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330화 (330/510)
  • 00330 ending no.03  =========================================================================

    이번 편은 if 외전입니다. 베드엔딩을 혐오하는 분은 건너뛰어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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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딩 조건》

    1. 마왕 파이몬의 호감도가 50 미만일 것.

    2. 라피스 라줄리의 마법계열 직업 중에서 A레벨 이상이 전무할 것.

    2. 단탈리안의 악명이 100000이상일 것.

    ·

    ·

    ·

    사람은 하기 싫어도 뭔가를 해야만 할 때가 있다.

    라피스 라줄리는 현재 그 사실을 절감했다. 그녀는 합스부르크 황궁에 서 있었다. 제국의 섭정인 바르바토스에게 급히 전해야만 하는 소식이 있었다. 잠시 뒤, 바르바토스는 업무를 일단락 짓고 접견실에 들어왔다.

    “어라. 단탈리안네 재상이잖아. 네가 여긴 무슨 일이야?”

    의외의 인물이 접견을 청했다고 생각했을까. 바르바토스가 신기한 눈초리로 라피스를 쳐다보았다.

    “전하.”

    라피스는 웬만한 일에도 감정이 동하지 않을 만큼 강심장이었지만, 입술을 떼었음에도 불구하고 뒤에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입술이 달싹거렸다. 도대체 어떻게 말해야 할까. 마치 목소리를 내는 방법 자체를 잊어버린 것 같았다.

    바르바토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보나마나 단탈리안이 보냈을 테고. 뭐야, 그 새끼가 또 말썽이라도 저질렀냐? 하여간 병상에 드러누웠으면 얌전히 있을 것이지. 쯔쯧.”

    “전하.”

    “그래. 긴장하지 말고 말하려무나.”

    바르바토스가 키득거렸다. 이쪽을 배려하는 느낌이 전해졌다. 배려하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바르바토스의 예법이었다. 라피스는 그것을 종종 옆에서 지켜보았고, 그렇기에 참담한 심정을 느꼈다.

    몇 번이나 입속에서 중얼거리고 마침내 라피스가 소리내어 말했다.

    “단탈리안 전하께서……승하하셨습니다.”

    시간이 멈추어버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

    바르바토스는 웃음기가 남은 얼굴 그대로 정지했다. 유일하게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것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풀리기 시작하는 그녀의 표정이었다.

    “……뭐?”

    바보 같은 되물음에 라피스는 더욱 괴로워졌다.

    저건 본능적인 거부 반응이었다. 정말로 잘 듣지 못해서 반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들은 문장을 거부하기 위해 반사적으로 치는 도리질.

    “오늘 새벽, 오전 네 시 경에 단탈리안 전하께서는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습니다.”

    라피스는 마음의 가장자리가 썩어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어디까지나 사무적으로 얘기했다. 그것이 라피스의 최선이었다.

    “사인은 아직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암살일 가능성이 높다고, 소인은 개인적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어……?”

    바르바토스의 표정이 점차 허물어졌다.

    “야. 그게 무슨 농담이야. 거짓말이지?”

    “…….”

    “단탈리안이 죽을 리가 없잖아. 죽이려고 해도 절대로 죽지 않을 것 같은 바퀴벌레 새끼인데…….”

    그 붕괴를 막으려는 듯, 바르바토스의 입끝이 올라갔다. 미소를 지으려는 것일까. 필사적인 복구작업은 그러나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었다. 이미 그녀의 통제를 벗어나서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아, 하고 바르바토스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

    “그렇군. 또 단탈리안 녀석이 농간을 부리는 거야. 나한테 그런 말을 전해서 어떤 반응을 이끌어내려는 속셈이지? 으이구, 한심한 놈. 세상에 구라를 쳐도 될 일이 있고 구라를 치면 안 되는 일이…….”

    “바르바토스 전하께.”

    더 이상 들을 수 없어서 라피스가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과 같은 하급마족이 마왕에게 저질러서는 안 될 무례였으나, 바르바토스의 얼굴을 더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바르바토스 전하께 가장 먼저 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께서……단탈리안 님께서, 진정으로 사랑하신 분이기에.”

    바르바토스가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흐르고.

    “아…….”

    조용히 눈물이 흘러내렸다.

    저 표정이었다. 라피스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탄식했다. 주군의 죽음을 전달할 때마다 사람들은 저런 표정을 지었다. 라우라도, 이바르도 모두 똑같이 반응했다.

    그녀들은 지금 단탈리안의 침대에 주저앉아 정신없이 울부짖고 있었다. 그야말로 미친 것처럼. 소식을 전달할 만큼 제정신을 유지하는 사람은 라피스밖에 없었고, 따라서 그녀가 바르바토스에게 왔다.

    “아, 아……아…….”

    바르바토스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녀의 자그마한 손가락은 미처 흐르는 눈물을 다 가리지 못했다. 주체할 수 없는 양의 눈물이 손가락 틈새로 계속해서 흘렀다.

