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346화 (346/510)
  • 00346 제국의 심처에 머무르는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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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탈리안은 언제 돌아오는 거야!”

    가미긴이 황궁에 들이닥쳐서 소리 질렀다.

    고대제국 풍으로 걸쳐입은 토가의 끝자락이 대리석 바닥에 질질 끌렸다. 갑작스러운 마왕의 출현에 얌전히 대기하고 있던 시녀들이 깜짝 놀랐다. 가미긴의 뒤편에서는 엘프족 경비병들이 헐레벌떡 쫓아오고 있었다.

    “고, 공작 전하! 이러시면 곤란하옵니다!”

    “궁중백께서는 변경에 급한 업무가 있으셔서 현재 자리를…….”

    가미긴이 고개를 휙 돌아보았다.

    “나를 부를 때는 마왕 전하라고 말하려무나. 아가들아.”

    “……!”

    경비병을 비롯해서 열 명에 이르는 마족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자의가 아니었다. 뇌수가 흔들릴 정도로 지배력이 강력하게 행사되고 있었다. 마족들은 몇 배로 건너뛴 중력에 짓눌리듯이 어깨를 떨었다.

    “단탈리안도 궁중백이 아니라 마왕이야. 그런 간단한 사실조차 요즘 아이들은 잊어버린 걸까?”

    “소, 송구하옵니다……위대한 존재이시여.”

    가미긴이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겼다.

    “단탈리안이 어제 돌아온 거 전부 알고 있어. 당장 불러들여.”

    묘족(猫族) 시녀장이 이빨을 딱딱 부딪혔다.

    가미긴이 말했다시피 궁중백은 어제 황궁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이 사실을 당분간 비밀로 해두라고 엄명이 내려진 것이었다. 궁중백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 서열이 높은 분의 명령으로.

    지금 가미긴에게 굴복하면 자신은 죽는다.

    “전하……외람되오나…….”

    “언제부터.”

    가미긴의 황금색 눈동자에서 마력이 피어올랐다.

    “일개 하인이 마왕의 언명에 꼬투리를 달게 되었지?”

    “아, 아, 아아…….”

    “사죄하렴.”

    시녀장이 두 손으로 자신의 목을 잡았다.

    컥, 하고 시녀장이 헛숨을 토했다. 그녀가 발버둥을 쳤다.

    어떻게든 손을 풀려고 해보았지만 도저히 자기 의지대로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묘족의 악력이 가느다란 목을 우악스럽게 졸랐다. 잠시 뒤에 숨이 멎었고, 그녀는 싸늘한 대리석 바닥 위로 쓰러졌다.

    “후우.”

    가미긴이 후련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지나치게 표정이 부드러운 나머지 방금 한 사람을 자살로 몰고갔다고 믿기 어려웠다. 그녀는 다음 타켓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그때 마족들을 휘감고 있던 압박감이 한순간에 증발했다. 마족들은 오래동안 물속에 잠겼다가 나온 것처럼 숨을 헐떡였다.

    “믿을 수 없군요. 이렇게 야만적일 수가……!”

    복도에서 한 명의 마왕이 걸어나왔다.

    “가미긴!”

    붉은 머리칼의 파이몬이었다.

    마침 황궁 별실에서 머무르고 있었던 것일까. 허겁지겁 뛰어나왔는지 옷차림이 헐거웠다. 아니, 헐거운 수준을 뛰어넘었다. 그녀는 알몸에 얇은 이불 한 장만 달랑 걸치고 있었다.

    “어라. 내가 잠자는 사람을 깨워버린 모양이야?”

    가미긴이 만면에 싱글벙글 미소를 띄웠다.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는 있나요!”

    “글쎄에. 무례한 아해한테 자기 분수를 알게 해줬다고 할까.”

    파이몬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당신은 아무런 죄도 없는 관리인을 살해했어요!”

    “마왕을 감히 인간종의 직책으로 부른 죄. 마족이면서 마왕의 명령을 거스른 죄. 당장 대역죄가 두 개나 걸리는걸.”

    “이 철부지 살인마가……!”

    마침 잘 됐다, 하고 가미긴이 생각했다.

    그녀는 예전부터 눈앞의 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왕이 시민에 대한 종사자에 불과하느니 마느니 이상한 얘기를 최초로 퍼트린 장본인이 바로 파이몬이었다. 입 발린 말에 수없이 많은 마족들이 환호하고 파이몬을 지지했다.

