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349화 (349/510)
  • 00349 중립국  =========================================================================

    “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그 교활한 작자가 메모리아 마법도 방지하지 않겠습니까?”

    “쯔쯧. 그러니까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는 거잖아.”

    주변의 마왕들이 초조한 시선으로 바라보는데도, 가미긴은 느긋하게 탁자 위의 포도를 집어서 혓바닥으로 감싸 삼켰다. 묘하게 색기가 흐르는 몸짓에 마왕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단탈리안이 반마법을 펼칠 겨를도 없이 내가 유혹해내면 이기는 거고. 아무리 노력해도 단탈리안의 방심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지는 거고. 세상에 반드시 성공하는 계략이란 게 어디 있어? 다 상황과 운에 따르는 거지.”

    “…….”

    마왕들이 저들끼리 시선을 교환했다.

    그중 발레포르가 조심스레 말했다.

    “하지만……그래서야 가미긴께서 홀로 희생하시는 것 아니오?”

    “아니. 여기서부터 제안하고 싶은 계획이 있어.”

    가미긴이 눈을 가늘게 뜨며 입꼬리를 올렸다.

    “일단 내가 황궁에 입궐해서 단탈리안한테 사죄를 해. 단탈리안 성격을 미루어볼 때, 이쪽에서 사과한다고 얘기하면 아마 다짜고짜 옷부터 벗어보라고 그럴 거야. 정말로 사과하는 것인지 진심을 보이라면서.”

    “…….”

    “너희들은 황궁 바로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어. 내가 만약 메모리아를 성공시켰다면 마법으로 신호를 보낼게.”

    가미긴은 입안을 한 모금의 포도주로 적시고 얘기해나갔다.

    “응. 신호가 오면 그대로 황궁으로 돌입해서 단탈리안을 해치워버리는 거야.”

    “하지만 무슨 명분으로 그자를 죽입니까?”

    “우리들만 제국의 경영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에 대해 단체로 항의하러 왔다가, 우연찮게 단탈리안이 나를 강간하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하면 돼.”

    “…….”

    마왕들이 또 다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괜찮을까, 하고 머뭇거리는 기색이 눈동자에 담겨 있었다.

    “이미 불합리한 처사를 받고 있는 마왕들이 말도 안 되는 모습을 봐버린 까닭에 흥분해서 살해를 저질렀다. 뭐어,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메모리아 영상만 확보해뒀으면 문제없어. 제국의 공작을 강간했는데 어쩔 거야~?”

    가미긴이 작게 키득거렸다.

    마왕들이 성공 가능성을 짐작하고 있는 동안, 발레포르가 물었다.

    “메모리아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이오?”

    “간단하지. 나는 너희한테 신호를 보내지 않고, 너희는 황궁에 들어오지 않으면 돼.”

    가미긴이 즉답했다.

    “아무런 일도 없이 하루가 지나갈 뿐이야. 언제나와 같은 어제가 되겠고, 언제나와 같은 내일이 되겠지.”

    “허나 그러면 당신이 쓸데없이 모욕을 보는 것인데…….”

    “모욕 따위는 애저녁에 봤어.”

    가미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옅어졌다. 대신 차가워진 시선으로 그녀가 말했다.

    “나는 단탈리안에게 복수를 하고 싶고, 가능성이 있는 계획을 너희한테 제안했어. 성공할 확률이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바꿔 말하자면 실패하더라도 위험부담이 적어. 그런 모험을 하는 대가로 다섯 시간 정도의 모욕만 참으면 된다면, 응? 아주 비싸지는 않지?”

    “…….”

    언뜻 귀기가 서린 가미긴의 눈빛에 마왕들이 동요했다.

    발레포르는 고민에 잠겼다. 성공할 확률이 높지 않은 함정, 실패하면 단지 황궁 입구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면 그만이다……위험부담은 실제로 전무하다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문제는 지금 이 자리에 모인 마왕들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 그것이었다. 무소속 마왕들 사이에는 끈끈한 의리나 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어쩌다 같이 불쌍한 처지에 놓인 자들끼리 모여들었을 뿐이다.

    이 계획을 단탈리안이나 바르바토스한테 고발하여 자신의 이득만 챙길 가능성이 충분했다. 즉, 얼마나 보안을 철저히 지키느냐가 관건이겠지. 마법적인 맹세가 필수불가결했다…….

