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335화 (335/510)

00335 아네모네 향기  =========================================================================

*  *  *

“다시는 저런 거 시키지 말아주세요! 진심입니다!”

제레미가 말했다. 내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들은 잔소리였다.

며칠 동안 정신을 잃었느냐고 물어보니 사흘이 지났다고 했다. 지난 번과 비교하면 별 거 아니군, 하고 너스레를 떨어보았다. 그러자 제레미가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제자년이랑 군무상서, 전하, 세 사람씩이나 진료하다가 눈이 빠질 뻔했습니다.”

제레미가 끔찍하다는 듯 이마로 얼굴을 가렸다.

“어휴. 게다가 세 명 전부 무슨 반시체가 되어가지고……진짜 말이나 말지.”

“그래, 그래. 수고했다. 다른 두 사람은 무사하고?”

“전하가 가장 심각했어요. 정말 송장이 따로 없었습니다. 이빨이 전부 나가지 않나, 근육이 엉망이지 않나. 순전히 마왕이라서 명줄 붙은 걸로 아세요.”

제레미가 말하기를, 우리 세 사람 치료하는 데 그동안 보물처럼 아껴온 희귀 약초들을 죄다 써버렸다고 한다.

상처를 돌보는 것 자체는 힘들지 않았다. 문제는 몸에 흉터가 남지 않도록 치료하는 것이었다. 상처투성이인 몸에서 흉터를 없애려고 하니 거의 수술이나 다름없는 작업이 필요했다.

파상풍이 들지 않도록 향초를 피우고, 수술도구와 각종 포션을 동원해서 세심하게 살갗을 재생시켰다. 행여나 상처가 아물어버리면 수술이 훨씬 더 복잡해지므로 우리의 몸을 치료하면서 동시에 서둘러 살을 재구성했다. 그녀는 꼬박 사흘 동안 밤을 샜다.

장장 마흔 시간이 넘도록 혼자서 수술을 집도한 것이었다. 스트레스가 쌓일 만했다. 어쩌겠는가. 나는 환자답게 조용히 제레미의 불평불만을 들어주었다.

“수컷한테 흉터는 훈장이라죠? 그러니까 맨 마지막에 전하를 치료했습니다.”

“아니, 그래도 내가 마왕인데…….”

“제발 왕이면 왕답게 행동해주세요.”

피로에 절어 퀭해진 얼굴로 제레미가 쏘아붙였다.

“일부러 흉터 두 줄은 남겨뒀으니 그런 줄 아시고요.”

“끄응.”

아마도 제레미는 나에게 반성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나 나름대로 잘 대처했다고 생각한다마는. 별로였냐?”

“글쎄요. 군주로서는 최고의 대처였지만, 사람으로서는 최악의 대처였죠.”

제레미가 담뱃대를 꺼내들고 뭔지 모를 연초를 피웠다.

“아, 그거 나도.”

“상처 낫기 전에 연초 피울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세요.”

나쁜 년.

“국무상서가 지금 식음을 전폐한 것 아십니까? 사흘 내내 아무것도 안 먹고 있어요. 그건 차라리 낫지, 군무상서는 아예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게 허공만 바라보고 있다고요. 제자랍시고 있는 꼬맹이는……아무렇지도 않게 멀쩡하지만, 뭐. 걔는 애당초 정상이 아니니까.”

한 마디로 마왕성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나는 덤덤하게 그런가, 하고 대답했다. 제레미가 물끄러미 이쪽을 바라보았다.

“많이 수고했다. 이만 가서 쉬어도 좋아.”

“단탈리안 전하께서는 죽음이 두렵지 않으신가요?”

“……암살자에게 그런 질문을 받게 될 줄은 몰랐는걸.”

내가 천장을 바라보았다.

“두렵지. 하지만 죽지 않으리라는 확신 또한 있었다.”

“정말 못 말려요.”

제레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가 수술도구와 향초를 챙기고 마왕방을 나갔다. 나는 라피스를 불러오라고 명령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잠시 후에 라피스가 방에 들어왔다. 뭐라 인사를 건넬 틈도 없이, 라피스는 즉시 오체를 투지했다.

“라피스. 이쪽으로 와.”

라피스가 고개를 숙인 채로 일어섰다. 몇 발자국 다가오는가 싶더니 또 다시 방바닥에 엎드렸다. 절대로 나와 얼굴을 마주보지 않겠다는 고집이 느껴졌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더 가까이.”

