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334화 (334/510)
  • 00334 아네모네 향기  =========================================================================

    지하의 감옥에 숨 막히는 정적이 찾아들었다. 제레미조차 표정에 금이 갔다.

    제레미는 나에게 건네받은 채찍을 받아든 채로 석상마냥 꼼짝을 못했다. 미약하게 감정이 느껴져 전해왔다. 하기 싫다, 거부하고 싶다……. 상관의 명령이라면 자살마저 행하는 암살자에게 있어 그것은 사실상 최대한의 반항이었다.

    나는 엄하게 제레미를 노려보았다.

    “자경단장은 즉시 명을 집행하라.”

    “옥체를 상하게 할 수는…….”

    “천치 같으니. 과인이 정녕 마물에게 명령을 내려야겠는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제레미가 눈을 질끈 감았다. 얼굴 반쪽이 화상으로 지져진 제레미였지만, 지금만큼은 감정의 동요가 그대로 표면에 드러나고 있었다.

    “병상에서 쾌차하신 지 보름이 채 지나지 않았습니다. 자경단장이 아니라 전하의 어의로서 간청드립니다. 편형 예순 대는 너무나 과한 형벌입니다. 이것은 충심에서 간언하는 것이 아니오라 순전히 약사이자 의사로서 내리는 판단입니다. 전하, 부디 자비를…….”

    내가 냉소했다.

    “한 번만 더 대꾸하면 그때는 마물을 동원하겠다.”

    “…….”

    “정신을 잃으면 찬물로 깨울 것이요,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고 신속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그대가 방금 전 죄인에게 가한 것과 한치의 어긋남 없이 그대로 과인에게도 행하라. 이것은 명령이다!”

    나는 제레미뿐만이 아니라 가신들 한명한명에게 엄포를 놓았다.

    “형벌이 도중에 중단되거나 방해받을 때마다 열 대의 편형을 더한다. 예순 대가 끝날 때까지 그 누구도 과인과 제레미를 방해하지 못한다.”

    제레미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분부를 받들겠습니다.”

    나는 망토를 풀어서 바닥에 허물었다. 튜튼의 사신을 맞이하느라 쓸데없이 격식이 들어간 옷을 입고 있었다. 가미긴이 직접 선물한 붉은색 현장(懸章)을 훌러덩 벗었다. 꼭 허물을 한 겹씩 벗는 것처럼.

    마침내 윗옷을 전부 풀어헤치자 상반신이 드러났다. 조용히 동굴바닥에 정좌했다.

    등 뒤로 제레미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 시행해도 좋겠습니까.”

    “아아. 그대의 임무를 한시도 잊지 마라.”

    입안에 고무를 물었다. 식도로 침이 흘러내렸다. 곧 엄습할 고통을 예감했는지 살갗이 불안하게 따끔거렸다. 나는 두 눈을 감았다.

    사사로이 율법을 어겼으니 라우라는 사형에 처해야 마땅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사형을 대신하는 처벌이나 다름없었다. 제레미는 자비를 요구했으나 한참 모르는 소리. 이미 편형으로 사형을 대신하는 것 자체가 자비였다.

    가신단을 대표하는 라피스를 먼저 처벌하고, 라우라에게 편형을 가하고, 마지막으로 나 자신에게 형벌을 내린다. 라우라보다 직분이 높은 재상과 왕이 나란히 죄과를 나누는 셈이다. 아슬아슬하게 사형을 면할 수준이 된다.

    물론, 나의 신체가 편형을 버틸지는 의문이다.

    평소에도 저질 체력이거늘 지금은 말 그대로 죽다 살아난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사형에 버금가는 처벌이 목숨을 위협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당연한 것은 당연히 실행해야 한다. 그뿐이다.

    그리고.

    ――격통이 척추를 내달렸다.

    “크으으으읍……!”

    눈이 번쩍 뜨였다. 어마어마한 고통이 등줄기에 쇄도했다. 짜악, 하는 채찍질 소리에는 살뭉텅이가 찢어지는 감촉까지 더해졌다. 나는 이빨을 악 물었다. 미리 입안에 고무를 물지 않았더라면 고작 다섯 대쯤에서 이빨들이 뭉텅 상했으리라.

    두 대째.

    “흐크으으읍! 끄윽……!”

    미친 듯이 아팠다. 화살에 허벅지가 맞았을 때보다, 스스로 손가락을 잘랐을 때보다, 겨우 두 번의 채찍질이 압도적으로 고통스러웠다. 등짝에서 무언가 기포 같은 것이 부글거렸다. 아마도 핏물이겠지.