    사실 바르바토스는 이미 알고 있었겠지. 마왕은 마족의 심리를 느낄 수 있었다. 접견실에서 라피스와 마주한 순간부터, 이미 모종의 불길함에 사로잡혔다. 그렇기에 도리어 쾌활하게 행동했다.

    그렇다. 알고 있었다.

    꼭두새벽에 단탈리안의 재상이 급히 찾아올 만한 일이 무엇인지.

    왜 라피스가 자신을 보며 절망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전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처음으로 사랑한 남자가 죽어버렸다.

    “으, 아……아아…….”

    조금씩, 절규가 토해졌다.

    수없이 많은 죽음을 지켜봤다. 수없이 많은 죽음을 수확했다. 그러나 바르바토스는 결코 죽음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누구보다 죽음을 원망했고 두려워했기에, 역설적으로 흑마법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영원히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왕이니까, 언제까지나 곁에 함께해줄 것이라 믿었다.

    가장 죽음에서 멀다고 안심하고 있었다.

    “유언……유언은……?”

    “마지막 전언을 남기실 틈도 없이 돌아가셨습니다.”

    라피스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양피지 두루마리였다. 그녀가 두 손으로 공손하게 두루마리를 바르바토스한테 바쳤다.

    “하지만 단탈리안 님께서는 항시 유언장을 품에 이고 다니셨습니다.”

    “그런 거 들은 적 없어…….”

    “만약의 사태가 벌어질 경우엔 바르바토스 전하께 전해드리라고……소인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바르바토스가 입술을 다물었다. 단탈리안은 자신의 죽음을 이어받을 사람으로 그녀를 선택한 것이었다. 건네받은 두루마리의 무게에 바르바토스는 손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즉, 이것은 자신의 남자가 최후의 최후에 가서 남긴 것.

    바르바토스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나오는 바람에 닦아봤자 별 쓸모가 없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닦아냈다. 눈물 때문에 흐릿해진 눈으로 단탈리안의 마지막 문장을 보고 싶지 않았다.

    두루마리를 펼치자, 약간 엉망인 필체로 유언이 적혀 있었다.

    「이 유언장이 공개된다는 것은 본인이 예기치 못하게 죽었음을 의미한다.

    나의 삶에 대해서는 변명할 거리가 없다.

    다만 애처롭게도 삶이란 혼자서 펼치는 일인연극이 아닌지라, 내 초라한 무대에 때로는 우연하게, 때로는 우연치 않게 초대된 손님들이 있다. 그들에게 작별인사를 건네지 못하고 떠나버리는 것이 유일한 걱정이다.

    그렇기에 이 자리에서 작별인사를 대신한다.」

    이후로 이름들이 언급되었다. 라피스 라줄리, 라우라 데 파르네세, 데이지, 제레미, 가미긴, 파이몬, 시트리…….

    마지막으로 그녀의 이름이 있었다.

    「바르바토스는 나의 가장 충실한 친우이다.

    내 삶에 허락된 모든 애정과 우정을 그녀에게 바친다.

    바르바토스. 너는 어딘지 여린 구석이 있어서 걱정이다. 내가 죽으면 분명히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 주제에 속으로 별 염병을 떨 것이다. 이 염병의 구체적인 목록은 다음과 같으며, 이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나의 처방전을 따라주길 바란다.

    첫 번째. 나에게 혹시나 못해준 것이 있었는가 걱정하지 말도록.

    너는 나에게 항상 필요 이상의 애정과 이해를 보여주었다. 이는 내가 보증한다.

    두 번째. 어쩌면 내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걱정하지 말도록.

    너의 삶이 온전히 너의 것이듯 나의 죽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다. 내 소유물을 존중하라. 이게 무슨 의미인지 너라면 알아줄 것이다.

    세 번째. 정말로 쓸데없는 노파심인 것 같지만, 행여나 순결 같은 관념을 지키겠답시고 갑자기 색욕을 끊어버리지 말도록.

    이미 죽어버린 나에게 부당한 책임을 짊어지우는 일이다. 결단코 말리고 싶다. 사자(死者)를 존중해라.」

    그걸로 끝이었다.

    사랑한다든지, 힘내라든지, 그런 사소한 말조차 담겨 있지 않았다. 오히려 욕설을 퍼부었다. 바르바토스는 어째서 단탈리안이 그렇게 유언을 남겼는지 너무나도 잘 이해했다.

    “나쁜 새끼……개 같은 새끼…….”

    눈물을 닦은 것이 무색하게, 다시 울음이 나왔다. 그녀가 두루마리를 꾸욱 접으면서 고개를 들어올렸다.

    “나한테도, 슬퍼할 권리가 있다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  *  *

    라피스는 끔찍한 나날을 감내했다.