시시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내가 가까이 오라고 말할 때마다 라피스는 움직였지만, 겨우 몇 발자국만 옮기고서 도로 엎어졌다. 그러기를 수 차례 반복하자, 마침내 라피스가 내 앞에 당도했다.

“더 가까이.”

“…….”

라피스는 바로 침대 옆에 서게 되었다. 얼굴을 숙이고 있어서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그녀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지 손에 잡혔다.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왜 진즉에 라우라를 말리지 못했는가. 왜 데이지를 구해주지 않았을까. 조금 더 빠르고 확실하게 대처했다면 주군이 상처 입을 필요도 없었을 텐데, 하고.

그렇지만 사과할 수가 없다. 죄송하다고 말할 수가 없다. 주군인 내가 어떤 각오로 형벌을 짊어졌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이번 사건에 대해 다시 추궁하지 마라. 이것은 나의 책임이다. 나는 그런 의도로 처벌을 분배했다.

여기서 라피스가 사과해버리면 그 책임을 나에게서 빼앗는 게 된다. 내 각오와 상처를 부정해버리는 셈이 되어버린다.

라피스는 '그래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없이 미안함에 괴로워하면서도 결코 사죄의 말을 입에 담지 않는다. 나의 의사를 존중하기 위해서.

그렇기에, 나는 그녀의 손을 조용히 잡았다. 앙상 마른 손등이 느껴졌다. 며칠이나 식음을 전폐했다던가.

“미안해, 라피스.”

“…….”

“미안해.”

나는 누구한테도 사과하지 않는다. 사과란 쌍방향적인 관계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잘못했다. 미안하다. 나를 용서해달라. 나에게 한 번 더 기회를 달라.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 달리 말해, '앞으로'의 나날을 당신과 계속해서 보내고 싶다…….

사과와 용서의 역학관계는 그러므로 상대방이 죽어버렸을 때 성립하지 않는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은 나와 함께 앞으로의 시간을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사과할 수도 없고 용서받을 수도 없다. 그런 상태에서 사죄해봤자 일방적인 의사 표현밖에 안 된다. 아무도 나의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아무도 누군가의 죽음을 대신해서 용서할 수 없다. 지극히 당연하다…….

유일한 예외는 라피스.

나에게 성공할 기회를 주고, 나를 도와주고, 함께 대륙을 절망으로 빠트릴 계략을 기획하고, 그 이후에도 별다른 말없이 내 곁에 있어준 그녀만큼은.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라피스가 고개를 들었다.

평소보다 약간 초췌했지만 그래도 라피스가 그곳에 있었다. 무표정하지만 언제나 상대방을 투명하게 바라보는 푸른색의 눈동자가.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눈이 있었다.

“……앞으로는 결단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응. 나도 다시는 이런 방법을 쓰지 않을게.”

“약속입니다. 단탈리안 님.”

기꺼이 약속을 받아들였다.

*  *  *

비교적 빠르게 상처를 떨쳐내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너무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성녀가 의심한다. 성녀뿐만이 아니다. 나는 대륙에서 공히 주목을 받고 있다. 발각되지 않았을 뿐이지 나의 영지에는 수많은 간자가 숨어 지내고 있다.

내가 두문불출하면 이상한 소문이 만들어진다. 축제 도중에 나가버린 것이 특히나 안 좋다. 모두가 보는 와중에 자리를 비운 것이니까. 각종 유언비어가 양산될 위험마저 있다.

아프다고 해서 마냥 누워 있을 수 없다. 인기인의 숙명이란 그런 거다.

제레미가 끈질기게 나를 물고 늘어졌다.

“정말로 괜찮으세요? 정말입니까?”

“아, 진짜로 다 나았어. 아무렴 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하겠냐?”

“네.”

“…….”

즉답이었다.

신하에게 절망적인 신뢰도를 얻고 있는 군주가 이곳에 있었다.

“뭐 이상이 생기면 바로 말해줄 테니 그냥 보내줘라. 응?”

나는 겨우 제레미를 설득할 수 있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등쪽에 좀처럼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다.

마치 그곳만 신경이 죽어버린 것처럼 거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시험삼아 뾰족한 바늘로 등을 찔러봤는데, 그냥 뭉텅한 손톱으로 찍은 정도의 촉감만 전해졌다.

몸 자체는 나았으니 정신적인 문제겠지. 이른바 정신적 불구라는 물건이다.

후유증인지 뭔지 모르겠어도, 잠을 자고 일어나면 마치 채찍질을 당한 그 순간처럼 뼈저리게 온몸이 고통스럽다. 가끔은 악몽과 고통이 뒤섞이기도 한다. 끔찍하다.