    세 대째.

    네 대째.

    다섯 대――.

    눈알이 튀어나갈 것 같았다. 식도가 조여들어 무언가가 역류했다. 숨이 막혔다. 채찍질과 채찍질 사이에 필사적으로 숨을 헐떡였다. 이빨이 혀끝을 스쳤는지 입안에서도 피냄새가 맡아졌다. 비릿했다.

    “……주……군?”

    채찍 소리에 의식이 든 것일까.

    천장의 사슬에 양팔이 매달린 라우라가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저편에서 라우라가 멍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시선은 마주치지 않았다. 나에게는 이미 시야의 초점이라는 게 불분명했다. 단지 라우라를 비롯해서 희끄무레한 풍경이 비출 따름이었다.

    라우라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녀가 의식을 잃은 틈에 나의 형벌이 결정되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라우라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드는 데엔 단 십 초도 필요하지 않았다.

    짜아아악!

    내 몸이 들썩였다. 간신히 정좌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미 팔이 정신없이 후들거렸다. 이번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헛구역질 비슷한 무언가가 흐읍, 하고 목구멍에서 기어올랐다.

    “아, 아……? 으……?”

    라우라의 표정이 무너져내렸다.

    그것과 상관없이, 일곱 번째의 채찍질이 내 등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내장이 비명을 질러댔다. 살이 아프다는 느낌 따위가 아니었다. 근육이, 뼈 자체가 고통으로 파열되었다.

    희생 없는 대가는 없어야 한다.

    얼치기 처벌이 허용되면 국정은 소리 소문 없이 녹슬어버린다. 사람이 희생하지 않는 대신에 국본 자체가 희생된다. 정치란 그런 것이다. 가신들도 조금만 머리가 식혀지면 이것이 반드시 필요한 절차임을 쉽게 깨닫겠지.

    “아, 아아! 아아아아!”

    라우라의 녹색 눈동자가 커졌다. 이제야 사태를 이해했을까. 그녀는 입을 벌렸다. 지나친 충격에 미처 문장을 만들지 못하고 단지 짐승처럼 폐부를 쥐어짜냈다.

    그리고, 여덟 대째.

    “아아아아악! 무슨 짓을――주군에게 무슨 짓을!”

    라우라가 온몸을 흔들었다. 천장에 묶인 사슬이 요란하게 요동쳤다. 서른 대의 편형을 맞아 반시체가 된 것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처럼 라우라가 두 눈을 부릅뜨고 발버둥쳤다.

    “그만해! 당장 그만둬! 제레미 경! 그만, 제발 그만……!”

    아홉 대째.

    “아아악! 감히 주군에게! 나의 주군에게, 무슨 짓을!? 죽여버리겠다!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 자경단장!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아, 아, 아아아아!”

    열 대째.

    열한 대째.

    열두 대째.

    잠시, 격통에 정신을 잃었다.

    의식이 강제로 정전되는 느낌이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것일까. 등짝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다시 의식이 강제로 밝혀졌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아픔이었다. 찬물이 등줄기에 난 상처에 날카롭게 파고든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정좌를 유지한 채로 기절해버린 듯했다. 무언가가 바닥에 뚝, 뚝, 떨어지고 있었다. 입가에서 무언가가 흘러나와서 침물인가 싶었더니 흐릿한 시야에 비춘 것은 새빨간 액체였다.

    제레미가 지금이 몇 대인지 고하며 채찍을 휘둘렀다. 덕분에 열세 대째라는 사실을 알았다. 열세 대면 예순 대까지 얼마나 남은 것인가. 계산이 되지 않았다. 지독하게 많이 남았다. 그것만은 알았다.

    턱선을 타고 핏방울이 동굴바닥에 떨어졌다. 어째서인지 이빨의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고통스러웠다.

    “제발, 주군……더 노력할 테니까……그만…….”

    라우라는 울고 있었다.

    열네 번째의 채찍질이 가해지자, 울음은 곧바로 비명으로 바뀌었다.

    뭐라고 끔찍하게 소리를 질렀지만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피냄새과 구역질이 뒤섞여서 이도저도 아닌 것이 두개골을 사방에서 압박했다. 숨이 막혀왔다.

    “으흑, 흐아아아……아아…….”

    라우라에게는 미안한 짓을 저질렀다.