    바르바토스가 장례식을 지휘했지만, 사무적인 일처리의 대부분은 라피스에게 맡겨졌다. 라피스 본인이 강력하게 소망했다. 주군의 죽음을 다른 사람한테 완전히 떠맡기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장례식은……그다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라피스는 단지 단편적인 기억만을 갖고 있었다. 합스부르크 황궁에서 황제의 예우로 치루어진 장례식은 수많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그 징그럽게 많은 숫자의 사람이 기억을 방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특히나 최악의 순간은 마왕 가미긴이 관에 들러붙었을 때였다.

    “아아아악! 아아, 아, 흐아아아――!”

    가미긴은 처절하게 절규하며 단탈리안의 관을 부둥켜 안았다. 마력에 담긴 목소리는 황궁을 뛰어넘어 온 도시에 울려퍼졌다.

    “죽여버리겠어! 다 죽여버리겠어! 절대로 용서하지 않아! 절대로……!”

    무엇을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마왕씩이나 되는 인물을 말릴 수는 없었다. 가미긴은 한 시간이 넘도록 울다가 지쳐 제풀에 떨어졌다. 지옥처럼 끔찍한 비명이었다…….

    그날부터 모든 것이 망가졌다.

    라우라, 가미긴, 이바르, 세 사람이 광기를 주도했다.

    라우라는 장례식이 열린 그날밤에 바로 데이지를 처형했다. 주군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차마 라피스가 말릴 틈도 없었다. 라우라의 칼이 데이지의 목을 베었다.

    “주군이 없는 곳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럼 어디로 가려는 겁니까, 라우라.”

    “당연하지 않은가.”

    라우라가 피 묻은 칼을 닦아내며 섬뜩하게 미소를 지었다.

    “주군이 계신 곳으로. 허나 맨손으로 가서야 주군도 섭섭하겠지.”

    라우라는 마왕성에 남겨진 모든 몬스터를 이끌고 떠났다.

    “…….”

    라피스에게는 그녀를 말릴 힘도, 의지도 부족했다.

    직후에 라우라는 가미긴에게 투신했다. 두 사람이 사전에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는지는 몰랐다. 다만, 이 대륙에서 단탈리안의 복수를 가장 간절하게 바라는 인물들이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았다고 한들 이상하지 않았다…….

    가미긴은 곧바로 '세 번의 암살을 방조한 바타비아 공화국'에 선전포고했다. 중립파의 마르바스가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소용없었다. 가미긴은 단독으로 군사를 일으켰다.

    그 배후에는 이바르 로드브로크가 있었다. 상회의 재력을 모두 투입할 기세로 이바르는 가미긴을 지원했다. 마족과 인간을 가리지 않고 최상급 용병들이 모여들었으며, 군세는 오만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라피스는 단탈리안의 영지에 홀로 남아 업무를 처리했다. 누군가는 주군의 유지를 이어나가야 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탈리안이 죽자 마왕성에서 마력이 사라졌고, 마력이 사라지자 마탑들이 미련없이 떠났다. 마탑이 사라지자 상회들이 철수했다. 영지의 몰락은 필연적이었다.

    그럼에도 라피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 땅에는 주군과 함께한 기억이 있었다. 추억이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주군이 남긴 마지막 유품이었다. 포기할 수 없었다…….

    “국무상서!”

    집무실 문이 열리고 파르시가 들어왔다.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 정신없이 뛰어온 기색이었다.

    그나저나 파르시는 여전히 자신을 국무상서라 불렀다. 이미 단탈리안 마왕군 따위는 공중분해해버렸는데도. 곰처럼 우락부락하게 생긴 것과 다르게 의리가 있는 인간이다, 하고 생각하며 라피스가 물었다.

    “무슨 일인가요.”

    “그, 그게……파르네세 님이 이끄는 군이 패배했다고 하외다.”

    라피스의 깃펜이 뚝, 하고 멈추었다.

    “자세한 정황은 소인도 모르오만……거 통령인가 뭐가 하는 군대에 매복을 당해서…….”

    “군무상서는 무사합니까?”

    “……소식이 없수다.”

    사령관인 라우라의 소식이 없다.

    달리 말해, 거의 확실하게 죽었다고 봐야겠지.

    “……알겠습니다. 조금 더 확실하게 알아보지요.”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라피스는 직감했다.

    자신이 단탈리안 님의 곁에 돌아갈 날도 그리 멀지 않았음을.

    ─ Ending no.03(Dead Ending): <파멸>

    ─ 엔딩 앨범이 추가되었습니다.

    ─ 게임을 다시 시작하겠습니까?

    ============================ 작품 후기 ============================

    엄-청나게 오랜만에 찾아온 베드 엔딩입니다.

    베드 엔딩을 싫어하는 독자분이 많으시지만, 죄송합니다. 단탈리안을 죽이기에는 지금이 최고의 순간이라고 느꼈습니다. 여신께서 저에게 '죽여! 그 녀석을 지금 죽여!' 하고 속삭이셨습니다. 신의 계시치고는 약간 과격한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만, 이런 시간입니다. 아마 신께서도 과다한 야근업무에 스트레스가 쌓이신 것이겠지요.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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