼 하얀 대리석 광장에 새빨간 핏물이 흘렀다. 핏물은 마왕들의 발과 발 사이를 빠져나가 점점 굵게 흘러넘쳤다.

    “후우, 후우…….”

    “…….”

    암살자들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마왕의 재생력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이건 치명상이었다. 공범자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은 성공했다. 꽤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했건만, 기어코 궁중백 단탈리안을 처치하는 데 성공했다.

    현실감이 희박했다. 암살자들은 황궁에 있는 누구보다 꿈결에 비몽사몽했다. 아마도 불가능할거라고 여겼던 일을 해내고 만 사람이 흔히 그러하듯이, 여섯 명의 마왕들도 지나친 흥분으로 인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부터가 중요하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발레포르였다.

    “어서 가미긴을 모셔오시오. 우리는 이 광장을 거대한 법정으로 삼아서 단탈리안이 어째서 사형당해야 했는지 증거를 보여주어야만 하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전 서열 제22위의 이포스가 대답했다. 젊은 얼굴임에도 머리가 백발로 새어버린 이 남자는 첫 번째로 단탈리안의 목덜미를 붙잡은 자이기도 했다.

    아가레스가 내전을 일으켰을 때 열성적으로 참군했고, 아가레스의 패배로 인하여 본래 자기에게 주어져야 할 영지를 잃어버렸다. 암살에 참여한 무소속 마왕들은 대체로 이런 사정을 갖고 있었다.

    발레포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하겠소.”

    이포스를 떠나보내고 발레포르는 시체의 목을 내리쳤다. 마력으로 강화된 단검은 칼질 두 번만에 몸통과 머리통을 분리해냈다.

    발레포르가 단탈리안의 머리카락을 붙잡아서 높이 치켜들었다.

    “저, 저런…….”

    “대체 무슨 짓을……!”

    사방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사람들이 충격에 잠긴 눈동자로 하염없이 광장을 쳐다보았다. 차마 가까이 다가서는 이조차 없었다.

    그쯤 황궁의 경비대가 광장에 도착했다.

    경비대장은 제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눈으로 보고도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바로 방금 전에 자신이 통과시켜준 사람이 황궁의 실질적인 주인을 살해했다. 경비대장은 죽음을 예감했다.

    충격과 경악이 지배하는 가운데.

    발레포르가 마력을 담아 당당하게 소리쳤다.

    “친애하는 인민 여러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잠시 본인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시오. 여기 이 남자, 소위 단탈리안이라고 불리던 죄인은 오늘 죽었소!”

    발레포르는 천천히 몸을 돌리면서 광장을 둘러싼 궁전 건물들을 차례대로 일견했다.

    “본인은 이전에는 서열 제6위의 마왕으로 불렸으며 지금은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마계에 봉사하는 한 명의 시민이오. 본인의 인격과 명예를 존중한다면, 지혜로운 이들이여! 부디 내 말을 의심하지 마시오!”

    발레포르가 마왕의 지배력을 최대한 강력하게 발산시켰다.

    서열 제6위라는 자리는 결코 카드게임으로 따먹은 것이 아니었다. 속세에 관심이 적었을 따름이지, 발레포르 역시 서열 제8위였던 바르바토스나 서열 제9위였던 파이몬과 마찬가지로, 능히 하나의 군단을 통솔할 정도로 강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 중에는 일찍이 단탈리안을 좋아한 사람도 있을 것이오. 그러나 본인은 여러분에게 묻고 싶소. 개인에 대한 사랑이 과연 마족 전체, 마계 전체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앞설 수 있는지 말이오.”

    발레포르는 마음속으로 마족들에게 진정하라 명령했으며, 이 명령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어 일단 마족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단탈리안은 마족의 명예를 인간종이 만들어낸 제국 따위에 귀속시켰소. 우리가 명예롭게 전쟁터에서 싸워도 그것은 더 이상 마족의 명예가 아니라 제국의 명예요. 우리가 합심하여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낼지라도 그것은 더 이상 마족의 유구한 역사가 아니라 제국의 역사요. 그리하여 우리의 아들딸, 우리의 후손은 우리를 명예로운 전사이자 현명한 시민인 마족이 아니라, 단지 제국의 일원이자 신민(臣民)이라고 배우게 될 것이오!”

    발레포르가 주먹을 움켜잡았다.

    피부가 온통 구릿빛인 발레포르는 새하얀 대리석 광장에서 유독 눈에 띄었고, 그는 훌륭하게 좌중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단탈리안이 살아 있다면 마족은 죽으며, 마족이 살기 위해서는 단탈리안이 죽어야만 하오! 친애하는 인민이여! 부디 진솔하게 대답해주시구려! 그대들은 단탈리안을 살리고 스스로 인간종의 비천한 노예가 되기를 바라오? 아니면 단탈리안이 죽고 그대들 모두가 자유로운 시민으로 살기를 원하오?”