    천박한 서큐버스 출신의 계집애다웠다. 인기를 얻기 위해서라면 시민들한테 아낌없이 가랑이를 벌려댔다. 가미긴은 일신의 노력과 모략만으로 서열 제4위까지 올라갔으며, 그렇기에 파이몬을 단지 운이 좋아 출세한 창녀로 여기고 있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은 이 창녀도 단탈리안의 애인이라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단탈리안을 죽이려고 든 주제에.’

    상황이 불리해지니까 얼른 몸을 들이댔으리라. 뻔했다.

    가미긴은 심장이 분노로 검게 물들었다. 자신의 애정을 빼앗아간 남자가 자신 하나로 족하지 못하고 다른 여자들에게 손을 뻗고 있었다. 가미긴 입장에서 그것은 자신의 가치를 한없이 떨어트리는 일이었다.

    한번쯤 본때를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가미긴이 싱글벙글 웃었다.

    “그래서? 나를 벌하려는 거야?”

    “제국의 법률에 따라서 당신을 고발하겠어요!”

    “와아, 무서워라. 제국의 법률이라니. 이래서야 나처럼 연약한 마왕은 너무 무서워서 제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하겠네.”

    가미긴이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황금색 마법진이 공중에 떠올랐다.

    “그런데 말이야, 정의심에 불타오르는 파이몬 씨.”

    그녀가 손을 튕겼다.

    경비병의 머리가 터졌다. 아까 전에 가미긴을 공작 전하라고 부른 남자였다.

    “꺄아아악!”

    시녀들이 비명을 질렀다. 사방에 핏물이 튀어올랐다. 머리를 잃어버린 시체는 잠시 기우뚱거리다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마족들은 겁에 질려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일부는 곧바로 등을 돌려 뛰었다. 뛰어난 생존본능이 발동한 것이겠지만 이번 경우에 한해서 운이 나빴다. 복도 너머로 뛰쳐나가려는 순간, 그들은 경비병과 마찬가지로 머리통이 산산조각났다.

    “…….”

    파이몬이 충격으로 입을 벌렸다.

    충격이 분노로 바뀌는 데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지금, 무슨 짓을……!”

    “으응? 제국 법률에 따라서 행동한 거야.”

    가미긴이 손가락으로 볼을 짚었다.

    “백작 이상의 고위 귀족을 고소하기 위해서는 최소 준귀족에 달하는 증인이 세 명 필요하잖아. 한 명은 파이몬 너가 채운다고 해도, 나머지 두 명은 어떻게 구할까? 응?”

    파이몬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순식간에 네 명이 죽어버린 탓에 지금 복도에는 여섯 명밖에 남지 않았다. 황궁에서 종사하는 시녀이고 경비병이니 어떻게 우기면 준귀족으로 취급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미긴이 구태여 법률을 들먹인 까닭은…….

    “여섯 명을 지킬 수 있으면 좋겠네.”

    어디 한번 자신을 막아보라고 파이몬을 도발한 것.

    가미긴이 손을 튕기자, 자리에 주저앉은 시녀 중 한 명의 머리가 날아갔다. 가미긴이 귀엽게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다섯 명이었나? 헤헤.”

    “…….”

    파이몬이 이빨을 바득 갈았다. 급하게 뛰어나오는 바람에 마법약품을 챙기지 않았다. 그것이 실수였다. 설마 상대방이 이렇게 과감하게 반응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저 마족들 앞에 서서 그들과 가미긴 사이를 막아섰다. 그것 이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므로.

    “잘나신 마법 서클도 죄다 부셔진 마당에 말이야.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나를 가르치려고 한 거야, 응? 파이몬. 순전히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

    “나 한 사람 혼내주려고 해도 법률 따위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니. 그거, 조금 꼴사납다고 생각하지 않아?”

    가미긴이 손가락을 튕겼다.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이 시녀를 향해서 날아갔다. 시녀의 머리가 여덟 조각으로 갈리기 직전이었다. 파이몬이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바람의 칼날이 그대로 파이몬의 팔뚝에 달려들었다.

    “하아?”

    가미긴이 저도 모르게 얼빠진 목소리를 내었다.

    새빨간 피가 공중에 튀었다. 마력으로 강화한 팔은 비록 잘리지 않았지만, 칼에 배인 것처럼 깊게 상처가 파였다. 파이몬은 입을 질끈 다물고 있었다. 끔찍한 격통이 느껴지고 있었다.

    “설마 너……그냥 몸으로 때우려고?”

    “…….”

    파이몬이 묵묵부답으로 가미긴을 노려보았다. 붉은 눈동자에는 차가운 각오가 서려 있었다. 그 의중을 읽어내고 가미긴은 우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하, 하하핫! 걸작이네! 이거 걸작이야!”