    “문제는 오히려 실패했을 때가 아니라 성공했을 때야.”

    마왕들이 각자 나름대로 고심에 빠져 있을 때 가미긴이 말했다. 발레포르가 자신의 생각에서 깨어나 반문했다.

    “성공했을 때가 오히려 문제라니? 무슨 뜻이오?”

    “잘 봐. 바르바토스가 그렇게 아끼는 애완동물이 죽었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잖아. 당장 우리들을 죽이려고 들걸.”

    가미긴이 다시 장난스러워진 어조로 흥얼거렸다.

    “단탈리안을 죽이는 데 성공하면 여기 있는 전원이 공범이야. 메모리아 영상을 증거로 사방에 퍼트린 다음, 우리는 한 목소리를 이루어서 바르바토스한테 대항해야 돼.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지.”

    “…….”

    “그러니까 제대로 각오가 된 사람만 계획에 동의해주면 좋겠어. 정말로 단탈리안을 죽여서 본때를 보여줘야겠다는 사람. 계획의 후폭풍이 불러일으킬 위험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사람만.”

    마치 너희에게 그만한 각오가 있을까, 하고 말하는 듯한 눈초리로 가미긴이 마왕들을 바라보았다.

    발레포르는 이 시점에서 적어도 가미긴에 대한 의심은 상당히 적어졌다.

    계략을 꾸미는 사람은 실패할 확률을 낮게 감추고 성공할 확률을 부풀려서 말한다. 반면에 가미긴은 시종일관 실패할 확률을, 더 나아가 성공했을 때조차 짊어져야 할 리스크를 강조했다…….

    그녀는 진심으로 우리를 시험하고 있었다. 이대로 단탈리안에게 정치적인 힘을 거세당한 채 배부른 돼지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위험할지언정 마왕의 자존심을 지킬 것인지…….

    “본인은 참가하겠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가미긴은 자신의 육체를 희생했다. 여기서 자신이 마왕의 긍지를 희생할 수는 없었다.

    마왕들이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발레포르…….”

    “단, 본인은 여기에 모인 분들 전원이 찬성했을 경우에만 동참하겠소. 이 계획은 무엇보다도 철저하게 보안을 요구하오. 모두가 함께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양자택일밖에 없소외다.”

    그렇지 않은가, 하고 발레포르가 가미긴에게 눈짓했다.

    가미긴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응. 발레포르 말이 맞아. 우리는 일심동체가 될 필요가 있어.”

    “바싸고 전하를 모시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한 마왕이 말했다.

    “그분께서도 단탈리안에게 적의를 품고 계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바싸고 전하의 힘을 빌릴 수만 있으면 거사를 치르는 일이 수월해질 것입니다.”

    “으응. 그건 곤란해.”

    가미긴이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바싸고는 기본적으로 강한 사람의 편이야. 시류에 맞추어서 행동한다고 할까. 만약 우리가 계획을 공유하려 들면 곧바로 단탈리안이나 바르바토스한테 알려줄걸. 우리는 사이 좋게 법정으로 출두되고.”

    “본인도 그건 반대하오.”

    발레포르가 한몫 거들었다.

    본래 발레포르는 이 모임에 바싸고를 초청하려고 했다. 하지만 바싸고는 쓸데없는 짓이라 일축하며 거절했다. 바싸고는 무소속 마왕들의 처지에 공감하지 않는다. 그것이 발레포르가 내린 판단이었다.

    결국 바싸고는 강자에게 꼬리를 흔드는 개였다. 발레포르는 그에게 깊이 실망하고 있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 계획은 처음부터 끝까지 보안이 생명이오. 무턱대고 함께할 사람을 늘려대면 그만큼 우리가 위험해질 공산도 또한 높아지오.”

    그리고, 하고 발레포르가 말했다.

    “솔직히 말합시다. 단탈리안을 죽이는 데 우리 일곱 명이면 충분하고도 넘치지 않소? 여기서 더 인원을 추가해봤자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 꼴이오.”

    “발레포르 전하의 말씀이 실로 옳습니다.”

    마왕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까짓 서열 제71위 마왕을 잡는 데 두려워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응, 바싸고를 설득하는 건 단탈리안을 죽인 다음이야. 그때 가면 일단 우리에게 강력한 증거와 명분이 있으니까 훨씬 더 쉽게 바싸고를 끌어들일 수 있어. 바싸고뿐만이 아니라 알게 모르게 단탈리안을 싫어하는 마왕들도 동조해줄 테고.”