    아무도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만일 여러분 중에 기꺼이 비천한 노예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좋소. 인정하겠소. 나 발레포르가 죄를 지었소.”

    발레포르가 기세를 타서 크게 소리쳤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 모두가 자유를 갈망한다면. 자신의 명예가 한낱 인간종의 명예로 둔갑되지 않기를 원한다면――감히 선언하거니와, 본인이 단탈리안에게 했던 행동은, 바로 여러분을 대표해서 이 발레포르가 감행한 것이나 다름없소!”

    발레포르는 단탈리안의 목을 효수하듯 더욱 높이 들었다.

    “마인들이여! 제국을 사랑하지 말고 마족의 긍지를 사랑하시오! 인민들이여! 단탈리안을 죽이고 스스로를 살리시오!”

    그때, 정문에서 평원파 마왕들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열댓 명에 이르는 평원파 마왕들은 순식간에 광장을 포위했다. 이미 황궁의 예법은 깨어졌는지 그들 모두가 손에 무기를 들고 있었다. 단검을 제외하고 아무런 무장이 없는 여섯 명의 무소속 마왕쯤은 순식간에 죽임을 당할지 몰랐다.

    “내 아우에게 무시무시한 짓거리를 저질러주었군, 발레포르.”

    마왕 벨레드가 한 발자국 성큼 앞으로 나왔다. 그는 입가에 비웃음을 담았으며, 또한 비웃음으로도 감추지 못한 분노로 입술이 들썩거렸다.

    “어디 최후의 변론은 생각해두었겠지.”

    “궁중백 단탈리안은 대역죄인이다!”

    “글쎄. 마지막 유언으로 삼기에는 너무 멋이 없구만.”

    평원파 마왕들과 무소속 마왕들 사이에서 신경전이 벌어졌다.

    “패배자 새끼들! 각오는 되어 있느냐!”

    “흥, 단탈리안의 꼭두각시에 불과한 놈들이 기세만은 좋구나!”

    “오늘이야말로 밥버러지 애새끼들을 청소해주마!”

    여섯 명의 마왕은 서로에게 등을 기댄 채 단검을 치켜들었고, 평원파 마왕들은 그것을 노려보며 사냥개처럼 위협적으로 울부짖었다.

    발레포르가 형형한 눈빛으로 말했다.

    “단탈리안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는 모든 마왕과 대공이 모였을 때 발표할 것이다.”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벨레드가 도끼를 허공에 휙휙 휘두르며 위협했다.

    “내가 지금 형씨의 대가리를 두 쪽으로 갈라버리지 않은 것은 형씨들이 치켜든 이쑤시개가 무서워서가 아니야. 우리 군단장 각하에게 네놈의 목을 양보하기 위해서이지. 바르바토스 님께서 오시면 네놈은 죽은 목숨이다, 껌둥이 새끼야!”

    “하. 고작 한 명의 마왕한테 파벌 전체가 흔들리는 모습이 가당치 않군. 바르바토스도 총기를 잃은 것이겠지. 벌건 대낮의 황궁에서 여인을 강간하는 남자한테 반하다니 말이야!”

    벨레드가 눈썹을 찡그렸다.

    “강간이라고?”

    “그렇다. 단탈리안은 감히 가미긴을 협박하여 차마 눈으로 보지 못할 짓을 저질렀다!”

    벨레드가 나지막하게 으르렁거렸다.

    “증거가 없는 중상모략 따위로 작금의 상황을 무마하려는 거냐.”

    “우리는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있노라.”

    발레포르가 똑똑히 들으라는 식으로 일갈했다.

    “단탈리안이 죄악을 저지르는 모습을 메모리아에 담아두었으며, 지금 본인의 동지가 증거물과 증인을 찾아서 데려오는 중이다. 가미긴뿐만이 아니라 이 황궁의 시녀장 또한 증인이다. 단탈리안의 죄를 감쌀 방도는 천하에 없다, 벨레드!”

    “크으. 혀만 지껄이는 것이라면 동네 꼬맹이들도 할 수 있지.”

    두 마왕이 맹렬하게 서로를 노려보았다.

    곧이어 이포스가 가미긴을 부축하며 광장으로 돌아왔다. 발레포르는 충분히 사람이 모일 때까지 기다려줄 것을 부탁했다. 벨레드는 코웃음으로 일관했지만, 결과적으로 두 파벌의 대치는 저녁까지 이루어졌다. 바르바토스가 그때서야 도착한 것이었다.

    대회의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던 마왕들과 대공들이 전원 황궁의 광장에 모여들었다.

    일백 명에 가까운 인원이 광장을 점령했다. 마왕 암살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대공들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어떤 식으로든 피바람이 한바탕 몰아칠 것을 예감했으리라.

    “자아.”

    가장 마지막에 도착한 바르바토스가 싸늘하게 말했다.

    “그럼 어디 네 새끼가 주장하는 그 증거란 물건을 보여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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