    “…….”

    “천하의 파이몬이! 한때 마왕군을 쥐락펴락하던 마왕이! 이제는 고작 하녀 몇 명을 구하지 못해서 자기 몸으로 마법에 들이박다니! 아하하핫!”

    가미긴이 한참이나 배를 붙잡고 웃었다.

    심장을 사로잡은 분노는 말끔하게 씻겨 사라졌다. 유쾌한 만족이 차올랐다. 이만한 승리감을 맛본 것이 도대체 얼마 만인지 가미긴은 가늠하기 힘들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여온 스트레스가 한방에 날아갔다.

    너무 크게 웃었는지 가미긴은 당초의 목적을 달성해버렸다.

    “이런. 무언가 재미난 일이라도 있습니까?”

    그녀의 목소리에 이끌려 단탈리안이 복도 저편에서 걸어온 것이었다.

    단탈리안은 발걸음을 멈추고 슬쩍 복도를 둘러보았다. 다섯 명의 목 없는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파이몬의 오른팔이 넝마짝처럼 엉망으로 되어 있었다. 단탈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숙녀들께서 드잡이를 벌이기에는 장소가 적절치 않습니다만.”

    “아하, 하핫……이게 전부 너가 늦게 나와서야, 단탈리안.”

    가미긴이 허리를 들어 단탈리안을 바라보았다.

    “진즉에 나왔으면 얼마나 좋아.”

    “저는 잠시라도 혼자 있을 수가 없군요. 변방에서 폴리투니아의 군대를 간신히 회군시키고 돌아왔더니 당장 어젯밤부터 사람들이 찾아오고. 이거야 원.”

    단탈리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가미긴은 그의 말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어젯밤부터?”

    “예. 바르바토스고 파이몬이고 연달아 들이닥치지 뭡니까. 곤란합니다.”

    가미긴의 마음이 순식간에 차갑게 식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서 파이몬을 쳐다보았다. 파이몬은 제대로 된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아까 전에는 그저 아침잠을 자다가 헐레벌떡 뛰어나왔다고 생각했다.

    만약에 파이몬이 어젯밤을 단탈리안과 함께한 것이라면?

    그래서 이불 한 장을 껴입고 달려온 것이라면.

    “…….”

    잠자코 가라앉았던 분노가 다시금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바르바토스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평원파에서 성장하고 평원파 덕택에 성공한 단탈리안이었다. 바르바토스에 대한 의리를 끝까지 지켜야 하겠지.

    그러나 파이몬은 용납하지 못한다.

    저 창녀보다 뒤쳐지는 신세가 되는 것은――결단코 용서할 수 없었다.

    “나한테는 왔다는 말도 안 했으면서.”

    가미긴이 중얼거렸다.

    “……음.”

    그 목소리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단탈리안이 눈썹을 찡그렸다.

    “나한테는 어제 왔다고 알려주지도 않고. 그런데 바르바토스랑 저 년은 알고 있었어? 어떻게? 왜?”

    “가미긴. 진정하십시오. 단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 처리해야 할 일에 저 년이랑 자는 것도 포함된 모양이지?”

    가미긴이 싸늘하게 비웃었다.

    단탈리안은 한숨을 쉬었다.

    “가미긴, 보세요. 우리 유치하게 나오지 맙시다. 당신은 너무 머리가 쉽게 달아오르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저 제가 조금 바빴을 따름이에요. 가미긴을 무시하려는 의도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나를 무시했잖아!”

    가미긴이 파이몬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년은 알고 있었고, 나는 몰랐어! 황궁에다 눈을 심어두지 않았으면 지금도 멍청이처럼 모른 채 기다리고 있었을 거야! 이런 단순한 사실이 있는데 어떻게 발뺌을 하려고――.”

    “그래요.”

    파이몬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녀는 불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소녀는 단탈리안한테 미리 말을 들었어요.”

    “잠깐, 파이몬.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단탈리안이 당황해서 그녀를 제지했다.

    하지만 파이몬은 단탈리안이 다가오자 오히려 그의 팔뚝에 몸을 기대었다. 파이몬이 의도적으로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가미긴을 비웃으려는 듯이.

    “그리고 어제 밤새도록 심도 깊게 대화를 나눴사와요. 제가 아침에 어디서 눈을 떴는지 상상할 수 있겠어요?”

    “너……!”

    “저는 당신과 달라요, 가미긴. 당신처럼 매달릴 필요가 없지요.”

    이것저것 생각할 여유가 날아간 지 오래였다.

    가미긴은 바람의 칼날을 퍼부었다.

    파이몬의 머리를 향해서 곧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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