    “과연. 모든 것은 성공한 다음의 문제인가…….”

    “쉽지 않겠지. 나쁘게 말하면 도박이야.”

    가미긴이 싱글벙글 웃었다.

    “하지만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것도 아니야. 안 그래?”

    음, 하고 발레포르가 턱끝을 끄덕였다.

    그는 이제 완전히 의심을 지웠다. 가미긴은 계략 자체에 신경을 쏟고 있지 않았다. 계략을 성공한 이후를 염려하고 있었다. 그녀가 진지하게 이 계획을 마주보고 있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였다.

    만약 가미긴이 이번 계획을 성공하기만 한다면 사태가 좋아질 것이라 말했다면, 마치 마법처럼 하나의 계획이 모든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 치장했다면, 발레포르는 그녀를 의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미긴은 설령 성공하더라도 자신들 앞에 가시밭길이 놓여 있음을 강조했다. 즉,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계략의 성공 자체가 아니었다. 자신과 끝까지 함께할 수 있는 동지였다.

    ‘설령 계획이 허무하게 실패하더라도.’

    발레포르의 눈동자가 진중하게 빛났다.

    ‘여기 있는 일곱 명은 서로에게 각오를 맡긴 동료로 거듭난다. 인원은 적지만 내실이 단단한 집단이 되는 것이다. 그런 집단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목적일지 모른다……. 아니,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외부의 적이 내부를 단합시킨다.

    고금의 진리는 단탈리안이라는 외적을 맞이한 무소속 마왕들에게 그대로 적용되리라.

    “저는 동참하겠습니다.”

    “소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대로 저 자신의 권리를 침해받으며 살아가느니 차라리 도박에 뛰어들겠습니다.”

    허무맹랑한 호언장담보다 냉정하고 현실적인 입안에 끌린 것일까.

    단탈리안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마음은 두루뭉실한 형태를 벗어재끼고, 단탈리안을 암살한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증거와 명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하는지, 온갖 구체적인 고려를 낳았다.

    그리고 마왕들은 '가능하다'라고 판단을 내렸다.

    그들은 숙고 끝에 한 명씩 가미긴의 계획에 동의하겠노라고 의사를 밝혔다. 물론, 거기에는 전 서열 제4위와 제6위가 함께한다는 사실에 기대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마침내 일곱 명의 마왕 전원이 거사에 동참했다.

    가미긴은 흐뭇하고 미소를 지었다.

    “좋아. 내가 희생하는 보람이 충분해.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말했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반드시 성공하도록 노력해볼 속셈이야. 단탈리안에게 마왕이란 억압을 참지 않는 존재임을 알려주자.”

    마왕들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미긴이 마법진을 펼쳤다. 맹약을 강제하는 마법이었다.

    “단탈리안을 암살하는 계획을 영원히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누설하지 않을 것임을 맹세해?”

    “맹세합니다.”

    “맹세하오.”

    마왕들은 저마다 자신의 심장과 마력을 걸고, 어느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가미긴은 대마법사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마법의 강제력은 누구보다 믿음직스러웠다. 맹세를 어길 경우, 이들은 심장이 터지고 마력을 잃어버릴 것이었다.

    그렇게 음모가 태동했다.

    마왕들은 밤을 새가며 암살 계획을 가다듬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부하한테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머리를 쥐어짜내야만 했다. 대부분 가미긴과 발레포르가 계획을 짰다.

    거사를 시행하는 것은 사흘 뒤로 정해졌다.

    속전속결.

    가미긴이 황궁에서 부린 난동이 아직 뜨거운 화제로 남아 있을 때, 모든 것을 끝내버리기로 결정했다.

    황궁의 경비대가 순회하는 스케쥴을 입수하여 몇몇 경비병을 매수했다. 일부 시녀도 매수되었다. 그들은 계획이 성공할 경우에는 조용히 도시의 골목에서 처리될 것이었다.

    그리고 사흘 뒤.

    “가미긴이 방금 입궐했소.”

    발레포르가 마왕들을 굳건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마왕들 역시 각오로 단단해진 시선으로 맞받아쳤다.

    “다 함께 황궁으로 갑시다.”

    단탈리안 암살 계획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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