하루에 세 시간 정도 자는 잠은 더더욱 줄어들어서 이젠 이틀에 네다섯 시간이 되었다. 그래도 충분하다. 나는 나에 대해서 한번도 감사해본 적이 없지만, 나의 신체에 대해서는 정말 하루에도 수십 번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마을의 대공회당에 나가서 영지민들한테 내가 건재함을 과시해준 다음, 나는 데이지를 찾아갔다. 물론 데이지는 빌어먹을 지하감옥이 아니라 자기 침실에 누워 있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데이지가 슬쩍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서 책을 읽지 않는가. 주인이 찾아왔는데 몸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변함없이 건방진 노예였다.

“아직도 누워 있느냐? 게으른 녀석.”

“아버님과 달리 저는 평범한 인간이라서 말입니다.”

책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 데이지가 대꾸했다.

“아직 온몸이 욱씬거려 도저히 아버님을 맞이해드릴 수 없겠습니다.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길.”

“평범한 꼬맹이가 이런 책을 읽을 리 없지.”

내가 피식 웃으면서 데이지의 손에서 책을 뺏어들었다. 고대제국어로 표지에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Regula ad directionem ingeni)>라고 적혀 있었다. 졸지에 책을 빼앗겨버리자 데이지가 찌릿, 하고 눈썹을 찌푸렸다.

“돌려주십시오. 한창 재밌는 부분을 보고 있었습니다.”

“착각하지 마라. 너를 위해서 형벌을 짊어진 게 아니다.”

맥락이 없는 말. 하지만 데이지는 입을 꾹 다물었다.

“군무상서의 고문을 용납하면 너가 단순히 가련한 희생자가 되어버린다. 희생자란 곧 선이지. 나는 네 녀석이 선한 역할을 맡는 것이 싫었을 뿐이야.”

“……알고 있습니다.”

데이지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제가 아버님의 의도를 설마 모르겠습니까.”

“그런데도 왜 책을 보았느냐? 내 눈을 속이려 들지 마라. 다른 사람이 없을 때 독서함은 단지 독서에 지나지 않지만, 사람이 방문하였는데도 독서하는 것은 도피이다.”

내가 히죽거렸다.

“나를 정면에서 마주보는 것이 마음 어딘가에 걸린 게다. 그래서 기피했지. 네 녀석, 나에게 부채감을 느끼고 있구나. 내 말이 틀렸다면 어디 반박해보거라.”

“인간에게는 머리뿐만이 아니라 심장도 있습니다.”

데이지가 썩은 표정을 지었다.

“아버님의 생각을 알고 있다 한들 어찌 인간의 마음이 사라지겠습니까?”

“너무 하잘 것 없어 웃기지도 않는 논리구나. 그러니까 네가 아직도 한참 모자란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제거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걸 타인에게 드러내지 마라!”

나는 책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윽박 질렀다.

“자신의 마음을 남에게 노출하는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너 자신의 힘을 타인에게 과시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타인에게 동정을 구하는 것이다. 함부로 힘을 과시하는 자, 쓸데없는 적군을 만들 것이며, 쓸데없이 동정을 구하는 자, 이윽고 자기 자신마저 동정해버리고 말리니. 어느 쪽이든 미숙한 어릿광대나 벌일 짓거리다! 너는 어릿광대가 될 셈이냐.”

“…….”

데이지가 이를 물었다. 반박이 튀어나오지 않는 걸 보아 찔리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입끝을 들어올렸다.

“가족과 인연을 끊었다고 들었다. 조금은 가엽구나. 그걸 나에게 말하지 않고 2년 동안이나 숨긴 솜씨만큼은 칭찬해주마.”

“…….”

데이지를 만나고 나서 두 번째로 건넨 칭찬이었지만 녀석은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 여전히 귀여운 구석이 없는 꼬마였다. 나는 장난스레 데이지의 앞머리를 툭툭 만져주고 등을 돌렸다.

“오늘 군무상서가 너에게 사죄하러 올 것이다. 그때 군무상서를 용서하지 마라.”

등 너머로 데이지가 의뭉스러워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째서입니까. 아버님께서 아끼시는 첩실이지 않습니까?”

“나에게 첩실 따위는 없다. 라우라가 나 때문에 잠깐 약해졌다 해도 본디 누구에게 사죄해야만 삶을 허락받을 위인이 아니다. 라우라는 강하다.”

나는 그 말을 남기고 발길을 옮겼다.

“또, 강해져야만 하고.”

쿵, 하고 문을 닫았다.

이번에는 라우라의 침실을 찾아갈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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