    그녀가 왜 데이지를 고문했는지 알고 있다. 이해한다. 미치도록 걱정된 것이겠지. 자기 자신을 제어할 수 없을 만큼. 감정의 격류를 견디다 못해, 애정이 분노로 일그러지고, 누군가에게 쏟아부어야 했겠지.

    “싫다, 주군, 이런 건 싫다……그만……다시는 안 그러겠다, 그러니까…….”

    내 책임이다.

    라우라는 본래 감정에 휘둘리는 여자가 아니었다. 스스로 성벽에서 뛰어내리는 마지막 순간마저 고고하게 턱을 치켜세우고, 오만한 눈빛으로 용사를 내려다보는, 그런 인간이 될 터였다.

    나라는 자에게 잡혀버린 탓에.

    저토록 아름다운 아이를.

    라우라를 내가 망쳐버렸다.

    “아, 흐아아, 아아……하지 마……안 돼……안 된다……주군, 주군…….”

    …….

    그후로, 숫자가 드문드문 이어졌다.

    서른 대쯤에 이르렀을 때 문득 지나치게 긴 침묵이 이어졌다. 어느새 나는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상반신만 간신히 일으키고 뒤쪽을 쳐다보았다. 제레미의 창백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입안에 핏물이 가득했다. 뱉어내고 싶었지만 그럴 힘이 없었다. 차선책으로 입술을 살짝 벌려 그냥 바깥으로 쏟아 흘렸다. 혀를 움직일 정도의 공간이 확보되었다.

    “……몇 대째냐.”

    “서른……두 대입니다, 전하.”

    내가 조용히 제레미를 노려보았다. 어서 나머지를 해치우지 않고 뭐하는 것이냐. 그런 의미가 담긴 질책이었다. 제레미가 우물쭈물거렸다.

    “더 이상은 전하께서 버티지 못하십니다…….”

    굳이 대답해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계속해서 묵묵히 제레미를 노려보았다. 제레미는 이를 물고 천천히 채찍을 들어올렸다. 그래. 바로 그거다. 너의 역할은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잘했다는 의미에서 고개를 한번 끄덕여주었다. 그리고 다시 바닥에 상반신을 눕혔다. 정좌로 앉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기력이 없었다.

    서른세 번째의 채찍질을 맞으면서 내가 비명을 질렀다. 기절한 사이 입에서 고무가 빠진 모양이었다. 이빨에 들어갈 힘조차 사라졌다는 의미였다. 이제 와서 다시 끼어본들 쓸모가 없으리라.

    “……, …….”

    라우라는 울부짖다가 기어이 체력이 나갔는지 입을 뻥긋거리고만 있었다. 안 그래도 형벌을 받느라 엉망진창이 된 몸으로 있는 힘껏 발버둥까지 쳤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다만, 눈가에서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채찍질 세 번에 한 번 꼴로 혼절했다. 어쩔 수 없이 형벌은 긴 시간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중간에 보다 못한 이바르가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파르시가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간단하게 나의 형벌에 열 대를 추가했다. 그러자 이바르가 절망적인 표정으로 물러났다. 제레미는 열 대를 추가하는 것을 강력하게 거부했지만 나는 한 번 내린 명령을 물리지 않았다. 결국 예순에 열을 추가하여 꼬박 일흔 대의 매질을 감당했다.

    “……일흔.”

    제레미가 숨을 토해내듯이 말했다. 내 명령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채찍에서 힘을 놓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제레미는 칭찬을 받아 마땅했다. 그녀에게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목소리를 내는 것이 가능했다면 말이다.

    모든 것이 끝났다.

    이로써 내 마왕군의 기강은 확립되었다. 이런 사건이 반복할 일도 없겠지.

    죽을 것처럼 고통스러웠으나 죽지 않았다.

    그것이면 되었다.

    누가 봐도, 훌륭한 결말이었다.

    나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중얼거렸다.

    “집……행을……완료…….”

    그리고 말을 끝맞추지 못한 채 정신을 아예 놓았다.

    마흔 대 무렵부터 의식인지 무의식인지 모를 정신머리로 있었으니,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다시 정신을 차릴 필요가 없이 눈을 감았다는 것이었다. 눈을 계속 감아도 괜찮다.  이것이 이토록 거대한 축복일 줄이야.

    주변에서 전하! 하고 여러 사람이 동시에 소리쳤다. 바로 옆에서 들리는데도 무척이나 아득하게 느껴졌다. 나는 편안한 어둠에 감싸여 끝까지. 밑바닥의 밑바닥까지 추락하였다.

    이대로 영원히 잠겨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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